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뭐 하면서 지내?
백수가 맞이하는 12월 31일이란
12월 31일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올 한 해 시작할 때 아이유의 말에 감명받아 '저는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랐다.
과연 그랬을까? 생각하면 글쎄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12월 31일과 1월 1일 그 사이에 서있는 지금.
알고 있다.
분명 1월 1일엔 떡국을 먹을 것이고 자리를 잡고 앉아 새해 카톡을 보낼 것이다. 내게 먼저 새해 인사를 보내 준 이들의 수를 세면서 괜히 코를 쓱, 그래도 인생 헛살지 않았군 하고 뿌듯해할지도 모른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카톡이 점점 저 물어들 때면 여느 때와 같이 쇼츠나 릴스를 보고 하릴없이 핸드폰을 스크롤 하겠지.
어쩌면 새해 목표를 거창하게 세울 수도 있다.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 써가며 꿈과 희망에 젖어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현실적인 해결 방안을 생각하며 앞으로의 날을 계획할 수도 있다. 본디 새해 계획이라는 건 '새해'라는 분위기 하나 만으로도 뭔가 이뤄질 것 같고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을 주니깐.
1월 2일이 되고 3일이 되고 다시 평일과 주말이 반복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와 똑같은 하루를 보낼 테고 다시금 12월 31일에 '올 한해 뭘 했더라' 하고 고민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세 해가 흘러가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12월 31일과 1월 1일을 맞이하는 기분은 설레면서 아쉽고 아쉬우면서 또 들뜨는 양가적인 기분이 존재하는 것 같다. 달력의 마지막 페이지를 찢으며 새로 만나는 1월에 대한 반가움, 새로 태어나 새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 여러가지 계획을 생각하고 쓰면서 그려보는 미래까지. 이 모든 들뜸과 꿈, 희망, 소망이 어우러져 둥실둥실 떠다니는 기분을 유지하는게 바로 새해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 새해를 맞이 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냈다.
헬스장에서 공복 유산소를 하고, 점심을 사먹고, 카페에서 12월 31일이 새겨진 날짜에 일기를 써내려갔다. 뭔가 대단히 아쉬울 줄 알았는데 또 마냥 그렇지도 않은게 드디어 어른이 된건가 생각이 들었다.
아쉽긴 하지만, 그렇다고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순 없으니까 아쉬워 하며 후회로 이불을 팡팡 차는 것 보다 벌떡 일어나 이불을 개는 게 훨씬 빠를테니까 말이다.
직장인 신분일때나 백수신분일때나 연말에 큰 감흥이 없는 건 비슷한 것 같다. 차이점이 있다면 연말 퇴근이 아닌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일 것 같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머릿속으로 계획해놓은 건 정말 많다. 한 번에 하나씩만 하자,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며 2024년의 마지막 책으로 '원씽' 읽어놓고 욕심이 가득한 탓에 모든걸 해치우려고 구상한다. 사람 참 쉽게 안변한다 싶으면서도 이 욕심이 인정욕구에서 비롯된건지, 자기계발의 허상에 또 목메는 건지 , 진정한 나의 욕망인지, 아님 내가 투사한 타인의 욕망인지 철학적 사고로 이어진다. 역시 연말은 연말답게 생각이 많아야 제맛이지.
올 한 해 내가 성취한게 뭐가 있었지? 생각했다.
그러다 불현듯 꼭 인생에 뭔가를 성취해야하나 생각했다.
올 한 해 되게 한 거 없다 생각했는데, 지난 크리스마스에 돌아본 1년은 꽤나 많은 걸 소소하고 작게 해냈구나 싶었다.
그래도 한 가지 성취해낸 게 있다면 인간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이전에 비해 조금 더 넓어졌다는 사실이다. 쉽게 미워하지 않고 쉽게 판단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날들이 많았는데, 그 날들이 이렇게 되돌아오는건가 싶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일도 꽤나 큰 에너지가 드는 일인데, 그 에너지를 나에게 쓰는게 차라리 낫단 생각이 자주 들었기 때문에. 또한 이해의 폭이 넓어야 세상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와 주변인, 세상과 지구, 그리고 저 먼 우주까지.
새해를 앞두고 여러모로 마음 아픈 소식들이 들려온다.
시끌벅적한 연말이 아닌 저마다 각자의 기도를 품은 고요한 연말이 될 듯 하다. 나 또한 오늘 하루를 고요히 숨죽여 마무리하고자 한다.
2024년도 어찌됐든 잘 살아냈다.
작년보다 내가 조금 더 큰 기분이니 그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
2025년도 조금 더 포용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