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들은 넷플릭스하면 ‘자유와 책임' 같은 멋진 단어를 먼저 떠올리지만, 개인적으로 넷플릭스를 이해하는 데 있어 ‘두려움'이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
2. 첫 회사를 경쟁사에게 팔아야만 했던 리드 헤이스팅스는 사업을 하면서 누군가가 자신들을 집어삼키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을 늘 가지고 있었다. DVD를 빌려주던 시절에는 아마존이 본인들을 집어삼키거나 무너뜨릴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동영상 스트리밍으로 넘어오고 나서는 이 생각이 더 커졌다.
3. 넷플릭스보다 기업 가치가 3~4배 이상 높은 테크 회사들이 OTT로 뛰어들면, 게다가 전 세계 콘텐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헐리우드에서 OTT 사업에 뛰어들면, 그렇게 샌드위치 상황이 되면 아무리 초기 시장을 개척했더라도 넷플릭스의 입지가 줄어들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4. 그리고 이 두려움은, 한 발 빠른 글로벌 진출, 한 발 빠른 글로벌 콘텐츠 투자, 한 발 빠른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졌는데, 그렇게 넷플릭스는 OTT 사업자 중에서 콘텐츠에 막대한 돈을 투자를 하면서도 영업 이익이 남는 거의 유일한 사업자가 되었다. 여기에 광고 모델과 게임 사업이라는 또 다른 무기도 장착하고 있고.
5. 반면, 올해 1년 내내 디즈니의 주가는 계속 빠지고 있는데.. 리오프닝으로 테마파크 매출 등이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이 자명한 상황이어서, 어찌 보면 굉장히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나 할까?
6. 디즈니의 주가 하락을 이끌고 있는 건 표면적인 이유는, 디즈니 플러스를 포함한 디즈니의 OTT 혹은 D2C 사업이 대규모 적자를 보고 있기 때문. 디즈니는 디즈니 플러스와 ESPN과 훌루 등을 다 합치면 본인들이 전 세계 1위 OTT 사업자라고 말하지만, 그 1위를 만들기 위해 쓴 돈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디즈니 플러스의 3년 누적 적자가 11조 원 규모라고.
7. 개인적으로는 디즈니가 자신들의 모든 OTT 서비스의 가입자를 다 끌어모아서 넷플릭스를 이겼다며 본인들이 전 세계 1등이라고 말할 때면 살짝 기분이 어색한 편인데.. 콘텐츠 업계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업 중 하나인 디즈니가 너무 넷플릭스를 의식한다는 느낌이랄까.
8.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디즈니 플러스 하나만으로 넷플릭스의 가입자를 따라잡았을 때 그때 쿨하게 본인들이 1등이라고 말하면서 우리에게는 훌루도 있고, ESPN도 있다고 말하는 게 더 도도한 거 같은데.. 물론 사업은 도도함으로 하는 건 아니겠지.
9. 무튼 디즈니는 OTT 분야에서 넷플릭스를 단기간에 따라잡기 위해 콘텐츠와 마케팅에 막대한 돈을 썼고, 이로 인해 디즈니 플러스 자체로 과연 수익을 만들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 게다가 넷플릭스와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앞으로도 돈을 더 써야 할 것이라.. 언제쯤 수익이 날 수 있는지를 가늠하기란 쉽지 않고.
10. 이건 로컬 OTT들도 마찬가지인데, 국내 시장에서 넷플릭스와 경쟁하려면 콘텐츠나 마케팅에 계속 돈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서, 계속해서 적자가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랄까? 수익성을 확보하려고 콘텐츠 제작 비용이나 마케팅 비용 줄이면 구독자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서 극단적 상황에 몰리지 않는 이상 이를 선택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고.
11. 반면, 잘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넷플릭스가 시도하고 있는 광고 사업이나 게임 사업이 잘 되면 넷플릭스의 수익성은 지금보다 더 커질 텐데, 알게 모르게 넷플릭스는 후발 주자들이 치고 들어왔을 때 경쟁우위를 누릴 수 있는 장벽을 이미 쌓아뒀다고나 할까.
12. 넷플릭스를 따라가려면 대규모의 적자를 계속 감수해야 하고, 적자를 줄이기 위해 콘텐츠 투자를 줄이면 넷플릭스와의 격차는 벌어질 테니.
13. 이런 모습 때문에 일부 경영학자들 중에서 리드 헤이스팅스를 '비즈니스 전략의 천재'라고 보기도 하더라.
14. 그리고 넷플릭스가 이렇게 한발 앞서갈 수 있는 건, 자신보다 크고 대단한 후발주자들이 시장에 들어왔을 때 본인들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15. 그래서 사람들은 넷플릭스의 지난 20여 년을 보면서 몸담았던 업계를 늘 재정의하며 경쟁사들을 무너뜨렸다면서 ‘넷플릭스 당하다(Netflixed)’라는 표현을 만들어냈는데.. 어쩌면 넷플릭스나 리드 헤이스팅스 입장에서는 그저 두려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일련의 과정이었는지 모르지.
16.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는 불안감과 두려움마저도, 변화를 만들어내는 강력한 원동력일 수 있는 셈.
17. 진부한 표현이지만 결국에는 살아남는 자가 가장 강한 것이고, 살아남기 위해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서도 최적의 선택은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최적화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 오래 살아남는 방법이자 강해지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짐 콜린스가 말하는 '돌파의 지점'이 오는 것인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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