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듯했던 다음날, 나는 퐁퐁 일부러 울었다.
잠이 오지 않아 새벽녘까지 뒤척이다 2시 반 넘어 겨우 잠들었던 화요일.
월요일의 생산성과 뿌듯함은 새벽 뒤척임에 바스러지고
화요일의 나는 꽤나 무기력했다.
겨우 일어나 공복 유산소를 갔다. 주차 정산이 되지 않아 주차비 지원되는 곳인데 8000원이나 주차비를 냈다.
혼자 쉬익 쉬익 대며 마트 가서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와 와구와구 우동을 먹었다.
공복 유산소가 의미 없는 먹부림이 시작됐다.
운전하면서 깨찰빵을 와구와구, 집에 와서 우동을 먹고 찹쌀꽈배기와 찹쌀도넛까지 야무지게 와구와구
그리고 '오늘 하루 완전 피 봤어 뿌애애앵' 하고서는 침대에 냅다 드러누웠다.
따끈따끈한 전기장판 위에 나는 노곤노곤 녹아내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낮잠을 2~3시간 자고 말았다.
어제의 나는 어디 간 거지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핸드폰을 열었다. SNS 속은 여전히 아름답고 찬란하고 밝고 행복하구나
남들의 소식을 자의와 타의 그 애매한 경계에서 알게 되면서 침울해졌다.
동시에 여전한 나의 열등감 포인트를 볼 수 있었다.
우울하고 울적한 기분이 도저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냥 일찍 자야겠다 생각하고 침대에 누워
모우어를 읽었다. 자기 전에 핸드폰 하는 것보단 소설책을 읽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모우어의 [뼈의 기록]을 읽다가 울컥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하루에도 수억 개, 수만 개의 세포가 자기 역할을 하며 생장하고 사라지기 때문에 인간은 강인하다는 로비스의 말에 울컥 위로가 됐다. 나의 작은 세포 하나하나가 날 위해 이렇게 역동적으로 움직이는데, 나는 어찌하여 내 마음을 진창으로 자꾸 끌고 가는 것인가. 울컥해진 눈물이 차오르자 갑자기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가끔 억지로라도 울어. 일부러 우는 거야."
왠지 이때다 싶었다. 그래서 책을 덮고 스탠드 조명을 끄고 고요하게 위로를 건네는 노래를 틀었다.
숨죽여 울던 울음에서 점점 소리가 새어 나왔다. 거실엔 들리는 게 싫어 조금은 억누르는 울음.
눈물이 퐁퐁 귀를 타고 흘러내렸다. 엎드린 자세로 베개에 얼굴을 박고 '힝' 하다가 '흐앙'
그렇게 일부러 울고 나니 고요가 찾아왔다.
감정에도 균형이 필요한 걸까?
어제의 기쁨, 생산성 최대의 날, 뿌듯함은 지나가는 바람인 듯 화요일의 나는 울적하고 불안했다.
우리의 삶이 '맨날 즐거워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얘기들이 갑자기 와닿았다.
(유튜브에 나온 서은국 교수님이 그랬는데, 매번 행복하면 그건 조증이다!라고 하셨던 것 같다)
많은 걸 해낼 수 있는 기분이 들었는데, 과열된 마음이 금세 식어버릴까 싶어 찾아온 브레이크였을까.
내가 언제 울었더라? 생각해 보니 작년 9월 강릉 숙소에서 울고 6개월 만에 찾아온 울음이었다.
숱하게 들려오는 카더라 소리에 흔들릴 때마다 '나의 길을 가자, 주관을 지키자'라고 생각했는데
세상 강한 줄 알았지만 여기저기 차이고 상처받은 마음이 분명 있었나 보다.
요새 자꾸 문제해결에만 치중해서인지, 나도 모르게 조급해진 마음에 미처 살피지 못한 마음이 있었던 건지
매일 일기를 쓰고 기록들을 이어가는데 살펴보지 못한 마음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래도 이렇게 알아차린 게 어디야
어른도 가끔은 울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슬픔의 감정 표현 중 하나가 '울음'인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니까.
애써 스스로 괜찮다 되뇌고 입 밖으로 내뱉어도 아물어지지 않는 감정이 있는 법이다.
어쩌면 마침 그때 내 감정의 비커가 찰랑이며 내가 나에게 보내는 마지막 시그널이었나 보다.
여기서 억지로 버티다가는 너의 감정 비커가 깨져버릴 거야 라는 경고.
그게 산산이 부서졌으면 나는 내 감정도 모른 채 괜찮다고 다독이며 깨져버린 마음을 돌아보지 못했을 거다.
펑펑 운 것도 아니고 울컥한 눈시울을 이어가 조금 힘내서, 억지로 울었는데
그게 뭐라고 수요일은 고요했다.
어쩌면 삶의 가장 기본적인 마음은 고요와 무덤덤, 평온, 정적이 아닐까?
지나치게 행복하면 들뜨고 과열되어 일을 그르칠 수도 있고, 열정이 뛰어난 나머지 책임지지 못할 말이나 행동을 할 수도 있다. 반면 지나치게 기분이 가라앉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본다.
양 극단에 놓인 이 감정의 밸런스를 잡기 위해 종종 울음이나 화, 소리 지르기 등의 표현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6개월 만에 또르륵 힝 흐앙으로 끝난 울음 덕에 고요해졌다.
애들만 울라는 법이 어딨 있어요
어른도 울 수 있지.
어른도 어른이기 전에 애였잖아요.
또 어느 날, 갑자기 많은 게 울컥해진 밤이 오면 지금이군 생각하고 울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