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닿고 싶은 세계

02. 구질구질하지만 좋아하기 때문에 말하는 세계

by 블레어

사랑이란 뭘까, 무엇이길래 이토록 사람을 낯설게 만드나


그건 최근 2~3년 간 나의 화두였고 궁금증이었다.

궁금증이 생긴 건 단 하나

친구가 연애를 시작하며 나를 소홀히 여겼기 때문이다


두둥



그녀를 만난 건 중학교 1학년 때다.

음악실에 쪼로리 앉았던 1,2,3번.

우리는 번호가 나란하다는 이유만으로 말을 텄고

금세 친해졌다.


각자의 10대, 20대 시절 서로가 분명하게 존재했다.

나를 위해 울어주던 모습도, 같이 배가 찢어지도록 깔깔 웃던 모습도, 함께 느꼈던 수많은 희로애락들.


그런데, 연애하기 시작하더니 이전과 다르게 모든 게 뜸해졌다. 음, 그럴 수 있지 나도 그랬을 거야.


이해하려 애썼다가도 울컥 찾아오는 서운함.

나는 어른이니까, 를 되새기며 억눌렀다.


얘기하자니 사소하고

넘기자니 서운하고

그런 짜치는 구질구질한 마음이 뒤엉켰다.


마음은 아무리 숨겨도 티가 나기 마련인가 보다.

아닌가, 그때의 나는 투명했기 때문인 걸까.


우리는 서서히 멀어졌다.


그녀는 내가 자신의 연락을 피하는 것 같다고 여겼고

나는 그녀의 우선순위에 내가 없다고 생각했다.


삶은 바빴고 일상은 꼬박꼬박 돌아갔다.

달라진 위치와 자리는 역할과 의무를 부여했다.

서로 다른 시간선에서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 위를 거닐며

그렇게 데면데면하게 지냈다.


그리고 그녀의 결혼식을 앞뒀던 어느 날

나는 쌓아두었던 마음을 기어코 표출했다.


[얘기 좀 하자]



1년 반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우적우적 놓인 케이크를 해치우듯 먹었고

이미 다 마신 컵을 빨대로 휘저었다.

절그럭 절그럭 투명한 얼음이 빙글빙글 돌았다


"당황했겠다. 내가 갑자기 얘기 좀 하자 해서"


그 말을 시작으로 나는 모든 걸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말하는 거 너무 구질구질해서 안하려 했는데

네 생각보다 나는 널 되게 좋아해.

힘들면 너를 찾았고, 기쁠 땐 B를 찾았어.

네 모든 서사를 알았기에 네가 행복하다면 된다 생각했어

네 우선순위에 내가 밀려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나 진짜 서운했어. 속상하고.

서로 연락 안 하고 지낸 거로 시시비비 가리자는 거 아냐

나도 잘한 거 없으니깐. 근데 생각할수록 괘씸하잖아

차라리 너랑 대판 싸웠으면 금세 풀었을 텐데

말하자니 사소하고 짜치고 그래서 덮어뒀어.

근데, 여태 한 번 만난 적 없다가 결혼을 들고 와?

너 진짜 머리채 잡혀볼래?

걔가 그렇게 마성이야? 옴므파탈이냐고'


한 번 터진 서운함의 둑방은 막힐 줄 몰랐다.

햇살 좋은 일요일 어느 카페 창가 자리에서 나는

찌질하고 구질구질한 마음들을 와르르 쏟아냈다.


한풀이하듯 토해내고 나니 그 어떤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그녀는 다시 잘 지내보자고 했다.



그리고 새해에 나는 그녀에게 새해카톡을 보내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 만나자고 해준 것도 너고, 변명이나 설명 없이 네가 인정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더라고. 고맙다. 다시 잘 지내자는 네 말에 낯간지러워서 둘러댔는데 잘 지내보자'


표현하며 살아야 한다고 자주 생각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정한 마음에 한정되었다.


서운함, 속상함은 잘 표현하지 않았는데

웬만해선 친구랑 싸울 일도 없는데

유독 얘랑은 싸워봤다.


지지고 볶고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적어도 내가 뭐가 서운했다고 말할 줄 아는,

상대방이 들어줌에 고맙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의 범위를 넓혀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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