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가 지겨워용

보기 좋게 나가떨어졌습니다.

by 블레어

왜요 제가 아무것도 안 한 사람처럼 보이세요?

네 맞습니다!


아주 보기 좋게 나가떨어졌다.


노션이니 미리캔버스니 신나게 배워서 블로그에 열심히 기록했다.

조잡하지만 유치한 나의 작업물도 여기 브런치에 떡하니 자랑했다.

온라인 독서모임에 참가하여 매일매일 책 읽기 기록을 인증하고

매일 쓰는 기록들도 꼬박꼬박 썼다.


그뿐이랴?


매일매일 운동도 갔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엔 집에서 덤벨을 들고 상체 홈트를 하고

쫄랑쫄랑 개 산책을 50분간 하며 유산소를 대신했다.

읽고 쓰고 운동하고 배우고 기록하고를 3일간 반복했다.

뿌듯함의 절정! 뿌듯함의 퀸이자 씬 이젠 종결.


새로 배우는 것을 통해 과정의 즐거움을 찬양하고

훅 떨어진 컨디션에 어떡하지 하다가 힝 하고 울어버린 채

어른도 종종 울어야 해 하면서 기운차려 진 마음으로 새 하루를 시작했는데


보기 좋게 나가떨어졌습니다

짠!

sticker sticker


어제의 나는 도통 기운이 나지 않았다.

하체 웨이트를 힘들게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옹졸한 근육통이 밀려왔다.

어디가 아프다고 말하기엔 구체적으로 아픈 데가 없는데 앉고 일어설 때마다 아이고아이고가 나오는 애매함.

(그리하여 아 씨 나 운동 제대로 안 했나? 싶어서 자존심이 상하는 옹졸한 근육통)

모닝페이지를 쓰고 노트북을 열면 뭐라도 하지 않겠어!? 싶었는데 스크랩한 공고와 자소서를 보자니

갑자기 막막했다. 좋아, 오늘 아침엔 생산성이 별로인가 본데 일단 밥부터 먹자!

밥을 먹고 엄마 따라 쫄랑쫄랑 마트를 따라갔다. 나온 김에 도서관도 들러 책을 왕창 반납하고 다시 또 왕창 빌렸다. 디카페인 아이스 라테를 마시면서 카페인 빨로 힘내본다! 다짐하고, 운동 대신 개산책으로 유산소를 대신한다! 하며 걷다 보면 기분전환이 되겠지 싶었는데


전혀 그냥 자꾸 늘어지고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괜히 추운데 달달 떨며 커피 사 먹고, 롱패딩으로 중무장한 채 개한테 끌려다닌 사람일 뿐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혼자 쉬익 대다가 냅다 침대에 드러누웠다. 나 안 해 안 할 거야!!


작심삼일이었나 그 모든 생산성과 벅참의 날들은?

이게 다 호르몬의 농간인 건지, 아님 우중충한 날씨 때문인 건지, 아님 손이 시린 냉기 때문인 건지

기어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꾸역꾸역 영상만 보다가 하루를 그렇게 날렸다.


그 사실이 제법 어이가 없었다. 뿌듯함에 취해서 나 좀 멋진 듯? 한 게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쉽게 나자빠지는 건지

웃긴 건 나자빠지는 과정에서도 '계획 재수정'이란 단어를 끄적여놨다는 사실이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 아니냐며, 어떻게 사람이 매번 기운을 내냐고 한다.

근데 백수이며 취준생인 내게 너무 많은 이런 날과 저런 날의 반복은 자책과 불안을 가져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가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고?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세상인데 어찌 아무것도 안 할 수가 있지.

문득 5년 가까운 직장생활동안 이렇다 할 문장 하나 쓸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롭다가도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순 없다며 혼자 꼬물거리며 사부작댄다.


너무 생각 없이 퇴사했나? 후회로 점철된 밤을 보내다가도

안 그랬으면 나 진짜 미쳤을 거야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다가

아무것도 안 하면 0이잖아 야 움직여, 하고 움직이며 이것저것 해내다가

나 지금 제대로 가는 게 맞나? 내가 이걸 하는 게 맞나? 스스로를 한없이 의심하다가

그래도 기어코 만들어낸 뭔가를 보며 잠깐 뿌듯해하다가

끝내 어지러운 생각과 혼란한 마음과 뿌듯한 성취감이 뒤섞여 나가떨어진다.


그래도 어떡해


다시 일어나야지.

어제는 그렇게 나자빠진 채 초코송이를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으며 쉬익 댔고

오늘은 눈보라가 치든 어쩌든 나간다!! 하는 마음으로 뛰쳐나가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날것의 일기를 잔뜩 쓰고 돌아왔다.

'뭐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잡코리아를 켜서 이력서를 하나 지원하고,

노션 강의를 듣고 배운 것을 기록하고 , 이렇게 브런치를 끄적인다.


최근에 본 유튜브에서 Human Being 인 이유는 그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데

나는 어찌하여 매번 Human Doing으로 살아가나 모르겠다.

이것도 팔 자려나 싶기도 하고

승질머리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어떡해

이렇게 태어난 거라면 이런 나라도 내가 머리채 잡고 살아야 내 몫을 할 텐데

나는 거기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인데


이건 내가 나자빠졌다가 다시 머리채를 잡고 일어난 날의 기록.

어휴 정말 지겹다 나 자신 그래도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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