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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rgeous Aug 14. 2024

아이 엠 러브.

그가 말했다. 나는 사랑이라고.

회사에서의 삶이 참 고단하고 각박하다.

두려움과 불안이 많은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오면 심하게 요동한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맨홀 뚜껑 밟는 것도 어려워했던 아이라고 들었다.

“너는 참 겁이 많은 애였지.” 아빠는 이 일화를 말할 때마다 항상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서일까. 손톱 거스러미 뜯는 버릇은 이럴 때면 더욱 심해진다. 붉게 올라오는 손톱 옆 살들을 지켜보면서 내가 또 불안하구나,를 느낀다.


이런 상황을 남자친구에게 대략적으로 말했다.

낱낱이 말하기도 귀찮고 스트레스였지만, 그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궁금해하는 사람이니 최대한 무덤덤하고 간결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심하게 불안도가 높은 나를 인지하고 있는 남자친구가 이렇게 톡을 보냈다.

[자기야 아무리 무서운 것도 자기를 해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날 기억해 줘요. 난 자기를 사랑하고 축복해.]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회사 상사의 높은 핏치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엄마도  아침 출근하는 길에 톡을 보냈다.

[지수야. 네 상황을 잘 모르지만 우린 전적으로 너의 편이라는 것과 선한 것을 이루기를 바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지수가 넓은 마음으로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그렇지라고 편하게 받아들이면 좋겠어 힘내]


어느 책에서 이렇게 말하더라. (*정확한 책 제목은 생각이 안 나 추후 찾아보고 기재하겠음)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법-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칭찬과 응원을 받고 있다면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 상황이 나나 타인의 무능으로 인해 내가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더라도, 나는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닌 것일 테다. 아니다. 어쩌면 잘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스트레스로 인해 교감 신경이 활발해지면서 새벽녘에 잠이 깼다. 잠이 도통 안 와 유튜브 알고리즘을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내려놓음’이라는 책으로 유명하신 이용규 선교사님의 영상을 유튜브로 들으면서 생각했다.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일하시지 않는다, 다만 그가 나의 아버지이시고, 내가 그의 자녀라는 것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이러한 고난은 그가 허락한 시간일 것이다, 나는 그가 허락한 이 시간에 그가 원하는 걸 캐치하고 그에 맞게 반응하고 싶다, 고.

물론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억울함이 몰려왔다. 인생은 고행이라는 말에 거세게 반항하고 싶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하고 잘 살고 싶어 할 텐데 이러한 원초적인 욕구를 뒤로 한 채 고난을 견딜 수 있는 것인가. 나는 그런 인생은 살고 싶지 않은데, 하며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내 인생이 잘 풀려야 한다는 생각이야 말로 기복 신앙에 불과하다는 것을 내 이성으로 알고 있다.

하나님이 정말 신이라면, 잘남과 못남에 대한 그의 기준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할 것이다.

그러므로 소위 인간적인 시각에서 잘나 보이는 인생을 통해 일하시는 것과 소위 못나 보이는 인생을 통해 일하시는 것 모두 하나님 입장에서는 ‘일하시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시각에서 본다면, 우리가 흔히 아는 달란트 비유는 선교사님의 말씀대로 단순히 물적 자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자원을 말씀하신다는 게 정말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고난과 결핍이라는 영적 달란트. 그걸 겪고 인내하고 지나간 자만이 갖고 있는 파워, 에너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달란트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나는 지극히 세속적인 인간의 입장에서만 달란트를 해석하고 싶었던 것 같다. 더 많은 돈, 더 큰 권력과 명예 따위 말이다.


나는 종교인, 구체적으로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인생을 이렇게 해석한다고 할 수 있지만 이건 비단 기독교인 만의 멍청한 자기 합리화만으로 볼 수는 없다.

자주 듣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도 이런 맥락에서 이야기를 하실 때가 종종 있고, 내가 좋아하는 신형철 평론가도 이러한 맥을 공유하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삶에 희망이 있다는 말은,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지난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 중-]


오늘 하루 어땠냐며 내 하루를 묻는 남자친구에게 이런 생각들을 전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래서 자기는 ‘사랑’하는 시간만이 유일하게 남는 가치인 거 같다고.

모든 것은 사라지고 흐름에 의해 재해석될 여지가 많지만, 어떤 영혼을 사랑하는 건 그런 것과 상관없이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고.

변하지 않는 가치를 하나 꼽으라면 자기는 사랑인 것 같다고.

그리고 자기가 너와 있어서 감사한 점은, 자기가 네 옆에 있으면 본인이 ‘사랑’으로 존재할 수 있어서라고.


그 말을 듣고 내가 말했다.

”I am love란 셈이네.”

예쁜 색감의 독립예술영화의 제목 같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아이 엠 러브.라고 말하는 남자. 어찌 보면 이게 내 인생에서 영화 같은 일일 수도 있겠다.

여태껏 인생을 악다구니로 살면서 항상 노력 대비 보상이 적었다고 생각한 내가, 그래서 항상 하나님께 피해 심리와 억울한 마음이 컸던 내가, 내 노력과 전혀 상관없이 얻을 수 있었던 선물은 바로 내 남자친구다.

나는 결혼을 생각하지도 않고 살던, 개인 생존 중심 주의로 살던 사람이었을 뿐인데. 그래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던 내가 어떻게 이런 사람을 거저 얻었지? 나는 왜 이 사람이 내게 선물로 주어진 것에 전혀 감사하면서 살지 않았지?


내 한평생 남겨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사랑일 테다.

그걸 알려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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