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돌볼 것
취업준비를 하는 기간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자주 하는 말은
'다 울었니? 이제 할 일을 하자.'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
이 두 가지였다.
감정에만 사로 잡혀 있어 봤자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게 가장 베스트라 여겼다.
적어도 내가 그렇게 소진되기 전 까지는
취업 준비를 하면서 스스로를 채근하는 날이 많았다.
지원서를 쓰고 수정하고 고치고 다시 읽고 반복하면서 확실히 첫 초안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 뿌듯해했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기쁨,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고양감.
그 들뜬 마음에 취해 지쳤다는 것도 모른 채 핸들이 고장 난 팔 톤 트럭처럼 마구 내달렸다.
화상 면접을 끝냈던 목요일 저녁
'아 오늘은 좀 쉬어야지' 했는데 생각해 보니 내일 오전 면접이 하나 더 있었다.
'쉬기는 개뿔...'
다시 힘을 내 노트북 앞에 앉았다.
챗 GPT와 클로드를 번갈아 쓰며 지원동기, 퇴직사유의 도움을 받는 데
이상하게도 하나도 신나지 않았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커졌다.
그 마음이 커질 때마다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 '해야 할 일을 하자...'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어째서인지 의욕이 안나는 건 물론이고
잠깐 들떴던 마음마저 가라앉기 시작했다.
노래 가사를 따라 쓰며 마음을 달랜 뒤에야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는 적어도 지친 마음을 달랜 뒤에야 가능하단 걸 알았다.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는 내게 하나의 마법주문이었다.
우울하고 지치고 힘든 마음 앞에서 나를 나아가게 해주는 마법의 주문.
제 아무리 지친 마음이라도 '아무것도 안 하면 0이다'라는 주문까지 덧붙이면
나는 곧장 해야 할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마법주문도 소진된 마음과 고갈난 에너지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마법사도 마력이 있어야 마법을 쓰는 건데
에너지의 공급 없이 사용을 주야장천 해댔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절대주문 같았던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는 소진된 에너지 앞에 장렬히 전사했고
나는 온몸의 기운을 잃은 채 누워 가만히 천장을 바라봤다.
넘어지면 무조건 일어나는 게 능사일까?
나는 넘어졌을 때 어떻게 했더라?
넘어졌을 때 나는 누가 볼세라 후다닥 일어나기보다
나의 상처를 먼저 살폈다.
바지를 걷어 무릎이 까졌는지 멍이 들었는지 들여다봤다.
그리고 앉을 곳을 찾아 철퍽 주저앉은 뒤 차오른 숨을 고르며 바지에 묻은 흙을 털었다.
상처를 깨끗한 물에 씻으며 쓸려내려 가는 모래가 만드는 아찔한 감각에 '아오...!!'
작은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약을 꼼꼼히 바르고 쓸리지 않게 밴드를 붙였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뛰기보다 상처를 인식하며 적당히 걸었다.
왜냐면 갈 길은 머니까.
어쩌면 사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을까
넘어졌을 때 후다닥 일어나기보다 넘어진 나의 상처를 먼저 돌보는 게 우선이 아닐까?
고양감에 취해 내달릴수록 멈출 줄 모르는 다리는
스스로 지쳤다는 사실도 모른 테니 말이다.
내게 필요한 건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도 맞았지만
'좀 누워있어 쉬어갈 줄도 알아야지.'도 맞았다.
지친다는 건 맹목 없이 달릴 때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고양감, 성취감에 취할 때도 일어난다는 걸 이제 알았다.
왜 항상 잔뜩 고장 나고 지친 뒤에야 쉬어갈 마음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주말에는 쉬어야지
그 마음으로 토요일엔 낮잠을 늘어지게 잤고 유튜브를 보고 웹소설을 봤다.
여전히 새벽에 잠을 설치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조금 느슨해진 기분이 든다.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만 되뇌는 게 아니라
'좀 누워, 쉬어라 좀'이란 말도 함께 되뇌어야지.
아무래도 고장이 난 8톤 트럭으로 살다가는
과부하로 불이 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