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대체되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나는 하루 종일 책상에 그냥 앉아 있었다. 정말로 화분처럼 그냥 앉아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고,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여기는 어디일까? 이런 철학적인 질문도 스스로에게 던져봤고... 회사는 도대체 나를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혹시 달력이나 옷걸이 같은 것을 뽑으려 했는데 잘못해서 내가 뽑히게 된 것은 아닌지...
“여긴 그냥 자리를 지키는 게 주 업무야. 생각하기에 따라선 그냥 자리를 지키는 것도 꽤나 고된 노동이지.”
실제로 그랬다. 여기는 그냥 자리를 꾸준히 지키는 게 주 업무다. 과장도 그 일을 하고 있고, 계장도 그 일을 하고 있고, 대리도 그 일을 하고 있다. 즉! 모두 자리를 지키는 일을 한다. 그리고 자리를 지키면 월급이 나온다.
솔직히 조금 맥 빠지는 기분이었다.
견뎠다. 밤나무와 벚나무와 단풍나무가 사이좋게 한 그루씩 피어 있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육 개월 내내 창밖을 바라보며 그 시간들을 견뎠다. 아니다. 견딘 것이 아니라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시간들이 그냥 지나갔을 뿐이다. 어떤 날은 길 건너편 붕어빵장수 부부가 하루 종일 붕어빵을 몇 개나 파는 지 세어 본 적도 있었다.
“하루 종일 칠백 쉰 두 봉지! 우와, 부자 되겠군.”
그리고 왠지 모르게 늦가을의 비쩍 마른 옥수수 대처럼 내 속은 텅 비어갔다. 세상은 전쟁이라는데 내 인생이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해도 되는 것일까.
그맘때쯤 가끔 불안이 엄습했다. 이렇게 살면 안 되지 않나? 달려온 세월이 있는데, 남들보다 더 빨리 달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남들이 뛸 때 대충 같이 뛰고 같이 고통 받았는데. 무엇보다 나는 심심했다. 술자리에 가면 친구들은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하고 빈정댔다. 맞는 말이다. 나는 상상임신을 한 것처럼 자꾸 헛배가 불러왔고, 나태와 굴욕과 아무 생각 없는 날들과 무엇이든 귀찮아지는 병이 스멀스멀 기어들어와 나의 뱃속을 채웠다.
이건 아닌데. 정말 열심히 살고 싶었는데.
<캐비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