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ewon Jan 28. 2024

계속 창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1. 대학 시절에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좋아해서, 노희경 작가가 여는 강연들을 찾아다니면서 들었던 적이 있다.


2. 그때 한 가지의 의아함을 느꼈는데, 관객들은 노희경 작가가 쓴 드라마를 좋아해서 기존 드라마에 관련된 질문들을 많이 던졌지만,


3. 정작 그 드라마를 만든 노희경 작가는 그런 질문들에 대해선 별로 대수롭게 여기며, “이미 지난 작품”이라며 쿨하게 답하며 넘어갔다.


4. 자신은 작품이 끝나고 나면, ‘지나간 작품’보다는 ‘다음 작품’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고.


5. 그런 경험을 몇 번 하고 나서, ‘창작자의 시간은 독자와 다르게 흐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독자들은 자신이 의미 있게 본 지나간 작품 속에 머무르지만, 창작자는 그래서 안 된다고.


6. 그게 아무리 훌륭하고 아름다운 작품이었다고 해도, 창작자는 작품을 마쳤으면 거기서 빠져나와, 다시 새로운 작품에 대해 구상하고 또 다른 도전을 해야 한다고.


7. 그렇게 실제로 글을 쓰고, 콘텐츠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노희경 작가가 왜 그랬는지, 그리고 찰리 채플린이 왜 자신의 최고 작품은 언제나 ‘다음 작품(Next)’이라고 말했는지가 어렴풋하게나마 이해가 됐다.


8. 조금 풀어 설명하면, 콘텐츠를 만들거나 글을 쓰다 보면, 잘 쓴 글도 있고, 못 쓴 글도 있고, 부끄러운 글도 생기기 마련. 그런데 뭔가가 부족했다는 이유로 과거의 글에 사로잡혀서, 다음 글을 쓰지 않으면, 다시 말해, 그게 잘 쓴 글이든, 못 쓴 글이든, 그게 다음 글을 향해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면, 결국 창작자는 정체될 수밖에 없다.


9. 그리고 아무리 과거 작품이 좋았다고 한들, 독자와 관객이 원하는 건 늘 새로운 무언가(new)라서, 콘텐츠로 비즈니스를 한다면 특히 something new가 중요하다.


10. 그래서 콘텐츠로 비즈니스를 하든, 글을 쓰는 연습을 하든, 콘텐츠와 관련된 뭔가를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늘 다음 콘텐츠를 만들 생각을 하는 것’이다.


11. 바꿔 말하면, 지금 쓰는 글이 부족하고, 허접하고, 모순적이어서, 그런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게 부끄럽다고 해도, 냉정하게 말하면,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12. 정말 중요한 건, 그렇다고 해서 거기서 멈춰 있거나, 나에겐 재능이나 능력이 없는 것 같다며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때로는 부족하고 때로는 욕을 먹더라도, 흘려보낼 건 흘려보내며, 다음 콘텐츠를 만드는 것일 수 있으니까.


13. 그런 의미에서 콘텐츠 창작자가 진정으로 창조해야 하는 건, 단순한 콘텐츠가 아니라, 자신의 미래일 수 있고, ‘꾸준하고 성실한 창작자’란 지나간 콘텐츠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계속해서 만드는 사람일 수 있다.


14. 그렇기에 다소 뜬금없긴 하지만, 언젠가 노희경 작가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가슴 시린 사랑을 했다고 해서,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다고 해서, 누군가를, 그리고 무언가를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는 것이다.


15. 그런데 이건 콘텐츠 세계에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자신이 만드는 콘텐츠가 너무 구리다고 느끼든, 아니면 스스로 자뻑에 빠지든, 그게 어떤 이유든 콘텐츠 세상에선 창작을 멈추는 것 그 자체가 유죄일 수 있달까?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뭔가를 만들어갈 나와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화이팅!


썸원 레터 구독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5010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