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조건에 대하여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사유하지 않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특정한 환경에서 악을 범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악의 평범성'이란 용어를 통해 아이히만*의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성격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정치적 악의 실행이 필히 '사악한' 동기나 이데올로기적 열정의 현존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이념을 전달하고자 했다.
* 아돌프 아이히만 : 나치 유대인 학살의 실무 총책임자, '맡겨진 일을 열심히 했을 뿐' 인정할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
즉 악행은 (법에서 명명하는 바와 같이) '근본 동기'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이나 의지를 특별히 촉발하는 동기가 부재한 상황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강조했던 이 개념(사유의 부재=악을 행할 가능성)의 연장선상에서, 현대인이 '성숙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질을 갖추어야 할까?
현대인에게 성숙한(계몽된) 인간이란 이제 더 이상 '지성'만을 갖춘 인간이 아니다. 이 새로운 관점에서는 종전 '지성'의 자리에 '감수성'을 추가할 것을 요구한다. 오늘날 '미성숙한' 인간이라 불리는 이들이 결여하고 있는 것은 지성이 아니라 감수성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성숙한 인간이 갖고 있는 감수성이란, '젠더 감수성'이나 '인권 감수성'이라는 개념에서 그 용례를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이해하고 행여 그것에 대한 잘못된 지식/믿음 (즉 '무지'와 '미신')이 '차별'의 근거로 작동할 수 있는 상황을 예방하거나 비판할 줄 아는 민감함을 의미한다. 이런 감수성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나에게 그것이 없다는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와 고통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시적으로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감수성의 발현은 앞서 말한 사유와 관련이 있다. 현상세계에 대한 인식과 추론으로 가능한 지성과는 달리, 감수성은 현상세계로부터 잠정적으로 이탈하여, 우연히 발생하거나 관심을 끄는 모든 것을 결과나 특이한 내용에 관계없이 검토하는 습관(=사유)으로부터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신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거의 모든 현상에 대하여 '사유'할 줄 아는, '감수성'을 갖춘 인간만이 성숙하고도 계몽된 인간이 될 수 있으며, 잠정적 악의 실행에 맞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몇 달 여 전부터, 우리의 일상적인 행위들이 가질 수 있는 암묵적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고도 당연하게 행하는 일상의 행위들 중에서도, 부정적인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예를 들어, 가격 비교를 통해 값싼 달걀을 구매하는 내 행위는 그 이면에 일어나는 공장식 축산과 동물들의 고통을 지지하는 행위가 되는 것인지와 같은 생각.
또는 이를 뛰어 넘어서, 부정적인 나비효과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행위가 가지는 암묵적인 가치 판단에 대한 생각까지. 예를 들면 귀걸이와 같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액세서리를 구매할 때, 똑같은 금액을 비영리 단체에 기부했다면 살릴 수 있었던 생명들에 대한 생각 같은 것. (귀걸이를 구매하는 내 행위는 외면받는 그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일의 가치보다, 사치품이 나에게 주는 사소한 즐거움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인가?)
일상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에 대해 감수성과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사유한다면 더욱 완전해질 수 있었을 것들에 대한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개인이 생각하는 성숙한 인간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모두 다를 것이지만, 지성/감수성/상상력을 갖추는 것은 그 근본적인 필요조건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래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의 한 구절처럼, 사유와 감수성 그리고 상상력은 악을 자제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될 뿐만 아니라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조건)이 되어, 우리를 더욱 완전한 인간으로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당신 생각이 왜 그렇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름다움이 해변의 조약돌처럼 그냥 버려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무심한 행인이 아무 생각 없이 주워 갈 수 있도록?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며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알아보려면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 보아야 하오.
예술가가 들려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그것을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 상상력이 있어야 하는 거요."
※ 참조 : 한나 아렌트 <정신의 삶>,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