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쏟아지고 죄책감이 늘어나고

생산성을 향한 집착

by 블레어

요 근래 몸이 이상하다. 평소에 8시간 정도 수면을 취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10~12시간의 수면을 취한다.

아침에 눈 뜨면 '어우 일어나야지'가 됐는데 이제는 정신을 못 차리겠다.

늦게 자는 게 문제인가? 싶어서 10시~11시 사이에 잠에 들어도 기상시간은 여전히 10~11시.

대체 뭐가 문제지?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알람을 여러 개 맞춰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싶어서. 그러나 장렬히 실패했다. 득달같이 알람을 껐고 다시 눈뜨면 여전히 일어나면 안 된다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나 어디 아픈가? 요 근래 웨이트를 다시 시작하면서 과하게 운동한 게 무리였나.

근데 회사 다니면서 운동했을 때도 이만큼 잠이 오진 않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사실 나의 적정 수면시간은 10~12시간이었나?

혼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천장에 [일어나 움직여]라고 써놓고 아침에 눈 뜨면 저걸 보고 벌떡 일어나야지 다짐도 했다.

하지만, 난 시력이 좋지 않았고 아침에 눈 뜨면 저게 보일리 만무했다.

그렇게 자꾸 늦게 일어나기 반복한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늦게 일어날 수도 있지. 이게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인가?'



잠을 적게 자는 것에 익숙해졌었다. 직장인 시절 나의 취침시간은 10시 반 정도.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일찍 잠드는 편이었다. 오죽하면 친구들 사이에선 얘 10시 넘어서면 카톡 안 보니까 할 말 있음 그전에 미리 해야 된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 10시 반에 잠들어서 5시 반에 기상하던 시절.


퇴사 후 백수 라이프에 맞게 취침시간이 점점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10시 반에 잠들던 내가 11시 12시로 넘어갔고 어느 날엔 2~3시에 잠드는 일도 많아졌다. 그래도 어김없이 아침엔 9시 즈음 일어났으니 얼추 수면시간은 엇비슷했다. 요 근래 10~12시간을 자는 스스로가 납득이 안 가는 게 이해는 간다.


근데 왜 이렇게 수면시간에 집착하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늦게 일어날 수도 있는 거고, 오래 잘 수도 있는 건데 왜 이렇게 혼자 초조해하고 못마땅해하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생산성이 떨어진다'라고 믿고 있었다.


10~12시간을 자긴 하지만 일어나면 헬스장 가서 운동하고 , 책 읽고, 자소서 쓰고 , 밥 챙겨 먹을 거 먹으면서 하루를 잘 보낸다. 때론 쇼츠를 보며 뒹굴거리기도 하고, 해야 할 일을 미루기도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일상을 잘 영위해나감은 틀림없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일찍 일어나야 생산성이 극대화된다고 믿었나 보다.

7시 즈음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나서 책도 읽고 뭐도 하고 해야지! 다짐을 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걸 왜 해야 하는지'이유가 없었다. 이유가 없으니 못 일어나는 게 당연할 지도.

회사 다니는 거는 먹고사니즘이 연관되어 있으니까 당연히 일어나야 했지만!


우리가 SNS나 유튜브로 보는 흔히 '갓생러'라 불리는 이들의 첫 시작은 미라클모닝이 아니던가.

새벽에 일어나 고요히 차를 한 잔 마시고 모닝 페이지를 쓰고 새벽 운동을 가고 일기를 쓰고 책을 읽는 사람들. 똑같은 24시간을 누구보다 알차게 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보며 나는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왜 해야 하는지' 이유가 없는 채 말이다.


이 생산성에 대한 집착이 꽤나 무서운 거였다.

만약 나의 생산성이 100이라면 나는 지금 운동 20 , 읽고 쓰기 30, 자소서 20, 일상영위 30에 쓰고 있다.

그런데 자꾸 운동 50, 자소서 50으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었다.

쏟아붓는다고 해서 언제나 100% 성공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일상을 영위할 에너지도 충분히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극단적으로 시야를 좁게 가져가고 있었다.

일찍 일어나서 시간을 활용하면 이 모든 걸 다 '해치울 수 있겠지'하는 생각으로.

사실 그냥 평소대로 일어나서 해도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잘못된 단어의 선택이 가져온 강박이다.


천장의 [일어나 움직여]를 뜯었다. 이유가 부재한 채찍질은 달리기도 전에 지쳐버리기 십상이니까.

과하게 세운 목표도 잠시 멈춰 다시 들여다봐야겠다 생각했다. 기록은 좋지만 너무 깊은 고민 없이 난잡하게 흩뿌려 놓은 것들이 많다. 새해 버프와 생산성에 대한 집착, 그리고 내 생각보다 길어진 이 취준의 시기가 나도 모르게 강한 스트레스를 주고 있음을 알았다. 맞아, 최근에 일기엔 그런 말도 썼다. '그만 징징대기'.


참 피곤한 인생이고 삶이다.

그래도 어떡하겠어요. 이렇게 태어난 걸

역시 나는 나의 가장 큰 팬이자 안티다.

그래도 어떡해 해야지. 다시 자소서를 써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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