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순례길 Via Francigena를 걸을 결심 1
애증의 일터를 잠시 벗어나기로 했다. 3개월이면 천만 원을 모아 올 수 있는데 눈 딱 감고 3개월 다녀오는 게 그렇게도 싫었다. 이제 30살이나 되었는데 가기 싫다고 일 안 가고 아직도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자괴감이 몰려오는 동시에 30살이 되었는데도 하기 싫은 것 꼭 하고 살아야 하나 현타가 왔다. 뭐 어떻게 해, 배 타기 싫어서 일부러 비행기 놓치는 꿈까지 꿨는데..(나는 배를 타는 일은 한다) 꿈에 나올 정도로 가기가 싫다는데..
이게 다 비행기가 싸다고 얼떨결에 다녀온 미국여행 때문이다. 난생처음 미국여행을 갔는데 온통 드는 생각은 ‘여기 이탈리아보다 못하네, 역시 나는 시칠리아가 맞나 봐’ 였다. 내 주위 사람들은 말한다 “도대체 시칠리아는 어떤 곳이기에 네가 그렇게 시칠리아 시칠리아 하는 거니?” 그러니까 말이다. 난 전생에 이탈리아 남부 출신 사람이었는지 이탈리아는 내가 살아본 다섯 개의 나라를 통틀어 가장 나와 맞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였다. LA에서는 친구와 함께 지내다가 샌프란시스코에 3일을 오로지 혼자 다녀오게 되었다. 친구와 함께 여행할 때에는 내 맘대로 하지 못했는데 이제부터는 혼자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 LA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넘어왔기에 일단 샤워부터 하고 호스텔 침대에 누워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인 시칠리아에 있는 이탈리아어 어학원을 찾기를 시작했다.
이탈리아 중북부에 비해 남부로 특히 시칠리아로 어학연수나 유학을 가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인지 시칠리아는 어학원의 선택지가 너무 좁았다. 거의 사설 어학원뿐이었는데 학비가 만만치가 않았다. 이럴 거면 시칠리아를 포기하고 중북부로 가야 하나? 내가 이탈리아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가 시칠리아 때문인가 아니면 시칠리아가 아니어도 괜찮으려나? 나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아 머리 아파!
결국 이날은 샌프란시스코 여행은커녕 호스텔에서 하루 종일 이탈리아어 어학원을 찾아보다가 끝났다. 내 이탈리아어 실력이 많이 녹슨 것 같은 마음에 실제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고 싶어서 한 시간이 넘게 온라인 테스트도 봤다. 다행히 읽기, 문법에서는 크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았다. 다만 이탈리아를 떠난 지 벌써 2년이 넘어 이탈리아어를 안 쓴 시간이 기니 말하는 데에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나마 내가 내세울 수 있던 이탈리아어 조금 한다는 것도 이제는 당당히 내세울 수가 없다는 점이 큰 슬픔과 스트레스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