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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딘의 우연한 연결 Jul 07. 2022

[잘사는청년] 밥풀 많은 여자

- 황지은을 만나다


올 봄부터 ‘잘 사는 청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주변에 잘 사는 청년 –지극히 주관적이고 사적인 내 기준으로- 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글로 정리해 ‘달달함별’이라는 웹진에 올리는 사사로운 공정이다.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황지은의 첫 반응은 이 인터뷰는 자신이 꼭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에? 의외의 반응이다. ‘당신은 잘 사는 청년입니까?’ 라고 물어보면 대체로 글쎄요, 라고 고개를 꼬거나 잘 못 살아요 혹은 잘 사는지 모르겠어요, 라는 대답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왜죠? 본인이 잘 사는 청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내 물음에 황지은이 대답했다. 언론에 등장하는 청년들보다는 잘 사는 거 같아요.  


황지은  요즘 언론이나 카더라 식의 청년 이야기에 항상 너무 우울하고 고민이 많고 뭐가 잘 안되는 이야기만 나오잖아요. 얼마 전에도 전철에서 옆 사람이 보는 신문을 보니 헤드라인이 ‘청년 알바절벽’ 이었어요. 아침 신문 헤드라인에 매일 그런 기사를 보면 살기 싫잖아요. 화가 나고 힘이 빠지고. 공적매체를 통해 접하는 청년이야기의 주류가 항상 그런 스토리텔링인데, 그런 걸 읽을 때마다 내 주변 청년들은 이렇게까지 각박하지 않은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했죠. 물론 저도 고민도 많고 걱정도 있죠. 그렇지만 청년에 대한 불길한 기사를 접할 때면 나도 청년인데 내 이야기는 어디 있나, 라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청년이 얼마나 불행한지에 대해서는 그렇게 특집기사를 내면서, 청년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어하고 그 삶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꼼꼼하게 쓰는 기사는 못 봤어요. 청년이 읽었을 때 더 불행해지는 얘기가 최근의 청년담론이예요. 청년을 한 덩어리로 묶어서 요즘 청년들은 뭐뭐뭐를 포기했고 불행하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그냥 남의 얘기를 씹듯이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돌파구를 제안하지 않은 채로 절망과 불행을 그렇게 체계적으로 쓰는 일을 왜 할까. 그런 기사를 읽고나면 있던 기운도 없어지죠.


황지은의 문제의식은 청년담론의 주체가 누구냐에 있다. 누가 청년을 호명하고, 청년의제를 설정하고 청년문제 해결의 핵심이 되어야 하느냐. 스스로의 힘으로 경제신화를 이루고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자신하는 세대들의 눈에 지금 청년들은 한심하고 무능해서 시혜를 베풀어야  대상으로 보일  있다. 열심히 일해서  평수를 늘리고   차를 샀던 세대들이 설계하고 입안하는 청년정책은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청년들의 요구와 비전과 어긋날  있다. 청년행복주택에 관해 황지은은 비판적이다.  
   
황지은  청년행복주택 분양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기대를 했죠. 저도 매달 월세 내며 살고 있으니까요. 주거문제만 해결되도 생활의 질이 달라지잖아요. 그런데 취업을  사회초년생을 대상으로 하는  집의 크기가 5평에서 7평이라는 거예요. 정말 엄청 화가 나더라고요. 그럴 거면 청년행복주택이라고 하지 말고 청년쪽방주택이라고 해야죠. 청년원룸주택이라고 하든지. 정책의 이름을 현실적으로 불러야죠.  발상은 청년의 삶을 유예된 형태로밖에 보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5평에서 7 주택에 살면서 15 저축해서   마련을 하라는 거죠. 그것도 모든 청년에게가 아니라 지원을 해봐 조건을 보고 계약을 해줄게 라는 거구요. 5 짜리 집에서 살면서 허리띠 졸라매고 10 20 아껴 쓰고 저축해서   마련, 이런 플랜을 청년에게 던지면서 행복, 이란 말을 붙이면  된다고 생각해요.  청년은 5평짜리 7평짜리 집에서 행복해야 할까요? 30 저축해야 00아파트   있다, 이런 기사가 나잖아요. 그럼 저는 친구들이랑 이렇게 얘기해요. 이런 기사  내나,    건데. 사실 저런 기사 봐도 절망도  느껴져요. 왜냐하면 우리는    거니까.  사는   인생의 목표가 아니예요. 차라리   모아서 유라시아 3 여행하겠다,   현실적이죠. 인간에게는 안정적인 주거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뭔가 도모할  있죠. 저도  집이 생기면서 진정한 독립을  기분이거든요. 친구들도 부르고 모임도 하고 쉬기도 하고 연애도 하고. 청년주택정책의 핵심은 청년기의 삶을 유예된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데서 출발합니다. 앞세대들이 했던 방식대로 20 알뜰살뜰 저축해서 내집마련, 이건 이제 불가능하다는  우리 모두 인정해야죠. 그래야 청년주택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나온다고 봐요. 책상 하나 침대 하나 놓고 나면 다리 뻗을 데도 없는 원룸 하나 던져주면서 감지덕지 행복해라, 이런 발상은 전형적인 구세대들의 생각입니다.

청년쪽방정책, 이라고 황지은은 거침없이 말한다. 배부른 소리, 라고 말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하다.  부른 소리 맞다.   칸에  가족이 사는 집도 많았고, 신혼부부도   칸으로 시작했고, 대문  문간방에 세들어 연탄불 갈아가며 대학 다닌 청년들도 많았다, 라고 말하는 순간 당신 꼰대 맞다. 지금 20 청년들은 대부분 어려서부터 자신만의 독립된 방이 있었다. 공간에 대한 감각이 50 60대와는 완전히 다르다. 배가 고팠던 경험이 웬만해선 없었기 때문에  부른 소리를 하는 거다.  부른 세대에게 적합한 정책이 나와야 합리적인 거다. 우리 어렸을  좁은 방에 다같이, 라고 말하는 순간 청년을 위한 주택정책은 청년들로부터 외면받을  밖에 없다.
   
황지은  공공의 영역, 특히 주거문제에 대해서는 포괄적인 지원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청년행복주택 좋아요. 5평짜리, 7평짜리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공간조차도 꿈의 궁전이니까요. 대신 3 내지 5 정도는 무상으로   있게  주면 좋겠어요. 청년 시기에  걱정을 안하고 3년이나 5년을 보내면 뭔가 ‘다른일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주택 문제가 해결되면  돈을 다른 식으로 운용해서 삶의 질을 조금  높일 수도 있구요. 저도  수입의 4분의 1 월세로 나가니까요.   권을 사더라도 망설이지 않을  있고 영화  편을  때도 머리 속으로 돈계산을    있다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주변을   있는 시선도 생길  같아요. 주택 정책 뿐만 아니라 청년정책을 보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아요. 너무 짧은 기간에 결과를 내놓으라고 해요. 임시적이고 한정적인 기간을 설정해서 푼돈을 주지 말고 뭔가 실제로 공을 들여 일을   있는 조건을 마련해 가면 좋겠어요. 
   
청년주택정책은 꿈을   있는 전초기지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청년이 혹은 청년집단이 하고 싶은 일의 플랜을 세우고 매진해보고 승부를 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성급하게 요구하지 말고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고 그들 스스로 새로운 ,  만들 때까지 ‘씹지 말고간섭도 하지 말고 보호도 하지 말고 다만 토대를 형성해 주는 , 먼저 살아봤던 사람들이 해야  일이긴 한데.
   
황지은  행복주택, 이런  보면 화가 나긴 하지만 저는 비교적 잘사는  같습니다. 월세를 내긴 하지만 방도 있고 책상도 있고 애인도 있고 선생님도 있고. 걱정도 있긴 하지만 삶을 뒤흔들만한 것은 아니고.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실이지만 박탈감을 크게 느끼지는 않아요. 청년들이 척박해지는  뭔가를 해도 나아질 거라는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인  같아요. 죽고싶다기 보다는 살아야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출구 없는 미래에 대한 공포를 열심히 보여주는 매체들에 대해서는, 어이없죠.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라는 생각이 들죠. 





목동글방


집이 있으면 청년들은 무얼 할까? 황지은은 목동글방을 한다. 목동글방은 이주일에 한 번 청년들이 모여 글을 쓰고 낭독하고 합평을 하는 모임이다. 글과 관련한 일을 오랫동안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정기적으로 모이지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지속가능함이다. 모두 자신의 일이 있고 바쁘다. 그러니 이러저러한 부담을 줄이고 오래 모임을 지속할 수 있는 장치를 한다. 느슨한 공동체, 라고 할 수 있겠다.  
   
황지은  목동글방을 제 집에서 하자고 했던 이유는 열세네 평 되는 크기의 집이 생겨서예요. 우선 다섯명이 들어올 방이 생겼고, 같이 글방을 하는 멤버들이 손님치레를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고, 그 친구들이 살림꾼들이기 때문에 나는 방만 내주면 된다고 생각해서 그럼 우리 집에서 하자, 이렇게 된 거예요. 목동글방 하려고 황학동 중고가구단지에 가서 테이블을 샀어요. 8만 8천원에 두 개를 얻었는데 엄청 뿌듯했죠. 의자 4개도 학원 하시는 분이 버렸길래 사왔어요. 용달 불러서 가져왔죠. 살림살이 마련하면서 배실배실 웃음이 나더라구요. 여기에 앉아서 우리들이 할 일을 생각하면. 카페도 많은데 굳이 집에서 하냐고 물으신다면 대여섯시간 편하게 앉아서 또는 누워서 각자 흩어져 집중하며 글을 쓸 수 있어야 되는데 그런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죠.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모임을 해본 결과 집에서 하는 게 가장 질이 좋아요. 편하고 돈도 안들고. 목동이 좀 외지긴 하지만 그게 제일 편하니까 우리집으로 오게 하는 거죠.  일요일에 주로 만나요. 모여서 한시간 반은 근황을 나눠요. 목동글방 사람들은 서로의 글을 오랫동안 읽어온 사이기 때문에 내밀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예요.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도 하고 연애 얘기도 하고. 차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다 글을 쓰기 시작하죠. 일부는 빈둥거리고 서너사람은 쓰고. 사실 친구들이 글 쓸 때 저는 대부분 누워있어요. (웃음)  글감은 돌아가면서 내요. 각자 편한 방식으로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쓰고 그 글을 낭독하고 비평하고 그런 다음 아카이브에 올리고. 방이 하나가 있고 조그만 거실이 하나 있다는 게 이런 모임을 할 수 있는 훌륭한 조건이 되죠.
   
일요일 오후, 대여섯 명의 여자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글을 쓰고 비평을 하고 깔깔 웃고 눈물을 흘리고 맛있는 것을 먹는 공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말조심 따위 하지 않아도 되고 몸도 마음도 한껏 자유로울 수 있는, 나른하고 안온하고 평화로운 공간. 황지은이 5평 7평 청년행복주택에 대해 날선 비판을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황지은  목동글방에서는 좋은 글의 초석이 나온다고 생각을 해요. 그렇게 대여섯시간 놀면 좋더라고요. (웃음) 친구들이 글 쓸 때 저는 낮잠을 자는 때가 많지만 (웃음) 글 쓴 거 들으면 재미있어요. 비평은 하죠. 오랫동안 글을 봐온 사이라 그 사람의 흐름을 볼 수 있어서 네가 이런 변화가 생긴 것 같네, 이 글이 재밌어지려면 이런 사례를 붙이면 좋을 것 같네 이런 피드백이 오가죠. 예를 들면 조개라는 친구가 있는데 매년 쿠웨이트 얘기를 새로 쓰는데 제 눈에는 쿠웨이트 이야기가 조금 더 넓어지고 깊어진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거예요. 힘든 일이 있어도 글로 쓰면 정리가 되고 마음이 편해지잖아요. 목동글방은 무엇보다 저한테는 발설의 공간이예요. 제가 하는 일이 아무래도 제 언행에 대해 항상 생각을 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늘 약간의 긴장이 있는 편인데 이 공간에서는 자기 검열하지 않고 막 말을 할 수 있거든요. 어떤 이야기든 맥락을 파악해주는 사이들이라 부연설명 하지 않아도 되구요. 저에게 목동글방은 몹시 강력하고 편안한 지지집단입니다. 때때로 제가 사정이 있을 때는 다른 멤버의 집에서 하기도 해요. 돌아가면서 하면 부담을 나눌 수도 있구요. 오래가는 비법인 것 같아요.


“황지은의 주변에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흘러가는 어떤 순간을 이야기로 만들 줄 아는 이들이었다. 어느 날 밤 그들의 대화 속에서 목동글방이 시작되었다. 황지은이 자신의 목동 집을 모임 장소로 흔쾌히 내어놓은 것이었다. 이야기를 짓는다는 것은 능력과 욕구가 있어도 때로 집을 짓는 것만큼이나 버거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따금 모여 함께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나누기로 하였다. 엄연히 황지은이 만든 이 모임에서 근 1년간 그녀가 실제로 글을 쓴 것은 손에 꼽는다. 그녀는 친구들이 글을 쓸 때 대부분 누워있거나 수다를 떨거나 남은 일을 처리하거나 잠을 잤다. 그런데도 그녀는 친구 중에 가장 많은 글을 써내는 사람이었다. 일터에서 이루어지는 중요한 사업계획서나 출판용 원고의 대부분이 그녀의 손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한참 딴짓을 하다가도 친구들이 이야기를 낭독하기 시작할 때면 그녀는 자리에 앉아 눈을 반짝이기 시작한다. 모임에서 우리는 여러가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의 삶은 모두 가지각색이었다. 우리에게는 이따금 모여 이야기를 털어놓고 숨겨놓았던 목소리를 꺼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한동안 정신없이 떠들고 나면 적어도 몇 주는 잘 살 수 있었다. 우리들의 창고에는 좋은 이야기들이 쌓여가고 있다.”  -양다솔(목동글방)





길잡이별, 로드스꼴라


황지은의 공식직업은 여행학교 로드스꼴라의 교사(로드스꼴라에서는 교사를 길잡이별, 줄여서 길별이라 부른다)다. 그 중에서도 주말여행학교의 담임이다. 주말여행학교는 ‘한 권의 책, 한 번의 여행, 한 편의 글’이라는 컨셉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스무명 남짓한 14-24세의 청(소)년들이 모여 책 읽고, 공부하고, 여행하고, 글을 쓰며 1년을 보내는 곳이다. 공교육에 다니는 청소년, 홈스쿨러, 대학생, 대학을 안 다니는 청년 등 다양한 이들이 모여 여행과 공부를 매개로 1년 동안 함께하는 프로젝트형 주말학교다. 황지은은 이 프로그램을 출범시킨 장본인이다. 대학을 휴학한 1년 동안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사전답사를 다니고 비전을 설계하고 학교의 문을 열었다. 학교를 다니면서는 반상근으로 일을 하며 여행을 진행하고 평가회의를 하고 결과보고서를 쓰고 온갖가지 실무를 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황지은이 한 일은 한 조직의 ‘스피릿’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황지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직이나 팀에 속해서 세상을 살게 되죠. 작든 크든 모든 조직은 고충을 갖고 있게 마련이고. 어찌할 수 없는 어려움, 단시간에 어떻게 할 수 없는 한계 같은 것들을 사실 대부분의 조직은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조직을 만든 사람은 그걸 껴안으면서 지탱해나가야 하잖아요. 제가 그 위치에 있어보니 이해의 폭이 좀 넓어지는 거 같아요. 저는 일인사업자들도 많이 만났는데 그들이 느끼는 어려움도 알아요. 알바생 고용할 때 뭐가 어렵고, 재정과 회계를 어떻게 해야 하고, 홍보는 어떻게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조직을 이해하는 폭이 생기는 거 같아요. 문제해결의 시선과 의지도 좀 다르죠. 조직의 비전을 만들어가면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조직도와 더불어 사람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일인 거 같아요. 운영을 하는 입장에서는 팀원들의 불만에 대해서 어떤 이유가 있는지 가늠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어떤 일을 도모하든 갈등이나 고충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단박에 해결할 수 없더라도 어떤 식으로든지 껴안고 가는 방법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 이 조직운영자인 거 같아요.
   
황지은은 조율에 탁월하다. 2018년 여름 주말로드스꼴라는 유라시아 횡단여행을 진행했다.  청소년, 청년, 한국여행사 직원, 현지 코디네이터, 영상팀 등 나이도 국적도 역할도 다양한 40명의 사람들이 블라디보스톡에서 베를린까지 26일간의 대장정을 했다. 황지은은 그 여행의 핵심 스텝이었고 모든 사람들의 요구와 이야기가 그녀에게로 향했다. 유연함이 요구되는 위치였다. 황지은의 문제해결방식은 물처럼 흐르게 두는 것이었다. 모든 이야기는 황지은에게로 흘러들어왔다 흘러나갔다.  
   
황지은  일단 들어요. 이 사람도 하기 어려운 말을 했을 테니 음, 하면서 들어요. 듣고 보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인 게 대부분이예요. 그러면 음, 어려운 일이네요 왜 그런 걸까요, 라고만 해도 반은 풀려요. 이야기 하는 사람도 이걸 해결해내라가 아니라 자기 마음 속의 불편함을 토로하고 싶은 경우도 있잖아요. 해결할 여지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저의 상사인 어딘에게 얘기해보죠 라고 하고. 넘기거나 흘려보내거나. 그럼 그냥 반은 풀리는 거 같이요. 또 하나는 말을 옮기지 않는 거구요. 잘못 옮기면 또다른 불편함이 파생되거든요. 물론 힘들긴 하지만 제가 맡은 일이 그것이니 어쩔 수 없죠. 아 모두 왜 나한테 이러나, 한숨 한 번 푹 쉬고 하는 거죠. 이번 여행에서는 제 동기 가재가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가재한테만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실컷 했거든요. 해야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이야기. 인간에게는 가족을 제외한 소집단이라는 게 2~3개정도 있으면 자기 삶을 잘 꾸려갈 수 있는 거 같아요. 여기서 이 고민 얘기하고, 저기서 저 고민 얘기하고 그러면 살아갈 수 있는 힘 같은 게 생기는 거잖아요. 최근 우리 사회는 그런 소조 시스템이 붕괴된 거 같아요. 스스로 노력해서 자기 지지집단을 만들지 않는 이상 어릴 때부터 생활로서 그런 소조 시스템 안에 있기가 어려워졌어요. 붕괴되었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경쟁시스템에 들어가버리니까 고립되는 거죠. 혼자 사는 건 힘들어요. 저는 로드스꼴라에 들어오면서 소조활동을 많이 하게 됐어요.
   
황지은은 대학에 입학했다가 휴학을 하고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3기 학생으로 입학했다. 당연히 부모님은 반대했다. 멀쩡한 대학 두고 들어보지도 못한 이상한 대안학교에 간다는 건 어떤 부모라도 동의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러설 수 없는 결전에서 패한 후 황지은의 선택은 부모님을 속이는 것이었다. 대학을 다닌다고 하고 부모님이 준 등록금을 로드스꼴라에 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며 고민하고 갈등했지만 황지은은 로드스꼴라 2년 동안 나름 치열하게 공부하고 여행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안개가 잔뜩 끼었지만 거기 길이 있다는 것은 알 것 같았다. 사실 한 학기가 지나 엄마에게는 고백했지만 아빠에게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참고로 황지은의 아버지는 형사다. 형사의 딸답게 완벽하게 증거를 감추고 알리바이를 만들며 2년 동안 ‘딴짓’을 했다. 로드스꼴라를 수료한 이후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졸업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교사’로 학교로 돌아왔다.
   
황지은  가르치는 일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해요. 처음에는 뭘 정확히 전달하고 잘 이해시키고 그러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런 걸 아주 못하진 않으니까 나름 잘 맞다고 생각을 했는데,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교사가 생명력을 가지려면 자기가 진짜 하고 싶고 진짜 말하고 싶고 내가 만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나 안겨주고 싶은 거나 그런 반짝반짝한 뭔가를 평생 간직하고 살지 않으면 진짜 빨리 후져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교사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 진짜 많은 거잖아요. 그랬을 때 후진 말을 한다거나 하고 싶은 말이 전혀 없다면 그 자리를 견뎌낼 수가 없는 거죠. 떠별들(로드스꼴라에서 학생을 가리키는 말)은 이 선생이 진심을 말하는지 애정이 있는지 귀신같이 알거든요. 이 사람이 정말 새로운 비전을 가진 사람인지 그냥저냥 사는 건지 예민하게 안다는 거를 저도 알죠. 저도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런 힘이 없으면 교사를 할 이유가 없고. 올해 들어 청소년들이 실질적으로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은유나 상징이 아니라 진짜로 몸과 마음에 병이 든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살 날은 많고도 많은데. 자기 인생을 스스로 돌파해나갈 수 있는 힘이나 방법이나 그런 거를 초기 청년, 청소년기에 반드시 익히지 않으면 죽는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어떤 식으로든지 고립되는 것을 피하고 스스로 동지를 만들 수 있고 그런 관계망을 지켜나갈 수 있는 힘 있잖아요, 외국어 능력 등 거창한 걸 하지 않아도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여기서 많이 연습하고 나가지 않으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느긋함. 태연함. 담대함. ‘인생 망하지 않아’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 아주 조그만 씨앗 같은 거라도 여기서 심어서 내보내야죠. 뭐 좀 흔들리면 어때요, 흔들리더라도 돌아올 수 있는 기반같은 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SNS 같은 사회관계망은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사람을 점점 허수아비로 만드는 나름 무서운 기계죠. 통제가 안 되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여기 흔들리고 저기 흔들리고 매일매일 불안하고 그러면 정신과 신체가 압도당하고 인생이 집여삼켜지고 말 수도 있어요. 알지 않아도 되는 정보는 때로 재앙의 근원이 되요. 관계나 정보의 과잉은 스스로를 파괴하기도 해요. 사악한 정보와 말들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하거든요. 스스로 통제하고 차단하지 않으면 살기 힘든 것 같아요. 세상에 재밌는 일이 뭐 그리 많겠어요. 스스로 그걸 만들 수 있는 동력이 필요해요. 자기 그룹을 만들 수 있는 힘, 자기 소조를 한 개 이상 유지해 갈 수 있는 능력 같은 것들을 가르치고 배워야 할 거 같아요. 그래야 이십대가 돼서도 살 수 있을 텐데. 제가 이십대를 나름 씩씩하게 건너온 건 그 힘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이것만이라도 우리 떠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도 특별한 꿈이나 목표나 그런 거가 거의 없는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목표지향적인 인간도 아니고. 다만 로드스꼴라라는 학교에 학생으로 들어갔을 때 매년 매월 매 시즌마다 뭘 하자는 사람들이 옆에 많이 있었어요. 이번에는 이걸 하고 내년에는 이걸 하고 내후년에는 이걸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뭔가 두르뭉스리 하지만 생각하면 기분 좋은 일들이었죠. 그런 것들이 끊이지 않고 항상 있었고 그걸 별로 거절하지 않고 쭉 해온 것 같아요. 마음에 흐뭇한 걸 거절하지 않는 것, 도 그러고보니 인생을 사는 한 방법이네요.  
   
황지은은 인생의 어려움을 돌파해낼 수 있는 힘으로 느긋함, 태연함, 담대함을 꼽았다. 얼핏 기질이나 성격일 거 같지만 사실 저것들은 고도의 훈련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높은 산을 오르고 깊은 강을 건너며 팔과 다리를 강인하게 만들고 수많은 위기를 직접 대처해나며 때로 쓰러지고 때로 피눈물 흘리며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형질이다. 여행은 그래서 공부의 장이다. 남미의 5천미터 고도에서도 뻥뻥 공을 차던 황지은, 카자흐스탄의 광막한 평원에서 바람을 맞던 황지은, 북해의 차가운 호수에서 수영하던 황지은, 길 위에서 그녀는 느긋하고 태연하고 담대했다. 그녀의 몸에는 이과수가 천산이 유라시아가 다 들어있다. 
   
황지은  저 강을 건너면 뭐라도 있겠지 라는 생각만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조선 시대 때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건너 갔던 사람들처럼요. 우회로라든지 피신처, 은신처에 대한 상상을 가지고만 있어도 덜 팍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행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제가 하게 된 거죠. 저렇게 넓은 땅이 있는데 앞으로 연결되면 얼마든지 이주노동을 할 수 있겠구나. 내가 할 일이 없겠나 저 광활하고 드넓은 땅에, 이런 생각이 들죠. 한반도가 유라시아와 연결이 되면 시공에 대한 감각이나 거리 감각 자체가 완전히 달라질 거 같아요. 유라시아를 횡단하면서 정말 차원이 다르구나 생각했어요. 그게 얼마나 인생을 바꿔놔요. 여기서는 되는 게 없는데 거기서 다 되잖아요. 중앙아시아는 부유하다고는 볼 수 없는데 되게 활기가 있잖아요. 어마어마한 활기가 있잖아요. 어디서 근원하는건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식의 활기를 발견했을 때, 그리고 러시아에서 에어컨없는 열차를 다들 아무렇지 않게 타는 걸 보고 저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른 상상을 하게 한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가까운데 되게 달라요. 유라시아는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국가들이 접속하는 길이예요.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안착되면 유라시아는 우리와도 긴밀하게 접속하게 되는 거죠. 꿈처럼 아니고 구체적으로 그렇게 생각해요.
   
황지은은 2017년 통일부에서 주최하는 창업프로젝트에 동료들과 함께 ‘남북한 교사들을 위한 수학여행 가이드맵’ 을 출품해 장관상을 받았다. 그동안 했던 공부와 여행을 결합시켜 낸 걸작이었다. 시상식이 있던 날 동료들과 함께 청계천에서 한반도의 평화체제 정착을 위한 브라질 퍼커션 공연을 했다. 2017년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서로를 전쟁미치광이, 로켓맨이라 부르며 금방이라도 전쟁을 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던 때였다. 일부 보수언론도 편승해 전쟁을 부추겼다. 황지은과 동료들은 여기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반도에 사는 청년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을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이후로도 다양한 곳에서 북을 쳤다. 그 일은 ‘서울역을 국제역으로’라는 프로젝트로 이어졌고 유라시아횡단여행으로 연결되었다.
   
황지은  학생으로 로드스꼴라를 다닐 때 전면적으로 동료를 만나는 경험을 했어요. 그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프로젝트를 많이 했죠. 청년글방을 한다던지 거기서 파생해서 라디오글방이라는 팟캐스트 팀을 만든다던지, 책읽는대학이라는 청년 세미나팀을 또 만들고, 그게 사그라든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자발적으로 목동글방도 만들고. 올해는 퍼커션을 안하니까 적적하지 않냐 해서 레츠피스를 만들고. 늘 한 두개의 소조에 속해 일을 했네요 그러고보니. 그런 게 삶의 동력이었지 싶습니다. 어제도 레츠피스 운동회를 했는데 사실 일주년 기념행사 안 해도 되거든요. 저는 주5일 노동자니까 휴일이 소중한데 아침 일곱시부터 일어나서 주먹밥 만들려니 짜증 나고 그랬어요. 근데 막상 하고 나서는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날씨도 너무 좋고. 이상한 게임하면서 막 웃고. 그런 걸 하고 나면 개운해요. 엄청 귀찮긴 하지만 거기서 일어나는 작은 작은 일들이 삶을 살아가는 에너지가 되는 거 같아요.


“만약 내가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터뜨리고 쫒기면 너만 나를 숨겨줄 거 같아. 농담 섞인 내 말에 아띠는 멋적게 웃었다. 내가 아는 그녀는 어떤 이야기에도 이러쿵 저러쿵 판단하거나 재는 법이 없다. 그녀는 어떤 일에도 크게 놀라지 않을 것 같다. 동료로 일을 한 적이 있다. 생각이 많은 나는 걱정거리가 많아서 호들갑을 자주 떨었다. 그러면 그녀는 “가재야, 그냥 하면 돼.” 라고 말했다. 그냥 하면 괜찮은 일들이 8할은 됐기 때문에 어느 순간 안정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많은 걱정이 그녀의 필터를 거쳐서 사라졌다. 군대에서도 자주 전화를 걸어서 내가 겪는 부조리한 일을 하소연했다. 그녀는 한 시간 내내 내 말을 경청해 주었다. 그러면 이상하게 마음 안의 폭풍이 지나갔다. 그녀는 내가 당한 일들을 듣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 그냥 모든게 괜찮았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는 소설책이 있다. 실현하지도 못하는 상상은 하지도 말라며 구박을 들을 때가 많은데 그녀는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는 상상 정도는 거뜬히 응원해준다.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수용력을 잴 수 있다면 그녀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앞에 있을 거다. 누구나 개인사에는 비밀이 있게 마련이다. 끔찍하거나 추하거나 뼈아프거나 부끄러운 비밀들이 나를 망치지 않게 하려면 멀리서 보는 법을 아는 게 중요하다. 아띠는 탁월한 상담자로서 나를 자주 멀리 데려갔다. 멀리서 보면 많은 것들이 희극이 된다.”  -서정현(로드스꼴라 동기)


유라시아를 횡단하면서 정말 차원이 다르구나 생각했어요.  그게 얼마나 인생을 바꿔놔요. 중앙아시아는 부유하다고는 볼 수 없는데 활기가 있잖아요. 어마어마한 활기가 있잖아요 ©아띠





너에게 나를 보낸다, 레츠피스


선명하고 맑은 목소리로 황지은이 프로파간다에 나선다.
   
1920년대 서울역은 국제역이었습니다. 이 말인즉슨 서울역 플랫폼 13번홈에 가서 ‘파리행’ 기차표를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서울역을 출발한 기차는 원산을 지나 두만강을 건너 블라디보스토크를 지나면서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연결되었습니다. 이후 노보시비리스크, 모스크바를 지나 바르샤바를 지나 베를린에 닿았습니다. 나혜석도 손기정도 최승희도 이 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향했고 주세죽도 여운형도 허정숙도 박헌영도 이동휘도 이 기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넘나들며 세계의 피억압민족들과 연대하고 어깨 겯었습니다. 만주와 유라시아는 세계와 이어지는 통로이자 희망의 길이었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드넓은 평원과 숲, 초원은 그러나 분단과 함께 우리 삶에서 삭제되었습니다. 유라시아가 기차로 연결된다면 한반도는 육상실크로드의 기착지이자 해상실크로드의 출발지로 그 위상이 달라질 것입니다. 북방에 대한 상상력을 복원할 때 우리 삶의 무대는 확장되고 개인과 국가의 미래비전 또한 광활해질 것입니다. 레츠피스는 ‘서울역을 국제역으로’ 라는 슬로건을 들고 2018년 3월 목포역을 시작으로 천안역 밀양역 서울역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서울역을 국제역으로, 레츠 피스, 함께 해 주십시오.
   
천명이 모인 집회장에서 발언을 할 때도 그녀는 떨지 않는다. 황지은의 발언이 끝나면 브라질 퍼커션 팀 레츠피스가 두두두둥둥 북을 치기 시작한다. 레츠피스는 브라질타악기 퍼커션으로 놀고 연대하며 공연하는 단체다. 브라질 삼바리듬에 발 구르고 춤추며 놀 청년들, 한반도의 평화체제 실현에 관심있는 청년들이 모여있다. 올 한 해 매달 ‘서울역을 국제역으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기차역과 광장에서 북을 쳤고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발언하고 공연했다. 황지은은 레츠피스의 창립멤버다.

황지은  조직을 만들려면 일단 기본적인 인력 풀이 있어야 되는데 레츠피스의 경우 운이 좋게도 사람들이 이미 있었어요. 브라질 퍼커션을 쳐야 하기 때문에 기본 악기를 연주할 수 있어야 하고 평화감수성 같은게 있어야 하는데 준비된 사람들이 있었던 거죠. 예멘 난민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한국사회가 난민을 포용해야 한다는 것에 바로 동의되는 사람들, 난민을 포용하는 것이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 살 수 있는 것에 기여하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그들이 잘 살아야 우리도 잘 산다, 이렇게 딱 바로 합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매우 감사한 일이죠. 그러면 청계천으로 바로 나가서 북을 치죠. 서울역이 국제역이 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실현되는 게 우리가 조금 더 잘 살수 있는 거 아니야 라는 걸 굳이 설득하지 않아도, 그냥 얘기를 했을 때 그래 그렇게 하자, 라고 합의가 되요 레츠피스 안에서는. 사람이 있으니 조직의 형태만 만들면 되는 일이었는데, 청년들이 모여 주도적으로 했죠. 주요한 논의 내용은 레츠피스는 어떤 마음자리를 가질 것인가, 그게 중요했어요. 그 다음에는 우리의 언어, 우리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했구요. 이상하게 뭘 하고자 하면 다 됐던 거 같아요. 춤을 만들자, 노래를 만들자, 브로셔를 만들자 하면 다 만들어지고. 라퍼커션의 리듬을 쓰기도 하지만 우리의 새로운 리듬을 만들자 하면 다같이 시간을 내서 모이고.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가 정해지면 다양한 매체로 볼륨을 키우는 건데 그걸 다양하고 빠르게 해냈어요. 저희가 공을 들였던 것 중에 하나는 이름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이 팀 안에서 각자의 역할과 의무, 약속은 어떻게 만들 것이냐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죠. 결국 운영주체를 평화의 파도를 탄다 해서 피써, 단원을 레피라고 부르기로 했죠. 조직을 지속적으로 가꾸기 위해서 필요한 건 헌신성이라는 데도 합의를 봤어요. 헌신성이란 곧 시간, 돈, 성실함을 여기에 내는 거죠. 명문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해서 레츠피스 의무와 약속을 문장으로 만들고 내부규약을 사전에 공유하죠. 매뉴얼은 매우 중요해요. 특히 새로운 팀을 만들 때는. 없던 게 있게 되는 거잖아요. 종교에서도 교리를 설파하기 위해 그림책도 만들고 책도 만들고 하잖아요. 시스템이나 체계를 눈에 보이는 걸로 만들었을 때, 이 팀이 제대로 한다, 라는 느낌이 들고, 저거에 맞춰서 뭘 해야 한다 라는 동기부여도 되고. 그거를 딛고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 같아서. 이런 걸 만들면 ‘자기 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또 이게 있어야 이후 어떤 일들이 생겼을 때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매개가 된다고 생각해요. 레츠피스에 들어올 때 그냥 들어오는 게 아니고 약속을 했으니까 그 약속을 지켜야죠. 나중에 더 이상 동의하지 않는다면 나가도 좋고. 글은 매우 중요해요. 문장이 가지는 힘이 있어요. 이 모든 걸 피써들과 함께 만들었는데 재밌는 건 모두가 깔깔대며 웃으며 했다는 거예요. 우리가 스스로 만든 정체성이 생겼을 때 다른 것 같아요. 우리의 조직이라는 생각이 분명히 들죠.  
   
피써 Peace Surfer, Peaceable
레츠피스를 운영하는 청년 단원 ‘피써’입니다.
명랑하게 평화의 파도를 타는 청년들, 평화를 좋아하는 청년들이라는 뜻으로
주인의 마음자리를 가지고 레츠피스를 자기 조직으로 여기며
몸과 마음과 시간과 돈을 들여 레츠피스를 지속적으로 꾸려나가는데 기꺼이 헌신하고
새로운 렛피들을 성심성의껏 기르며
레츠피스가 품은 가치를 전승해나가기로 동의한
스무 살 이상의 청년들은 ‘피써’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피써는 단장과 부단장, 기존 피써들의 동의하에 정해집니다.

헌신이라니, 그런 말은 옛날옛적에나 존재하던 이제는 화석의 형태로만 남아있는 언어인 줄 알았는데 21세기 청년들의 입에서 듣게 되다니.

너에게 나를 보낸다
지금 슬프고
지금 아프고
지금 배고픈
너에게
이 세상 오직 하나 뿐인 너에게
내 호흡을
내 리듬을
내 눈물을
경계를 넘어
분단을 넘어
너에게,
너에게 나를 보낸다
레츠 피스
   
레츠피스의 마음자리다. 지금 아프고 지금 슬프고 지금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몸과 마음과 돈을 내겠다는 청년들, 그 중심에 황지은이 있다.
   
황지은  저는 20대 때 대학이 심정적인 소속집단이 아니었거든요. 어떤 식으로든 졸업을 해야 하는 의무감으로 다닌, 군대같은 (웃음) 곳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배운 것은 많지요. 대학에서도 당연히 너무나 많은 팀활동을 했어요. 예를 들어볼게요. 5명이서 공동 발표를 한다, 그러면 일단 저는 제가 처한 상황을 이야기 하고(로드스꼴라에서 반상근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이만큼만 할 수 있다고 미리 밑밥을 깔고 시작했어요. 그래야 저를 빼고 판을 짤 거 아니예요. 제가 그렇게 말하면 다들 싫어하죠. 그렇지만 그래야 제가 여기서 최선의 일을 하면서 남들에게 피해를 덜 줄 것 같아서 미움을 받더라도 미리 이야기를 하고 시작했어요. 눈총을 받아야 했지만 당연히 받아야 할 눈총이니까 받으면 되구요. 팀발표에 깔려있는 전반적인 정서는 n분의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누구도 뭐를 더 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그런데 뭐가 완성이 되려면 한 명이나 두 명 정도는 남들이 하는 것보다 에너지를 들여야 완성이 되잖아요. 공장에서 찍어낸 결과물도 아니고, 누군가는 일을 더 할 수 밖에 없죠. 그런데 모두 그거에 대한 분노가 있어요. 내가 얘보다 더하는 것에 대한. 그러면서도 더 많은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화. 항상 공평하게 n분의 일을 해야 되는 거예요. 함정은 거기에 있어요. n분의 일은 창의적일 수가 없어요. n분의 일의 방식은 분담하는 과정에서도 그렇고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그렇고 틀 안에서 움직여요 많이 고민하지 않으면. 그렇게 빨리 논의를 하는데 어떻게 거기서 창의성이 나오겠어요. 거기서는 헌신이라는 게 없죠. 헌신은 화나는 거니까. 운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로드스꼴라에서 처음으로 팀작업이나 공동작업을 할 때 원칙을 배우는데, 거기서는 n분의 일을 해야 공정한 것이라고 배우지 않았죠. 완성을 하려면 누구 하나는 밤잠을 설치면서 해야 되는데, 그게 꼭 나쁜 일은 아니고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으니까요. 이후에 어떤 일을 할 때도 그 마음으로 했죠. 내가 뭘 더 해도 마음을 안 쓰는. 내가 더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걸 아니까. 생색내지 않아도 주변에 있는 동료들은 그걸 다 알죠. 한 사람이 그런 스탠스를 취하고 문화가 되면, 다들 자신이 맡은 일에 공을 들이게 되죠. 네가 이번에 조금 더 애썼으니까 다음번에는 내가 더 애쓰지 뭐. 그런 암묵적인 뭐가 있으니까 일이 잘 되는 것 같아요. 그 속에서 창의성이 발현이 된다는 거지요. 딱 그만큼만 하면 그러면 뭘 하겠어요. 모두가 요만큼만 하는 집단이라면 ‘뭔가 더 해보지 않을래’라는 말을 못하거든요. 눈치가 보여서. 욕망이 있더라도 발현시키기 어려운 문화. 창의성을 발휘하고 싶어도 못하는. 조직문화를 어떻게 배우느냐에 따라서 ‘조직’과 ‘헌신’이 그렇게 이질적이고 이물적인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모두가 모두에게 기여하는 문화가 자리잡으면 좋은 거죠. 조직과 헌신, 뭐 그런 단어가 있구나, 레츠피스 단원들은 뭐 그 정도로 생각해요. 그럴 수 있지, 그러면서 두 시간 깔깔대며 회의하고 짝짝짝 박수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야말로 헌신적인 사람들이죠.


“레츠피스 정기연습 날에는 연습실 거울에 김이 서린다.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 땀을 흘리며 퍼커션을 연습하다 보니 에어컨을 켜도 덥다. 온몸을 땀으로 적신 뒤 마무리할 때 쯤 문이 열린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아띠가 들어온다. 아띠는 사진을 찍거나 뒤에 앉아서 구경을 한다. 레츠피스 초창기에는 아띠도 열심히 슈깔루를 흔들었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악기를 치지 않는다. 아띠는 몸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역동적인 몸짓을 할 때면 어딘가 어설펐던 게 사실이다. (웃음). 아띠는 레츠피스에서 매니저를 맡고 있다. 정기공연마다 한반도 정세와 관련하여 선언문을 작성하고 2주에 한번씩 이슈 브리핑을 준비해와 진행한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공연문의의 창구이고 공연 장소 섭외를 위해 메일을 쓰고 전화를 한다. 새로 들어오는 신입멤버 면접을 보고 단원들을 공부시키는 것도 그녀의 일이다. 우리는 매니저라 쓰고 대외협력국장이자 교육팀장이자 기자라 말한다. 단원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동안 아띠는 언어를 만들어낸다. 아띠는 글을 쓰고 읽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하룻밤 만에 선언문을 써내고 공연장에서 기가 막힌 목소리로 낭독한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굉장히 선동적이라고 생각한다. 슈깔루를 흔들 때보다 더 화려하고 당당하고 아름답다. 아띠가 박치여도 몸치여도 퍼커션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띠가 레츠피스에서 맡고 있는 역할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앞으로도 그녀의 프로파간다를 계속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박승규(레츠피스 단장)





밥풀 많은 여자


“수영을 배울 거라는 아띠의 말에 껄껄 웃었다. 평소에도 잠이 많기로 소문난 아띠가 아침수영이라니, 그것도 새벽 7시 수영. 수영장에 다녀와 출근하는 것은 어쩐지 현실 가능성이 1도 없는 소리같았다. 차라리 사우나 1년 정기권을 끊는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불가능할 것이라 이야기 하자 아띠는 그래도, 라고 얼버무렸다. 그가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하는 일은 커피를 내리거나 밖에서 사온 커피를 홀짝이는 것이다. 언젠가 나도 커피가 마시고 싶었던 날, 아띠가 내린 커피를 한 모금 마셔보았다. 없던 잠도 다 달아날 것 같은 맛이었다. 나는 커피의 농도로 아띠의 피곤을 가늠하곤 했다. 그 후 아띠에게 커피를 부탁할 땐 아띠가 먹는 것의 두 배로 연하게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아띠의 얼굴은 온화해보지만 나는 늘 그가 피곤에 절어 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내가 아띠를 잘 사는 청년 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나는 아띠가 음, 하고 소리를 내며 펜 뚜껑을 여는 순간을 좋아한다. 아띠의 호흡은 여백이 많다. 아띠가 말을 시작하면 그것이 조금은 긴 서사가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한다. 아띠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대개 빛이 난다. 섬세하게 조직된 그의 말을 들으며 내가 가지고 싶은 문장들을 몰래 적어두기도 했다. 공적인 영역에서 아띠의 언변도 유려하지만 난 특히 아띠의 일상언어를 좋아한다. 단편적인 예로는, 내가 밤을 새워 수업을 준비해야 했던 날 아띠가 내게 보낸 카톡의 한 문장이었다. ‘고운, 내일은 쾌청한 얼굴로 만나요’ 쾌청한 얼굴, 쾌청. 새로운 단어를 선물 받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아띠는 일을 참 잘하는 인간이다. 사업의 전체 판을 읽어내고 일을 분배하고 확장하는 일에 능숙하다. 하얀 칠판 위에 업무체계도를 거침없이 그리고 그것의 복잡한 연결관계를 설명해낸다. 또, 우리는 미처 알지못한 구글 ‘스프레드시트’ 따위를 가져와 에이포 두 장크기의 업무 프로세스를 정리하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일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이게 할 수 있는 지 고민하는 인간이다. 나는 사무실 책상의 체계조차 확립하지 못하는 인간이라 아띠가 업무를 처리하는 걸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던 때가 있었다. 그와 일을 하며 종종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왜 아띠만큼 못할까, 따위의 시덥잖은 한탄 같은 것을 많이 했다. 그럴때마다 나를 위로했던 건 내가 아띠보다 나이가 다섯 살은 적다는 거다. 이건 생각보다 큰 위안이 되었다.”
-고수경(로드스꼴라 교사)


황지은  몸을 관리하고 돌보기 시작한 건 한 2년 정도 된 거 같아요. 제가 다른 청년들에 비해 일을 빨리 시작한 편이거든요. 초반에는 이틀밤 확 안 자고 일하고 그랬는데 3년 정도 그렇게 하니까 체력이 떨어지면서 뭔가 고갈된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사람이 체력이 떨어지면 병이 없어도 심정적으로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프다는 게 뭔지 알겠더라구요. 그때부터 한약도 먹고 (웃음) 몸을 돌보아야지 생각했는데, 약 먹는 거 말고 에너지를 돌리는 힘이 뭔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제 주변에는 한시절 미친 듯이 일해 봤던 어른들이 있는데 한결같은 조언은 몸을 돌보며 일하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이것저것 해봤어요. 뛰어도 보고, 푸욱 쉬기도 하고, 사우나도 가 보고, 온천도 가 보고. 여러 가지 것들을 해보면서 아, 이걸 하고 났을 때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런 것을 최근에 들어서야 알았어요. 그전엔 몰랐어요. 바로 밥풀이예요. 혼자 사니까 밥풀(밥 pool) 같은 것, 그러니까 밥을 함께 먹을 수 있는 풀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혼자 살면서 자기를 챙기려면 그런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 이상 어렵겠구나 깨달았죠. 그래서 밥풀을 만들어요. 언제라도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을 곁에 많이 두는 거예요. 함께 뭔가를 먹는다는 것만큼 힘이 나는 것도 없어요. 음 그리고 스트레스나 긴장을 이완하는 장치도 만들어요. 사람이 긴장한 상태로 365일 살면 큰일난다고 생각하거든요. 의식적으로 이완할 수 있는 환경이나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주위 사람도 힘들고 나도 힘들고. 그 장치는 별 거 아니예요. 맘 편히 의지할 수 있는 사람에게 가서 운다든지, 마음 편하게 의지할 수 있는 한의사 선생님에게 찾아가서 또 운다든지(웃음). 제 사주는 본원이 수인데 화가 많은 사주여서 물이 쉽게 마른대요. 물이 없으면 몸이 자주 아플 거라는 거예요. 어떻게든 수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서 온천이나 사우나도 자주 가요. 실제로 도움이 많이 되요.  핸드폰을 두고 들어가니까 모든 연결선을 끊고 서너시간 온전히 릴렉스하게 되요. 무엇보다 영순위는 자는 거예요. 잘 자는 거. 그러고 난 다음에는 맛있는 것 먹고. 요리 잘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어서 미리 찡찡거려두면 어이구 내 팔자야, 하면서도 챙겨주거든요(웃음).


“나는 열여덟살일 때 아띠를 처음 만났다. 그때 아띠는 스물 세네살 정도였는데, 내 눈에 아띠는 잘 흔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얼마든지 시인할 수 있고, 또한 자신이 잘하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아띠는 3년 이상 된 관계들 속에 있었다. 당시 나는 서로를 잘 아는 사람들이 나누는 배려, 농담, 따듯함 같은 것을 아띠와 그녀의 친구들 사이에서 구경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런 관계는 아띠가 흔들리는 삶에서 동앗줄을 잡듯 해왔던 선택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다니고, 학교를 입학하고 졸업하면서 관계의 단절을 지속적으로 겪은 세대였다. 단절된 관계들 속에서 경쟁하고, 쟁취하며 살아가는. 아띠는 그런 세대이지만 방황 끝에 그곳으로부터 조금 벗어나 있었다. 로드스꼴라에서 만난 인연이 계속 소그룹으로 이어졌고, 또 그러한 인연 안에서 돈을 벌고 공부하고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런 소그룹의 일원으로 아띠와 함께 일해본 적이 있다. 앞으로 통일이 된다면 저 넓은 세상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이 생겨나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 일에 우리는 어떻게 참여해볼지에 대해 논의했다. 구체적으로는 대륙열차를 타고 하는 수학여행을 기획해보는 거였다. 아띠는 지금도 여행학교 교사로서 그때 품었던 꿈과 이어지는 일을 하고 있다. 아띠는 지금 시대에 필요한 일들을 고민하고, 거기에 참여하고, 자신의 능력을 쏟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또 다른 자리에서, 목동글방이라는 공간에서 아띠를 만난다. 그곳은 아주 사적이고 편안한 공간이다. 거기에서도 사람들은 아띠에게 비밀을 털어놓곤 한다. 아띠에게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이상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에겐 고민 끝에 자기자신에게 맞추어 만든 삶의 규칙들이 있다. 그런 작은 규칙들이 아띠를 편안하게 하고 친구들을 편안하게 한다.”
-박상희(황지은 인터뷰 참여 및 기록자)



아마 어딘가에서 우리는 만났을 거다. 눈 내리는 만주벌판, 지리산 어느 골짜기, 광활한 시베리아 평원 그 어디쯤에서, 만났을 거다 이 생에 오기 전 어느 시절에. 밤을 새워 산을 넘고 식어버린 주먹밥을 함께 먹고 서로의 눈썹에 달린 고드름을 바라보며 깔깔 웃지만 눈두덩이 시큰거리던, 이 생에서 다시 보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어느 시절에, 단단하고 유연하고 고운 네가 있어 비바람과 배고픔 따위 견듸어내었으리라, 아직 이 생이 시작되기 전 어느 시절에.  
   
황지은은 잘 사는 청년인가,
질문하지 않겠다
동지는 판단하지 않는 거다
믿을 뿐이다.






[잘 사는 청년]

밥풀 많은 여자

-황지은을 만나다


인터뷰어. 어딘

인터뷰이. 황지은(아띠)

녹취 및 정리. 박상희(조개)

글. 어딘

발행일. 2018.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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