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더라도, 간절함이라는 것을 가져보자
1. 대부분의 사람들이 ‘잡스병’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지만, 스타트업에 처음 왔을 때 ‘잡스병’에 빠진 동료들과 함께 일한 순간들은 생각보다 즐거운 경험이었다.
2. 설령 그게 본인의 분수와 능력 범위를 넘어가는 일이라도, 설령 그게 대기업이나 유수의 IT기업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라도, 최선을 다해 고객과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집착. 그런 집착을 가진 동료들과 일하는 것 자체로도 배울 것이 많았고,
3.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일천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집착을 가지고 계속해서 실행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때로는 감탄하기도 했고, 때로는 자극을 받기도 했다. 이런 게 열정인가 싶기도 했고, ‘이런 게 흔히 말하는 스타트업 마인드인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4.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집착을 가진다고 해서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열정과 집착은 결국엔 머리가 깨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5.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충분한 시간과 돈이 주어지면, 레거시 회사들이 방치한 문제들을 어쩌면 정말 풀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6. 물론 이런 생각도 결과적으로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세상의 많은 문제들은 집착이나 열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뿐더러, 설령 돈과 시간이 더 생기더라도, 갑자기 생긴 돈과 시간은 더 큰 문제를 만들어 냈다.
7. 그맘때쯤 이런 생각을 했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복잡하고 어지러운데, 스타트업은 특히 그런 복잡함과 어지러움의 밀도가 더 높다고. (물론 그래서 누군가에겐 더 재미있을 수 있다)
8. 그리고 비교하는 게 참 우스운 일이지만, <더 라스트 댄스>를 보며 동료들에게 가혹했던, 아니 가혹할 수밖에 없었던 마이클 조던을 보며 스타트업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이 났다.
9. 승리에 대한 갈망, 경쟁에 대한 광적인 집착은, 마이클 조던 자기 자신을 몰아붙였을 뿐 아니라, 동료들도 몰아붙였다. 일부는 그런 모습을 싫어했지만
10. 마이클 조던은 그 집착으로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었고, 결국 자신의 팀도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정말 중요한 건 마이클 조던이 결국에는 최고의 팀을 만들어냈다는 게 아닐까.
11. 마이클 조던이 동료들에게 가혹했던 이유는, 절대 혼자서는 우승할 수 없다는, 나에겐 훌륭한 동료가 필요하다는 간절한 깨달음 때문이었으니까.
12. 슈퍼스타가 되는 건 혼자서의 노력으로도 가능한 일일 수 있지만, 경기를 이긴다는 건, 우승을 한다는 건, 그리고 계속 우승을 하는 왕조를 건설한다는 건 절대 혼자서 할 수 없다는 걸 수많은 좌절 속에 마이클 조던은 너무나 잘 알았고,
13. 이를 위해 그는 평범한 동료가 아니라, 자신만큼이나 집착과 열정을 가진 동료가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동료들을 그렇게 만들기 위해 솔선수범하는 동시에 동료들이 감탄할만한 퍼포먼스를 보이며, 그들을 설득했다.
14. 그러면서 그는 이런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시카고 불스에서 살아남으려면 마이클 조던만큼 노력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조던이 용납하지도, 지체하지도 않고 너에게 달려들꺼야’
15. 역대 최고의 선수가 역대 최고의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며, 그리고 그의 우승에 대한 간절한 갈망과 반복된 좌절을 보며, 그리고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동료들의 도움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그의 호소를 보며, 과연 설득되지 않을 프로 선수가 있었을까.
16. 그리고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는 그 위대한 여정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을 빈틈없이 조명한다.
17. 리그 최고 수준의 기량을 가졌지만, 늘 2인자 취급을 받았고 연봉도 후하게 받지 못했던 스코티 피펜. 코트 밖에선 악동이었지만 적어도 코트 안에선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붙으며 승리를 쟁취하려고 했던 악동 데니스 로드맨. 벤치 멤버 주제에 조던만큼 승부욕과 경쟁심을 가져 연습 도중에 조던과 싸웠던 스티브 커. 그리고 이들을 지휘했던 필 잭슨. 욕을 먹었지만, 이 모든 걸 기획한 제리 크라우스 단장까지.
18. 이 모든 과정을 빈틈 없이 조명하는 과정을 보면서, <더 라스트 댄스>는 지금 우리가 다시 그 시절을 되돌아봐야 한다면 마이클 조던 개인이 아니라, 마이클 조던의 재능과 집착이 탄생시킨 ‘시카고 불스’라는 위대한 팀 전체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19.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을 보고, 왜 마이클 조던이 필 잭슨 감독의 재계약 여부에 본인의 은퇴를 감정적으로 결부시켰는지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다. 자신의 광적인 집착과 독기를 받아주고 감당하며, 여섯 차례 우승을 함께한 동료들을 '리빌딩'이라는 이름으로 찢어놓는다는 게 마이클 조던에게는 마치 자신을 부정하는 것 같았을 테니까, 절대 용납할 순 없었겠지.
20. 동시에 이 위대한 다큐멘터리는, 마이클 조던의 정반대에 있어 늘 악역으로 묘사되는 제리 크라우스 단장의 선택 또한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는 점을 잘 부각한다.
21. 아버지의 죽음 이후 돌연 은퇴를 선언하며 야구 선수가 된 마이클 조던을 보며, 제리 크라우스 단장 입장에서는 조던 이후에 팀을 어떻게 운영할지를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리빌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꼈을 테니까.
22. 이 모든 걸 수긍하게 만드는 이 다큐멘터리는, 그렇기에 그들의 마지막 댄스가 더 처절하고 더 아름다웠다는 점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23. 그리고 다큐멘터리가 끝나갈 때쯤 이런 생각을 했다.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팀이라고 불리는 팀조차도 이렇게 수많은 문제들에 부대꼈는데, 너무 편하게 너무 날로 먹으려 하지 말자’고.
24. ‘절대 조던이 될 수도, 시카고 불스 같은 팀을 만들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높은 기준과 집착을 가지고 삶의 문제들을 마주하자’고. '그러다 보면 아주 작은 확률이라도 그 집착과 그 집착으로 만들어진 결과들이 누군가를 설득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25. '설령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더라도, 간절함이라는 것을 가져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