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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재 Nov 10. 2023

1. 이 집 조심하세요

[사진 출처 : unsplash]


“자기야, 큰일 났다. 우리 어디서 살지?”

결혼식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우리는 신혼집을 구하지 못했다. 미리 사놓은 혼수는 정작 그 물품이 들어갈 공간을 얻지 못했다. 전철을 타고 출근하는 남편 회사와 나의 친정 근처로 여러 곳을 다녀봤다. 실은 우리가 가진 돈으로 얻을 신혼집이 마땅치 않았다.


양가 도움 없이 시작하려는 신혼부부는 대출받아도 마음에 드는 집을 마련하기 어려웠다. 당연히 집을 살 수는 없고 전세로만 가능했다. 예산 상한액을 들은 부동산 중개사는 몇 군데 집을 보여주었다. 시댁 근처 새하얗게 도배된 집은 얼핏 깨끗해 보였으나 들어가자마자 습한 기운이 드는 게 곰팡이를 가리려는 의도 같았다. 전철 급행이 서는 지역도 다녀보았으나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정 안되면 예약된 혼수가 들어오는 날을 미루고 신혼여행 후 당분간은 각자 본가에서 생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혼식 날짜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남편이 집을 구했다며 전화가 왔다. 10평대 방 두 칸, 다가구 4층 집. 거실에 꽃무늬 벽지가 화려했다. 붙박이장과 아주 작은 싱크대가 있었고 욕조도 없는 좁은 화장실이 있는 벽돌집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남편이 우리 예산에서는 이게 최선이라고 했다. 신혼집 구하기를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바로 가계약금을 입금하고 며칠 후로 정식 계약 날을 잡았다.     




부동산에 들어서기 전 우리는 사뭇 진지했다. 나는 깔끔한 세입자처럼 보이기 위해 파란색 트렌치코트를 골라 입었다. 살짝 떨리기까지 했다. 난생처음 큰돈이 오가는 계약을 하거니와 이 계약에는 은행 대출금이 껴 있었다. 실수하면 안 됐다. 검색을 해보니 전세 계약 전에는 몇 가지 주의 사항이 있었다. 부동산 등기 사항과 집 상태 등 여러 가지를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부동산 문을 열었다.     


집주인은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우리를 힐끗 보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영 우리가 못마땅한 듯 보였다. 보통 집주인이 세입자로 신혼부부를 선호한다고 들었는데 이상하다 싶었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희는 집 계약하러 온 사람이에요.”

나름 활짝 웃으며 ‘집주인 사모님’에게 인사를 했다.     


“아유, 자기야. 난 신혼부부가 제일 싫다니까 그래. 막내딸 결혼시켜야 하는데 걔는 뭐 하고 있는지 몰라 정말. 난 저런 신혼부부만 보면 화딱지가 난다니까.” 우리에게서 고개를 돌린 그녀는 중개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휴, 사모님. 딱 봐도 착하게 생긴 신혼부부인데 왜 그러세요. 깨끗하게 잘 살 거예요. 그렇죠?” 중개사는 우리를 쳐다보며 눈을 찡긋한다.

“아, 네 그렇죠. 사는 동안 깨끗이 쓰겠습니다.”     


집주인과 중개사 태도에 어리둥절했지만, 집주인은 원래 저런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고 세입자로 들어오는 사람은 약간 지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 생각했다. 좋은 게 좋은 거고, 또 무엇보다 우리는 오늘 꼭 계약을 성사해야 신혼집이 마련되기 때문에.     


사모님은 저 멀리 중개사 책상에 앉아 있었다. 중개사는 테이블에 마주 앉지 않은 그녀와 우리 사이를 오가며 계약서를 작성하고 도장을 찍었다. 사무소 구조상 중개사 책상이 놓여있는 곳은 한 계단 위에 있었다. 마치 그녀가 우리를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계약서에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임대인란에 저 여자 사모님이 아닌 70년대생 남자가 있었다. 가계약금을 송금받은 사람 이름이었다. 이분이 누구냐 묻자, 그녀의 아들이라 하였다. 집 소유자가 바빠 직접 계약하러 올 수가 없어 어머니가 대신 왔다고 했다. 아들 신분증을 내밀며 계약한다고 말하는데 해도 되는 건지 망설여졌다. 인터넷에서 미리 보고 온 전세 계약 시 주의 사항에는 집주인이 아니면 계약하지 말라고 되어 있었다.


중개사는 등기부 등본과 임대인 가족관계증명서를 보여주며 말했다.

“어이구, 새댁. 사모님이 집 실제 주인 맞아요. 명의만 아들 거야. 나 믿고 해도 돼. 여기 전세는 내가 다 계약했는걸? 그 계약, 다 이 사모님이 하셨어. 어려서 뭘 모르나 본데 걱정 안 해도 돼요.”

서류를 자세히 살펴보니 친모자 관계는 맞았다. 계약을 망설이던 내 눈에 공인된 중개사 자격증과 손해배상 책임보증 1억 원이라는 호랑이 그림이 들어왔다. 보증보험에 가입한 공인된 중개사가 설마 이상한 계약을 할까. 가족이 확실하고 임대인 신분증도 가져왔는데 당사자가 안 왔다고 이제 와서 가계약금을 돌려달라 계약을 파기하겠다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민 끝에 우리는 중개사를 믿고 계약하기로 하였다. 비록 전세였지만 계약자는 남편과 나, 둘이었다. 전세이기에 굳이 계약자를 공동으로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처음에 하나하나 의미를 두고 싶은 신혼부부였다.       


계약서에 간인까지 찍고 계약이 끝났다. 우리는 계약금을 송금했다. 바로 중개사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올 거라며 이사 갈 집을 알아봐도 된다는 전화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재 사는 세입자라는 한 남자가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다짜고짜 여자 집주인을 향해 삿대질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줌마, 새로 들어올 사람 계약도 끝났는데, 이제 우리 붙박이장 어떻게 보상하실 거예요? 천장 물 새서 붙박이장 나무 다 썩고! 그 안에 비싼 코트며 양복이며 다 곰팡이 폈고! 드라이 돌려도 안 지워진다고 몇 번을 말해요!”  

“아니, 고쳐줬는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그걸 왜 보상해 줘? 응? 아주 웃기는 사람이구먼?”     


‘응? 집에 물이 샌다고?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등골이 서늘해졌다.

‘방금 계약서를 썼는데? 계약금을 입금했는데?’


그 후 톤을 낮춘 남자가 우리에게 건네는 말.

“저기요. 보니까 신혼부부 같은데, 이 집 조심하세요. 천장에 물 새는 거 꼭 고치고 들어가요. 저 아줌마 절대 안 고쳐주니까.”

“아유, 저 인간이 미쳤나 진짜!”     


당황한 우리는 중개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 집에 물이 새나요?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데...”

“아유, 다 고쳤는데 저 난리네! 진짜. 고치기 전에 물 샌 거, 그거 보상해 달라고 저래. 아니 세 살면서 뭐가 그렇게 요구하는 게 많아? 새댁, 그거 다 고친 거야. 혹시 또 새면 말해. 내가 싹~ 다 고쳐줄 테니까.”

“그래요. 새댁, 물 새면 사모님이 고쳐주신다잖아. 이미 다 고친 거라 내가 말 안 했지~. 그리고 여기 시세보다 싼 거 알잖아. 이 돈이면 다른 데 못 가요. 알면서 그래~.”      


다른 것도 아니고 누수는 전세 계약 시 주의해야 할 점 중 하나라고 했다. 본능적으로 싸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우리는 이 집을 피했어야 했을까. 지금이라도 이 집주인과 우리가 계약하면 안 된다는 하늘이 주신 신호였을까. 하지만 계약서는 이미 작성하였고, 계약금은 송금해 버린 후였다. 앞으로 누수가 있다면 고쳐준다는 특약을 계약서에 추가로 넣어달라고 했다. 중개사는 집주인이 고쳤다는데, 또 새면 고쳐준다는데 까다롭게 군다며 우리를 몰아갔다. 특약은 작성되지 않았고 찜찜한 기분을 안고 부동산 밖을 나왔다.     


“자기야, 이 집 괜찮을까? 나 조금 걱정되는데...”

“괜찮을 거야, 고쳤다잖아. 또 물 새면 고쳐준다고 하고. 그리고 지금 다른데 알아볼 수도 없어. 중개사도 괜찮다고 하잖아. 괜찮아. 괜찮을 거야.”


그 후 괜찮지 않은 시간을 미리 알았다면 그때 그 계약은 파기했어야 옳았다. 괜찮을 거라 믿은 순진했던 우리는 불안감을 떨치고 한 달 후에 치러질 결혼식 준비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곧 알아챘다.

이는 우리의 슬픈 신혼집을 알리는 서막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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