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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on Jun 10. 2018

어차피 인생은 망하게 되어 있다.

이번 생은 망했다. 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다 망하게 되어 있다"


대학시절, 교수님께서는 수업시간에

미학과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즉자', '대자'니 하는

어려운 표현이 오고 갔지만


결론은 심플했다.


"어차피 인생이든, 사랑이든,

결론적으로 다 망하게 되어 있으니

결과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라"


그리고 이 말은
"실존은 본질을 앞선다"라는
고급스러운 표현으로 정리되었다.


지난 몇 년간, 아니 대학 시절부터 꾸준히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해 이것저것 해봤지만,


교수님 말씀처럼,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생각처럼,


지금, 그리고 여기 존재한다는 것은
그리 낭만적인 일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살기 위해선

지나간 날들이 남긴 흔적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했고


어차피 인생이 다 망한다고 해서


내 삶이 망가지는 걸

그냥 두고 보고 있을 순 없었다.


그렇게 뭐라도 해야 했다.


그래도 그 순간들을 살아오며 

내가 배운 게 있다면


인생이 꽃길만 

펼쳐진 소풍 같은 게 아니더라도
충분히 괜찮은 녀석이라는 것과


불쑥 불쑥 터지는 일들이, 

꼬일 때로 꼬이는 관계가, 

때로는 망가지는 일들이, 

살아가는데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것.


콘텐츠가 하나 망해도, 

관계가 하나 망가져도,
때론 몸이나 마음이 부서져도,


지금 나는 여전히 잘 존재하고 있다는 것.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 따위는,
실존주의의 가르침 따위는,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인생이라는 게
결국에는 다 실패하는 거라는
교수님 말씀도 솔직히 잘 믿음이 안 가지만,


어쨌든 망하든 망하지 않든

이 망망대해 같은 세상에서
지금 이 순간 나는 또 살아가고 있고,

또 살아갈 것이기에

그게 어떤 결론이든 큰 상관은 없다.


그리고 지나간 날들의 모든 순간이
결국 나의 현재였기에


앞으로 살아갈 날들 역시도
그 모든 순간이 다가올 나의 현재이기에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는 현재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교수님과 잠시나마 

삶의 어느 지점에서 서로의 현재를 공유했다는

그 사실이 그저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 2017년 6월 14일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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