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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재 Dec 11. 2023

자궁근종 수술을 하려다 육아휴직을 결심하다.

 9월쯤이 되자 회사 건강검진 미수검자들의 검진 독려 공문이 왔다. 홀수년도 탄생자인 나는 올해 건강검진대상자이다. 원래 연말로 갈수록 위와 장 내시경 예약이 가능한 날을 찾기가 힘들다고 알고 있다. 검진센터를 비교할 것도 없이 2년 전에도 받았던 곳에 전화를 걸었다. 위와 장 내시경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은 11월 중순쯤이었다. 서둘러 예약 후 검진을 받았고 결과서가 집에 도착했다.


 검진 결과서는 3쪽이나 되었다. 지금 당장 추가 검진을 해야 할 부분부터 1년에 한 번씩 추적 관찰해야 할 부분까지 다양했다. 그중 제일 눈에 띄었던 것은 자궁근종, 난소낭종, 유방 결절 및 미세석회, 갑상선낭종이었다. 친정엄마께서 초기지만 유방암과 자궁암이었고 유전이 많이 되는 암 중 하나이기에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아이들을 낳으며 자궁에 작은 근종과 2cm의 유방 결절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지는 않았지만 작은 크기라 지켜보자 들었었는데 계속 커가는 모양이었다. 특히 자궁근종은 5cm로 결과서 맨 위 지금 당장 시급히 추가 검사해야 할 목록 1번에 있었다. 더군다나 2년 전에는 알지 못했던 난소낭종은 또 뭔지...    

 

 연말이라 회사는 바빴다. 게다가 12월 중순부터는 해외를 가게 된 팀원이 4명이나 되었기에 자리를 비우기가 어려웠다. 자궁 쪽은 생리 기간을 피해서 검사를 해야 하기에 추가 검사를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대학병원 간호사 언니를 통해 잘 보시는 교수님들을 추천받아 진료를 보았다. 유방 쪽은 결절이 커지지 않고 있으니 지켜보면 되는데, 미세석회가 문제였다. 다행히 하나하나 세어질 정도라 1년에 한 번씩 초음파를 하며 크기가 커지는지 양이 많아지는지 지켜보자고 하셨다. 갑상선낭종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하셨다. 다행히 이쪽 과는 순탄히 넘어갔다.     


 문제는 부인과였다. 초음파를 보니 의료인이 아닌 내게도 크고 동그란 무언가가 보였다. 난소낭종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닌데 자궁근종은 크기가 6.2cm라고 하셨다. 이전에 2개로 알고 있던 근종 중 1개는 잘 보이지 않고 정확한 위치는 MRI 검사로 최종 알 수 있다고 하셨다. 2년 전 2.5cm였던 근종이 현재 6.2cm까지 커질 정도면, 추세상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근종이 장을 누르고 있어 보이는데 변비나 생리통이 있지는 않은지 복부 팽만감은 없는지 물어보셨다. 변비야 커피를 좋아하는 내가 물을 자주 안 마셔서 생기는 줄 알았고, 복부 팽만감이야 운동하지 않아 나온 뱃살 때문이라 생각했고, 생리통도 아예 없지는 않으나 출산 후 조금 줄어 이 정도는 보통 있는 것 아닌가 하며 지나갔더랬다.     


 사전 문진으로 기혼이며 자녀가 둘인 것을 보시고, 교수님은 자궁적출술과 근종 제거술의 장단점을 설명해 주셨다. 자궁적출은 통증도 적고 회복도 빠르며 자궁경부암과 자궁내막암을 예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하셨다. 근종만 제거하는 것은 자궁을 보존하여  아이를 가질 수 있으나 자궁적출보다 통증이 더 있고 앞으로 폐경까지 약 10년 정도 남았기에 제거한 부위에 또 근종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하셨다. 또 복강경수술과 로봇수술이 있는데, 배꼽 주변으로 구멍 3개를 뚫는다고 하셨다. 만약 자궁근종 수술 후 임신하게 되면 제왕절개로 출산해야 한다는 점도 말씀해 주셨다.      


 근종 크기가 있어 보여 수술을 권유하시면 어쩌지 했는데, 막상 수술해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적출까지 들으니 머리가 복잡했다. 사실 나는 개복하는 수술이 싫고 무서워 아이들도 모두 자연분만 하였다. 그러한 내가 수술이라니... 비록 완전한 개복은 아니지만 무언가로 배가 처음 열려보는 거였다. 수술은 잘 되겠지만 남을 흉터와 이후 회복까지 여러 가지로 신경이 쓰였다. 교수님은 내가 45세가 넘어가고 폐경이 머지않았으면 적출을 더 권하겠으나, 출산계획이 없다 하더라도 사람 인생은 모르는 것이고 근종이 많지 않으니 제거술이 더 낫겠다고 하셨다. 나 또한 자궁적출까지는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      


 곧바로 수술 날짜를 2월 초로 잡았다. 큰아이 생일 전날이라 이날로 잡는 것이 조금 마음이 쓰였다. 내년 3월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큰아이가 입학 전 맞이하는 마지막 생일이었다. 하지만 생일 전주 주말에 크게 파티를 열어주고 선물을 주고 엄마의 수술을 미리 설명해 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자궁근종 수술을 결정하며 육아휴직을 결정하였다. 내년 3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큰아이를 돌보기 위한 육아휴직을 할 수 있을지 그간 너무나 고민이었는데, 오히려 생각의 마침표를 찍는 계기가 되었다. 수술을 하고 한 달의 병가 후 입학하는 3월에 맞춰 육아휴직에 들어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수술하고 한 달 정도 요양 후에는 입학하는 아이의 등하교를 도와줄 수 있으리라.     


 1월 중 한 번 더 내원하여 피검사와 MRI를 찍으며 수술 전 검사를 받고, 1월 말에 최종적으로 교수님을 만나 뵙고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고 했다. 복강경이 아닌 로봇 수술을 받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수술비가 많이 들어 잠시 고민을 했으나 사람의 팔보다는 좀 더 정교하여 예후가 좋고 집도의의 피로도가 덜 든다고 했다. 실비보험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몇 가지 진단비를 받으면 자부담도 어느 정도 상쇄가 될 것 같았다.  

    

 이제 회사에 휴직 의사를 밝히는 일이 남았다. 업무를 서서히 마무리하고 후임자에게 깔끔히 인계해 줘야 할 테지. 이사 후 생겨난 어마어마한 대출금을 생각하면 여전히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지만, 큰 방도가 없다. 나와 남편은 더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돈을 더 벌 수 없는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다. 휴직 후 생겨날 좋은 점만 생각하자. 어차피 휴직 후 생겨날 나쁜 점은 내가 어떠한 노력을 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좋은 점이 나쁜 점을 넘어선다면 그건 결국 잘한 선택이라 할 수 있을 테지.


 나이가 만으로 40이 넘어가니 여기저기 몸이 삐걱댄다. 평상시에 자궁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우리 아이들을 예쁘게 잘 품어준 근원적인 곳이 아니었던가. 새삼 고생 많았고 임신 중에도 근종으로 불편했을 텐데 나의 자궁이 잘 버텨주어 아이들이 건강히 잘 태어난 것일 테다. 수술로 내 몸속의 자궁근종은 잘 제거될 것이다. 그리고 난 더 건강해지고,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에 아이들과 좋은 추억을 쌓을 것이다.

    

 하, 인생은 정말 알 수 없구나. 인생은 예측한 대로, 계획대로만 살 수는 없는 걸까? 요새 문득 그런 생각이 유난히도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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