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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민 Jul 06. 2018

소민, 넌 대대상근이야

험난했던 대대상근 이등병 이야기 01 - 자대전입

대대상근과 향방상근

상근예비역은 본인들의 업무지에 따라 향방상근과 대대상근으로 다시 구분된다. 공식적인 구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단 지침 등에도 대대상근과 향방상근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으로 봐서 일반화된 명칭인 것으 확실하다. 물론 그 안에서도 나름의 보직에 따라 경계상근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하는 구분이 복잡하다. 상근예비역의 주요 업무는 예비군 관리 업무이고, 사실 그 핵은 "향방상근"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 많은 대대는 필요 이상의 상근예비역을 데리고 있고, 그러한 상근예비역 자원을 대대에서 사용하는 것이 대대상근, 즉 대대에 잔류하는 상근예비역이다.


선발 절차는 대개 단순하다. 나 때도 그랬고, 나 이후로도 그랬고, 아마도 나 이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인사과에서 상근예비역을 인솔해서 데려오면, 간부들이 생지부와 몇 가지 자료를 가지고 연필로 보직을 결정해 넣는다. 일종의 '낙인'같은 글자 몇 자가 상근예비역의 1년 반을 결정짓는다. 그래봤자 상근 아니냐고? 맞다. 그래봤자 상근이다. 대대에 남아도 퇴근하는 게 상근이고, 향방으로 가도 퇴근하는 게 상근이지 그럼. 그럼에도 모두들 향방을 꿈꾼다. 이유는 간단하다. 향방만 가면 공익 뺨치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리고, 나의 자대전입

나도 마찬가지였다. 향방상근과 대대상근의 구분은 대개 '학벌'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학벌이라 함은 서고연서성한... 하고 이어지는 그 학벌이 아니라, 대개는 대학 재학인가 전문대 재학인가 그것도 아니면 고졸인가로 나뉘어졌다. 입대하는 상근예비역 지원의 절대 다수가 고졸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면 나름 훌륭한 기준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단순한 논리다. 대학을 갔으니 행정업무를 좀 더 잘 볼 것이고, 넌 대학을 가지 않았으니 행정에는 맞지 않겠구나, 라는 이야기. 참으로 단순하고, 참으로 '군대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확률적으론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경험해본 바로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였다. 동원과에서 숱한 향방상근들을 겪었다. 사실 일 잘하는 향방상근은 별로 겪어본 적도 없었다. 오히려 하루 하루 일에 빠져사는 대대 행정병들과 행정 업무를 보던 상근들이 평균적으로는 훨씬 괜찮았다. 함께 일하기도 좋았고, 더 유능하기도 했다. 솔직히 향방상근의 선발 기준에는 아직도 의문이 남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나쁘지 않은 대학을 재학 중이었음에도 대대 상근예비역에 배정됐다.


"넌 대대에 남아"

솔직히 고백한다. 나쁘지 않은 대학을 열심히 다녔다. 재수를 하면서 힘들게 들어간 대학이었다. 이 정도면 꿇리지 않고 향방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아뿔사. 내가 어떤 말을 해보기도 전에 이미 내 생지부 위에는 '동원'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동원과 행정병, 즉 대대상근으로 잔류하라는 이야기였다. 군대의 많은 절차들이 하나같이 형식적이었는데, 나 때도 마찬가지였다. 신병과 면담, 희망 보직 조사 등은 형식적인 절차였다. 그도 그럴만 했다. 아무도 대대에 남으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그 날, 집에 돌아왔다. 38일의 훈련소를 거치고 39일 째 되던 날, 드디어 돌아온 집이었지만 우울하기만 했다. 험난한 앞날이 예상됐다. 대대상근은 이미 30명도 넘게 있었고, 하나같이 우리를 못잡아먹어 안달이었다. 숱한 '선임'이라고 부르기도 싫은 선임들이 있었다. 대대장은 우리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나있었고 인사과장도 마찬가지였다. 중대장은 상근을 짐짝 취급하기 일쑤였다. 규정은 없었다. 상근예비역은 그 때도, 그리고 아마도 지금도 모든 규정의 중간지대에 있었다. 간부들은 자기에게 편하면 넌 상근이라 안되고, 불편하면 상근은 군인 아니냐며 규정을 갖다 붙였다. 향방상근은 본인 위의 예비군 중대장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지켜줬다. 대대엔 그런게 없었다. 대대상근은 '낙오된 이들'이었다. 현역에서는 기쁘게 낙오되었고, 상근에서는 비극적으로 낙오된 이들. 그런 이중적 낙오의 결과물이었다.


나는 아직도 근무 첫 날, 상근예비역 생활관을 들어갔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곳은 엉망진창, 쓰레기통 그 자체였다. 우리가 입대하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병들 간의 손찌검이 횡행했다. 가장 군인같이 않았던 이들이 가장 군인인 척 군기를 잡았다.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개머리판으로 때리고 욕하고 괄시했다. 나는 그런 분위기에 도통 적응을 할 수 없었다. 비극적이게도, 내 이등병 생활은 두 달도 더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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