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담긴 죽음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를 아시나요? 우리말로 하면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로 해석되는 라틴 어구입니다. 언젠가 올 죽음을 상기시켜 삶에 대한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죠.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메멘토 모리는 미술사 전반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그림의 소재가 되어 왔습니다. 고대 이집트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해요. 아래 폼페이의 모자이크(기원후 1세기)에서도 메멘토 모리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해골은 죽음을, 해골을 떠받치고 있는 나비는 죽은 이의 영혼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전 세계 어디서든 죽음은 예술이 되어 왔으니, 인간에게 죽음이란 그만큼 보편적인 개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전히 불가사의하면서도 누구든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니까요.
그럼 본격적으로 메멘토 모리가 미술과 만나 탄생한 작품들을 만나볼까요? 우선 메멘토 모리 예술은 전형적인 하위 양식(장르) 두 가지를 만들어냈어요. 양식이라는 정해진 틀이 있고, 그 안에서 다양하게 변형된 작품들이 많이 그려졌죠. 죽음에 대한 우리 인간의 태도와 생각들이 예술에 녹아들면서 자연스럽게 양식이란 것도 생겨난 것 같아요.
1. 죽음의 춤 (Dance of Death, Danse Macabre)
첫 번째는 '죽음의 춤'이라는 장르입니다. 중세 유럽에서 유행했던 주제였다고 해요. 페스트, 혹은 흑사병으로 알려진 대규모 전염병이 돌던 종교의 시대, 죽음이 일상이던 당시 사회적 상황과 연관되어 나타난 양식입니다.
이 장르는 위 그림과 같이 죽음이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며 무덤까지 걸어가는 장면을 주로 묘사하는데요. 대부분의 경우 죽음은 해골의 형태로 표현됩니다. 특히 그림 속에는 남녀노소, 계층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이 함께 죽음과 동행하고 있는 모습이죠. 이는 모든 사람이 죽음 앞에 평등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종교의 시대였으니 만큼, 누구에게나 찾아올 죽음 앞에서 신의 말씀을 되새기자는 교훈적인 의미도 있었겠죠?
2. 베니타스 정물화 (Vanitas Still Life)
메멘토 모리의 하위 장르 두 번째는 '베니타스 정물화'입니다. 16~17세기 네덜란드 플랑드르 지역에서 유행했던 정물화라고 해요. 정물화답게 다양한 사물들이 이리저리 배치되어 등장하는데요. 베니타스 정물화는 '세속적인 쾌락의 덧없음'을 주제로 합니다. 이에 따라 정물화 속 사물들은 각자 풍부한 상징을 지니고 있는데요. 아래는 베니타스 정물화에 자주 등장하는 사물들의 상징(메타포)입니다. 그림 속 사물들과 하나씩 매칭해 보며 그 의미를 곱씹어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아요.
* 베니타스 정물화의 상징(메타포)
- 해골: 인간 존재의 유한함과 죽음
- 모래시계 혹은 시계: 시간의 흐름과 삶의 덧없음
- 촛불: 꺼져가는 생명력
- 과일: 한때 풍요로웠으나 썩어갈 수밖에 없는 무상함
- 책, 악기, 와인: 지식, 음악, 쾌락과 같은 세속적 즐거움의 헛됨
지금까지 메멘토 모리를 양식으로 하여 그려진 작품들을 살펴봤는데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화가들 각자의 개성으로 표현해 낸 메멘토 모리 그림들도 많이 있습니다. 양식에 구애받지 않았으니 그만큼 독창적이겠죠? 화가들이 죽음을 어떻게 작품으로 승화시켰는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메멘토 모리를 살펴보겠습니다.
한스 홀바인의 숨겨진 서명(Signature)
이 그림은 젊은 프랑스 대사와 그의 친구를 그린 초상화입니다. 영국에서 활동했던 르네상스 독일 화가 한스 홀바인 2세의 작품이에요. 두 인물 사이에는 시대를 유추할 수 있는 사물들이 가득 그려져 있는데요. 세밀한 묘사도 탁월하지만 이 자체가 상징적이라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책, 악기는 물론이고 지구의와 같은 천문학 기구까지 두어 두 사람의 지적이고 권위 있는 모습을 표현한 거 거든요. 그런데 혹시 그림에서 이상한 부분 눈치채지 못하셨나요?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그림 하단에 위치한 왜곡된 해골이에요. 언뜻 보면 평범한 초상화로 보이는 이 그림이 품고 있는 비밀입니다. 그림을 실제로 볼 때 작품 오른쪽에 서서 비스듬히 왼쪽을 향해 바라보면 해골이 정면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극단적인 원근법을 활용한 일종의 착시현상이죠.
한스 홀바인은 앞서 설명한 Dance of Death의 목판화 연작을 제작할 만큼 죽음을 강렬하게 묘사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만큼 한스 홀바인의 작품에는 해골이 많이 등장한다고 해요. 그가 왜 그토록 해골을 많이 그렸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재미있는 추측 하나를 소개해드리려고 하는데요. 그것은 해골이 다름 아닌 한스 홀바인의 서명일 것이라는 추측이에요. 속이 빈 뼈(hollow bone)를 독일어로 하면 홀바인(Holbein)이기 때문에 해골을 본인의 서명으로 썼을 거라는 흥미로운 주장입니다. 그림 속에 수수께끼를 숨겨둔 샘이죠. 꽤나 그럴듯하지 않나요?
고흐와 세잔의 메멘토 모리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화가들도 메멘토 모리를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표현법에서 화가들의 개성이 더 많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대표적으로 고흐와 세잔의 그림을 살펴보겠습니다.
위 그림은 반 고흐의 <불타는 담배를 문 해골> 인데요. 대담한 붓 필치가 특징인 반고흐 답게, 해골도 감각적으로 표현된 모습입니다. 해골과 담배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그림 같아요. 사실 이 작품은 반고흐가 벨기에의 왕립미술학교에서 해부학 수업을 들었을 때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그는 그 시기의 해부학 수업을 '지루해서 죽을 지경이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요. 그만큼 보수적인 미술 교육계에 대한 풍자적인 의미도 섞인 것으로 보입니다.
반고흐의 의도야 어떻든, 보는 이에게는 해골과 담배의 서늘함, 그 고독함까지 느껴지는 부분에서 전형적인 메멘토 모리 그림이라 할 수 있겠죠?
반면 폴 세잔은 사물의 기하학적 형태에 집중하여 정물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위 그림에서도 해골의 기하학적인 특징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죠? 또한 정물화는 앞서 살펴봤던 베니타스 정물화와는 사뭇 다른, 피라미드 형태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균형 잡힌 해골들의 모습이 아이러니하게도 더 섬뜩하게 느껴집니다.
뿐만 아니라 강렬한 색채와 명암 대비를 활용한 것도 눈에 띄는데요. 인생에 드리워진 죽음이라는 그늘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요?
멕시코 스타일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가 화가 개인의 개성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국가 전체의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기도 한다면 어떤 나라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멕시코에서는 죽음을 축복과 기쁨으로 승화하는 공동체적 문화가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특성은 '망자의 날'(Día de los Muertos)이라는 멕시코의 전통 축제에서 잘 드러납니다. 죽은 이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특별한 날이라고 해요. 이 날, 가족들은 친지의 무덤을 방문하기도 하고, 죽음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운문 작품을 서로 교환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 축제는 대표적인 아이콘 역할을 하는 캐릭터를 하나 가지고 있는데요. 바로 '라 카트리나'라는 캐릭터예요. 멕시코의 삽화가인 포사다가 그린 아래 그림의 '라 칼라베라 카트리나'가 그 기원이라고 합니다.
삽화로 그려졌던 이 캐릭터는 멕시코의 대표 화가 디에고 리베라가 벽화로 그리면서 대중성을 얻었습니다. 유럽풍 모자를 쓴 화려하고 우아한 여성으로 표현되어 세속적 가치의 무상함을 더욱 강조하는 것 같아요.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을 보면 화려한 색채로 인해 곳곳에 축제의 분위기가 스며든 게 느껴지죠. '망자의 날'의 광경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멕시코 사람들은 이렇듯 죽음과 삶의 관계를 보다 유쾌하고 가볍게 승화시키는 문화를 가지고 있어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전면에 맞서 죽음을 똑바로 응시하겠다는 의지가 왠지 모르게 멋져 보이는 것 같아요.
이 그림에서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는, 디에고 리베라가 자신과 아내, 그리고 앞서 소개한 ‘라 카트리나’의 원조 삽화가 포사다를 그려 넣었다는 점인데요. 라 카트리나의 왼쪽엔 시큰둥한 표정을 한 포사다가, 오른쪽엔 갈매기 눈썹으로 유명한 아내 프리다 칼로가 있어요. 그리고 디에고 리베라 본인은 라 카트리나의 손을 잡은 어린아이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망자의 날을 기억하며, 죽음의 의미를 되새긴 게 아닐까요?
메멘토 모리의 멕시코적 변형은 그 대담한 유쾌함이 느껴져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데이미언 허스트
현대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해골이라 하면 바로 데이미언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 (For the Love of God)> 이겠죠? 실제 인간 두개골(18세기 유럽 남성으로 추정)에 다이아몬드를 무려 8,601개나 장식했다고 합니다. 다이아몬드만 1,106캐럿에 이른다고 해요.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에 인간의 사치와 허영을 대표하는 다이아몬드를 붙여서, 죽음과 헛된 욕망에 대한 관계를 조망한 작품이라고 해요. 해골의 서늘함에 다이아몬드의 세속적인 반짝임이 더해져 뭔가 더 차가운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해골에 다이아몬드를 결합해 예술품으로 만들어서, 아이러니하게도 영속성을 얻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고대 이집트 시절 권력자의 영원에 대한 집착이 만든 미라를 연상시키기도 해서 재미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앞서 살펴본 작품들보다도 더 직관적으로 죽음에 대한 성찰을 이끄는 작품인 것 같아요.
이번 글에서는 고대에서 현대까지, 메멘토 모리가 어떻게 예술이 되어 왔는지 살펴보았어요. 인간은 끝없이 죽음이 우리 삶의 부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요. 죽음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아득한 두려움이 우리를 덮쳐오지만, 죽음이 현실이 되었을 때 더욱 초연해지기 위해서는 항상 죽음을 인식하고 그에 주눅 들지 않으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죽음에 대한 담력을 키우는 한 가지 방법으로, 예술가들의 메멘토 모리를 가만히 살펴보면서 삶에 대한 태도와 생각을 다듬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도 재미있는 예술 이야기로 찾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