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터져서 죽는 꿈을 꿨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순간, 시간이 영원처럼 늘어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죽으면 너무 억울한데, 하고 싶은 것들만 잔뜩 하고 살 걸, 왜 견디고 참고 살았을까'
'몇 초 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無의 상태가 되는 건가,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다고!' 하는 순간 땅에 떨어져 나는 그 무엇도 남지 않은 상태로 사라졌다.
깨고 나서 이 꿈은 긴 여운을 남겼다. 지금 사는 대로 계속 살아도 되는 걸까?
최근에 있었던 참사들이 이런 꿈을 꾸는 데 영향을 준 건 분명하다. 서울 한복판에서 느닷없이 발생하는 싱크홀, 내가 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비행기의 사고.
회사로 향하는 무미건조한 출근길에도, 텅 빈 눈동자로 지루한 업무를 처리할 때도 이 해결할 수 없는 두려움은 자주 나를 덮쳐왔다.
그러던 중 엄마와 상해 여행을 떠났다. 양꼬치 맛집으로 알려진 곳에서 기분 좋게 식사하며 엄마는 여김 없이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 말했다.
젊은 시절 온갖 고생을 다 거쳐온 지금, 인생의 이 시기가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차곡차곡 돈 모으는 재미도 있어 인생에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엄마는 내 마음에 깊게 새겨질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어'
지금 당장 죽으면 미치도록 억울해서 발버둥이라도 치고 싶은 두려움과,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감각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내 인생의 남은 시간으로 어떤 퍼즐을 그려내야 그 불가해한 공백을 메울 수 있을까.
엄마는 어깨 위에 쌓여있던 수많은 벽돌들을 하나씩 덜어내어 내가 밟고 올라설 수 있는 디딤돌을 만들었다. 엄마의 젊은 나날이 갈려 들어간 벽돌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성채가 되어 나를 지켰다.
밟고 올라선 벽돌 아래로 이제는 내가 엄마를 돌볼 수 있게 된 지금, 엄마는 아무런 욕심도 한도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죽음을 두려워할 생의 여유조차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누르는 생의 무게를 감내하려면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 엄마에게 그 지향점은 딸과 아들을 온전히 길러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니체는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고 했지만 방황하며 그려낼 비정형의 퍼즐이 어쩌면 내 인생에 꼭 맞는 퍼즐이 될지도 모른다.
지향은 결국 사랑에서 비롯된다. 내가 어떤 걸 사랑하는지, 그걸 어떤 방식으로 밀고 나갈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내 삶의 공백을 채워줄 사랑을 찾아 오늘도 욕심껏 방황해보려고 한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람이 되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