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민 Jan 23. 2018

상근예비역 소집

귀하는 상근예비역소집대상자로 선발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왜 통일은 되지 않았을까

지금 20대 언저리에 있는 남자라면 어릴 적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난 초등학생 때 내가 군대에 갈때 쯤이면 통일이 되어서 군대 갈 일이 없을 줄 알았다. 모병과 징병같은건 하나도 몰랐던 어린 시절이었다. 나와 11살 차이가 나는 형이 카투사로 군입대를 했을 때, 나는 저런 경험을 하지 않을 거라고 이유모를 확신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칠 때까지 통일은 커녕 남북관계는 점차 악화되어갔다. 나름 정치외교학과 진학을 준비했던 사람이라 통일 문제에 대한 여러 입장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게 현실로 닥쳐온 것은 군대였다. 이성적으로 통일은 되야한다 안되야한다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제 곧 게임에서만 보던 M16과 K2를 손에 쥐어볼 기회를 (강제로)얻게 생겼으니까.


모든 것의 시작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은 무럭 무럭 자라서 고등학교를 갔다. 고등학교에서 갑자기 야구에 빠져서 쉬는 시간에도 캐치볼을 하고 놀면서 끝끝내 수학을 잡지 못하더니, 남들처럼 대학교로 가지 못하고 휘문고 앞의 녹색 빌딩으로 갔다.


강남종로학원이었다.

이때만 해도 군대와 연관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던 종로학원

나는 그곳에서 8개월 반 정도의 재수를 했다. 솔직히 말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또 솔직히 말해, 매우 나빴던 경험이었다. 나는 이 모든게 나의 군대생활을 뒤바꿔놓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재수를 마친 11월이 지나고 12월이 왔다. 별다른 사고 없이 수능은 끝났다. 내가 원하는 점수는 나오지 않았지만, 내가 노력한 것만큼 나왔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나쁘지 않은 수능점수를 손에 쥐었다. 수시논술은 모두 끝났고, 지방고 출신이면서 넝마짝같던 내신을 가지고 있었던 내게 학생부 전형의 길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이제 기다리는 일이었다. 진*사와 중***이에 원서비로 20만원을 쥐어주고 나서야 나는 평화로운 '무직 백수'가 됐다(재수생은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아니라서 사고나면 19세, 무직으로 찍힐 거라는, 종로학원에서 선생님들이 매일 농으로 하던 이야기였다). 20대 초반, 수능끝난 무직백수 남자 수험생. 그에 걸맞게 놀아보기로 했다. 거의 하루 종일 컴퓨터에 앉아 게임도 찔끔, 영화도 찔끔, 드라마도 찔끔. 고등학교를 다닐 땐 시간이 없어 보지 못했던 책은 내팽개쳤다. 방탕하지만, 나쁘지 않은 점수를 받아온 수능 후 수험생은 내 인생에 가장 큰 면죄부였다.


상근소집

그러던 어느 날, 여느날과 같이 부모님은 모두 출근하시고 나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오늘은 같이 놀 친구도 없는데 무얼 해야하나 고민하면서 게임에 열중이었던 날이었다. 누군가 현관 벨을 눌렀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귀찮아서 나가지를 않았다. 애초에 우리 집에 부모님에게도, 나에게도 미리 말하지 않고 깜짝 방문할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왠일인지, 벨을 누르는 정체불명의 방문객은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택배였으면 대충 경비실에 맡기고 갔을테고, 전도라면 다음 집으로 넘어갔을거고, 요즘 시대에 방판이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그렇담 지금 저건 누구람?


이젠 호기심이었다. 호기심에 나가 본 문 앞에는 우체부 아저씨가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을 짓고 계셨다. 내가 안에 있는걸 아셨던건지, 아니면 다음날 다시 와야하는 등기우편이어서였는지,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우체부 아저씨들의 평균적인 친절함 이상의 미소를 지으시면서 내 싸인을 받아가셨다. 아, 생각해보면 내가 받아든 그 우편물은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물론 그분이 군대를 다녀오셨는지, 다녀오셨다면 어떻게 다녀오셨는지 나는 모른다) 누구나 그렇게 대해줄지도 모르겠다.


그 우편물은 병무청에서 온 통지서였다.


귀하는 병역법 제21조 및 같은법시행령 제32조의 규정에 의거 상근예비역 소집대상자로 선발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병역법 제 21조는 "상근예비역(常勤豫備役)소집은 징집에 의하여 상근예비역소집 대상으로 입영하여 1년의 기간 내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현역 복무기간을 마치고 예비역에 편입된 사람과 제65조제3항에 따라 예비역에 편입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라는 내용이었다. 간단무식하게 말하자면 집에서 출퇴근하는 군인. 슬슬 군대 걱정을 해야했던 내게는 갑작스레 찾아온 행운이었다. 


본래 상근예비역 선발은 결혼해서 자녀가 있는 사람과 수형자, 가계형편곤란인 사람이 우선순위가 가장 높고 그 다음부터 최종학력, 최종학력 내에서 신체등급 3등급-2등급-1등급 순으로 우선순위가 돌아갔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었는데(사실여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내가 있었던 부대는 상근예비역 수요조사에서 실제 규정 수요보다 더 많은 상근예비역을 요청했었던 것 같다(근데 내가 복무하는 동안 인사계원이었던 동기를 통해서 들었을 때, 단 한 번도 이런 수요조사를 한 적은 없었다. 단순 루머였을지도 모른다). 여튼간에 반은 농촌이었던 내 고향에서는 고졸 3급이면 거진 상근예비역으로 선발되었고, 대학생이었던 형 한 명도 상근으로 선발되어 입대하기까지 했다.


그렇담 나는? 언젠가 옛날에 운영했던 블로그에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나는 신체검사를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대학교 1학년, 나로는 재수를 했던 해에 받았다. 2번이나 떨어진 K대 논술고사가 있었던 날,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지우개를 잃어버려서 정말 난장판으로 시험을 망쳤는데,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난 적당한 면죄부를 손에 쥐고 있었으니까.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오던 날, 병무청에 들러 신체검사를 받았다. 당연히, 종로학원 선생님들 말대로였다. 난 그 때까지 "고졸 무직"이었다.


그렇게, 나는 상근예비역에 선발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