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철학이 신문명의 초석이다
이 책은 민주주의의 이상을 정보 사회의 현실에 맞춰 새롭게 그려낸다. 정보 기술이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한다는 주장을 넘어서, 폭넓게 연결된 사회의 등장이 민주주의 자체를 변화시킨다는 점에 주목한다.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책은 장자크 루소의 '일반 의지' 개념에서 시작한다. 오랫동안 문제적이고 비판받던 이 개념이 컴퓨터와 네트워크로 가득한 정보 사회의 관점에서 읽으면 놀랍도록 명확해진다. 루소를 구글과 트위터를 통해 다시 읽으며 '일반 의지'의 새로운 정의를 모색하고, 심의나 선거, 정치적 협상 없는 또 다른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 사회가 정치적 실망과 소셜 미디어 확산으로 흔들리던 시기에 집필된 이 책은, 일본인이 심의에 서투르지만 '공기(空気を読む, 분위기를 파악하는 능력)'를 읽고 정보 기술에 능숙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기술적으로 '공기'를 시각화하여 사회적 합의의 기초로 삼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제안하며, 일본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기둥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비록 동일본 대지진 이후 저자의 인식이 일부 바뀌었지만, 그는 이 책이 정보 사회 경험을 활용하여 민주주의 원칙을 갱신하려는 꿈을 담고 있다고 강조하며 독자들을 '일반 의지 2.0의 세계'로 초대한다.
아즈마는 이 책에서 미래 사회에 대한 '꿈'을 학술 논문이 아닌 에세이로 풀어낸다. 각주와 참고문헌으로 가득한 방어적인 글쓰기는 꿈을 질식시키며, 꿈 없는 곳에 미래도 사상도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의 꿈은 두 가지 전혀 다른 지적 욕구와 맥락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성된다. 하나는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여겨지지만 논란이 많았던 장자크 루소의 '일반 의지' 개념이다. 정보 사회의 관점에서 루소의 주장을 문자 그대로 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난 20년간 경제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정보 기술 혁명이다. 구글의 사명 "세상의 정보를 조직하여 모두가 접근하고 유용하게 만들자"는 말처럼, "세상의 정보를 조직하자"는 구절이 2세기 반의 시차를 넘어 '일반 의지' 개념과 공명한다.
루소 시대에 '일반 의지'는 순전히 가상의 개념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가설을 기술적으로 실현할 가능성을 얻게 되었다. 저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용어를 빌려, 이 책의 주제가 '일반 의지'라는 '잠재적 내용'이 정보 기술을 '재료' 삼아 짜내기 시작한 '근대의 꿈'을 시각화하는 시도라고 설명한다.
루소는 18세기 프랑스의 다재다능한 '작가'였으며, '사회 계약론' 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사상은 개인의 자유와 감정을 옹호하는 '극단적 개인주의자'와 전체에 대한 개인의 절대적 복종을 강조하는 '극단적 전체주의자'라는 두 가지 모순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아즈마는 이러한 모순이 루소와 민주주의의 미스터리라고 말한다.
루소의 정치 사상에 나타나는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간의 모순은 현대 정보 환경의 관점에서 보면 기술적 수단을 통해 극복되어야 할 '정책 문제'로 비친다.
루소에게 사회 계약은 "각 동반자가 자신의 모든 권리를 전체 공동체에 양도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개인 의지의 총합으로서 '일반 의지'가 탄생한다. 그는 이 공동체의 주권이 일반 의지에 있다고 보았으므로, 시민들은 일반 의지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요한 점은 루소의 사회 계약이 통치자와 피치자 간의 계약이 아니라, 통치자와 피치자 모두가 거주하는 공동체 자체를 탄생시키는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일반 의지를 실행하는 '도구'에 불과하며, 주권은 국민의 집단적 의지에 있으므로, 정부 형태는 지리적·인구학적 조건에 따라 군주제든 민주제든 적합할 수 있었다. 이 주권과 정부의 구별은 국민에게 '혁명의 권리'를 보장하는 중요한 논리였다.
전통적으로 '일반 의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이나 '허구'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아즈마는 루소의 텍스트를 문자 그대로 읽는 파격적인 시도를 한다. 루소는 일반 의지를 '여론'과 함께 언급하기도 하지만, 일반 의지는 '항상 옳고, 항상 공공 복지를 지향한다'고 주장하여 '여론'보다 더 추상적인 개념임을 밝힌다.
루소는 '일반 의지'와 '모든 사람의 의지(volonté de tous)'를 구별한다. '모든 사람의 의지'는 개별 의지의 단순한 합계로 때때로 오류를 범할 수 있지만, '일반 의지'는 '결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고 한다. 루소는 '모든 사람의 의지'에서 "상쇄되는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제외하면 남는 차이의 합계가 일반 의지"라고 수학적 표현을 사용하여 일반 의지를 정의했다. 이는 현대의 벡터 개념에 비유하여 이해될 수 있다. 개별 의지는 방향을 가진 벡터이며, 일반 의지는 이러한 방향적 차이를 충실히 상쇄하여 벡터의 합을 계산하는 방식이라고 해석한다. 아즈마는 루소가 수학자는 아니었지만, 일반 의지가 수학적으로 계산 가능하다고 믿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해석은 루소의 '사회 계약론'이 현대 민주주의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재고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아즈마는 정보 기술 혁명을 전제로 한 미래 사회의 사회 계약에 대해 이야기하며, 일반 의지는 정부 밖에 존재해야 할 정치적이지 않은 '무언가'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루소의 일반 의지가 '수학적 실체'이며 '사물의 질서'에 속하고 '소통의 질서' 밖에 있다는 해석은 현대 민주주의의 기원에 웹과 같은 집단 지성의 관계가 이미 새겨져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루소는 '부분적 결사의 금지'를 주장하며, 일반 의지가 형성되려면 사회가 단일한 실체여야 하므로 수많은 결사로 나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는 시민들이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서 정당이나 단체를 형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소는 대표제를 '필요악'으로 보았고, 시민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지 않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은 채로" 개별 의견만을 진술할 때 일반 의지가 잘 추출된다고 명확히 주장했다.
일반 의지는 '차이의 합계'이며, 차이의 수가 많을수록 정확도가 높아진다. 따라서 시민들 간의 의견 조율은 차이를 감소시켜 일반 의지를 부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루소는 보았다. 그는 심지어 정치적 논의와 '소통'을 일반 의지의 출현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여겼다. 이는 루소가 정치를 '소통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음을 의미한다.
루소는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소망을 표명하기만 해도 '일반 의지'가 즉각적으로 발생하는 독특한 상황을 꿈꿨다. 인간은 이러한 상황이 실현되어야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사상은 인간과 사회, 문명에 대한 독특한 관점에서 비롯된다. 루소는 고독을 소중히 여겼고,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고독하게 지내는 것이 더 낫다고 보았다. 사회 속에서 타인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은 허영심, 악덕, 불평등을 낳아 자유를 박탈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파리 살롱 문화의 '잡담'을 혐오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며, 평생을 악보를 베끼거나 연애소설을 쓰는 '오타쿠(geek/nerd)'와 같은 삶을 살았다. '사회 계약론'이 제시한 이상 사회는 이러한 약한 인간이 상상한 비전이었다.
결론적으로 루소의 극단적인 개인주의자와 전체주의자라는 두 얼굴은 실제로는 모순되지 않는다. 이 두 가지 특성 모두 인간을 '인간의 질서'(소통)로부터 해방시켜 '사물의 질서'(일반 의지)에 따라 살게 하려는 그의 이상에 봉사하기 때문이다.
일반 의지는 수학적 실체이며, 사물의 질서에 속하고, 소통의 질서 밖에 존재한다. 따라서 일반 의지를 생성하는 데 공동체 구성원 간의 합의는 필수가 아니다. 구성원들이 심의하거나 소통하지 않아도, 심지어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공동체가 존재하면 일반 의지는 '사물처럼' 존재하며, 통치는 이 존재에 따라야 한다. 이는 소통이 없는 정치, 혹은 소통 밖에 존재하는 정치라는 꿈이 현대 민주주의의 기원에 새겨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아즈마는 프랑스어 'volonté générale'를 '일반 의지'보다는 '일반적 욕망' 또는 더 비공식적으로 "모두의 소망을 균등하게 한 것"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회의에서 마실 음료를 결정하는 문제와 같이 참가자들이 토론할 필요 없이, 이미 결정된 참가자들의 '욕망'(개별 의지)의 균형점(일반 의지)을 찾는 것이 합리적이다. 참가자들의 이전 음료 선택 기록을 활용하여 계산 공식으로 원하는 음료를 예측하는 것은 '모두의 소망을 균등하게 한 것'이 수학적으로, 소통 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해는 '정치'라는 개념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과 충돌한다. 한나 아렌트와 위르겐 하버마스 같은 20세기 주요 사회 사상가들은 공공 공간이 '말'과 '담론', 즉 '소통'을 통해 창조된다고 주장했다. 하버마스에게는 심의를 통한 의지 형성이 공적 영역의 필수 요소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즈마의 '소통 없는 정치'는 '정치'라고 불릴 가치가 없다고 비판받을 수 있다.
반면, 20세기 초의 법학자 카를 슈미트는 정치의 본질이 '친구'와 '적'을 구별하고 적을 존재론적으로 파괴하는 데 있다고 정의했다. 슈미트의 정치 개념은 아렌트와 하버마스와 완전히 다르지만, 일반 의지 2.0의 비전은 이 정의와도 맞지 않는다. 일반 의지는 친구와 적을 구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즈마는 일반 의지 2.0이 심의를 필요로 하지 않고, 친구와 적을 구별하지 않는, "우리가 지금까지 정치라고 불러왔던 것과는 동떨어진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루소의 일반 의지는 당대에는 추상적인 이상에 불과했지만, 아즈마는 정보 기술 혁명 속에서 그의 '미숙하고 위험한' 아이디어가 오늘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구글 사용자는 서로 의견을 교환하지 않지만, 검색어 선택, 페이지 뷰 기록, 광고 클릭 빈도 등 각자의 행동이 축적되고 분석되어 거대한 지식 체계를 형성한다. 구글은 우리의 '무의식적인 조직 행위'를 시각화한다. 유비쿼터스 사회는 컴퓨터와 센서가 도처에 깔리고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데이터로 축적되는 사회로, '개인의 의도'를 넘어선 '무의식적 욕망의 패턴'을 추출할 수 있다. 트위터/포스퀘어 또한 수많은 사용자들이 매초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공개하며, 이 엄청난 양의 데이터에서 개인의 의도를 넘어선 무의식적 욕망의 패턴이 추출될 수 있다.
아즈마는 이러한 데이터의 축적 자체를 '현대 사회의 일반 의지'로 간주하며, "일반 의지는 데이터베이스다"라고 선언한다. '구글 일본어 입력'의 경우, 인터넷상의 방대한 일본어 텍스트를 수집하여 사전이 끊임없이 갱신되는데, 이는 저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며 '누구도 의식하지 않지만 모두가 구글에 봉사하는' 모순을 보여준다. 이는 '유비쿼터스 표현 사회'가 아니라 '유비쿼터스 기록 사회'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은 사생활이 상실된 '감시 사회'로 비판받을 수 있지만, 아즈마는 이를 국가 권력의 감시나 거대 기업의 정보 착취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21세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개인 정보를 사적 기업의 서비스에 맡기는 독특한 현상으로, 사생활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음을 나타낸다. 아즈마는 이러한 변화가 '주체', '책임', '증언', '정체성' 등 20세기 철학의 핵심 개념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주체의 시대'인 근대의 종언을 의미한다고 본다.
아즈마는 자신의 루소 해석이 루소가 실제로 생각한 것을 그대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의 시점에서 루소의 텍스트를 '과도하게 읽고' '새롭게 해석'한 것임을 인정한다. 그는 고전이 동시대 사회를 개혁하려는 목적을 가질 때 비로소 살아난다고 주장하며, 구글과 트위터를 소환하여 루소를 되살리려는 것이 이 책의 시도라고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즈마는 '일반 의지 1.0'을 루소에게 충실한 개념으로, '일반 의지 2.0'을 유비쿼터스 기록 사회의 현실 속에서 재해석 및 갱신된 개념으로 정의한다.
일반 의지 1.0: 인식 불가능한 추상적인 이상으로, '입법자'라는 초인적 존재(dictator)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져 비판받았다.
일반 의지 2.0: 구체적인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서버에 저장되어 인식 가능하며, 따라서 입법자와 같은 초월적 존재가 필요 없다.
루소의 철학을 현대 기술과 연결함으로써, "모든 사람과 결합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만 복종하고 이전과 같이 자유로운 상태로 남아 있는" 루소의 수수께끼 같은 말이 비로소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이해된다. 이는 정부와 주권의 구별을 강조한 루소의 사상을 바탕으로, 국민의 의지를 '대표'할 필요성이 사라지고, 몇 년에 한 번씩 선거로 '인민의 의지를 위임'하는 과정이 정당성을 잃게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일반 의지 2.0은 우리가 오늘날 가지고 있는 국가의 이미지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아즈마는 20세기 정치 사상이 미숙하고 위험하다고 여겨 억압했던 '일반 의지'의 이상이, 정치 영역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예상치 못한 형태로 '꿈'처럼 재현되고 있다고 말한다. 구글과 트위터는 새로운 정치 참여 형태를 넘어서, 지난 2세기 동안 우리가 만들어온 정부 시스템과 국가 형태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아렌트와 하버마스는 '정치'가 실질적인 토론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지만, 아즈마는 이러한 전제가 오늘날 통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21세기에는 정보 흐름의 증가로 사람들이 너무 쉽게 서로 연결되면서도 "타협점을 찾을 수 없는 타인들"에게 끊임없이 시달리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테러리즘이나 인터넷상의 극심한 의견 대립이 그 예시다. 복잡성이 증가하여 개인의 '제한된 합리성'을 넘어섰고, 소통은 마비되어 선호도를 조정하려는 시도조차 불가능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적인 이해관계를 관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반 의지 2.0의 철학이 오히려 작지만 생산적인 토론 공간을 실현하고 각 개인의 선호를 변화시키는 데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아즈마는 주장한다.
루소가 2세기 반 전에 꿈꿨던 일반 의지는 오늘날 '일반 의지 2.0'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정보 환경에 새겨진 행동과 욕망의 기록을 의미하며, 구글이나 트위터 같은 서비스에서 그 싹을 볼 수 있다. 루소는 정부가 일반 의지에 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현대에 적용하면 미래의 정부('정부 2.0')는 일반 의지 2.0에 봉사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정부 2.0은 시민들의 명시적이고 의식적인 의지(루소의 '모든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정보 환경에 새겨진 집단 무의식/일반 의지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무의식에 의해 인도되는 정부'의 모습이다.
팀 오라일리 같은 이들이 주창하는 '정부 2.0'은 정부를 시민들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플랫폼'으로 이해한다. 아마존닷컴이 고객의 구매 기록에 따라 상품을 추천하듯, 정부 2.0은 시민 개개인의 정보를 최대한 저장하고 분석하여 교육, 의료, 고용 지원 등 맞춤형 '선택'을 제공하는 거대한 서비스 산업과 같다고 비유한다. 이는 특정 서비스를 강요하지 않고 시민들의 선택지를 확대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정부 2.0의 이미지는 오늘날 정부에 대한 불만을 해소할 수 있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정치'의 정의와 충돌한다. 아즈마는 하버마스와 아렌트의 '열린 심의'를 통한 공적 공간의 이상이 오늘날 거의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일반 의지 2.0을 비판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대신, 그는 현 사회 상황과 기술적 조건을 전제로 하여 '심의와 같은 것'을 육성하고 '공적 공간과 같은 것'을 만들어낼 '설계'('아키텍처')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래의 정부는 시민의 무의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시민 간의 의식적 소통을 활성화하는 양면성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일반 의지 2.0'은 정보 환경에 새겨진 모든 시민의 행동과 욕망의 기록을 의미한다. 미래의 정부 2.0은 명시적이고 의식적인 의지(선거, 공청회 등)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무의식적인 욕망'을 적극적으로 수집하여 정책에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공 사업 추진 시 전문가 의견이나 주민 청원 외에, 스마트폰 위치 정보, 유료도로 데이터, 인터넷 게시물 등 익명 사용자의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국민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시각화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이는 능동적인 시민을 전제로 한 기존의 정치 참여 방식으로는 특정 이익 집단이나 '직업적 시민'만 참여하게 되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루소는 '일반 의지'를 '모든 사람의 의지'(토론을 통한 집단의 합의)와 구별하며, 일반 의지는 '결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루소는 시민들이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알지 못한다고 보았으며, 이를 시각화하기 위해 '입법자'라는 초인적 존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즈마는 루소의 이러한 생각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즉 인간이 자기 자신의 욕망을 잘 모른다는 '무의식' 개념을 이미 예견했다고 해석한다. 루소는 합리적인 계산이 아니라 '연민'과 같은 감정 때문에 사회가 형성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점에서 그의 인간관은 프로이트와 유사하다고 본다.
둘째, 인터넷은 오늘날 '무의식'의 특성을 기록하고 시각화하는 장치다. '유비쿼터스 기록 사회'에서 개인의 의식적 행위 외에도 사용자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놀라운 '경향'과 '패턴'이 분석을 통해 드러난다. 예를 들어, 구글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하면 나타나는 자동완성 기능은 수많은 사용자들의 무의식적 입력 경향을 보여주며, 이는 일본에서 '남편'이라는 단어 뒤에 부정적인 단어("남편 죽어라")가 자주 뜨는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인터넷의 진정한 정치적 가능성은 블로그나 소셜 미디어의 의식적인 '글의 내용'보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무관하게 수많은 글에 던져진 '메타 콘텐츠'의 특성(어휘 경향, 텍스트의 리듬, 작성 속도 등)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능력에 있다. 이는 마치 프로이트가 환자의 무의식을 파헤치기 위해 말실수나 망각을 분석했던 것과 유사하다.
나아가 아즈마는 인터넷의 '링크 구조'가 프로이트가 설명한 '무의식의 구조'와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무의식에서는 '부정'이 없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은 구글의 페이지랭크 알고리즘과 비슷하게 해석될 수 있다. 페이지랭크는 페이지의 내용이나 긍정적/부정적 평가와 무관하게 '링크된 수'만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는 무의식에서 긍정과 부정이 같은 효과를 내는 것과 유사하다. 이는 이성적 사고를 넘어 무의식적 영역에서 긍정과 부정의 구별이 무의미하다는 통찰을 공유한다.
미래의 21세기 국가는 컴퓨터와 네트워크가 환경의 모든 곳에 삽입되어 방대한 개인 정보가 데이터베이스화되고, 국민의 무의식이 매일 집계되어 '통치의 기반'을 형성할 것이다. 아즈마는 이러한 변화가 '감시 국가'나 '신자유주의화'로 비판받는 것은 단순화된 시각이며, 오히려 이 변화는 이념적으로 중립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정부 2.0이 정부(공적)와 국민(사적)의 경계를 넘어 시민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서비스 플랫폼(공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긍정과 부정의 대립을 넘어 무의식적 영역과 맥락을 같이한다.
헤겔은 '사회'를 개별 욕망의 총체인 '욕망 체계'로 보았고, '국가'는 이 총체를 인식하고 통일하는 '사회적 자기의식'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헤겔은 루소의 일반 의지 개념이 개별 의지의 합계로 묘사되어 불완전하다고 비판하며, 국가의 의지는 개별 의지의 집합이 아니라 더 높은 논리적 차원의 '자기성찰적' 의지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즈마는 루소의 '일반 의지'를 정보 환경에 새겨진 무의식적 활동 이력인 '거대 데이터베이스'로 구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즈마는 헤겔의 국가-사회 도식을 재구성하여 현대 사회가 자신을 인식하는 두 가지 수단이 있다고 제시한다.
국가: 사회 현실의 의식적 이해, 즉 심의(General Will 1.0)를 통한 상향적 움직임이다.
데이터베이스: 사회 현실의 무의식적 기록, 즉 정보 기술이 산출하는 거대한 데이터베이스(General Will 2.0)를 통한 하향적 움직임이다.
아즈마는 20세기 사회 사상가들이 '정치'를 소통과 의식적인 심의에 한정하며 일반 의지 2.0에 기반한 통치를 '정치'가 아니라고 비판하는 것이 헤겔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사회가 자신을 인식하고 표명하는 두 가지 다른 수단을 갖추게 되었으므로,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행동이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에 의해 지배되며, 의식과 무의식의 충돌이 '성격'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아즈마는 이러한 모델을 국가에도 적용하여, 미래의 정부 2.0은 '일반 의지 1.0'(의식적/심의)에도, '일반 의지 2.0'(무의식적/데이터베이스)에도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의 '충돌 현장'이자 '인터페이스'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데이터베이스의 확장을 통해 심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심의의 논리를 통해 데이터베이스의 폭정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는 20세기 후반 서구와 일본에서 사회의 복잡성이 증가하고 정치적 기능이 약화되는 동시에, 컴퓨터가 처리하고 기록하는 정보량이 급증하면서 '심의의 손실을 데이터베이스로 보완하는' 움직임이 무의식적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통찰을 반영한다.
아즈마는 일반 의지를 '사물'(프로이트와 라캉의 '사물' 개념과 유사)처럼 이해해야 한다고 반복하며, 정치를 '대중의 욕망을 제약 조건으로 삼아 국가를 통치하는 기법'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마치 중력이나 컴퓨터 운영체제가 건물 건설이나 문서 작업의 불가피한 제약 조건이 되듯이, 대중의 시각화된 욕망을 정책 수립의 제약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미래 정부는 심의와 데이터베이스의 충돌 현장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시각화된 무의식/일반 의지를 '사물'로 간주해야 한다. 정부 활동은 예산, 헌법, 환경 등 다양한 제약 조건 아래에 놓이는데, 대중의 욕망 또한 이와 유사한 물질적 제약 조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엘리트와 대중의 의지 충돌이라는 기존의 구도를 비판하고, 오히려 개개인이 엘리트이기도 하고 대중이기도 한 현대 사회의 복잡성을 반영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보여주듯이, 욕망은 이성에 의해 쉽게 억제되지 않는다. 민족주의와 같이 이성적 토대 없이 욕망에 뿌리내린 '이념'은 논리적 비판으로 통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대중의 욕망, 즉 일반 의지를 설득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대신, 물리적 환경이나 재정처럼 익명적이고 집단적인 '사물', 즉 물질적 제약 조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인들의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혐오감'은 정책 입안자들이 수용하고 그 안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새로운 '무의식적 제약 조건'이 된다.
'일반 의지를 사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부과하는 제약 조건 안에서 정책 심의를 진행하는 정치'의 구체적인 예시로, '예산 편성 공개 검증' 당시의 인터넷 중계와 트위터 반응을 들 수 있다. 당시 트위터 사용자들의 '트윗'은 특정 키워드로만 묶였지만, 미래에는 형태론적 분석이나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수많은 트윗에서 단어 사용 경향과 상호 연결성을 실시간으로 추출하여 '소화 가능한 도표'로 시각화하고 심의실에 투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전문가들의 논의에 분명한 결론을 강요하지는 않지만, 수십만, 수백만 트윗에서 걸러진 감정의 총합은 토론에 참여하는 정치인과 전문가들에게 '그들을 둘러싼 벽'처럼 느껴져 논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는 심의와 데이터베이스 간의 충돌 지점을 보여주는 미래 정책 토론의 한 형태다.
건축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도시 계획 방법론 또한 이러한 아이디어를 뒷받침한다. 그는 고속도로 노선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26가지 요인(건설 비용, 환경 피해 등)의 분포를 지도에 색상으로 시각화하여 중첩시켰다. 그 결과 드러나는 두꺼운 선들은 최적 노선의 패턴을 보여주는데, 이는 특정 경로를 자동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계획자의 자의적인 욕망을 제약하는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유비쿼터스 기록 사회'에서 스마트폰 위치 정보, ETC 기록, 인터넷 게시물 등을 통해 수집된 '사용자 욕망 지도'는 '27번째 지도'처럼 중첩되어 정책 입안자들의 무모한 계획을 자연스럽게 제약할 것이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세 가지 기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루소의 '일반 의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 루소의 일반 의지는 토론에 의해 중재되는 의식적인 합의가 아니라, 열정으로 넘쳐나는 '집단 무의식'을 의미한다. 루소는 이성의 힘을 믿지 않았고, '야만인'의 본능을 신뢰했다. 그의 이상은 의식이 아닌 무의식, '인간의 질서'가 아닌 '사물의 질서'에 의해 인도되는 사회였다. 이는 '일반 의지'가 의식적인 행동이나 합리적인 판단에 기반한 '사회 계약'이 아니라, '의지로 인식되지 않는 의지'와 '계약으로 인식되지 않는 계약'에 대한 루소의 통찰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현대 민주주의는 "대중의 무의식에 봉사하는 것"을 목표로 탄생했다.
둘째: 정보 기술에 의한 '무의식의 시각화'. '대중의 무의식에 봉사하는 것'은 위험한 개념으로, 루소의 일반 의지 논의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 대한 희망과 연결되어 전체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무의식을 시각화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등 다양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 현대 사회는 '유비쿼터스 기록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활동과 생각을 네트워크에 기록하며, 이를 통해 '무의식의 시각화'가 이루어진다. 수많은 공개 데이터(트윗, 위치 공유 등)를 분석함으로써 대중의 욕망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으며, 미래의 정부는 이러한 시각화된 무의식을 통치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발터 벤야민이 영화를 '광학적 무의식'을 기록하는 장치라고 한 것처럼, 인터넷은 '무의식을 시각화하는 장치'라고 아즈마는 비유한다.
셋째: 심의와 데이터베이스의 상호 보완을 통한 미래 통치 모델. 루소는 '입법자' 없이도 일반 의지가 형성될 수 있다고 보았고, 소통 없이도 정치(정숙한 은둔자들의 공공성)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즈마는 역사의 교훈(20세기 초 열정/무의식의 폭력)을 들어 루소와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로이트는 열정(무의식)이 이성(의식)보다 강력하지만, 결국 통제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대화 치료(talking cure)'처럼 무의식의 욕망을 언어화/시각화하여 정신 에너지를 적절히 유도하고 폭발을 제어하는 태도가 미래 통치에 필요하다. 따라서 미래의 통치는 '대중의 무의식을 철저히 시각화하고 이를 제약 조건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의식의 빛을 잃지 않는 정치'여야 한다. 이는 심의와 데이터베이스 간의 상호 보완과 충돌을 통해 나아가는 방식이다.
20세기 후반 사회 사상가들은 정치의 핵심으로 시민 간의 이성적 토론과 책임 있는 합의 형성을 강조했지만, 이는 '심의 참여 비용'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인간은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심의 참여는 막대한 심리적 비용을 요구한다.
아즈마는 '책임감 있고 이성적인 '성숙한 주체'의 부활'을 설파하는 전통적인 담론이 현실 감각이 없고 이론적으로 파산했다고 비판하며, '열정/무의식(일반 의지)을 모으는 문제'를 공공성, 정의, 자유 논의에 다시 연결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는 구글이 독재자를, 트위터가 민족주의를 대신한다는 비유로 설명된다.
실천적 함의: 법률 및 예산안 수립 시, 전문가와 정치인의 심의 과정에 청중의 '인상'을 대규모로 수집하고 시각화하여 '논쟁의 제약 조건'으로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 부처의 모든 회의나 정책 입안 과정이 예외 없이 인터넷에 중계되고, 회의실 모니터에는 수만 명 시청자의 반응(태그 클라우드, 네트워크 차트 등으로 시각화된 통계적 처리 결과)이 동적으로 피드백되는 '완전히 시각화된 정치체'를 구상한다. 이는 은둔자(hikikomori)와 같은 이들의 집단 지성을 활용하여 정책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공적 공간을 형성할 수 있다. 아즈마는 이러한 '평범하고 작은 변화'가 민주주의 미래의 핵심적인 문제라고 강조한다.
미래 국가에서 의회는 정치의 유일한 중심이 아니라, 타원의 두 초점 중 하나처럼 '하나의 중심'에 불과할 것이다. 아즈마는 직접 민주주의(전자 투표 등)의 도입을 제안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는 너무 복잡하여 유권자의 인지 능력을 넘어설 것이므로, 직접 민주주의는 참여 비용만 높여 오히려 투표율을 낮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대신 '무의식 민주주의'라는 완전히 다른 원리에 기반한 정치 시스템을 제안한다. 이는 선거 과정과 심의 공간 외에, '대중의 막연한 욕망을 시각화하는 거대한 장치'를 갖춰야 한다.
국회에 대형 화면을 설치하여 시민들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집계되고 직관적인 그래픽으로 투영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이는 마치 배우가 관객의 반응을 보며 연기하듯, 대표자들이 화면을 보며 심의를 진행하게 하여 '심의와 데이터베이스 사이의 팽팽한 줄타기'를 하게 만들 것이다. 이는 대중의 욕망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포퓰리즘'과도 다르다. 이는 '무의식과의 대결'이며, 무의식적 욕망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직시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 통합함으로써 오히려 정치의 질을 높일 수 있다. 포퓰리즘의 파도가 거세지는 현실에서, 이를 미리 제도화하고 정책 결정에 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시민들이 모든 정책 문제를 이해하고 심의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의식 민주주의는 이러한 높은 '정치 참여 비용'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비록 대중은 국가를 운영하기에 부적합할 수 있지만, 그들의 '인상'이나 '뉘앙스 있는 표현'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정책 개발의 귀중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전문가와 아마추어 간의 끊임없는 피드백은 정책 논의의 질을 높일 수 있으며, 현대 사회에서는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구분이 개인 내의 역할 구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아즈마는 니코니코 생방송(Niconico Live)의 시청자 댓글 시스템을 예시로 들어, 출연자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무의식적 반응)을 보며 논의 방향을 조절하는 것이 전문가와 아마추어 간의 피드백을 구현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패널리스트들이 시청자의 의도에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으면서도, 대중의 욕망이 논의의 방향을 '제약하는 힘'으로 작용하게 만든다.
이는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도시 계획 방법론(9장 참조)과도 유사하다. 알렉산더의 방법은 계획자의 자의적 욕망을 구속하는 제약 조건을 제공하며, 이는 '이성이 욕망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시각화하여 이성의 폭주를 억제하는' 것이다. 아즈마는 자신의 제안이 '오픈 소스 민주주의'(시민들이 집단 지성으로 법을 만드는 것)와는 다르다고 명확히 선을 긋는다. 그는 집단 지성이 정보 수집이나 오류 수정에는 유용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소설이나 정치적 성명서 작성)에는 부적합하다고 보며, 따라서 집단 지성은 심의에 대한 '구속력'으로만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래 국가에서 정치인들은 대중의 욕망에 맹목적으로 따르지도, 완전히 무시하지도 않으며, 대중의 욕망을 직접 대면하고 그 힘을 등록하는 '조절자' 역할을 할 것이다. 이는 공화주의(간접 민주주의)와 무의식 민주주의의 접점을 의미하며, 포퓰리즘도 엘리트주의도 아닌 새로운 형태다.
아즈마는 니코니코 생방송의 비유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패널들은 시청자의 욕망을 '대변'하지 않지만, 시청자의 반응이 끊임없이 시각화되어 피드백되므로 논의가 '밀실'에 갇히지 않는다. 출연자들은 시청자의 댓글 모니터를 의식하며 논의 방향을 조절하는데, 이는 '시청자 욕망이 논의의 방향을 넓게 틀 지우는' 역할을 함을 의미한다. 이는 뉴스 오락 프로그램도, 밀실 회의도 아닌, 둘의 '융합'으로서의 새로운 정치 소통이다.
아즈마는 미래 사회가 '동물적인' 자유지상주의 사회도, '인간적인' 자유주의 사회도 아니며, 모든 시민의 '동물적' 측면과 '인간적' 측면이 네트워크를 통해 집계되고 곳곳에서 충돌하는 역동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정치'는 바로 이러한 충돌의 현장을 지칭할 것이다. 그는 사회를 개인에 비유하여, 미래 사회는 순진하게 본능에 따라 살아가는 '유아/동물'도, 완전히 성숙한 '성인/인간'도 아닌, 욕망의 분출로 혼란스럽고 고뇌하는 '사춘기 청소년'과 같다고 비유한다. 그는 이러한 엘리트와 대중, 인간과 동물, 심의와 데이터베이스, 공화주의와 무의식 민주주의의 독특한 조합을 '민주주의 2.0'이라고 부른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삶을 '조에(zoe, 동물적 생명력)'와 '바이오스(bios, 인간적 삶)'로 구분하며, 시장을 인간을 동물적으로 취급하는 곳(조에)으로, 공적 공간을 인간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곳(바이오스)으로 보았다. 아즈마는 일반 의지 2.0의 개념이 이러한 아렌트의 틀을 파괴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반 의지 2.0은 시민의 '정치적 의식'에서 '자기 고유성'을 박탈하고, 그들의 사적인 '동물적 행동'을 기록하여 계산 가능한 데이터로 전환함으로써 형성된다. 나아가 정치인과 전문가의 공적 심의를 이 '무의식'이 제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이오스가 조에에 의해, 폴리스가 오이코스에 의해 틀 지워지는' 완전한 역전을 의미한다.
아즈마는 일반 의지 2.0의 논의를 강화하기 위해 철학자 리처드 로티의 사상을 끌어들인다. 로티는 '아이러니'(두 가지 모순된 주장을 동시에 믿는 태도, 즉 자신의 가장 중심적인 믿음과 욕망의 '우연성'을 직시하는 것)가 현대 사회 윤리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는 진리의 보편성을 믿으면서도 그 믿음 자체가 우연적인 것임을 인정하는 자기 모순을 감수하는 것이다.
로티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통합하려는 요구를 버리고, 자기 창조의 요구와 인간 연대의 요구를 똑같이 타당하지만 영원히 측정 불가능한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이러니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공적-사적 관계를 뒤집는 것을 의미한다. 로티는 미래 사회에서 '보편성'에 대한 움직임(이상, 이념)은 '사적인 문제'로 간주되어야 하며, 사회를 질서 짓는 '공적인 원칙'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모든 이념은 오직 사적으로만 믿어져야 하며, 공적 영역은 모든 종류의 '옳음'과 '아름다움'에 무관한, 가치 중립적이고 탈이념적인 규칙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로티는 '자유주의 유토피아'라고 불렀다.
아즈마는 일반 의지 2.0의 비전이 공적-사적, 인간-동물 관계의 대규모 전환을 의미하며, 대중의 사적인 동물적 행동(데이터베이스)이 정보 기술을 통해 집계되고 시각화되어 정치인과 전문가의 공적 합의 형성(심의)을 제한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로티의 생각과 깊이 연결된다. 로티는 연대가 이성이 아닌 '상상력'에 의해, 즉 "낯선 사람들을 동료 고통자로 보는 상상력"에 의해 달성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루소의 '연민' 개념과 유사하게, 이성보다 감정이 사회를 창조한다고 본 것이다. 로티는 '잔인함은 우리가 하는 최악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자유주의자'라고 정의하며, 이는 이상이 아닌 육체적 반응으로서의 자유를 의미한다.
아즈마는 '민주주의 2.0'을 '전자적으로 증강된 자유주의적 아이러니(electronically augmented liberal ironism)'로 정의하며, 트위터가 그에 가장 가까운 현대 인터넷 서비스라고 주장한다. 트위터는 사용자에게 원하는 정보만 볼 수 있게 하여 '섬 우주(island universes)'를 형성하는 '폐쇄적' 특성을 갖는 동시에, '리트윗'과 같은 기능으로 이러한 섬 우주를 무작위적으로 '꿰뚫고' '강제로 끌어내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리트윗은 정보적 내용보다 '감정'이 담긴 내용이 더 큰 규모의 연결을 만들어내며, 이는 공동체 내의 '인간적인' 소통 공간을 '동물적' 반응으로 강제적으로 열어젖히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적이고 동물적인 반응이 공적이고 인간적인 심의를 강제적으로 열어젖히는 구조는 로티의 사상과 민주주의 2.0의 핵심적인 특징과 상동적이다. 이는 헤겔이 구상했던 변증법적 통합 모델이 아니라, 수많은 공동체가 각자 존재하는 상태에서 '연민'과 같은 감정의 무작위적인 연결을 통해 연대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사회 모델을 제시한다.
아즈마는 로버트 노직의 '유토피아를 위한 틀(framework for utopias)' 개념도 인용한다. 노직은 '최소 국가'가 가장 매력적인 국가 모델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활 방식이 너무 다양하여 하나의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상상할 수 없으므로, 다양한 유토피아적 실험이 가능한 '메타-유토피아'로서 '최소 국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가 특정 가치나 생활 방식을 강요하지 않고 시민들의 '동물적 생명(조에)'의 안전만을 보장하며, 나머지 기능은 사적 영역에 맡겨지는 '동물들의 약한 자유지상주의' 모델로 재해석될 수 있다.
아즈마는 '일반 의지 2.0'의 비전이 공공성이 사람들의 '연민'과 공감을 통해 유지되고, 모든 이념과 이데올로기가 '취향의 영역'(사적 영역)으로 격리되는, '철저한 상대주의적 세계'인 로티의 '자유주의 유토피아'와 유사하다고 다시 강조한다. 이는 심의가 사적 영역에 국한되고, 대중의 무의식을 통해 공공성이 확보되는 구도다.
마사치 오사와가 '불가능성의 시대'에서 '네트워크 과학'에 희망을 찾았듯이, 아즈마는 70억 인구의 세계가 '친구의 친구의… 친구'로 연결될 수 있는 '가까운' 상태이며, 이러한 개인 간의 '근접성'과 '우발적인 연대'가 현대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한 희망'을 구성한다고 해석한다. 인간의 이상과 소통은 폐쇄되지만, 그 바깥에는 '동물적 연민'의 바다가 확장된다는 것이다.
아즈마는 '민주주의 2.0'을 '믹시 민주주의'(전자적으로 증강된 공동체주의/심의 민주주의)와 '구글 민주주의'(전자적으로 증강된 자유지상주의/데이터베이스 민주주의)와 구별되는 '전자적으로 증강된 자유주의적 아이러니'라고 지칭하며, 트위터가 그 가장 적절한 모델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트위터는 사용자에게 '섬 우주'를 제공하여 폐쇄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면서도, 리트윗과 같은 기능을 통해 이 섬 우주들을 '무작위적이고 폭력적으로' 연결하며 '감정적인' 내용이 이러한 벽을 허무는 역할을 한다는 이중적 특성을 갖는다. 이는 인간의 소통이 작은 공동체 속에 갇히는 동시에, 동물적인 반응에 의해 강제적이고 무작위적으로 열려지는 상황을 보여주며, 이는 일반 의지 2.0의 사상과 상동적이다.
이러한 모델은 헤겔식의 변증법적 통합이 아니라, 수많은 공동체가 그대로 존재하면서 '연민'의 정을 바탕으로 무작위적으로 연결되는 사회 모델이다. 로티의 사상과 루소의 '연민' 개념은 이성 대신 감정이 사회를 사회를 창조한다는 공통된 세계관을 공유한다.
아즈마는 미래 사회의 국가와 삶의 모습을 상상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50년 또는 100년 후의 미래에는 여전히 '국가'가 존재하겠지만, 자본과 문화 규제에서 손을 떼고 폭력 통제 및 평화 유지라는 '최소 국가'의 역할에만 집중할 것이다. 교육, 의료, 사회 보장, 공공 사업 등 다른 모든 기능은 국가 이외의 조직에 의해 수행될 것이다. 이는 세계화와 정보 사회로 인해 국가의 역량이 필연적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역할은 시민의 '신체적/생물학적 안전(조에)'을 보장하는 것으로 한정될 것이다. 이는 푸코가 '생체 권력(biopower)'이라고 부른 것과 유사하게, 보안 유지 및 공중 위생 정책에 특화된 국가의 모습이다. 이 미래 국가는 시민의 생활 방식이나 신념에는 관여하지 않고, 시민들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시민들은 국가에 최소한의 대가(세금, 노동, 또는 '라이프 로그' 제공 등)를 지불하면 '동물적 안전'을 보장받고 '인간적인 삶'을 자유롭게 영위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국가(동물, 공리주의, 자유지상주의)와 시장(인간, 칸트주의, 공동체주의)의 이중 구조로 조절되는 세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세계에서 '정치'는 오늘날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이다. 국가의 역할이 자원 배분이나 기본 소득 보장 등 오늘날의 수도사업처럼 '일상적이고 흥미롭지 않은'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평소 국가의 존재를 의식할 필요가 없지만, 문제가 발생하면(예: 수도 공급에 문제 발생) '정치'가 필요해질 것이다. 이 경우 시민들은 데이터 공개를 요구하고, 필요하면 담당자 교체(선거, 관료 임명)를 요구할 것이다.
미래의 선거와 관료 임명은 니코니코 생방송의 비유처럼, 무의식적인 대중의 바다에서 '프로그램에 출연할 자격이 있는' 엘리트 후보가 갑자기 부상하여 기존 엘리트를 대체하는 '축제'와 같은 유동적인 시스템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아즈마는 '느슨한'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기본 소득에 의존하는 젊은이가 네트워크를 통해 우연히 접한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스스로 지식을 쌓아 전문가가 되고, 그의 발언이 멀리 떨어진 나라의 시위나 글로벌 기업의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은 '사고'가 일어날 것이다. 이는 특정 공동체에 속하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글로벌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이다. 아즈마는 '정치'라는 단어를 '국가'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에는 지리적 근접성에 기반한 '연민'이 사회를 만들었지만, 미래에는 네트워크를 통해 '연민'이 전 세계로 확산되어 인간을 '동물적 삶'에서 '인간적 삶'으로 이끌 것이다.
아즈마는 이 책이 학술서가 아닌 에세이이며, 루소에 대한 해석도 '팬의 창작물'처럼 자유로웠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가 전자 투표나 인터넷 정당을 넘어서 정치, 국가, 통치에 대한 우리의 정의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고할 가능성을 품고 있음을 명확히 하고자 했다. 그는 인류가 이성의 힘뿐만 아니라 '연민'이라는 '동물적 힘'도 사용하여 사회를 설계해야 할 때가 왔다고 강조하며, 이 책이 미래 세계를 건설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아즈마 히로키의 『일반 의지 2.0』은 정보 사회의 도래가 민주주의와 정치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다. 이 책은 기존의 민주주의 담론이 간과했던 '대중의 무의식'과 '데이터베이스화된 욕망'이라는 새로운 통치 기반에 주목하며, 이를 통해 '소통 불필요' 정치와 '무의식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일반 의지'의 재정의: 루소의 '일반 의지'는 이성적인 토론을 통한 합의가 아니다. 그 대신 집단 무의식, 즉 정보 환경에 기록된 방대한 행동과 욕망의 데이터베이스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이성보다 감정, 의식보다 무의식이 사회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인터넷은 '무의식 시각화 장치': 구글, 트위터와 같은 정보 기술은 개인의 의식적인 의도 이면에 존재하는 무의식적인 패턴과 경향을 기록하고 분석하여 시각화할 수 있다. 이는 과거에는 인식 불가능했던 대중의 욕망을 구체적인 '사물'처럼 다룰 수 있게 만들었다.
심의와 데이터베이스의 충돌 지점으로서의 미래 정치: 미래의 정부는 시민의 의식적인 심의(일반 의지 1.0)와 정보 환경에 기록된 무의식(일반 의지 2.0) 사이의 '인터페이스'가 되어야 한다. 데이터베이스가 심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심의가 데이터베이스의 폭정을 억제하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 속에서 새로운 정치가 탄생한다. 이는 대중의 욕망을 설득하거나 억압할 대상이 아니라, 정책 수립의 물질적 '제약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을 제시한다.
'전자적으로 증강된 자유주의적 아이러니': 아즈마는 미래 민주주의를 로티의 '자유주의적 아이러니'와 연결하며, 개인의 '섬 우주'가 '연민'과 같은 감정의 무작위적인 연결을 통해 연대를 형성하는 새로운 사회 모델을 제시한다. 이는 이념이나 합리적인 논의를 넘어서 '동물적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최소 국가'와 '정치'의 해방: 미래 국가는 폭력 통제와 시민의 '생물학적 안전' 보장에 집중하는 '최소 국가'의 형태로 변화할 것이다. 이에 따라 '정치'라는 개념 또한 국가의 틀에서 벗어나, 특정 공동체에 속하거나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전 지구적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느슨한' 참여 형태로 확장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즈마의 『일반 의지 2.0』은 21세기 정보 사회가 직면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혁신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이는 기존의 정치적 사고방식을 넘어 기술과 인간 무의식의 상호작용 속에서 새로운 사회 계약과 통치 모델을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이 우리 사회에 가져올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