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있는 주관성에 대해
1. <흑백 요리사>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그게 참가자든, 아니면 심사위원이든, 모두가 ‘음식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고 한다.
2. 대회이고, 승부를 겨뤄야 하니, 평가를 하고 점수를 매기고 순위를 정하지만, 그 평가가 항상 옳을 수는 없다는 점을 모두가 인정하는 셈인데, 여기까지는 뭐 경연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3. 이 주관성의 영역에서 나름 자기 실력을 쌓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기준과 원칙을 정하고, 이를 토대로 평가를 내린다는 점이었다. 안성재 셰프는 1) 음식에서 요리한 사람의 의도가 느껴져야 하고, 2) 그 의도에 맞게 꽃 하나부터 모든 게 완벽하게 세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4. 백종원 대표는 한식을 평가할 때마다, 이 음식이 과연 관광객이나 글로벌 무대에서 먹힐 수 있는 아이디어인지를 많이 신경 쓰더라.
5. 즉, 주관적인 평가의 영역이지만 그 안에서도 나름의 기준과 원칙을 정해서, 통일성과 규칙성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는 셈.
6. 이 부분에 대해 대부분 사람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지만, 개인적으로 굉장히 놀라웠다. 보통 어떤 결과물에 대해 평가가 주관적으로 내려질 경우, 어차피 평가가 주관적으로 이뤄질 테니, “나는 그냥 내 맘대로 할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현실에선 훨씬 더 많기 때문.
7. 사실 콘텐츠 역시 요리만큼 주관적으로 평가가 내려지는 영역이라서, 뭐가 좋은 콘텐츠인지 모르겠으니 “그냥 나는 내맘대로 할래”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흔하지만, 자신의 주관성 속에서도 나름의 원칙과 기준과 규율을 정하고, 이를 지독하게 지키는 사람은 소수랄까?
8. 마음대로 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스스로가 원칙을 정하고, 이를 계속 지키면서 계속 더 나은 원칙을 만드는 일은 훨씬 더 힘든 일이기도 하고.
9. 그래서인지 <흑백 요리사>를 보면서, 대가나 프로일수록 그저 주관성을 즐기거나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그 주관성의 영역에서조차도 스스로가 먼저 원칙과 규율과 기준을 정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10. 즉, 대가일수록 ‘원칙 있는 주관성’을 추구하는 셈. 그런 의미에서 주관적인 평가가 내려지는 영역에서는 역설적으로 ‘얼마나 자신의 마음대로 무언가를 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건 누구나 하는 거니까.
11. 그보다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 일을 했는지, 어떤 원칙과 규율 안에서 자신의 주관성과 창의성을 표현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건 스스로가 정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는 뜻이니까.
12. 그런 의미에서 주관성이 넘치는 분야에서는, 오히려 원칙 있는, 기준 있는 사람이 되는 게 훨씬 더 도도할 뿐 아니라, 자신을 더 빛나게 만드는 길이라는 생각을 문득 했다고 한다. 무튼 나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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