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닿고 싶은 세계

07. 20만원으로 배운 삶의 값, 가라앉아 있을 것

by 블레어

새해 버프와 60년 만에 돌아온다는 화가 많은 병오년의 버프로 나는 3개의 모임에 가입했다.

넷플연가 2개와 트레바리 1개.

4월까지 꽉꽉 찬 주말 일정에는 3개 모임의 일정과 친구들 약속이 가득 차있었다.

1월이 끝나가는 이 시점에 1분기 약속이 가득 차 있다니 뿌듯했다.


바쁘게 사는 걸 좋아했으니까

여러 모임에 나가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즐거워했으니까



그런데 어딘가 초조했다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이 계속해서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 초조함은 뭐지?

끝없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바닷물을 쉼 없이 들이키는 기분이었다.



장기연애가 이별로 엔딩을 맞이하고 싱글로 지낸 지 4년이 넘어간다.

나이는 어느새 30대 초반을 지나가고 있다.

주변 친구들은 이제 결혼이 아닌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제자리였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더 뒤쳐졌다고 생각했다.


고환율, 고물가 시대에 계약직이라는 위태로운 위치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겠다는 낭만 어린 소리를 할 때의 모습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 하나가 전부인 나


불안했고 초조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오히려 더 밖으로 나돌았다.

집에만 있으면 기회가 없으니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하다못해 동네 집 앞 카페라도 나가야 인연이 생긴다고

나는 정말 그 말을 믿고 내 인연을 찾겠다며 열심히 밖으로 나돌았다.



그러다 솔로지옥 패널로 나온 홍진경의 멘트를 보고 나는 그 문장을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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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탕물이 가라앉길 기다리는 것처럼, 가만히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봐야 한다고.



내가 이렇게까지 나돌아다녔던 이유가 뭐지?

일요일엔 피곤해서 죽은 듯이 잠만 자면서, 평일엔 피곤을 금치 못하면서, 연애 결혼 이외에도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으면서 어째서 나는 이렇게 사람에, 만남에 목맸던 거지?


잠깐, 중요한 건 뭐지?


나에게 중요한 건 혼란스럽고 복잡한 마음이 가라앉고 맑은 물이 떠올랐을 때

그걸 건져 스스로를 오래오래 귀하게 씻기는 일이었다.


스스로의 안정을 꾀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가진 게 없다면, 열심히 모아 자산을 축적하고 공부하며 늘려가야 했고

보기 못난 몸은 운동과 식단으로 다시 건강하게 관리해야 했다.

밈과 도파민으로 절여진 뇌에는 책과 글쓰기를 가까이해 정화 작업을 거쳐야 했다.


언제 만날지 모르는 인연을 놓칠까 두려워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안정적이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다가올 인연을 기다려야 했다.


결국 넷플연가 두 개는 환불 처리를 했다. 그마저도 한 개는 환불 기간이 지나 0원이었지만 날로 먹는 삶의 깨달음은 없으니까 이 정도면 꽤 선방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인연을 놓칠까 두려워 스스로를 소진시키고 노출하며 불안에 떨던 날들을 뒤로하고 나는 PT를 결제했다.

세상에서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건 내 몸밖에 없다고 하지 않던가?



초조와 불안에서 비롯된 나의 언행과 행동이 어쩌면 인연을 불러오기에 적절치 못했다는 생각도 했다.

하긴, 안정감을 보여줄 수 없는 문장들로 덧그려져 있는데 어떤 누가 함께 미래를 도모하자고 하겠는가

그걸 이제서야 깨닫다니, 역시 삶은 쉽게 얻어지는 게 없다.


달력에 가득했던 일정을 지우니 텅 빈 공간이 보였다.

이 날에 억지로 일을 잡기보다, 앞으로를 도모하며 스스로를 관리하는 시간으로 잡겠다고 다짐했다.


지친 몸으로 서울을 부리나케 찾아가 하하호호 웃으며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기보다

혼자 읽고 쓰고 운동하며 나의 안정적 기반을 다져야지.


아, 이게 20살이었던 대학생 새내기 시절 선배 언니들이 말했던 건가?


"포기해야 해. 포기하잖아? 그럼 딱 나타나."


그 말을 30대가 되어서야 다시 믿는다.

역시, 어른들 말 틀린 거 하나 없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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