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과의 싸움
임신하기 전부터 내가 겪고 있던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무기력.
너무 대학 때, 사회 초년생 때 열정을 다해 살았기 때문일까. 너무 바쁘게 살아서 일찍이 소진된 탓일까.
이상하게도 지금의 일을 하게 되는 3년쯤 된 해부터인가 도통 헤어 나오기 어려운 무기력에 빠지게 되었다.
거기에는 직업적으로 잘 풀리지 않는 나의 일인 탓이 가장 큰 이유일 테다. 그리고 그 문제는 여전히 ing이고.
그러니 몇 년이 지났다고 해서 지금 괜찮아질리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보편적인 효과도 못 누린 채 악화일로만 내내 걸었으니 심해졌으면 더 심해졌으리.
현재의 나는 그토록 잘하던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준비해 나가는 것도 어렵고,
딱 출근시간에 맞춰 가까스로 아침 준비를 한 다음,
퇴근 후에는 곧장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씻는 것도 겨우 해나가는 터라,
어찌 보면 밥 먹고 씻고 회사를 다니는 것 이외에는 영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임신하고 나니 체력은 더 최악이 되고, 호르몬 탓인지 식탐만 늘어서 평소 먹던 식사량보다 더 먹고 간식도 더 섭취해 몸도 덩달아 뚱뚱해졌다.
그나마 살찌지 않는 것에서 미니멈 한 수준의 자기 관리를 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임신으로 그것 조차 깨지고 나니 이런 나 자신이 짐승같이 느껴지는 터였다.
오늘 남편이 내 부은 다리를 주물러주면서 살이 좀 쪘으니 간식 먹는 걸 줄여보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그게 어찌나 서운하던지. 안 그래도 나 자신도 열받고 있던 나의 부족함에 대해서 남편이 콕 짚어서 말하니 수치스럽고 화가 났다.
순식간에 얼굴 표정이 굳어졌고, 기분이 나쁜 나는 매일 태담 시간에 하던 책과 기도문 읽기를 오늘은 하기 싫다고 말했다.
내 기분이 상한 것을 눈치챈 남편이 살이 많이 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건강 관리를 하면 좋겠다고 말한 거라고 재차 말했지만,
나는 임신한 와이프에게, 그리고 나의 이런 무기력의 맥락을 아는 남편이 내 트라우마의 트리거를 당기는 말을 했다는 게 용서가 되지 않았다.
억울한 남편도 자신의 입장에 대해 항변했고, 그러다가 그의 기분도 상하게 되었고, 나는 그런 그가 이해가 되면서도 또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이중의 마음을 안은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러다 코 고는 남편의 소리를 못 참고 거실로 나와 책상에서 이 글을 쓴다.
(기분이 나빠도 잠을 잘 자는 그가 부럽다. 나는 도리어 각성된다. 그래서 나의 글은 결핍의 상태일 때 잘 나오나 보다.)
삶을 잘 꾸려나간다는 게 무슨 의미일지 생각해 보았다.
나의 완벽주의를 이루는 것일까.
영어 공부도 하고, 운동과 식단 관리도 하고, 돌아가는 경제 뉴스도 알고, 작가가 되기 위한 글쓰기도 꾸준히 하고, 또 그러면서 생업과 임신 출산 육아를 대비를 하고.
이 모든 걸 똑 부러지게 잘해나가는 게 삶을 잘 꾸려나가는 사람의 모습인 걸까.
시간을 더 알차게 채워나가고 빼곡히 채운 시간을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해 나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궁극적인 모습인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암담하기 그지없다.
나의 삶은 to do list에 의해서만 움직이게 되니까.
이제 예전의 그 삶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속 저항감이 심하게 인다.
그래서 선뜻 그렇게 하겠소.라고 나설 수가 없다. 나서봤자 얼마 가지 못할 의지력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재 상태의 나는 어떤 게 보완이 되어야 삶을 잘 꾸려나갈 수 있는 것일까.
이전처럼 맹목적인, 무식한 스케줄 관리는 할 수 없다. 이제 정말 그럴 힘과 에너지, 무엇보다도 필요성을 모르겠고, 의지 또한 없다.
그러다 보게 된 한 유튜브 영상(잘잘법-작심삼일을 끝내는 믿음의 루틴)에서 얻은 인사이트가 있다.
게으름에 가장 적절한, 유일한 처방은 당신 안에 있는 불꽃을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매튜 폭스 (영성 사상가, 신학자)-
종교적 인사의 말이니 저 불꽃은 신앙적으로 해석될 것이다. 이를 테면, 하나님의 부르심, 소명과 같은 말로 말이다.
하지만 나는 비기독교인이어도 적용될 수 있는 여지의 말이라 생각한다.
불꽃. 뜨거운 마음을 품는 것. 또 다른 말로는 열정일 테다.
조금 더 쉬운 말로 말하면,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열정을 어디에서 발견할 것인가, 이 뜻이 아닌가 싶다.
그러려면 다시금 나의 삶과, 현재의 나를 상고해봐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왔으며,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가.
어떤 걸 해야 하는 가 보다 어떤 걸 하고 싶은가에 방점을 두고 생각한 지 너무 오래됐다.
돌이켜 보니 내 삶이 왜 이렇게 팍팍해졌나 싶다.
다시금, 어떤 생산성과 수치로 귀결되지 않는, 순수한 재미에 눈 뜨고 싶다.
그리고 그 재미를 소소하게 찾아나가고, 거기에서 파생되고 비롯되는 나의 열정을 발견하고 싶다.
(그리고 바라건대, 보다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서, 나에 대한 상대방의 조언이나 충고도 받아들일 수 있는 넉넉함을 갖고 싶다.)
내 삶에 대한 집중력을 회복하고 싶다.
나는 어디에서 불꽃을 느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