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플레이 내한

250416

by 솜글

공연을 보면서 '꿈꾸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혼자 꾸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꾸는 꿈.


원래 꿈이라는 게 아무리 좋았다고 해도 깨고 나면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 힘들고, 나조차도 기억이 희미해지기 마련인데 이 꿈은 다르다. 실시간으로, 공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과 함께 꿨기 때문에. 환상적인 연출, 은하수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공연장, 마음을 녹이는 라이브와 신선한 봄바람까지. 말로 다 하지 않아도 서로가 통하는 꿈을 함께 꿨다는 건 근사한 일인 것 같다.



콘서트장 입장과 동시에 팔찌와 종이 고글을 나눠 받았다. 단순하게 생긴 팔찌였는데 내 손목엔 너무 크기도 해서 엇다 쓰는 물건인고.. 약간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콘서트가 시작되고 나서 나는 이 팔찌가 내게 새로운 우주를 보여줄 대단한 물건임을 알게 되었다. 색색의 LED 불빛을 뿜어내는 이 팔찌는 5만 명이 넘는 관객의 손목에 채워져 저마다의 빛을 냈다. 수만 개의 빛이 모여 움직이면서 마치 은하수가 흘러가는 모양을 보여줬다.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에 둘러 싸인 느낌이었다. 별이 아니라면, 자체적으로 빛을 발하는 꽃들의 거대한 화단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사람들이 들뜬 마음으로 팔찌를 채운 팔을 힘껏 흔들 때마다, 나를 둘러싼 은하수와 화단은 열렬히 소용돌이쳤다.


마법을 부리는 팔찌


환상처럼 나타난 은하수


콜드플레이 음악은 도입부가 주는 힘이 강렬하다. 마음을 웅장하게 만드는 Viva La Vida 는 물론, 섬세한 감성을 찌르는 Yellow, 그리고 다른 거의 모든 음악의 도입부에서 사람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나 또한 거의 모든 곡의 도입부에서 온몸에 번지는 소름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쌀 수밖에 없었다. 그 몇 초간의 멜로디만으로도 사람들을 감격시킬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도입부가 그런 힘을 가진다는 건, 아마도 뒤이어질 노래가 더 큰 감동을 줄 거란 걸 미리 예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감동이란, 특히 콜드플레이 콘서트의 경우 큰 부분 '떼창'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실제로 공연 전 유튜브에 콜드플레이를 검색하기만 해도 '최신 기출', '벼락치기' 등의 이름을 달고 있는 셋리스트 족집개 강의가 많았다. 과연 주입식 교육으로 길러진 사람들은 콘서트를 준비하는 방법도 남다르다. 여하튼 나도 이 떼창을 기대한 노래가 많았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떼창을 기대하지 않았던 노래들이 오히려 따라 불렀을 때 더 큰 감동을 주기도 했다. 그건 아마 하나의 또 다른 우주처럼 꾸며진 콘서트장의 연출과 분위기 때문이었을 텐데, Paradise와 My Universe가 특히 그랬다. Paradise는 Pra-Pra-Pradise-하는 부분에서, My Universe는 You-! You are-! My Universe-! 하는 부분에서 정말 우리가 서로의 파라다이스며 우주가 된 느낌을 받아서, 있는 힘껏 떼창에 가담해 전율했다.


떼창만이 아니더라도 Scientist나 Fix you 같은 곡은 라이브를 듣는 자체로 울컥했다. 서정적인 가사가 마음을 쓰다듬고 위안을 주는 기분. 팔찌까지 따스한 색감의 LED로 채워져서 세상이 온통 주황빛 위안의 물결로 가득 찼다. 따라 부르지 않고 가만히 크리스 마틴의 허스키한 음색을 들으며 가사에 감화되는 시간이었다.



사실, 이번 콘서트에서 온 마음이 떨릴 만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A Sky Full of Stars' 때였다. 전주가 흐르고 박자가 점점 빨라지면서 클라이맥스를 목전에 둔 그 순간, 모두가 도약을 준비하며 희열에 찬 그 순간, 모든 음악과 조명이 꺼졌다. 아-- 곧이어 터진 원성의 소리. 3초 정도의 영원 같은 찰나가 지난 후 다시 조명이 켜졌다. 크리스 마틴이 말한다.



자, 이제 다시 음악을 켤 거야. 우리는 전에 없이 더 높게 뛰고, 더 크게 노래 부르고, 더 많이 춤춰야 해. 대신, 이제부터 이것만 지켜줘.


"No Cellphone, No Camera, No Social media"


우리, 지금 여기 있는 우리끼리만 신나게 놀아보자!



무대를 영상으로 남기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실시간으로 지인들과 연락하던 사람들은 하나씩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이제부터는 정말, 우리끼리 단절된 하나의 우주다. 이 우주 안에서 더 신나게 놀아보자. 그 울림이 모두에게 전해져 LED 불빛들은 더없이 힘차게 진동했다. 그건 이제 더 이상 불빛이 아니라 불꽃이었다. 그때, 나는 속에서 솟아나는 환희를 느낀 것 같다. 한 곳에 모여있지만 정신이 여기저기로 분산되어 있는 사람들을, 진실로 한 곳에 함께 존재하고 함께 즐기게 만드는 그 힘. 서로의 존재에 몰입하게 한 그 힘에 감동받았다.



크리스 마틴은 인류에 대한 사랑을, 그 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인 것 같다. 공연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크리스는 관객들에게 두 팔을 높게 들어 이곳에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사랑을 전하자고 했다. 시리아로, 중국으로, 북한으로. “Love is the most powerful thing in the world" 라는 진심 어린 말과 함께. Humanity를 각자의 마음속에 다시 깊이 새겨보자는 의미였다.


나는 물리적으로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공간에서는 있던 인류애도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출퇴근길 서울 지하철을 타본 사람이라면 내 옆에 있는 타인의 존재가 얼마나 성가시며 짜증 나는 것인지 알 것이다. 그런데 딱 그 정반대의 느낌을 콜드플레이 콘서트에서 느꼈다. 사람들이 모였을 때 사랑, 인류애라는 개념이 얼마나 멋진지,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는 힘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하여. 그건 크리스가 말하는 사랑에 내가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Love, The powerful thing in the world


크리스는 공연을 마치면서 모든 관객과 인사했다. 한 명 한 명 인사를 건네고 싶지만, 정말 그렇게 하면 한 나절이 걸릴 테니 랜덤으로 인사하겠다고. 곧이어 하나둘, 전광판에 얼굴이 떠올랐다. 크리스는 그들에게, My beautiful brother/sister 라 부르며 감미로운 노래를 불러줬다. 콘서트에 와준 최고의 관객에게 그가 건네는 보답이었다. 그렇게 우리가 함께 한 봄날의 꿈은 끝을 맺었다. 낙화마저 다 사라지고 난 후에야 봄이었다는 걸 깨닫는 게 사람이라던데, 콜드플레이 공연에서는 모두가 미리 알았을 것이다. 우리가 바로 봄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덧붙이는 말) 콜드플레이 공연에서 특이한 점은 앵콜을 부를 때 다른 콘서트와 마찬가지로 그저 앵콜! 앵콜!을 외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대신 모두가 한마음으로 Viva La Vida의 후렴구인 오오-오-오오- 를 합창한다. 한차례 앵콜을 거친 후 공연이 끝나고도 한참을 공연장에 남아 오오-오-오오 를 외치는 관객이 꽤나 많았는데, 끝났다는 걸 알면서도 그 여운이 너무 길어서 하릴없이 외친 게 아닌가 싶다. 무튼 그 소리는 들을수록 뭔가 귀엽고 애처롭기까지 했다.


참, 팔찌와 함께 나눠 받은 종이 안경은 모든 빛을 무지갯빛 눈송이로 만들어주는 마술 안경이었다. 이름은 문고글인데, 쓰는 순간 콜드플레이의 우주에 초대받은 느낌.


문고글이 만드는 무지갯빛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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