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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민 Apr 28. 2018

총이 너희 몸값보다 비싸다

"신성한 국가의 부름"이라던 군대가 내게 매긴 몸값, 단돈 70만원

상근예비역으로 생활했던 짧은 군대 이야기를 브런치에 글로 풀어쓰면서, 신교대 이야기를 써야할 차례가 오니 아득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신교대에서 군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 편이었다. 원래 몸 쓰는 데에 약했고, 외향적인 성격도 아니었다. 나의 신교대 생활을 종합적으로 점수화하자면 하위 20% 안에 속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 모든 기억은, 사실 지금에 와서 말하건대, 나쁘지 않았다. 지 기분 나쁘면 생활관에 와서 관물대를 모조리 갈아엎었던 분노조절장애 조교부터 3분전에 자기가 이야기해놓고 그걸 그대로 하고 있는 훈련병들에게 소리를 꽥꽥 지르며 불같이 화를 내던 기억력장애 조교까지 정말 어이없는 인사들이 그렇게도 많은 곳은 처음이었으나, 그 모두 참을만했다.




그러나 내가 아직까지 잊지 못한 한 명의 교관이 있다. 우리 교육대에서 사격과 총기의 분해·결합을 가르치던 부사관이었다. 그와도 많은 일이 있었는데, 내가 그를 끔찍이도 싫어하게 된 것은 그가 총기분해결합을 가르치던 시간에 “총기는 너희들의 몸값보다 비싸다”는 소리를 거침없이 내뱉은 순간부터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분해결합 과제는 주어진 시간동안 K2 소총을 노리쇠뭉치와 손잡이 부분까지 완전히 분해했다가 다시 완전히 조립하는 거였다. 거의 대부분의 훈련병이 실패했다. 당시 우리가 했던 많은 훈련과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시범, 최소한의 설명, 최대한의 갈굼, 최대한의 욕설, 최대한의 인격모독”이 함께한 훈련이었다. 교관이 딱 한 번 설명하고 조교가 딱 한 번 시범을 보였다. 총기가 분해가 된다는 사실도 몰랐던 훈련병들에게는 과한 과제였다. 나또한 여지없이 실패했다.


수많은 실패가 재연되었다. 재연은 무수했으나 양상은 가지각색이었다. 교관의 얼굴은 굳어져갔다. 그러던 차에 한 훈련병의 그의 눈에 걸려들었다. 교관과 조교가 시간이 다 되어간다고 말하자, 그 훈련병은 지나치게 당황해서는 어버버버하면서 노리쇠뭉치를 거꾸로 집어넣으려 했다. 들어갈리 없었고 들어가서도 안됐다. 화가 있는대로 난 교관은 세상에 사람 목소리가 이렇게까지 낮아질 수 있단 말야, 싶을 정도로 내리깐 목소리로 “반대”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당황한 훈련병은 그 반대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다.


사람이 앉아있어야 할 의자가 그 훈련병의 얼굴을 덮친 것은 그 순간이었다. 가볍기 짝이 없는 취사장의 플라스틱 의자였다. 훈련병을 다치게 하기엔 한참이나 부족했다. 그러나 교관이 던진 그 의자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첫째, 이 교관은 자신의 분노를 전혀 참지 않고 있거나, 과시적으로 보이고 있었다. 둘째, 이 교관은 훈련병을 사람취급하지 않았다.


의자를 냅다 집어던진 교관은 교관, 이라는 두 글자가 투박하게 쳐진 자신의 검은 모자로 그 훈련병의 머리를 거듭 내리쳤다. 敎官. 그가 하고 있는 이 모든 것은 정말로 교육일까. 교관이란 글자가 이상하리만치 섬뜩했다. 그의 모자 역시 훈련병을 다치게 하기엔 아득히도 부족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깊은 공포감을 심어주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화룡점정처럼 교관의 한 마디, “총기는 너희들 몸값보다 비싸다.” 이 한마디는 우리의 남은 군생활을 예견하게 하는 한 마디였다. 우리는 무기고에서 기름칠된 몸을 눕히고 있는 K2 소총 한 정만도 못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대충 한 정에 70만원 정도라고 한다. 우리는 70만원도 못했다. 70만원 이하, 그것이 우리에게 가차없이 매겨진 몸값이었다. 국가의 부름이라 포장되었던 군대가 우리에게 직접 매긴 것이었다.




오래전, 브런치에 한창 글을 쓰면서 제일 먼저 떠올렸던 주제는 여자는 누구나 싫어한다는 그 이야기, 남자는 누구나 하고 싶어한다던 그 이야기, 군대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군생활을 굉장히 편하게 한 축이었습니다. 저는 상근예비역으로 군복무를 마쳤고, 저희 지역은 전체 자원이 (정확히 밝히면 안될 것 같으니 밝히진 않겠지만) 다른 곳보다 굉장히 많은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직장예비군도 많지 않았고 특별한 자원도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부대에서 대대상근 생활을 했습니다. 거기서 많은걸 봤습니다. 우리의 주적은 간부, 라고 농 삼아 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의 근간. 병사와 간부들의,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뭐라고, 싶었던 자존심 싸움들. 향방상근과 대대상근의 이질감(이건 거의 계급이었습니다). 대대에선 현역과 상근 사이의 싸움. 한 현역이 뱉었던, "씨*, 상근 새*들이 뭔데"라는 말을 눈 앞에서 들어야만 했던 일들. 군인은 사람도 아니고 상근은 그 군인도 되지 못했던 이야기들.


상근은 상근 나름의 고충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현역 전역을 한 친구들 앞에서 상근으로서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건, 잠깐이나마 현역과 차별 없는 대우를 받으며 생활했던 신병교육대가, 제겐 너무나도 지옥같았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역들은 물론이고 상근들도, 신병교육대가 가장 재밌었다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저는 적응도 잘 하지 못했고 오히려 상근으로 대대 전입 이후에 훨씬 더 잘 적응한 편이었어서, 저는 현역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지, 사실 공감대가 훨씬 큽니다.


이 이야기는 제 수난과 고통의 38일, 신병교육대 생활 중 가장 인상깊었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저 때, 이들과 저는 절대 융화될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제가 정말 싫어했던 두 명의 교관 중 한 명이 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저랬던 상황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요. 


저 일이 있었던 모 사단의 신병교육대는, 이후 신병교육대장이 바뀌고 나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합니다. 다른 곳들도 그렇게 잘 변하고 있을까요. 그렇길 바라보며, 신병교육대 편은 이 한 편의 글과 덧붙일 또 한 편으로 갈음합니다. 그 이유는, 제가 이 이야기를 쓸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겐 너무 끔찍한 곳이었고 끔찍했던 기간이었고 다시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억입니다. 자대생활 중 1년과 신병교육대 1개월 중 어떤걸 택하겠냐고 하면, 전 정말 거짓없이 자대 생활 1년을 고를 의향도 있습니다.


그러니, 두 편 정도로 적당히 마무리하고, 제겐 그래도 꽤 좋았던 자대 생활 이야기로 넘어가볼게요! (찡긋-*) 거기서도 온갖 부당한 일과 어이없는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겠지만, 에이, 그래도, 이 지옥같았던 신병교육대보단 훨씬 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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