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선교원으로 9시에 등원하여 3시에 함께 하원하고 오후에는 센터를 다니고 돌아와 저녁을 하고 밤에는 큰 아이와 작은 아이들을 보듬고 공부를 시키며 시작한 선교원 생활은 아이의 나이가 4살부터 초등학교 입학을 유예하여 8살까지 5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선교원 어머님들과 전도사님께서 자폐 중증인 아이를 선교원에 받아들이실 건지 한 달간 함께 기도하며 어머님들의 마음을 미리 준비하게 해 주셨다는 것과 전도사님께 상담을 간 시점이 신기하게도 전도사님이 칼비테 책을 읽으신 직후였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고 놀라웠다.
칼비테의 교육법 (저자 : 칼비테, 출판 : 차이정원)
칼비테는 자신의 아이를 영재로 키우기 위해 부모가 되기 전부터 예비하였지만 태어난 아이는 탯줄을 목에 걸고 나와 뇌의 기능이 많이 손상된 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비테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그동안 준비하였던 교육을 아이에게 가르쳤고 그 결과 칼비테 주니어는 어린 나이에 교수가 되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 기준에는 버림을 받아도 마땅한 아이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교육을 시킨 칼비테.
칼비테 책의 비전을 보고 진창바닥에 누운 아이를 받아주신 전도사님과 함께 기도하며 선교원 공동체 안으로 초대를 해주신 어머님들이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함께 기도하셨던 어머님들 중 한 분이 나에게 다가와 아지가 깜깜한 닫힌 방에 있는데 그곳에 창문을 내어서 바람이 통하게 해주게 하라고 하셨다는 응답을 나에게 전해주시는데... 정말 힘이 들고 다 놓고 싶을 때도 그 바람이 통하는 창문을 닫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 나에게 참 큰 힘이 되었다. 나와 발달장애아인 아지의 닫힌 삶에 선교원은 창문이었고 시원하게 들어오는 바람이었다.
자폐 아이인 아이와 엄마가 함께 다닐 수 있었던 선교원이 나의 터닝 포인트이자 회복의 시작이었고,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회복되고 아이가 회복되니 가정의 회복과 안정도 조금씩 찾아왔다. 그렇다고 아이가 자폐를 벗어났거나 드라마틱한 변화의 회복이 아니라, 발달장애아이들의 한계를 정하고 교육하는 세상의 교육방식에서 벗어나 늦어도 아이의 성장이 있을 거란 기대감을 엄마인 나뿐만 아니라 선교원이라는 공동체가 모두 한마음으로 함께 아이의 성장을 기대하고, 실제로도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주었다는 것을 경험함으로써 정서적인 회복이 있었다. 너무 힘이 들고 다 그만두고 싶을 때에도 나 말고 아이를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아이를 옆에서 응원해 주고 도와주는 아이의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다개국어를 하며 잘 자라는 아이의 친구들 속에서 무조건 눕는 아이를 일으켜 세우며 1-2년을 보내는 것은 정말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었지만 선교원이라 가능했던 시간이었고 공간이었고 기회였다. 4살 반까지만 엄마와 등원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선교원의 배려 덕분에 5,6,7세에도 아이와 함께 등원하여 아이를 밀착 보육을 하고, 보육을 넘어 교육까지 할 수 있었고, 아이는 눈부시게 자라났고, 친구들도 아이를 자기의 숨결처럼 편안하게 생각하고 옆에서 정말 잘 도와주었다. 아이의 동서남북 빈틈없이 아이를 옆에서 보살펴주고 챙겨주고 잔소리를 해주는 친구들 덕분에 아이는 지금도 그 친구들과 행복한 초등학교 2학년 생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