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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on Oct 06. 2019

배트맨은 조커의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조커>는 꽤나 놀라운 영화입니다

1. <조커>는 꽤나 놀라운 영화입니다. 조커가 세상을 파괴하듯, 이 영화 또한 기존 슈퍼 히어로 영화가 가진 문법과 가치관을 파괴하기 때문이죠.


(본 글에는 영화 <조커>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 많은 사람들은 입이 닳도록, 슈퍼 히어로 영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매력적인 빌런'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매력적인 빌런의 존재가 슈퍼 히어로를 더욱더 매력적으로 만든다고 주장하죠.


3. 실제로 많은 영화들이 그러했고, 좋은 히어로 영화에는 언제나 매력적인 빌런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낭만적으로 말하죠.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요.


4. 물론 영화라는 콘텐츠 안에서는, 그런 말들이 유효한지는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실제 현실은 그렇게 굴러가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난세는 영웅보다는 악당을 더 쉽게 만든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일 수도 모르죠.


5. 그리고 사회적 약자일수록, 난세는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약자일수록 이 비루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일말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선, 그저 존재하고 버텨내기 위해선, 감당해야 할 치욕이 더 크니까요.


6. 그래서 쉽게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세상이 복잡하고, 혼란하고, 그래서 정의롭지 않을수록, 약자가 악해질 개연성은 점점 더 커집니다. 그리고 영화 <조커>에서는 그 가능성을 계속해서 보여주죠.



7. 사랑했던 엄마마저 자신을 평생 속여왔으며, 길거리에서 청소년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직장에서 해고되고, 동료들에게 조롱 당하며, 진심으로 존경했던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짓밟히는 조커는, 어쩌면 악당이 되기에는 이미 충분한 이유와 조건을 다 갖춘 캐릭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8. 그리고 영화에서 조커는, 자신을 무시하고 짓밟았던 존재들을 차례차례 응징하죠. 그리고 응징 뒤에 조커는 춤을 춥니다. 그것도 굉장히 아름답게.



9. 그게 온당한 연출 방법이었는지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지만, 그래도 조커의 입장에서 보면, 그 응징의 순간이 남루하고 비루했던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


10. 물론 사회 환경이나 개인적 경험이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조커처럼 행동해야 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잘못을 모두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것 또한 그 개인의 인격과 선택을 모독하는 행위일지도 모르고요.


11. 하지만 하나 분명한 건, 앞서도 언급했지만,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그 흔한 말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난세는 그저 난세일 뿐이고, 그런 난세에선 영웅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쉽게 더 악한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조커처럼 말이죠.


12. 그런 의미에서 보면, 매력적인 빌런이 매력적인 슈퍼 히어로를 만든다는 말 또한 틀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빌런은, 사회악은, 단순히 슈퍼 히어로를 위해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보다는 남루하고 처절해서, 지독하기 그지 없는 비루한 사회의 단면에 기생해, 악은 자연스럽게 탄생한다고 보는 게 더 맞지 않을까요? 슈피 히어로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13. 그리고 이 영화는 아주 교묘하게 조커의 탄생과 배트맨의 탄생을 디졸브시킵니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게 이런 질문을 던지죠. '과연 배트맨이 이 남루하고 부패한 고담을 구해낼 수 있을까? 과연 배트맨은 조커의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라고요.



14.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메세지는 더욱 공포스럽습니다. 배트맨이 개별적인 조커의 악행을 막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배트맨 혼자서는 부패하고 척박하며 양극화되어 있는 '고담'이라는 세상을 구할 수는 없다는 걸, 우리 모두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15. 어쩌면 이 영화는 돌려 돌려 돌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악당의 탄생을 막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슈퍼 히어로의 등장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당장이라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지금 마주한 이 남루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밖에 없다고요.


16. 그리고 이게 어쩌면 슈퍼 히어로 영화이지만, <조커>에는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세상에 정말로 필요한 건,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느꼈을 각자의 '불편함'일 수 있기 때문이죠.


17. 그리고 적어도 이 영화를 보고 불편함을 느낀 사람이 많다면, 적어도 아직까지는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싶다는 갈망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는 사람이 많다는 뜻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불편함은 무언가를 바꾸는 하나의 동력이 되기를 바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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