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무서워 서둘렀던 것들에 대하여
봄이 다시 오고 있다. 길어진 햇빛이 비어있는 옆자리를 비추었다.
누군가와 일상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던 어느 날이었다.
인연을 찾겠다며 이 모임 저 모임을 기웃거렸다. 이성을 바라볼 때 자기만의 포인트가 있듯 나 역시 그러하다. 외모, 성격, 피지컬, 경제적 여유 등 여러 가지 조건이 있겠지만 나는 두 가지를 주로 봤다. 자신의 일에 열심히인 것과 손. 남자답게 굵직한 손마디에서 나는 큰 매력을 느꼈다.
너는 눈이 너무 높아,라는 말을 자주 듣던 작년 연말. 우연히 같은 모임에서 눈여겨보지 않았던 분이 그날따라 눈에 들어왔다. 일자로 곧게 뻗은 어깨와 운동으로 다져진 라인과 걷어올린 소매에서 보이는 전완근, 그리고 굵은 전완근에서 이어진 남자다운 손마디까지.
사람이 다르게 보였고 호기심이 일었다.
어떻게 스며들어볼까 궁리를 하며 친구들을 붙잡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다. 올해 나도 벚꽃을 이성이랑 보는 건가? 김칫국을 사발로 마시던 비 오는 봄날, 우연히 상대의 나이를 알게 됐다. 그는 내 예상보다 더 연상이었다. 봄바람마냥 살랑이던 마음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세게 밟았던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자 당장 눈앞의 마음이 보였다. 눈을 찡그리자 숨어있던 작은 돌덩이가 여기저기 보였다.
상처받기 싫어.
내가 더 좋아해서 맞이하는 이별이 무서워.
불안해하고 싶지 않아.
상대에 대해 이렇다 할 접점이 많지 않은 채 일단 스며들어보자!라고 했던 마음의 저편에는 '서둘러 결론을 내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상처받는 게 무서웠다. 특히 이성관계에선 서둘러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시간이 뜸을 들일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 사이 나의 마음이 커져 받게 될 상처가 무서웠다. 상대방의 마음을 노려보다 간극이 벌어질 낌새가 보이면, 혹은 애매함을 보일 때면 나는 재빨리 빗장을 걸었다.
누군가를 진득이 오래 알아간다는 게 어떤 감정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간질거리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이모티콘 하나에 울고 웃던 시간들이 아득하다. 감정의 낙차가 불러오는 기쁨과 환희보다 두려움과 불안감이 크다.
서둘러 다가가려던 마음을 멈췄다.
나는 진짜 상대방을 원하는가?
초조함과 불안함에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이 정도면?'이란 마음으로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게 아닐까
그건 당돌함 아니라 무례함이지 않을까
두 사람 사이에 켜켜이 시간이 쌓여 서로에게 물든다는 건 어떤 감정이었을까.
오늘의 봄밤이 조금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