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Sep 09. 2024

퇴사하고 뭐 하면서 지내?

6. 생일을 맞아 강릉으로 도망쳤어 (2)

퇴사하고 뭐 하면서 지내?

날이 흐렸다.

아 이럼 안되는데

내 목표와 목적은 오직 단 하나.

새파랗게 부서지는 파도를 품은 동해바다를 보는 것.


하지만 날이 흐리면 바다도 흐렸다.

같은 푸른색을 갖고 있어서 그런가

바다가 흐리면 하늘도 흐렸고

바다가 맑으면 하늘도 맑았다.


네이버에 강릉 날씨를 검색했다. 다행히 돌아오는 날 까지는 비소식이 없다고 한다. 제발, 계속 흐리지만 말아줘.


서울역에 도착해 프레첼을 사들고 기차에 탔다.

얼음이 든 아이스아메리카노가 간절했지만 2시간 동안

잘그락 거리는 얼음컵을 갖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편의점에서 산 플라스틱통에 든 미지근한 아메리카노에 의지했다.


서울을 벗어나니 점점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달라졌다.

빌딩의 높이가 점점 순차적으로 낮아지더니 이내 빌딩이 사라졌다.

작고 오밀조밀한 건물들. 혹은 집들.

띄엄띄엄 거리를 두고 위치한 집들과 집을 둘러싼 논과 밭들.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한강이 사라진 창밖에는 어느새 논과 밭, 산이 가득했다. 여기는 어디쯤일까 멍하니 창 밖을 바라봤다.


귀가 먹먹해졌다 말았다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슬슬 가만히 앉아있는 몸에 좀이 쑤실 때쯤 안내 방송이 나왔다.

<강릉역에 도착 예정입니다.>


강릉이다. 드디어 도착했다!


서둘러 내릴 필요 하등 없기에 천천히 일어나 짐을 챙겼다.

캐리어를 갖고 올 걸 그랬나 고민했지만 이걸 기차에 보관한 채 가면

내내 신경 쓰일 것 같았다. 훔쳐갈 것 하나 없지만 그냥 초조한 마음

어유, 나는 이런 거로도 불안해하는구나.


강릉역에 내려 쓰레기를 버리고 출구로 나섰다.

숙소까진 걸어선 13분 택시 타면 5분

이 애매한 거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

숙소 앞까지 가는 버스가 왔다.

헐레벌떡 버스에 타 창밖을 바라봤다.

낮은 건물들, 도시 주민들 사이 별사탕처럼 숨어있는 여행객들.

여행객의 신분으로 와서 그런가 여행객과 주민을 구별할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뚜벅뚜벅 계단을 올랐다.

띠릭 도어록이 열리고 어두컴컴한 숙소에 불을 켰다.

사진에서 본 그대로인데 좀 좁은 느낌이군.

테이블 하나 없는 게 좀 아쉬웠지만

대신 오로지 '숙면' '쉼'을 위한 것 같아 좋았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날이 흐린데 어딜 가야 할까 고민하다

일단 누웠다.


털썩


하얗고 정갈한 침대. 오늘 여기 온 나를 반겨주는 이 순수한 깨끗함.

푹신한 이불 위로 몸을 던졌다.

푹 가라앉는 느낌과 함께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봤다.

문득 친구가 '아이유의 아이와 나의 바다'의 가사를 통해

큰 위로를 받았다고 했던 이야기가 기억났다.


오랜만에 들어볼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일들이 있지.'


고요히 그녀의 목소리가 숙소를 울렸다.

캄캄한 하늘과 어둑한 숙소 더 어두운 내 마음 위로

그녀의 음성이 나를 훑고 지나간다.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뭐지, 나 왜 울지. 생각도 잠깐

노래가 이어졌고 어둑한 공간이 나를 고요히 감쌌다.


그렇게 강릉에 도착한 날, 바로 내 생일.

고요히 숙소에 누워 나는 아주 오랜만에 울었다.

작가의 이전글 퇴사하고 뭐 하면서 지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