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가 아니라, 뉴 레거시
레거시가 뉴미디어를 공부하는 게 아니라, 뉴미디어가 레거시를 공부해야
1. 얼마 전에 한겨레신문사를 다녀왔다고 한다. 한겨레21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뉴미디어 공부 모임’이 있는데.. 뉴스레터와 멤버십 등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서 물어보고 싶다고 하셨다.
2. 사실 올해는 외부에서 오는 제안들을 거의 다 거절했는데.. 뭔가를 준비할 여유가 없어서 ‘아무말을 해도 괜찮은 거면 하겠다'고 했더니 괜찮다고 하셨다. 기자분들 앞에서 아무말을 하다니.. 뭔가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기도 했다.
3. 돌이켜보면, 첫 회사를 그만둘 때 ‘10년쯤 뒤에는 기존 미디어에 있는 것보다는 디지털로 가는 것이 훨씬 더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10년쯤 지나면 성공 같은 걸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4. 지금 생각해보니, 그 당시에 너무 오만했더라. 미디어 산업에 대해서도 글로만 배웠지, 잘 몰랐고.
5. 덕분에 많은 우여곡절과 실패를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지만.. 그래도 어느덧 꽤 경력 있는 기자분들 앞에서 아무말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6. 사실 이전에도 소위 메이저라고 불리는 곳들에서 일하는 분들이 먼저 찾아오거나 연락해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최근에도 꽤 큰 미디어 그룹에게 강연 요청이 왔는데.. 이건 약간 부담스러워서 거절했다. 이것저것 많이 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뭘 잘 알지는 못하니까.
7. 내가 잘 안다면 사업이 꽤 잘 됐을 텐데.. 아직 그렇지는 않으니, 현실은 현실대로 받아들여야겠지.
8. 무튼 한겨레21 공부모임에서 진짜 아무말을 거리낌 없이 다 했는데.. ‘레거시 미디어가 위기’라는 한 기자분의 질문에, 약간 미친 것 같지만 “저는 한국의 레거시 미디어는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9. 레거시 미디어 업계 종사자분들에게는 아주 오랫동안 공유된 위기의식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더 큰 위기를 겪고 있는 건 뉴미디어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대부분의 뉴미디어는 몇 년을 가지 못해 망하고, 망하지 않고 사업을 유지하더라도 존재감이나 영향력은 계속해서 줄어드는 경우가 많으니까.
10. 그리고 이것도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단순 구독자 수나 화제성으로 사업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매출을 기준으로 사업을 봐야 하는데.. 뉴미디어 중에 소위 말하는 레거시 미디어의 매출을 아주 조금이라도 따라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11. 신문사가 곧 망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지만, 한국에서 메이저 신문사는 수천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 중견 매체들도 수십, 수백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데.. 뉴미디어 사업자 중에 매출 10억을 넘기는 곳이 얼마나 될까?
12. 그리고 “요즘 누가 방송을 보냐?”는 말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지만, 한국의 공중파는 매출이 1조 원이 넘는데.. 공중파와 신문을 비교하는 것이 온당치 않으나, 미디어 업계 종사자들이 디지털 혁신 사례로 칭찬을 마다하지 않은 뉴욕타임즈의 매출이 대략 2.5조 원.
13. 심지어 뉴욕타임즈는 디지털 구독 등 미친 듯이 디지털 혁신을 해서 저 정도 아닌가?
14. 그리고 사람들 중에는 레거시 미디어를 마치 혁신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미디어나 콘텐츠 비즈니스는 레거시일수록 쌓아 놓은 콘텐츠와 네트워크가 풍부해서 비즈니스적으로는 레거시가 훨씬 유리한 게 많다고 생각하는 편.
15. 그래서 '레거시가 뉴미디어를 공부하는 게 아니라, 뉴미디어가 레거시를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인데..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더라.
16. 근데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 그다지 개의치는 않는다. 단지, 지금은 비록 아주 초라하지만.. 그래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고작 뉴미디어 따위가 되는 것보다는 레거시가 되는 것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달까?
17. 간단히 말하면.. 뉴 미디어가 아니라, 뉴 레거시가 되고 싶달까?
18. 물론 가능할지는 알 수 없지만, 단순 기분상으로도 ‘뉴 미디어’보다는 ‘뉴 레거시’가 되는 게 훨씬 더 도도한 것 같다리.. 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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