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의 특이한 피에타

자아 분열, 고독, 죽음을 그린 화가

by 솜글

강렬한 고독감으로 한 번 보면 쉬이 잊히지 않는 그림을 그린 화가가 있습니다. 바로 오스트리아의 화가 에곤 실레에요.


말라서 뒤틀어진 인체와 공허한 표정이 특징인 인물화를 많이 그렸죠. 에곤 실레의 대표작은 인물화 중에서도 자화상인데요. 아래 그림이 많은 분들의 기억 속에 있는 그림일 것 같아요.


에곤 실레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1912


그림 속 에곤 실레는 어두운 색 옷을 입고 관람자를 살짝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 눈빛에서 자신감도 느껴지지만 어쩐지 연약함도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 그림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에곤 실레의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붉은색과 푸른색, 녹색으로 피부를 표현했죠. 언뜻 보기에는 병약하고 불안해 보이지만, 보색 효과 때문인지 반대로 생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여러모로 이중적인 부분이 많은 그림이죠?


에곤 실레 <줄무늬 셔츠를 입은 자화상>, 1910


에곤 실레는 28세에 스페인독감으로 요절하기 전까지 무려 100여 점에 달하는 자화상을 남겼어요. 수많은 작가 중에서도 자신의 얼굴과 몸을 가장 자세히 관찰하고 연구한 화가라고 합니다.


본인의 자아가 분열되는 경험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탐구하는 과정을 자화상에 담아낸 것이 아니었을까요?




에곤 실레가 남긴 인물화에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자화상도 많았지만, '어머니와 아이'를 그린 그림들도 많이 있어요.


에곤 실레는 어머니와 아이의 모습을 '피에타'에 빗대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피에타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무척이나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슬픔을 뜻한다고 해요. 미술에서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품에 안고 비통에 잠겨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으로 묘사되죠.


미켈란젤로 <피에타>, 1499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피에타라고 하면 단연 위 사진에서 보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입니다. 마리아의 표정과 몸짓이 차분하면서도 고요하게 표현되어 보는 이에게 엄숙함과 경건함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에곤 실레의 피에타는 좀 낯섭니다. 성모 마리아의 얼굴은 해골처럼 움푹 꺼져있고, 예수 그리스도는 여위어 죽은 아이를 연상시켜요.


녹색 천을 두른 어머니의 몸은 배경 속으로 녹아들고 있어 더 불안한 기운을 주고 있죠. 에곤 실레는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에 이런 피에타를 그린 걸까요?


에곤 실레 <어머니와 두 아이 2>, 1915




에곤 실레는 14살 어린 나이에 매독으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여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됩니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의 무감각하고 차가운 태도에 충격을 받았다고 해요.


실레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컸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의 열망과 재능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죠. 어머니는 그가 가장으로서 현실과 타협해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만을 바랐다고 해요. 둘 사이 끊이지 않은 갈등과 그에 이은 불신으로 실레는 큰 결핍을 느끼게 됩니다.


에곤 실레 <어머니와 아이>, 1912


<어머니와 아이>라는 이름의 위 작품도 두 사람의 대조되는 표정에서 불안감과 긴장이 느껴져요. 아이의 겁에 질린 눈과 손짓은 보는 이에게 도움을 구하는 듯한 느낌까지 주고 있죠.


이 작품이 그려진 시기를 주목해 주시겠어요? 에곤 실레가 22살이던 1912년 입니다. 실레의 다른 작품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실레가 어머니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 가졌었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요. 바로 다음 그림에서 살펴볼게요.




에곤 실레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 1912

위에 보이는 친근하고 애틋한 느낌의 소묘도 같은 해인 1912년에 그려졌습니다. 간결한 선으로 단순하게 표현했지만, 어머니와 아이의 표정에서 강한 유대감과 애정이 느껴지는 그림인데요.


에곤 실레가 이 두 그림을 같은 시기에 그렸을지, 아니면 조금의 시차를 두고 그렸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가 느꼈을 복잡한 감정은 여실히 전달되는 것 같아요.


평생 동안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분노의 감정마저 품어왔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어머니와의 이상적인 관계를 간절히 바랐던 게 아닐까요?




마음 한편이 괜스레 먹먹하고 무거워지는 작품이 많은 에곤 실레. 그런데 그가 그린 처절한 그림들을 보고 있자면, 반대로 생에 대한 간절한 의지가 느껴지기도 해요.


에곤 실레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 나무 (겨울 나무)>, 1912


위 그림의 첫인상은 앙상한 겨울 나무가 바람과 싸우며 절망적으로 몸부림치는 모습이죠.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반대로 생을 유지하고 싶은 강렬한 소망이 와닿는 것 같지 않나요?




정체성과 고독에 대한 깊은 사색으로, 관람자로 하여금 내적 탐구를 하기 만드는 것이 실레 작품이 가진 힘이 아닐까 싶은데요.


마음이 어지럽고 복잡할 때는 실레의 그림을 찾아보면서 위로를 얻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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