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난 이 짝사랑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강아지 물통은 왜 챙겨?"
"하... 그냥 냅둬 산책도 내가하고 물도 내가 주잖아"
"너 요새 왜이렇게 엄마한테 짜증을 내냐? 엄마에 대한 배려가 없어"
일요일 아침부터 엄마랑 싸웠다.
그리고 화요일 오전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도 엄마랑 여러번 싸웠지만
이번 싸움은 유독 내게 타격이 컸다.
'내가 배려가 없다고? 지금 그게 엄마가 나한테 할 수 있는 말이야?'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분노
당장 그자리에서 패악을 부리며 소리치고 다 뒤엎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이를 꽉 물고 입을 다물었다.
'엄마한테 사과 해야하나?'
솔직히 말하면
사과하기 싫었다.
왜 매번 내가 사과해야 하고 내가 먼저 개선하려고 하고
내가 먼저 다가가야해? 그저 딸이라서 자식이라서?
엄마 눈에 1순위는 여전히 내 남동생이고
나는 그 사실을 쟤가 태어나서 자라온 지금까지 봐왔는데
왜 항상 싸우면 나만 나쁜년이 되고 썅년이 되는거지
왜?
차별이 없으면 좋겠지만
우리집은 차별이 있었다.
엄마는 남동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했고
아빠는 나를 더 예뻐했다.
성인이 된 후 어쩌다 본 엄마 폰에는
동생은 '아들'이었고 나랑 아빠는 이름 석자였다.
솔직히 서운했다. 근데 그러려니 했다.
엄마가 동생을 더 사랑하는만큼
난 아빠를 좀 더 챙겼고 아빠를 더 애정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나만의 작은 복수였달까.
동생과 나는 성격이 정반대다.
곰살맞고 살갑고 애교도 많은 애랑
무뚝뚝하고 자기 얘기 잘 안하고 싸나운 사람 그게 바로 나.
그래서 종종 동생한테 '불효녀는 내가 할게 넌 효자해' 하고
떠넘긴 적도 많았다. 둘 중 하나만 착하면 되지 뭐 이런마음으로.
엄마와의 싸움이 하루를 넘어가던 월요일 밤.
자려고 누웠는데 왜 이렇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안들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성인인데, 무작정 자식이라고 내가 다져줘야하나?
엄마가 나이들고 늙어간단 이유만으로?
나도 늙는데?
가는 건 순서 없댔어(?) 이런 패륜적인 생각까지 하면서.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졌다.
그 꼬리의 끝엔 유년시절, 청소년 시절의 내가 있었다.
그러니까 사랑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던 꼬마가.
갓 태어난 나는 원숭이 새끼마냥 징그러웠다고 했다.
새카만게 머리숱도 엄청 많았다고
반면 동생은 하얗고 동글동글 통통하니 너무나도 예뻤다고 했다.
무계획에 생긴 아이가 나라면
계획적으로 생긴 건 동생이었다.
초등학교 운동회날, 엄마는 학교 급식소에서 일을 해 오지 못했고
나는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교실에 앉아 먹었다.
혼자 달리기를 하다 앞을 본 그곳에 학원 원장선생님과 동생이 날 보러왔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에도 아마 엄마아빠 둘 다 회사 가느라 못왔고
고모랑 할머니, 작은아빠가 대신 와줬다.
중학생 2학년, 갑작스럽게 아빠 직장문제로 이사를 가야했다.
사춘기였던 난 아득바득 난리를 떨며 가지 않겠다고 했고
가장 예민하고 지랄맞을 청소년기 난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와 지냈다.
외고를 가겠다며 설치던 중3, 외고 입시장까지 태워준 건 고모였고
중3 졸업식엔 고모와 할머니, 그리고 삼촌이 왔었다.
3살 터울은 입학-졸업이 겹쳤으니까
수능 도시락을 싸준 것도 할머니였고
수시 광탈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한 것도 할머니였다.
수능이 끝났던 어느 겨울 저녁, 맛있는 밥을 사준 건 고모의 딸이었던 사촌언니였다.
고등학교 졸업식은 와달라고 바득바득 우기고 난리를 떤 끝에 엄마 아빠는 내 고등학교 졸업식에 왔었다.
내가 20살이 되자 엄마 아빠는 경기도로 다시 올라왔고 나는 5년간의 분가생활 후 다시 엄마아빠랑 살게 됐다.
대학교를 졸업하던 날, 엄마아빠는 오고 싶어 했지만
내 반응은 의문으로 가득찼다
"왜 와?"
성인이 되고 엄마 아빠가 이것 저것 간섭하거나 뭘 물어볼때마다 나는 날을 세웠고 낯설어했다
"갑자기 왜 나한테 관심가져?"
그 때 부터였을까.
나는 그 이후부터 엄마아빠한테 털어놓고 의논하기 보다는
혼자 결정하고 책임지고 통보하는 애가 됐다.
외고 입학 고민도, 대학교를 정하는 것도, 알바도, 취업도, 퇴사도, 휴학도, 연애도, 장기여행도 , 내 인생의 모든것 전부 다.
내 일상에 자꾸 간섭하고 알려고 할 때 마다 나는 날을 세웠다.
왜 알려고하지?
왜 궁금하지?
갑자기 왜저래.
나는 차가웠고 엄마아빠는 서운해했다.
그리고 나는 그 서운함이 이해가지 않았다.
여전히 동생은 살갑고 애교가 많았고
나는 밖에서는 싹싹하고 애교많은 애였다가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 왔어' 세 글자 뒤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왜냐면 정말 할 말이 없었으니까.
하고 싶은 말도 없었으니까.
나이가 들면 사람이 좀 변한다더니
한창 쌀쌀맞고 지 멋에 살던 나도 점점 유순해졌다.
이전보다는 조금씩 내 얘길 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엄마아빠랑 싸웠지만
엄마아빠가 자기한테 화내는 게 싫어 맞춰주는 동생과 달리
나는 눈물이 고여도 소리를 빽빽 지르며
엄마 아빠가 나한테 말이라도 잘못할 땐
'당장 나한테 사과하라'며 패악을 부리는
그야말로 지랄맞음도 종종 보였다.
친구들이 엄마랑 잘 놀러다니고, 대화도 많이하는걸 보며
그렇지 않은 내가 별종같았다.
그래서 노력해봤다.
같이 맛있는 걸 먹으러가고 카페를 갔다.
잘 안됐다. 어색하고 불편했다.
엄마도 그런것 같아 보여서 나중엔 그마저도 관뒀다.
그냥 난 그런게 안맞는 사람인가보다 생각하면서.
필요한 뭔가를 사주고
무슨 일 때문에 속상해서 우울해하면 말을 들어주고
아닌건 아니다 라고 말을 하며
내가 아무리 애정을 보여도
엄마는 여전히 남동생을 더 사랑했다.
눈에 보일만큼
그리고 나는 이제서야 그걸 인정했다.
이건 절대 닿을 수 없는 짝사랑이고
이 짝사랑에 대한 헌신을 멈춰야겠다고.
사과했다.
싹바가지 없게 말해서 미안하다고,
앞으로 잘 지내자고.
엄마는 모를거다.
그건 내가 엄마의 딸로서 잘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써 보내는 사과라는 것을.
그토록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했던 내 안의 어린아이를
다 큰 내가 토닥이며 말했다.
"잘했어, 지금까지 끌고 온 거 다 니 역량이야 기특해."
지난 날, 그토록 달리며 인정받고 싶어 했던 날들이 이해됐다.
단 한사람, 엄마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어린 딸의 마음이.
그리고 이제서야 그 짝사랑을 끝내고자 한다.
나도 사람인지라
더 아프긴 싫고, 돌아봐주지 않는 사람을 향해 손 내미는 건
내가 가여워서 안되겠거든.
그렇다고 뭐 , 아주 사랑하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지만
짝사랑을 접고 내 안의 어린아이를 달랠 다른 방향으로 스스로에게
좀 더 집중하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엄마에게 복수도 할거다.
예를 들면 생일 날 주는 용돈 금액을 아빠랑 다르게 주는 것.
엄마는 20만원이면 아빠는 40만원인 것.
뭐 그런 사소한 복수. 나만 아는 복수.
나도 이런 옹졸한 복수할 기회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나는 치졸하고 옹졸하니까 뒤끝도 기니까
그 복수를 오래오래 이어갈거다.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