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앞 쭈그려 보낸 30분의 시간
월요일 아침 새벽부터 이상하리만치 분노가 차올랐다.
아침부터 소화가 안 돼 배가 쿡쿡 아팠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머리를 박박 감고 물을 한 잔 마시고 화장대 앞에 앉았다.
왜 서랍장에 두었던 스팀다리미가 내 고데기 보관함 옆에 덩그러니 있는 거지.
물을 담는 통은 어디로 간 건지.
엄마가 서랍장을 정리한 것 같은데, 그럼 플라스틱 물통도 같이 줘야지 왜 이것만 이렇게 내버려 두듯 둔 것인지. 신경질이 난 채로 서랍장을 뒤졌지만 물통이 보이지 않았다. 이전 일을 생각하며 분리수거 통을 뒤지자 바닥에서 물통이 나왔다.
도대체 왜 물어보지도 않고 자꾸 멋대로 버리는 거야!!!!!!!!
이번엔 방에 널브러진 커다란 수건이 보였다. 아빠가 네가 쓰기 적당할 거라며 친히 펼쳐 보여줬던 수건이었다. 샤워 후 닦을 수건이면 화장실에 두면 되지 왜 이걸 굳이 내 방에 갖다 둔 거지? 또다시 화가 치밀었다.
새벽 6시가 다되어가는 시간 혼자 중얼중얼 온갖 불만과 짜증을 터트리며 화장실에 수건을 가져다 두었고
다시 챙겨 온 스팀다리미를 책상 위에 던져두고 출근했다.
정말이지
새벽 댓바람부터 빡친 건 오랜만이었다.
점심을 대충 먹고 혼자 저 멀리 산책을 나가 회사 근처(라고 하기엔 좀 먼 거리지만) 강가에 갔다.
찬 바람을 세게 맞으며 차오르는 화를 억지로 억눌렀다.
괜히 돌아가는 길에 커피를 사 먹었고 친한 동료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았지만 기분이 썩 나아지진 않았다. 어영부영 일을 끝내고 퇴근시간이 되자 나는 서둘러 가방을 챙겼다.
읽으려고 챙겨 왔던 책과 몰아 쓰기 위해 가져왔던 일기장의 무게가 묵직했다.
곧바로 퇴근하자니 사람이 몰릴 것 같고, 운동복은 가져오지 않았고, 이대로 카페를 가자니 오늘 소비가 너무 많았고 어쩌지 고민하며 밍기적거릴 때쯤, 퇴근하는 옆 자리 뉴비를 마주쳤다.
빵집을 간다길래 총총 따라가 빵구경을 하고 갑자기 빈티지숍도 구경했다.
기분은 여전히 저조했다.
갑자기 순댓국을 사 먹었다. 모든 건 기분대로 행동하는 하루였다. 기껏 욕심내어 순대정식을 시켰건만
얼큰 순댓국에선 다대기의 '얼큰'한 맛만 났을 뿐 순댓국의 맛은 나지 않았다.
이야 아주 창의적으로 돈낭비하네
혈당 스파이크였는지 집 가는 대중교통에선 꾸벅꾸벅 졸았다. 혼자 쉬익 쉬익 대며 집에 와 옷을 갈아입고 널브러진 책상을 정리했다. 고장 난 스탠드를 버렸고 마구잡이로 쌓여있던 책을 책상 위에 나란히 진열해 두었다.
독서대를 접어 책상 밑으로 내렸고 가방에 무겁게 이고 지던 짐들을 하나 둘 꺼내놓았다.
그리고 갑자기 노트북을 열어 클로드를 열고 오전에 만들었던 바이브 코딩을 수정했다.
이번에 만든 건 웹 앱 기반이라 이전에 만들었던 HTML 기반과는 달랐다. 왜 이런 방법을 추천했는지 물으며 코드에 나온 몇 개의 용어를 물어봤다. 새로운 영역에 대한 호기심이었을까, 내 손으로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성취감이었을까 기분이 나아졌다.
정렬된 책 틈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꺼내 읽었다. 똑바로 정신 차리고 안 사느냐며 다그치는 자기 계발서도,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 소설도, 요새 세상이 어떻고 저떻고를 외치는 인문서도 아닌 고전은 분노의 퓨즈를 순식간에 꺼트렸다. 책을 몇 장 읽고 나서는 차분해진 마음으로 일기를 쓸 수 있었다.
하루 종일 나를 들끓게 했던 잔잔하고 요란했던 분노는 고작 퇴근 후 쭈그려 앉아 보낸 30분의 시간으로 막을 내렸다. 내가 한 거라곤 책을 읽고 갑자기 바이브코딩을 하고 일기를 쓴 게 전부였다.
잠이 들기 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내 '통제'하에 내가 '원해서'한 일들이었다.
새벽아침에 갑자기 화가 났던 건, 내게 말 한마디 없이 나뒹굴었던 스팀다리미와 버려진 물통, 갑자기 방에 들인 수건 이 모든 것들이 '나의 통제'를 벗어났음이었다.
엄마 아빠가 나름 배려해서 생각해 준 행동이었지만 사소하게 쌓인 스트레스는 별것도 아닌 일이 시발점이 되어 항상 크게 터지기 마련이니깐. 내겐 그게 스팀다리미와 수건이었다.
그리고 잠잠해지는 것도 대단한 게 아니었다.
자기 전 읽겠다며 침대에 가득 놓았던 책, 일기장을 책상 위에 두었고 잘 공간과 '일을 하는 공간'을 분리해서 자기 전 혼자만의 시간을 쭈그려 앉아 보낸 게 전부였다.
내 삶, 일 년, 하루에 대한 통제는 어쩌면 별거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사소한 것이라도 내가 내 의지로 어떤 일을 하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 하루의 분노가 사그라든다.
공간의 분리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하는 일의 흥미.
재미를 굳이 도파민에서 찾아야 하나
세로토닌의 재미도 이렇게나 평온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