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리뷰
++ 본 글에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세상을 멀티버스로 바라보는 편입니다.
2. 비록 같은 시대, 같은 순간을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각자가 살아가는 세상은 저마다 다 다르다고 보기 때문인데요. 애초부터 모두의 출발점이 다르고, 그 뒤로 쌓여가는 정보와 기억도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요.
3. 그래서 설령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저는 각자가 마주하는 세상은 다 다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에게는 누군가의 삶에서 진실이었던 내용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에 그대로 100% 적용될 것이라는 기대 같은 것이 아예 없는데요.
4. 모든 세상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와 원리가 아니라면, 각자의 삶에 발견된 것들은 그저 자신의 삶에서만 진실일 뿐이죠.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진실이 저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는 기대 자체를 안 하고요. 그런 생각은 순수하다고 생각합니다.
5. 그보다는, 오히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 자신의 삶에 대한 진실을 발견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6. 그래서인지 저는 사람과 사람이 이어진다는 것이 단순히 선형적 연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세상과 다른 사람의 세상이 부딪히는 일종의 인커전 현상(Incursion)이라고 보는 편인데요.
7. 누군가 ‘한 사람이 온다는 건 그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비슷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멀티버스적 관점에서는, 한 사람이 온다는 건 단순히 일생이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우주 전체가 오는 것이니까요.
8. 저는 세상에 혼란과 갈등이 넘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보는 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세상이 실시간으로 광범위하게 부딪히고 있으니까요.
9. 결국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수많은 세상이 부딪치는 대혼돈의 중심에 서 있는 셈인데요. 그런 면에서 영화와 현실은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10. 다만, 영화와 현실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영화 속 슈퍼 히어로들에게는 다크 홀드나 비샨티의 책 같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아이템이나 능력 같은 것이 있다는 점인데요. 슬프게도 현실에는 그런 것들이 없죠.
11. 그리고 영화는 대체적으로 아쉬웠으나, 그나마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적어도 대혼돈을 돌파하는 방식은 영화와 현실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12. 닥터 스트레인지는 우주 최강의 마법사답게 그동안 독선적이고, 혼자서도 충분히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요. 의사 시절부터 그래왔고, 마법사가 되어서도 그대로였으며, 늘 본인이 칼자루를 쥐는 선택들을 해왔습니다. 그러던 닥터 스트레인지는, 무너져 가는 세상을 구하려면 결국 다른 사람들과 함께 힘을 합쳐져야 한다는 점을 깨닫는데요.
13. 물론 이 과정이 조악해서 오그라드는 부분이 없진 않았으나, 그래도 잠시지만 타노스조차 혼자서 현란하게 상대했던, 도르마무조차도 혼자 상대했던 우주 최강의 마법사가 이번에는 속절없는 좌절을 겪으면서 그게 웡이든, 아메리카 차베즈든, 크리스틴 팔머든 다른 사람의 힘을 간절히 필요로 했다는 점은 저는 꽤 흥미로웠습니다.
14. 이런 장면들은 현재 리더가 부재한 MCU의 상황에서, 스티븐 스트레인지가 독선을 넘어서 리더가 되는 일종의 과정이라고 느꼈고요.
15. 동시에 혼자서 결정하고 혼자 판단을 내렸던 다른 차원의 스트레인지들이 대체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으니, 그걸 본 닥터 스트레인지 입장에서는 아마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겁니다. 본인의 독선을 넘어서는 것 이외에는 말이죠.
16. 그리고 고민의 폭은 다르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또한 어쩌면 이와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든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그리 많지 않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고 하면 인커전처럼 더 크고 복잡한 문제가 터지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결국에는 자신이 믿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늘려가는 것 이외에 다른 해결책은 없으니까요.
17. 그러려면 스스로가 먼저, 다른 사람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지요.
18. 물론 대략적인 답을 안다고 해도, 현실에서 이를 쌓아가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겁니다. 아는 것과 마주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고, 그 누구도 자신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진 않으니까요. 그리고 혼돈은 언제나 또 다른 혼돈을 부르는 법이고요.
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서사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서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폭을 넓혀가는 것. 어쩌면 산다는 건 자신의 유니버스를 넓혀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블이 다양한 캐릭터들로 자신만의 생태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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