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내야 새로 채우니까

어느 날 계시처럼 관계 디톡스가 내려왔다.

by 블레어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종종 '계시'처럼 문장이나 단어가 내려올 때가 있다.

1월 초 어느 날, 갑자기 '관계 디톡스'라는 단어가 계시처럼 뇌에 내리 꽂혔다.


20대 초반의 나는 레트리버처럼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좋아했다. 언제나 번호를 교환했고 오래오래 알고 지낼 것처럼 굴었다. 당연하게 생일을 챙겼고 주기적으로 만나 밥을 먹었다. 내가 이만큼 좋아하고 표현하면 상대도 그것을 알아줄 거라고 당연하게 믿었던 날들이었다.


20대 중반이 되고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마음의 깊이가 다를 수 있음을 비로소 인지하게 됐다.

오래오래 영원할 것처럼 술잔을 부딪히고 놀아도 다음날 아침이 되면 지난날의 밤은 꿈인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야속하고 미웠다. 어떻게 그렇게 냉정할 수 있지? 우리 분명 어젯밤까지만 하더라도 까르르 웃고 떠들며 인생의 낭만에 대해 논했잖아요!


마음과 시간이 다르게 흐를 수 있음을 받아들였다. 그때마다 '시절인연'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던 것 같다.

호시절을 함께 잠깐 보낸 이들. 그저 추억의 한 페이지로만 남을 사람들.

나는 잔정도 사랑도 많은 사람이라 만나는 이들에겐 나의 마음을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마음이 가는 이라면 더욱 나누어 주었고. 되돌려 받지 않아도 내가 좋으니 상관없다는 마음이었다. 그때 나는 사람이 좋았고 달라진 내 세상이 기꺼웠으며 그로 인해 확장된 나의 세계에 감탄을 금치 못하던 때였다.


내가 좋아도 상관없다는 마음은 다른 깊이와 밀도에 조금씩 바래졌다.

어차피 한 시절이다라는 냉소적인 마음이었을까. 어느 모임에 가도 잘 적응하고 재밌게 노는 나는 모임이 끝나면 절대 핸드폰 번호나 인스타 아이디를 알려주지 않는 사람이 됐다.

오늘 하루 이렇게 재밌게 놀아도 다음날 그대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거고 언제 그랬냐는 듯 차게 식을 걸 아니까, 우린 그저 이 분위기에 취해 연락처를 교환하는 것일 뿐, 그건 의미가 없을 테니까.

마치 못해 인스타 아이디를 알려줘야 할 땐 본 계정 아이디가 아닌 책 리뷰를 쓰는 책계정 아이디를 알려줬다.

그건 상처받기 싫은 나의 방어기제였을까, 아님 나만의 나름의 대처방식이었을까?


여러 모임을 나갔지만 핸드폰의 저장된 연락처는 100개를 넘지 않는다. 스치고 지나간 인연들이 많았지만 억지로 잡아채지 않았다. 바람이 드나드는 창처럼, 그날 하루의 추억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 됐다.


그렇게 나름 남기고 남긴 이 조그만 연락처에 문득 관계의 디톡스가 내려온 것이다.

오래된 것을 들어내야 새로운 것을 들일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서.



함께한 시간이 관계의 밀도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조금씩 깨달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학창 시절에 만난 이들과 10년 넘게 이어가며 그 우정을 이어나가는 게 뿌듯했지만

각자의 세상에서 겪는 각자의 삶은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했고, 그걸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던 때가 있었다.


신기한 건 사람 마음이었다.

어떤 관계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을 부단히 이해하고자 그에 대해 알아가고 노력해야 했는데

어떤 관계는 '그럴 수도 있지, 그렇구나'라는 두 문장만으로 납득이 갔다.

이 관계의 차이는 내 마음의 차이였을까. 이 마음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오래 알고 지냈다 하여 다 아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여전히 발견하는 새로운 면모가 있었다. 과연 성인이 된 후 만났다면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질문이 떠오르는 사이도 있었다. 새로 발견한 면모에 대해 '너의 그런 면이 있다니 우리 더 알아가자'라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오... 그렇군' 단답으로 끝나는 관계도 있었다.

모두를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마음의 깊이와 정도가 나부터가 다르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허울뿐인, 그저 카톡 친구로만 존재하는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실제 만나서 밥을 먹지도 않고, 안부를 잘 나누지도 않은 채, 생일 선물만 주고받는 관계가 의미가 있나?

상대의 생일을 외면할 수 없어서 보낸 기프티콘이 내 생일 기프티콘으로 돌아오고 다시 내가 보내는

어쩌면 악의 고리라 부를 수 있는 이 기프티콘의 고리. 무용(無用)했다.


내가 상대를 생각하는 만큼,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 이가 있고

알고 지낸 기간에 매몰되어 매몰비용을 자꾸 상기시키는 이가 있고

보답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당연하게 여기는 건 다른 마음이 아닌가? 생각을 들게 하는 이가 있고

만나고 돌아올 때면 어딘가 찜찜한 이가 있고

그와 있었던 일을 누군가에게 '애써 설명하고 포장하게 하는 ' 이가 있고

여러 가지 인간군상이 있었고 더 이상은 그들에게 쓸 시간과 에너지가 없다 결론이 지어졌다.


한 껏 비워내야 새로 채울 수 있듯이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려면 자리를 정리하고 치우는 게 맞겠지.


여전히 인간관계는 어렵다.

함께 한 시간이 길수록 좋은 거라 생각했는데 단발성 이벤트처럼 기간과 상관없이 잘 지내는 이들이

퐁퐁 나타나면 마냥 정답은 아니군 생각이 든다. 인간관계조차 절대적 진리는 없는 걸까.


들어내야 새로 채울 수 있으니, 올해 다시 관계를 재정립하며 돌아봐야겠다.


역시, 인간관계는 어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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