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계속해왔다.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이유는 용돈도 있지만 더 큰 목적은 인간관계였다. 너무 내향적이고 소심한 성격이라서 사람을 상대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이런 상태로는 제대로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앞으로 대학도 잘 다니고 회사에 취업하려면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기 때문에 사람 대하는 것을 연습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해보자고 다짐했다.
첫 아르바이트 '캐셔'
2011 (1개월)
20살에 마트 캐셔로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중학교 친구의 소개였다. 주말 저녁 6시에서 11시까지, 하루에 5시간을 일 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녁 6시에 시작하지만 아르바이트를 가야 한다는 생각에 일 하지 않는 아침부터 일 생각을 하느라 하루를 온전히 보낼 수 없었다. 또한 월요일 아침 9시에 수업이 있었고 대학까지는 편도 2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평일에는 새벽 5시 30분 정도에 기상을 해야 했다. 학업에 지장을 주었다. 그렇게 약 1달 정도 짧게 하고 그만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계산하면서 어떤 할아버지가 '공부를 안 하니까 이런 일이나 하고 있지'라고 한 말이었다. 물론 대꾸는 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내가 공부를 하면서 일을 하는지 본인이 어떻게 안다고 함부로 말하냐고, 저런 개념 없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었다. 나이를 먹는다고 정신적으로 성숙한 것은 아니었다.
두 번째 아르바이트 '파리바게뜨'
2011 (6개월)
파리바게뜨에서는 6개월 정도 일했다. 이번에는 직접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찾아서 지원한 곳이었다. 이전 경험으로 주말 저녁 알바는 월요일 수업에 너무 피해를 끼친다고 생각되어서 오전으로 구하기로 했다. 시간은 주말 아침 7시부터 오후 1~2시였다. 업무는 주방 보조였다. 제방 기사님을 도와서 튀김빵, 초콜릿 데코, 크림 채우기 등과 같이 간단한 빵을 만들고 철판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일 자체는 무언가 만드는 일이어서 처음에는 조금 재밌었던 것 같다. 당연히 매장에서 빵을 판매하는 일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주방에서 일하는 것이 특이해 보이기도 했다. 하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다만 아르바이트가 아침 7시에 시작했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거의 5시 30분에 기상을 해야 했다. 아마 기억상으로 이 시기에 시간표를 잘못 짜서 주 5일이 9시 수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최악의 수강 신청을 했던 것 같다.
파리바게뜨에서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제빵 기사님이었다. 24살이었는데 조금 양아치 같은 사람이었다. 매번 클럽 간 이야기를 하고 사장님 뒷담화를 했다. 듣고 싶지 않았지만,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언제 한번은 케이크를 만들면서 자기 손가락으로 생크림을 찍더니 먹어보라고 했다. 어떤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불쾌했다. 물론 먹지 않았다. 또 한 번은 홀에서 알바를 하는 학생과 사귀고 있다고 했다.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계속 말을 해서 듣게 되었고 속으로 그 친구는 왜 아저씨와 사귀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20살에게 24살이 아저씨처럼 느껴졌던 것이 지금은 조금 충격이다. 그런데 기사님이 조금 나이 들어 보이기는 했다. 여하튼 제빵 기사님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언제 그만둘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사장님이 다른 분에게 가게를 넘긴다고 하셨고, 좋은 기회다 싶어서 같이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하고 두 번째 알바를 종료했다.
세 번째 아르바이트 '뚜레쥬르'
2012-2014 (2년 6개월)
경쟁사로 넘어갔다. 2년 6개월로 가장 오래 일한 곳이다. 일하기 싫어서 파리바게뜨를 그만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또 다른 친구가 소개 시켜 준 뚜레쥬르에 바로 출근했다. 여기는 사장님도 그럭저럭 괜찮아서 오래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시간표를 잘못 짠 이후에 되도록 수요일 공강으로 시간표를 구성했는데, 공강이었던 1일을 포함하여 주말까지 일주일에 3일을 나갔다. 사정을 많이 봐주셔서 졸업까지 계속 일할 생각이었지만 사장님이 다른 사업을 시작하신다고 가게를 팔면서 그만두었다. 같은 자리에 이디야가 들어왔고 사장님이 이디야 사장님에게 나를 추천해주었지만 사정이 있어서 소개 자리에 나가지는 못했다.
과거에 종종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뚜레쥬르 아르바이트에 관한 내용도 올린 적이 있다. 지금 보면 굉장히 창피하지만 나름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많이 받았던 글이었다. 과거의 글을 보는 것은 오글거리면서도 그 당시의 나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뚜레쥬르에서 기억나는 것들을 적어보자면
어떤 할아버지가 빵 하나를 가리키며 빵 이름을 물어보셨다. '슈크림빵'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왜 한국에서 영어를 쓰냐며 화를 내셨다. 그때는 기분이 나빴지만 종종 생각하면 어이없어서 웃기기도 한 경험이다.
어떤 아저씨가 빵 1개를 고르시며 5만 원을 내셨다. 만 원권이 부족해서 잠깐 포스기 아래쪽에 5만 원권을 내려놓고 좌측 서랍에서 만 원권을 가져왔다. 그런데 포스기 근처에 두었던 5만 원이 없어졌다. 뭔가 싸한 느낌은 있었지만 다짜고짜 손님을 의심할 수 없어서 결국 잔돈까지 거슬러드렸다. 사장님이 돌아오시고 말씀을 드렸는데 CCTV를 보니 잠깐 서랍으로 갔을 때 그 아저씨가 손을 뻗어서 포스기 옆에 있던 5만 원을 훔쳐 간 것이었다. 빵도 주고 48,000원도 빼앗겼다. 이 돈은 나의 월급에서 깎였다...
손님이 고른 케이크를 꺼내면서 엄지손가락으로 케이크를 찍어버렸다.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서 너무 당황했다. 사장님도 안 계셔서 속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손님이 그냥 달라고 해서 멋진 손님이라고 생각을 하고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드렸다.
손님이 케이크를 선물해주셨다.
크리스마스에 케이크가 많이 남아서 집에서 케이크 파티를 했던 적도 있다.
어제 팔다 남은 빵은 다음 날 아침에 여러 개를 묶어서 싸게 판매하곤 한다. 아침에 어떤 손님이 이 빵은 언제 만든거냐고 물어봐서 어제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사장님한테 혼이 났다. 최대한 만든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고객을 속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해서 사장님이 안 계실 때는 그냥 똑같이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좋았던 기억도 있고 나빴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다 추억인 것 같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딱 인생을 두고 하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
네 번째 '국가근로'
2015 (6개월)
뚜레쥬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앞으로는 어떻게 용돈을 벌까 고민했다. 그러다 운이 좋게 4학년 2학기에 학교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선정되었다. 그 당시에 최저 시급이 4,86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국가 근로는 시급이 8,500원이었다.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었다. 뚜레쥬르 사장님이 이디야 사장님에게 나를 소개해주는 자리에 나가지 않은 것을 종종 후회했는데 오히려 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일은 더 여유롭고 돈은 더 벌 수 있는 최상의 아르바이트였다.
물론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다. 특이한 성격으로 자주 트러블을 일으키는 학생이 있어서 다른 부서의 관장님과 싸우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고, 그 관장님이 우리 부서의 근로 생들을 모두 부정적으로 대하기도 했다. 역시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항상 행복하고 좋기만 한 그런 삶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많지 않았고 남는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말 좋은 근로 환경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책 정리를 하면서 종종 이끌리는 책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무래도 환경이 도서관이었기 때문에 다른 근로 생들과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다. 서로 인상 깊었던 책을 추천해주었던 경험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나름 성실하게 일을 했기 때문에 우리 부서 관장님의 추천으로 졸업하자마자 다른 부서의 계약직으로 바로 취업을 할 수도 있었다.
휴식이 필요할까?
2022
생각해보니 20살에 시작한 아르바이트를 포함하면 31살인 지금까지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다. 대학생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고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다. 첫 취업 후에는 일을 하면서 학원에 다녔고 1년 계약을 종료하고서도 학원에 다니며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약 4개월간 취업 준비 후 입사하여 지금까지 계속 일하고 있다. 1학기 휴학과 4개월 취업 준비 과정을 빼면 계속 뭔가를 하고 있었다.
퇴사하고 싶은 이유도 너무 생각 없이 일만 하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고민이 돼서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인생 무의미 기간이 있다. 이 기간에는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고 일은 왜 하는 것인지 의문이 머릿속을 꽉 채우며 무기력해진다. 평생 이런 삶을 반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우울해진다. 인간은 노동을 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일까. 막연한 불안과 갑갑함에 사로잡힌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또 현실 안주를 하게 된다. 무한 반복이다.
1~2년 정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나'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 책에 파묻혀 살아보고 싶기도 하다. 휴식의 목적은 흔들리지 않은 삶의 목표와 철학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1~2년 동안 책만 읽는다고 해서 철학을 가질 수 있을지 걱정은 된다. 결국 답을 발견하지 못하고 다시 회사에 취업하는 결과만 낳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또 고민되는 것은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아서다. 동생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까지 불안정한 생활을 한다면 걱정이 배가 될 것 같았다. 꼭 직장 생활해야만 잘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직장 생활을 오래 하는 것이 삶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당연히 회사에 다녀야만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프리랜서도 있으니까. 하지만 퇴사를 한다고 돈을 바로 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나에 대하여 고민하고 책을 읽는 시간은 돈을 쓰는 시간이 될 것이었다. 아직은 여러모로 어떻게 살지에 대해서 고민이 많은 시기다. 하지만 알고 있다. 계속 방황하는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진지하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