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리더의 역할이란
1. 넷플릭스 창업자인 리드 헤이스팅스가 CEO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한다. 그동안 넷플릭스는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코파운더들을 계속 회사에서 내보냈고, 이젠 리드 헤이스팅스만 남은 상황이었는데, 마침내 리드 헤이스팅스마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셈.
2.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와 관련해 리드 헤이스팅스는 언젠가 이런 류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경영진은 회사의 발전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나 또한 나보다 넷플릭스를 더 잘 이끌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자리를 기꺼이 물려주고 떠날 것’이라고. ‘자신은 이미 그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고, 마크 랜돌프를 포함해 초기 멤버들이 회사를 떠난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3. 보통의 스타트업들은 코파운더나 초기 멤버들이 회사를 떠나는 과정에서 엄청난 분란과 돌이킬 수 없는 사태들을 겪곤 하는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넷플릭스는 초기 멤버들이 회사를 떠난 후에도 회사와 관련된 책을 쓰며 깊은 애정과 리스펙을 표하더라.
4. 그 부분이 참으로 의아하고 신기했는데, 감정적으로는 슬프지만, 그게 회사를 위한 길이라는 것을 리드 헤이스팅스가 논리적으로 잘 납득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이게 넷플릭스가 지금까지 자신들의 문화와 높은 인재 밀도를 유지해온 방식인지도 모르고.
5. 그렇게 20년 넘게 넷플릭스를 이끌며, 넷플릭스를 ‘DVD 대여 회사’에서 ‘동영상 스트리밍 회사’로, ‘동영상 스트리밍 회사’에서 ‘플랫폼와 데이터를 가진 콘텐츠 투자 회사’로 변모시킨 리드 헤이스팅스마저 마침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최고 콘텐츠 책임자였던 ‘테드 사란도스’와 COO였던 ‘그렉 피터스’에서 대표직을 넘겨주고.
6. 그리고 이 과정을 꽤 오랫동안 준비했다고 하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면 책 <규칙 없음>을 내고, 2020년 테드 사란도스를 공동 CEO에 선임할 때부터 어느 정도는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지.
7. 무튼 앞으로 넷플릭스는 새로운 스테이지를 맞이하는 셈인데, 어쩌면 넷플릭스는 또 다른 진화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8. 여담이지만, 리드 헤이스팅스는 얼마 전 있었던 한 인터뷰에서 ‘본인의 고집 때문에 광고 요금제를 너무 늦게 도입한 건 실책이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 CFO 등 넷플릭스의 전략 담당자들은 리드 헤이스팅스에게 더 빨리 광고 요금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내부적으로 이야기해왔다고.
9. 실제로 작년 이맘때쯤, 넷플릭스는 역사상 처음으로 유료 구독자 감소를 경험했고, 이로 인해 주가 역시 대폭락한 바 있는데.. 아마도 내부적으로는 구독자 감소 전에 선제적으로 광고 요금제를 도입했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
10. 그리고 모든 것이 저렴한 광고 요금제의 도입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얼마 전 실적 발표에서 넷플릭스는 그동안 넘지 못했던 유료 구독자 2억 3천만 명의 벽을 마침내 넘어섰고, 4분기 구독자 증가수도 시장의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었다.
11. 물론 시장에서는 여전히 넷플릭스의 광고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라, 넷플릭스가 광고와 구독, 이 2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지를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일단 분위기 반전에는 성공한 모양새. 작년 내내 계속해서 주가가 빠지고 있는 디즈니와 비교하면, 넷플릭스의 주가는 이미 상당 부분 회복한 상황이고.
12. 그리고 어쩌면 이렇게 변화된 상황에서 회사를 이끌 주역으로, 리드 헤이스팅스는 자신보다는 ‘테드 사란도스'와 ‘그렉 피터스'가 훨씬 더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13. 그렇게 회사 창립 이래 사실상 처음으로 넷플릭스는 초기 창업자들이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이는 넷플릭스의 시스템이 얼마나 탄탄한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14. 애플은 스티브 잡스 사후에 놀랍게도 더욱 크게 성장하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애플의 시스템이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었다는 의미. 어쩌면 그 탄탄한 시스템의 기반 위에서 스티브 잡스의 창의성이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고.
15. 반면, 회사의 중흥을 이끌었던 밥 아이거가 물러난 이후로, 디즈니는 계속해서 부진한 면모를 보이고 있는데.. 그러다 결국엔 밥 아이거가 다시 돌아온 상황. 이는 그만큼 디즈니의 시스템은 사람에 의존하는, 그렇게 탄탄한 시스템은 아니었다는 의미이기도 한 셈.
16. 그렇게 밥 아이거가 다시 디즈니로 돌아온 상황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넷플릭스는 창업자인 리드 헤이스팅스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는데..
17.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아주 만약에 리드 헤이스팅스가 물러난 상황에서 넷플릭스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클 수 있다. 넷플릭스가 그동안 구축해온 시스템이라는 게 사람들이 상상보다 훨씬 더 탄탄하고 무서울 수 있다는 뜻이니까.
18. 그리고 어쩌면 리더의 역할이란 것도 이런 것인지 모른다. 단순히 시스템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머무르는 동안 자신이 없을 때조차도 잘 굴러갈 수 있도록 더 나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떠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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