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닿고 싶은 세계

03. 순간을 버티는 세계

by 블레어

저번주 금요일부터 수요일에 이르기까지

회사에서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일의 결론까지 갔으나 엎어진다거나

다른 일을 제쳐두고 우선순위로 처리했더니 없던 일이 된다거나

데드라인은 정해져 있는데 시간은 한정적이어서 초조해지는 마음까지


순간 순간이 고비였다.

도망치고 싶었다.

진짜 도망칠까? 고민을 자주 했다.


현실이니 카드값이니 생활비니 금전적이니 하는 그런 거

나는 모르겠고 그냥 이 상황에서 멀리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눈을 꾹 감고 자리에 앉아 차근차근 할 일을 했다.

퇴근시간이 훌쩍 지나 터벅터벅 사무실을 나왔다.

지독히도 시린 밤 공기가 코 끝에 스쳐갔다.


'걍 관둘까' '아니 내가 왜' 라는 마음들을 삼키고 또 삼키며

지내다보니 그 모든 일들이 지나갔다.


평화로웠다.



돌이켜보면 영원한 고통, 시련도 없는데

나는 순간 순간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시련이 오면

도망치고 싶었다.


그리고 꽤 자주 도망쳐봤다.


흔히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던데

낙원은 아니었지만 한 숨 돌릴 수는 있었다.

물론, 현실적인 고민에 또 다시 괴로워 하긴 했지만.


나이가 듦에 조금씩 순응할 줄 알게 되는 걸까,

아님 그냥 체력이 없어서 도망칠 힘이 없는걸까.


그저 순간을 묵묵히 버텨내니 지나간다는 걸

그로 인해 평화가 도래하고

해결되는 과정들 속에 배움이 남는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겨우 새해 1월의 초입인데 이렇게나 많은 일이 있었다.

더 무시무시한 건 앞으로 쏟아질 일들도 많다는 사실이다.

난 또 도망치고 싶을 것이다.

내게 주어진 책임감 , 의무감에 짓눌려서

그러면서도 성실하게 그것들을 해낼 것이다.

도망치지도 못하면서 말로는 도망치고 싶다고 노래를 하겠지.


다만 이번엔 마음속으로만 도망치고 싶다고 말하고

겉으로는 좀 덜 징징대봐야겠다.


아무래도 그건 멋진 어른이 아니니깐.


하지만 나한테 일 그만 줘, 더 줄 거면 돈도 더줘

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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