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의 예술, 영화의 역사(1)-영화카메라의 탄생
문학, 조각, 회화, 음악, 연극, 무용
영화가 탄생하기 이전까지 이야기를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부르는 매체는 여섯 가지에 불과했다.
그중에서도 '이야기(story)'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는 문학과 연극이었다.
일단 근본적으로 왜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할까?
이야기는 우리에게 타인을 관찰하게 만들고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체험하게 한다.
즉, 우리는 개개인이 가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타인의 인생을 통해 끊임없이 체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성경, 역사, 게임, 뉴스, 노래 가사 등등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모든 것에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인류는 항상 예술을 통해 현실을 거울처럼 복제하여 사람들의 사고를 확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러한 노력은 19세기까지 이어졌고 마침내 '카메라'를 등장으로 또 다른 전환기를 맞이한다.
19세기에는 대중문화의 막대한 급증이 일어났다.
카메라의 등장은 인쇄술과 의료, 과학분야와
산업화 전반에 지대한 공헌을 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카메라는 '종군기자'라는 직업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미지출처:구글)
19세기 과학자들은 시각 잔상에 대해 탐구했다.
비슷한 이미지들을 최소 초당 16장을
빠르게 연속으로 볼 수 있도록 놓인다면
움직이는 것처럼 인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탐구를 통해 움직임의 잔상을 주는
몇몇 시각적 장난감이 만들어졌고 판매되었다.
1832년, 벨기에 물리학자인 조셉 플라토(Joseph Plateau)와 오스트리아 기하학 교수인 사이먼
스탬퍼(Simon Stmpfer)는
'페나키스토스코프(Phenakistoscope)'라고 불리는 도구를 고안했다.
이어 1833년에는 영국의 수학자
윌리엄 조지 호너(William George Horner)가
'활동 요지경(Zoetrope)'이라는 도구를 만들었다.
페나키스토스코프(Phenakistoscope)와 활동 요지경(Zoetrope)/이미지출처:위키백과
특히 활동 요지경은 1867년 이후에 다른 시각적 장난감들과 널리 판매되었다.
어찌 보면 영화는 유희를 좋아하는 인간들이 만든 장난감에서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최초의 영사기능 카메라 등장
최초의 카메라는 현재의 아날로그 카메라의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 초기의 영화 카메라 중에서 미국의 발명가인
토마스 에디슨(homas Alva Edison)이 만든 '키네토스코프'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토마스 에디슨(homas Alva Edison)/이미지출처:구글
키네토스코프가 다른 카메라와 차별된 지점은
바로 영사기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단 한 명만이 뷰파인더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개인관람의 방식이었다.
에디슨은 영화가 연극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일 만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뷰파인더를 통해 보는 1인관람 방식의 키네토스코프/이미지출처:구글 이처럼 키네토스코프는 관객들이 모여있는
영화관 스크린에 필름을 투사하여 빛을 쏘는
현재의 방식과는 차이가 있었다.
에디슨의 영화는 현대적인 영화의 방식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영화 카메라를 먼저 발명했음에도
그 뒤에 등장하는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에 밀리고 말았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