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여행기-3

by 솜글
둘째 날 3월 2일 일요일-2


오늘의 첫 관광지는 서태후가 사랑한 여름 별궁 이화원이다. 이동수단은 역시나 디디택시. 택시를 타고 가던 중에 티브이에서만 보던 천안문 광장을 지났다. 여행을 오기 전까지는 사실 천안문이 자금성을 둘러싸고 있는 문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우리나라로 치면 광화문과 경복궁의 관계인 샘이다. 천안문 광장은 중국의 상징과도 같아서 여러 매체에서 자주 접했기 때문에 크게 낯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익숙함을 느낌과 동시에 왠지 모를 위화감도 느껴졌는데, 이는 천안문 광장의 압도적인 크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광화문 광장과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규모가 비교할 수 없게 커서, 짧게 스쳐가는 그 순간에 현실성이 달아난 듯 느껴졌다. 역시 중국은 뭐든 규모에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다.


택시 안에서 깜빡 잠들었다 눈을 뜨니 이화원 북문에 도착해 있다. 보통 관광객들은 동문으로 입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우리는 북문으로 들어가 동문으로 빠져나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북문으로 입장하면 초반부터 등산로를 연상케 하는 계단과 오르막이 터줏대감처럼 등장한다. 날씨가 쌀쌀했던 터라 오히려 몸을 움직여 열을 내고 싶었던 나는 오히려 오르막이 반가웠다. 그러나 걷다 보니 역시나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 건 이화원의 크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화원은 서울 여의도 크기와 맞먹는다고 한다. 이화원의 하이라이트는 쿤밍호수인데, 이 호수는 이화원 전체 면적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크다. 구글지도만 열어봐도 한눈에 찾아낼 수 있는 호수다.


쿤밍호수와 그 주변 산책로


이 쿤밍호수는 비밀을 품고 있다. 바로 사람이 직접 땅을 파서 만들어낸 인공호수라는 점이다. 심지어 파낸 흙으로는 호수 뒤쪽에 인공 산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자연까지도 마음대로 창조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과 광기가 느껴졌다. 어쨌거나 나는 관광객에 불과하니 그런 건 별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규모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측면에서는 미국도 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이 두 놀라움은 결이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랜드캐년이나 오대호 중 하나인 미시간호수를 갔을 때 느꼈던 압도감은 분명, 축복받은 대자연에서 오는 경외감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반면에 중국은 인간 손으로 직접 만들어낸 그 거대한 문명들에 놀라게 되는 것이다. 인구가 워낙 많다 보니 자연히 규모의 경제라는 법칙에 따라 이 거대한 문명 속에 살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리장성이나 쿤밍호수 같은 경우 막강한 권력의 힘이 더 크게 작용했겠지만.


그래도 황실 정원이다 보니 탁 트인 공간에서 상쾌하게 산책할 수 있었다. 이화원 내부에는 중국식 먹거리를 판매하는 작은 가게도 있고,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도 있었다. 외국인보다는 자국민들이 더 많이 보이는 게 다소 특이하게 느껴졌다. 중국식 전통의상을 입고 돌아다니는 젊은 중국 여자들이 꽤 많이 있었는데, 대부분 더없이 화려한 의상에 새하얀 분칠을 하고 있었다는 게 특징이다. 우리나라는 인사동 근처를 돌아다니다 보면 외국인들이 한복 체험을 많이 하는데 이화원에서는 자국민들이 오히려 그런 체험에 열려있는 듯했다. 뭐가 어찌 됐든 자기네 나라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체험하는 건 좋은 것 같다. 그 문화라는 게 너무 세속적으로 퇴색되었다거나 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이화원 초입에서 찍은 인증샷, 이때부터 오르막이 시작된다.


관광객이 몰려 있는 동문에서 이화원과 작별한다. 이화원이 여름별궁 Summer Palace이기 때문에 겨울에는 추천하지 않는다는 글을 봤었는데, 여름에 얼마나 싱그러운 생기가 더해질지는 모르겠으나 겨울에 가도 전반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관광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목적지는 중국 스러운 고풍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전문대가(치엔먼). 여행 내내 디디택시를 타고 다녔으니 이번에는 지하철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베이징에서는 지하철역을 드나들 때마다 보안검색을 한다. 우리가 방문한 시기에 인민대회(?) 비슷한 큰 행사가 있어 시내 곳곳이 통제되어 있다 보니 지하철 출구를 통해야 할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가방 검색을 받으니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전문대가로 향하는 길에 지하철을 이용한 것은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사람 구경이 너무 재미있어서'이다. 지하철 승강장이나 열차 내부 구조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를 게 없었는데, 10개 정도의 정류장을 지나면서 꽤나 당황스러운 광경을 몇 가지 목격했다.


하나,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잽싸게 뛰어 순식간에 세 개의 자리를 차지하고 부모님을 기다리던 아이. 중국의 어린아이들은 약간 까무잡잡한 얼굴에 통실 부풀어 오른 볼, 거기에 봉숭아 물 퍼져 들어가듯 자리 잡은 홍조가 돋보이는데 그 아이도 딱 그런 얼굴이었다. 그런 귀염진 외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5-60대 억센 아주머니가 지하철 빈자리에 가방을 던지듯 제 몸을 던지며 열차로 들어오는 아이를 보며, 저런 게 바로 중국식 조기교육의 힘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갔을 때는 파이브가이즈 앞에서 그 기름지고 헤비한 버거를 아이 혼자 다 먹어치우는 것을 보면서 저게 미국식 조기교육인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방금 본 광경은 중국 버전의 조기교육이었던 것이다. 13억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에서 생존하려면 저 정도 억척스러움은 아이 때부터 익혀야 하나. 그럼 우리나라 버전 조기교육은 뭘까? 재미난 생각을 하게 되는 모습이었다.


둘, 많이 쳐봤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몸집 작은 여학생 둘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세 자리에 걸쳐 두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은 것. 보통 지하철에서는 앉고 싶어 하는 사람 수에 비해 자리가 귀하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 여러 가지 종류의 상호작용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자리가 비었을 때 좌우 옆 사람과 눈치싸움을 벌인다거나, 나보다 지하철 이용이 힘들 것 같은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배려심을 발휘한다거나 하는 ... 서울 지하철 출퇴근 N년차라면 본연적으로 몸과 마음에 장착하게 되는 마인드이다. 둘이서 세 개의 자리에 걸쳐 앉은 이후에 서서 가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져도 한 자리를 기어코 내어주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공공장소에서 배려심을 저토록 아끼는 모습이 미워 보였다. 어쩌면 내 안에 쌓인 지옥철 스트레스가 옮겨 붙은지도 모르지만, 저런 것이 타인에 대한 배려를 충분히 가르치지 않는 중국식 교육의 허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재미있는 중국 사람 구경으로 비교적 알차게 이동해 도착한 전문대가. 이곳도 중국의 다른 그 무엇과 마찬가지로 '생각보다' 긴 대로라 한번 둘러보고 오기에 예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전문대가의 건물들은 청나라 말기 양식으로 지어져 예상대로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곳곳에 묻어났다. 전문대가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가게들이 줄 늘어져 있었다는 것인데, 가장 기억에 남는 상점은 '빗' 전문 가게였다. 올리브영 같은 대형 체인 드러그스토어에 익숙해져 버린 나에게 그토록 우직한 빗 전문 가게는 터무니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가는 것이었다. 또, 우리가 도착하기 며칠 전 일루미네이션 축제를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거리를 지나는 머리 위로 중국 전통 문양의 조명이 걸려 있어서 더욱 풍취가 좋았다.


전문대가 입구와 중국 전통 일루미네이션 장식


잡화점 가득한 전문대가에서 발견한 색색의 마그넷


전문대가를 돌아 나오는 길에 찍은 인증샷


전문대가를 거니는 사람들을 스치다 보니 눈에 띄는 또 하나는 사람들 손에 들린 '차지티 Chagee tea'. 헤이티에 버금가는 유명 찻집으로, 컵이나 종이가방의 패키징이 명품 브랜드 디올의 시그니처 디자인과 비슷한 게 특징이다. 감사하게도 이번에는 우리집 중국인이 메뉴를 미리 골라온 관계로, 헤이티와는 다르게 쉽게 주문할 수 있었다. 주문한 메뉴는 쟈스민 향이 나는 밀크티였는데, 보통의 밀크티보다는 가볍게 넘어가면서 은은한 쟈스민 향이 먹는 내내 입안을 감도는 기분 좋은 티였다.


디올 디자인을 닮은 차지티. 쟈스민 향이 좋았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자 서둘러 왕푸징으로 다시 돌아간다. 왕푸징에서 만난 이번 여행 최고 맛집에 더해 베이징에서 즐겼던 나이트 라이프 Night Life는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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