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귀성과 우연성

기술 철학이 신문명의 초석이다

by 소묘


재귀성과 우연성: 기술 철학의 새로운 지평


허욱의 『재귀성과 우연성』은 미디어 철학의 관점에서 재귀성과 우연성이라는 두 가지 핵심 개념을 통해 기술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들을 탐구한다. 이 책은 칸트의 '판단력 비판' 이후 유기체 개념의 역사적 궤적을 재구성하며, 하이데거의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넘어서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 즉 다중 우주기술학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서론: 재귀와 우연, 유기체의 본질


이 책의 주요 논점은 재귀성과 우연성이다. 재귀성은 복잡한 현상이나 과정을 반복적인 순환 형태로 축소하는 개념이며 , 우연성은 단순한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시스템 내에서 기능적 필연성을 띠며 통합될 수 있는 요소로 다루어진다. 유기체의 의미는 생물학적 담론보다는 이 두 가지 핵심 개념을 통해 분석된다. 칸트는 유기체를 "자연의 조직된 산물은 모든 것이 목적이자 동시에 수단인 것"이라고 정의했으며 , 유기체적 사고방식은 미리 형성된 것에서 자기 조직화된 것으로의 점진적 성장을 의미하는 generatio aequivoca의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유기체는 기계적 법칙과 자유 사이의 반이율배반에 대한 해결책으로도 기능한다.


칸트의 목적론적 판단은 유기적 메커니즘, 의심스러운 생기론, 유기체론, 기관학이라는 네 가지 해석을 낳는다. 재귀성은 단순히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가 스스로를 결정하는 순환적인 움직임으로 특징지어지며 , 모든 움직임은 우연성에 열려 있으며, 이는 다시 그 특이성을 결정한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는 창문이 없지만 거울을 가지고 있어 재귀성을 허용한다. 이는 부분성이 총체성을 내포하고, 유한한 것이 무한한 것을 내포하며, 변화 속에서 불변성을 유지하는 '무한으로 되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정보는 우연성이 때로는 '정보'가 될 수 있으며 , '정보'는 형태를 부여하고, 기적을 일으키며 개별화 과정을 촉발하는 역할을 한다.


보이지 않는 자연, 보이는 정신: 재귀성의 내재성


재귀성은 내재성의 개념이다. 원동자는 외부에서 개입하지 않고, 원인은 루프의 총체성 안에 내재하며 , 이는 스피노자의 Deus sive Natura나 니체의 '신의 죽음' 선언과 연결된다. 재귀성은 목적론적 판단의 출발점이 되는 형식적 원인과 최종 원인(telos)을 강조함으로써 비기계적 존재를 옹호한다.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성찰적 판단에 기반한 새로운 철학 조건을 제시한다. 미학적 판단과 목적론적 판단은 유사하며 , 이는 자연의 목적이 미리 정해진 규칙 없이 과정을 조건화하는 자기 조직화의 이상으로 작용한다. 모든 행위는 재귀적으로 스스로를 참조하고 평가하며 , 이것이 도덕적 목적에 도달하는 범주적 명령의 윤리적 재귀성을 구성한다.


기계론과 생기론을 넘어서: 사이버네틱스와 유기체론의 수렴


이 책의 목표 중 하나는 생물학적 유기체론과 그 쌍둥이인 기계적 유기체론, 즉 사이버네틱스를 대화에 참여시키고 그 친밀성과 긴장을 밝히는 것이다. 루(Roux)와 드리스(Driesch)의 실험은 기계론과 생기론의 고전적인 대립을 보여준다. 유기체론자들은 유기체를 기계적 법칙이나 신비로운 생명력과는 다른 조직 형태로 보며 , 20세기 전반에 걸쳐 기계론과 생기론 사이에서 제3의 그룹으로 등장했다.


유기체론자들과 사이버네티션들 모두 루트비히 폰 베르탈란피의 일반 시스템 이론을 수용했다. 사이버네티션들은 노버트 위너의 피드백 개념, 조지 스펜서-브라운의 재진입 개념, 하인츠 폰 푀르스터의 재귀성 개념에 매료되었다. 이 책에서 피드백은 자기 참조와 함께 재귀성의 또 다른 이름으로 이해된다. 위너의 '스스로 피드백 시스템으로 이해되는 사이버네틱 기계들이 이미 그러한 대립을 극복했다'는 주장은 시몽동과 요나스에게 새로운 인식론으로 높이 평가된다. 이러한 자발적 목적성은 기계가 우연성에 반응하고 우연성이 작업에서 의미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기계 학습 알고리즘이 소음을 유용하게 활용할 때, 우연성은 긍정적인 의미를 획득하며 , 들뢰즈와 스토아학파는 이를 준원인이라고 부른다. 시몽동의 정보 개념은 '차이를 만드는 차이(the difference which makes a difference)'라는 베이슨의 정의에 가깝다. 이는 작동적이며 자기 참조적이며 , 시스템 내에서 개별화를 촉발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위대한 완성: 사이버네틱스와 형이상학의 종말


하이데거는 사이버네틱스를 형이상학의 종말이자 '위대한 완성'이라고 선언했다. 사이버네틱스의 주요 특징은 모든 절차를 계산 가능하고 조향 가능한(steering) 과정으로 바꾸는 것이며 , 피드백은 '상호 관계 속에서 과정들의 상호 조절이 순환 운동으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니클라스 루만의 시스템 이론은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시스템이 출현한다'고 주장하며 , 사회 시스템의 이중 우연성을 그 기초로 삼는다. 모든 행동은 우연성을 줄이는 것이고 , 사회 질서와 규범은 우연성을 끊임없이 줄이려는 시도를 통해 확립되기 때문에 , '모든 오류는 생산적이다'라고 주장한다. 장이프랑수아 리오타르는 '근대성은 우연성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하며 , 이는 탄력성과 연결된다.


조셉 니덤은 기계론자에서 유기체론자로 전향했으며 , 중국 철학을 유기체적 철학으로 보았다. 니덤의 역사적 분석은 저자 자신의 우주기술학 개념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라이프니츠와 신유학 사상 간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탐구하며 , 생물학적 유기체론과 기계적 유기체론(사이버네틱스) 사이의 딜레마를 제기한다. 기관학은 인간-기계 관계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며 , 문화와 기술이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기술 다양성을 재개방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베르나르 스티글러에게 우연성은 시스템을 동기 부여할 뿐만 아니라 변형시키는 것이며 , 개인과 집단을 변형시키는 축이 되어야 한다. 조직화되는 무기물은 기계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거대한 유기체가 되는 변화를 의미한다. 가이아 이론은 위너의 사이버네틱스와 마르굴리스의 유기체론이 만나는 지점으로 제시된다.


칸트 이후의 새로운 철학 조건으로는 생태학이 자연의 개념을 대체함으로써 '숨겨진 계획'이 실현 가능한지, 또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도입되어야 하는지 질문한다. 우주기술학은 도덕적 질서와 우주적 질서의 기술적 활동을 통한 통합을 의미하며 , 이는 형상과 배경의 재결합을 추구한다. 다양한 문화는 고유한 '우주적 특이성'을 가진 다중 우주기술학을 가지고 있다. 인간 개념은 일관되고 영원한 실체가 아니라 우연적인 역사적 개념이다. 포스트휴먼 개념은 인간이 기술적 존재라는 관점을 수용할 때 비로소 윤리적 탐구를 제시할 수 있으며 , 기관학은 물질주의적 과학이지만 정신과 물질을 대립시키지 않고 정신이 자유를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생태학 이후, 태양 재앙 이전: 비인간적인 것의 출현


인공적인 지구 시대에 자동 기계(automaton)의 확률은 존재의 능력에 의해 제약된다. 계산적 이성은 가능성을 제한하지만 , 사변적 이성은 그 너머를 추구하며 , 하이데거의 '존재'에 대한 사변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리코타르의 '비인간(the inhuman)'은 태양 재앙 이후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변화를 다루는 개념이다. 이는 유기적 신체와 정신의 분리를 의미하며 , '시스템의 비인간성'과 '영혼이 인질로 잡혀 있는 무한히 비밀스러운 것'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무한히 비밀스러운 비인간'은 알 수 없는 것(the Unknown), 즉 예측 불가능하며 계산될 수 없는 것이다.


엘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발사는 우주가 단순한 '대기 재료(standing-reserve)'가 되는 우주기술학을 보여준다. 이는 '인간이 중심에서 X로 굴러떨어진다'는 니체의 말을 넘어 , 다시 'X에서 중심으로' 승격하는 새로운 형태의 인간 중심주의를 보여준다. 절대적 우연성은 일부 철학자들이 시스템의 총체성에 저항하기 위해 이를 '비상구'로 간주하며 , 이는 자유와 자율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콰이든 메이야수는 '상관주의(correlationism)'를 비판하고 , '사실성의 원리(principle of factuality)'를 통해 사고와 독립적인 실재를 제안한다.


메이야수의 '초혼돈(over-chaos)'은 질서나 법칙을 도출할 가능성이 없는 순수한 혼돈이 아니며 , 우연성의 절대성을 긍정하는 것이다. '절대적 우연성'은 반시스템적 개념이며 , 시스템이 이를 파악하지 못할 때 다른 시스템의 기초가 구성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처럼 완전한 형식 시스템의 환상을 지운다. 기술 다양성은 절대적 우연성이 시스템의 다원성을 긍정하며 , 이는 기술 발전의 재고를 위해 '지역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1장. 자연과 재귀성


이 장에서는 자연 철학과 그 후계자들(유기체론, 가이아 이론)을 성찰하며 , 시스템 철학이 우연성의 위협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탐구한다. 유기체라는 개념을 시스템적 사고의 중심에 두고 , 이를 재귀성으로 이해한다. 셸링은 세계를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나 극도로 우연한 것'이라고 표현하며 , 이는 순수한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이데거는 '철학의 종말'에 대한 질문에 '사이버네틱스'가 그 자리를 대체한다고 답했다. 칸트는 결정적 판단과 성찰적 판단이라는 두 가지 모델을 제시한다. 시몽동은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서만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질문을 다룰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철학의 유기체적 조건: 재귀적 자기 조직화


유기체는 철학이 선험적 법칙에 의한 시스템적 결정론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출구'를 제공하며 , 이는 기계적 법칙과 숙명론에 대한 자유를 의미한다.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제시한 유기체는 '이중적인 의미에서 자기 자신의 원인이자 결과'이며 , 이는 부분과 전체 간의 상호 관계와 재생산 능력으로 구성된다. 이는 자기 조직화의 원시적 형태를 이룬다. 칸트의 목적론적 판단은 자연의 목적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없는 것으로 보며 , 이성은 오직 성찰적 판단을 통해서만 자연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다. 성찰적 판단은 재귀적으로 자기 조직화되는 존재에 도달한다. 칸트는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을 '목적성의 숙명론(fatalism of purposiveness)'이라고 비판했는데 , 이는 스피노자의 시스템이 모든 우연성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셸링의 과제는 기계적인 것과 유기적인 것의 대립을 극복하고 , 두 모델을 하나의 일반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피히테의 '나(Ich)'는 자기 자신을 설정하고 성찰할 수 있는 행위(Tathandlung)로서 , 지식의 출발점이 되는 절대적 나(absolute I)를 이룬다. 이아인 해밀턴 그랜트는 피히테의 초월 철학을 '재귀성' 또는 '반복(iteration)'의 수학적 모델로 설명한다. 피히테에게 자연은 '생산적 상상력의 산물'에 불과하다. 셸링은 실재와 이상을 환원 없이 조화시키고자 했으며 , 자연을 '자기 자신인 전체'로 보았다. 셸링의 '세계 영혼(world soul)' 개념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를 칸트의 '판단력 비판'의 관점에서 읽음으로써 발전되었다.


살아있는 힘(vis viva)은 라이프니츠의 개념으로 , 장애가 제거되는 한 스스로 작용하는 힘을 의미한다. 셸링은 동적 원자를 '원초적 행위자(ursprüngliche Aktionen)' 또는 '자연 모나드(Naturmonade)'라고 부르며 , 이들이 힘의 합성으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셸링은 생명의 원초적 원인에 대한 세 가지 가설을 제시하는데 , 가장 적절한 세 번째 가설은 '생명체의 근원이 외부의 긍정적 원리(positive principle)와 생명체 내부의 부정적 원리(negative principle)의 대립에 있다'는 것이다. 이 '영원한 순환(eternal loop)'은 셸링이 구상한 일반 유기체(general organism), 즉 '세계 영혼'의 형태이다. 유기체론은 기계론과 생기론의 대립을 극복하고자 하는 '제3의 길'로 , 루드비히 폰 베르탈란피, 조셉 니덤, 조셉 우드거, 콘래드 와딩턴 등이 여기에 속한다.


가이아 이론은 제임스 러브록과 린 마르굴리스의 참여로 사이버네틱스와 유기체론이 수렴하는 지점으로 , 지구를 '유기체-기계적 존재'로 간주한다. 러브록은 기술, 특히 통신 기술이 '가이아의 지각 범위를 크게 확장시켰다'고 주장한다. 인공적인 지구(Artificial Earth)에 대해 맥루한은 스푸트니크 발사 이후 지구가 '인공적인 용기 안에 완전히 갇히게 되면서 자연이 끝나고 생태학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이는 지구가 '엔지니어링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장. 논리와 우연성


이 장은 재귀성과 우연성이라는 두 가지 개념 범주를 통해 고전적인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시스템이 어떻게 개념적 도구가 되는지를 탐구한다.


정신 현상학에서의 재귀성: 헤겔의 절대적 운동


셸링의 재귀성은 절대적 존재가 시작에 위치하며 우연성이 나중에 나타난다면 , 헤겔은 절대적 존재가 과정이자 종말에 위치한다고 본다. 헤겔의 '절대적 존재가 시작에 있다면 어떠한 발전도 있을 수 없다'는 셸링 비판은 '정신 현상학'의 핵심이다. 헤겔의 변증법적 운동은 '부정성(negativity)'에 의해 동기 부여되며 , 이는 자기 설정과 자기 식별이 타자의 인식과 모순 극복을 통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에드문도 발세마오 피레스는 헤겔의 현상학을 '절대적 운동의 자기 참조적 계획에서 지식의 이질적 참조적 조건을 해결하는 연속적인 지침의 진행'으로서 재귀적 알고리즘으로 특징지어진다.


유기체론적 논리 그리고 반성적 논리: 개념의 생명


헤겔에게 생명 개념은 본질적으로 유기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 이는 '생명을 인식하려면 대상과 동일한 살아있는 구조를 가진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념(Notion)'은 자신을 아는 반성적이고 자기 결정적인 살아있는 개념이며 , 이는 실재와 이상이 분리되지 않는 개별화 과정이다. '자연에서의 개념의 미약함(Feebleness of the Notion in Nature)': 헤겔에게 우연성은 개념의 발전을 위한 필연적인 부분이다. 그는 우연성을 '혼돈스러운 자연'과 '논리적 범주'라는 두 가지 의미로 파악한다. 행위성(Actuality): 헤겔은 개념의 움직임을 형식적 행위성, 상대적 필연성, 절대적 필연성이라는 세 가지 양태로 설명하며 우연성의 필연성을 보여준다.


일반 재귀성과 튜링 기계: 계산 가능성의 확장


괴델의 연구와 20세기 사이버네틱스 발전은 재귀성을 보편적인 모델로 공식화했다. 이는 피드백과 정보라는 두 가지 핵심 개념을 통해 구현되었다. 알고리즘적 사고는 재귀성 또는 반성(reflection)과 관련하여 이해되어야 한다. 재귀 함수는 '정지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자신을 호출하는 함수'이다. 데데킨트(Dedekind)는 재귀 함수를 사용하여 연산을 정의했고 , 괴델은 '형식적으로 결정 불가능한 명제' 논문에서 재귀 함수를 정의하며 괴델 넘버링을 도입했다. 튜링의 보편 튜링 기계(universal Turing machine)는 '계산 가능한 것 또는 결정 가능한 것은 항상 재귀적으로 열거 가능(recursively enumerable)하다'고 주장하며 , 미결정성을 해결하고자 한다. 튜링은 '화학적 형태 발생의 기초(The Chemical Basis of Morphogenesis)' 논문에서 형태 발생을 패턴 생성의 재귀적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위너의 라이프니츠주의: 모나드와 피드백


노버트 위너는 사이버네틱스의 수호성인으로 라이프니츠를 지목한다. 라이프니츠는 '추론 기계(reasoning machine)'의 사상가이자 '유기체' 철학자로서 , 조합론과 유한한 것 안에 무한한 것의 수학적 모델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를 제공했다. 모나드(monad)의 '미러링 활동'은 양자 활동의 불확실성과 연결되며 , 위너는 이를 통해 양자 역학을 위한 라이프니츠를 기반으로 삼는다. 위너는 뉴턴적 시간과 베르그송적 시간 간의 대립이 실질적인 대립이 아니라고 보며 , 현대 자동화가 베르그송적 시간과 동일한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피드백은 '출력과 예상 출력 간의 차이가 시스템에 다시 공급되어 작동을 개선하는 것'을 의미하며 , 이는 재귀성의 원초적인 형태로 간주된다. 위너는 이를 유기체와 기계 모두에 적용하여 , 둘 다 '엔트로피 증가에 대한 저항'이라는 공통된 목적을 가진다고 정의한다.


사이버네틱스의 사이버네틱스: 비사소한 기계와 창조적 순환


하인츠 폰 푀르스터는 사소한 기계(trivial machine)와 비사소한 기계(nontrivial machine)를 구분하며 , 비사소한 기계는 '과거에 의존하고 분석적으로 결정 가능하지만 예측 불가능하며, 순환적이지만 단순히 반복적이지 않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러한 순환적 형태인 재귀성을 Eigenform이라고 부르며 , '창조적 순환(circus creativus)'이라고 칭한다. 피에르 리베는 피히테의 '나'의 움직임을 재귀성으로 이해하며 , '자기 자신에게 즉시 순환하는 재귀성'으로 반성을 정의한다. 리베는 헤겔의 재귀성이 피히테의 것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하는데 , 이는 헤겔이 자기 자신과 타자를 포함한 '전체'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증법의 정보: 우연성과 정보의 본질


정보는 근본적으로 우연적이고 재귀적이다. 위너에게 정보는 질서의 측정이며 엔트로피의 반대이고 , 섀넌에게 정보는 '놀라움(surprise)'의 측정이다. 네겐트로피는 생명의 자기 보존을 설명하기 위해 슈뢰딩거가 개발한 개념으로 , 위너는 이를 피드백 이론에 통합한다. 시몽동은 정보가 '확률'을 넘어설 수 있는지 질문하며 , 정보는 비양립성(incompatibility), 불균등성(disparity), 비대칭성을 의미한다고 제안한다. 정보는 '차이를 만드는 차이(difference that makes a difference)'이다. 베이슨은 '정보란 차이를 만들어내는 차이'라는 유명한 주장을 펼치며 , '아는 것(knowing)'을 차이들이 끊임없이 도입되어야 하는 재귀적 과정으로 본다. 유전자 동화는 와딩턴의 실험을 통해 진화가 순수한 라마르크주의나 다윈주의가 아니며 , 표현형에서의 신체적 변형이 유전형을 일깨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무작위성: 알고리즘에 무작위성을 도입하는 것은 계산 비용을 절감하고 , '과잉 정보'를 제거하며 , 학습 알고리즘이 지역 최저점에서 벗어나 변이할 수 있도록 한다.


계산 불가능성과 알고리즘적 우연성: 자기 목적성의 추구


우연성을 필연적으로 만드는 것은 개념 자체의 가능성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사고의 시간적 차원을 추가하며 , 판단이 시간의 흐름(발생) 속에서만 가능하게 한다. 계산 불가능성(undecidability): 재귀적으로 열거할 수 없는 것으로 , '어떤 계산 시스템에 대한 우연성의 유일한 위협'이다. '최선의 세계(best of all possible worlds)'는 알고리즘 정보 이론의 기준이다. 알고리즘적 우연성은 압축 불가능하거나 계산 불가능할 때 발생한다. 자기 목적성(auto-finality): 위너의 사이버네틱스는 다른 경로가 동일한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동일 목적성(equifinality)'을 허용하지만 , 의지와 합리성 간의 긴장을 수반하는 진정한 자기 목적성은 허용하지 않는다. 루이에와 요나스는 사이버네틱스가 목적론을 '목적을 위한 봉사'로 오해했다고 비판한다.


3장. 조직화된 무기적인 것


이 장은 유기체론에서 기관학으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기계와 유기체 간의 등가성을 피하고 , 기술의 발전을 '인간 지능에 대한 근접성'으로 측정하는 것을 경계한다. 기관학은 유기적 형태를 지식 이론에서 생명 이론으로 끌어올리고 , 기계적 재귀성을 생명 자체라는 기반에 다시 연결한다.


형태와 불, 또는 생명: 기술의 본질


셸링의 '자연철학'에서 유기적 형태의 한계를 드러내기 위해 '불'의 문제를 다룬다. 플라톤의 '필레부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의 통일을 통해 '형태'를 제시하며 , 프로메테우스 신화에서 '불'은 기술을 상징한다. 불은 '생명이 아닌 다른 수단을 통해 생명을 추구하는 것'을 허용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데카르트와 기계적 기관들: 생명 기계화의 비판


캉길렘은 데카르트의 생명 기계화에 대한 인식론을 뒤집으려 했다. 데카르트 시스템에서 생명은 '존재론적 독창성'을 가지지 않으며 , 유기체의 죽음은 시계의 오작동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캉길렘은 데카르트에게서 서양 철학사에서 드문 기술적 사고를 발견한다. 데카르트는 기술 활동 덕분에 과학이 드러난다고 보며 , 기술적 사고의 실패가 과학적 사고의 부상을 조건화한다고 주장한다. 캉길렘은 유기체가 기술에 우선한다고 주장하며 , 기계와 유기체 간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명료화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Creative Evolution)를 일반 기관학의 선구자로 평가한다.


테크놀로지 철학자로서의 칸트: 유기체와 기계론의 비환원성


캉길렘은 칸트가 기계에 대한 유기체의 비환원성과 과학에 대한 예술의 비환원성을 모두 긍정했다고 주장하며 , '판단력 비판'을 통해 칸트를 기술 철학자로 해석한다. 칸트는 자연의 두 가지 절차 또는 인과적 작용을 의도적인 기술(technica intentionalis)과 비의도적인 기술(technica naturalis)로 구분한다. 캉길렘의 칸트 독해 전략은 '기계적인 것을 유기체 내에 수용하는 방향으로' 유기체와 기계론 간의 비환원성을 긍정하는 것이다.


'창조적 진화'에서의 기관학: 생명은 인공적이다


진화는 창조적이며 재귀적이다. 이는 '과거의 현재에 대한 실재적 지속성'이며 , 동시에 '절대적으로 새로운 것의 끊임없는 정교화'를 통해 창조적이다. 베르그송은 기계론과 목적론을 모두 거부한다. 기계는 '내구력(endurance)'이 부족하고 , 유기체는 '그 전체로서 존재하거나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베르그송에게 '전체'는 구조적으로 유기체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이다. 그는 '생명이란 일종의 메커니즘이다'라고 말하며 , 철학을 과학의 기반으로, 생명을 메커니즘의 기반으로 본다. 베르그송은 '행동(action)'을 통해 '지성(intelligence)'이 현실로 되돌아와 창조성을 회복한다고 주장한다.


물질(matter)은 '현재를 과거에 연결할 수 없는 무능력'이며 , '생명의 움직임을 역전시키는 움직임'이지만 , 진화의 필수적인 조건이다. 기관학은 유기적 형태를 넘어 무기물을 조직된 전체로 재통합하는 것을 의미하며 , 이러한 통합은 창조적이다. '생명은 근본적으로 인공적'이다. 캉길렘은 생명과 과학의 관계에서 '과학을 통해 생명에 다시 합류하는 것'이 일반 기관학의 정신이라고 주장한다.


규범과 우연한 것: 생명의 알레아


캉길렘에게 우연성과 오류는 '생명의 역사와 인간 존재의 형성에 얽히는 영구적인 우연성(aléa)'이다. 그는 병리학적 현상을 통해 비정상성 또는 불규칙성이 생명의 필수적인 부분임을 보여준다.


4장. 조직화하는 무기적인 것


이 장은 기계와 기술 시스템이 유기체적(organismic)이 되어가는 현대 시대에 기관학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키고 , 인간-기계 관계에서 재귀성과 우연성의 중요성을 탐구한다.


환경의 유기체화와 시몽동의 기관학


우리 환경은 '행성적 스마트화'를 통해 재귀성이 미래 환경의 주요 계산 및 운영 방식이 될 것이다. 시몽동의 기관학: 그는 밀리외-기술(milieu-technics), 즉 '기술이 살아있는 존재에게 직접 작용하기보다는 밀리외에 작용하는 방식'이라는 개념을 통해 문화와 기술의 길항 관계를 극복한다. 시몽동은 개방형 기계(open machine) 개념을 통해 '순수한 우연성'에 민감하며 , '확정되지 않은 여지(margin of indetermination)'를 가진 기계를 강조한다.


반복적 인과율(recurrent causality): 시몽동은 피드백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 스스로에게 작용하는 인과율'로 정의하며 , 이를 기술적 개체의 기준으로 삼는다. '기계가 유기체가 되어간다'는 위너의 관점을 시몽동도 공유한다. 일반 상호변환학(general allagmatic): 시몽동은 위너의 사이버네틱스를 넘어선 '새로운 사이버네틱스적 사고'를 제안하며 , 이는 '작동과 구조, 구조 내의 작동과 구조 내의 작동의 가능한 변환'을 다루는 학문이다. 이는 단순한 지식의 가치론이 아니라 존재의 지식, 즉 온토제네시스(ontogenesis) 또는 온토-가치론(onto-axiology)이다.


심적 및 집단적 개별화에서의 재귀성: 선개별적 실재와 메타 안정성


시몽동은 개별화가 동시에 심적(psychic)이며 집단적(collective)이라고 본다. 이는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적 상황(problematic)을 통해 개별화가 일어나는 재귀적 과정이다. 선개별적 실재(preindividual reality): 개별화가 일어나는 배경이며 , 잠재력의 저장소로 , 개별화 과정에서 소진되지 않고 다음 개별화 과정의 조건이 된다. 시몽동은 이를 '자연'과 동일시하며 ,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의 apeiron과 연결한다. 이는 '형태가 아니라 형태를 담지하는 바탕(ground)이 에너지를 가진다'는 의미이다. 메타 안정성(metastability): 시몽동의 개별화 이론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 '균형(equilibrium)'의 반대 개념이며 , 긴장이 해소될 때 달성되는 전이적 상태를 의미한다.


자연 또는 예술: 우연성을 필연으로 만드는 창조성


스티글러는 '선개별적 실재'를 '자연'이 아니라 '기술적 존재, 역사, 심적 장치의 집합체'로 이해한다. 예술가의 역할은 '우연성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며 , 이는 정신적 및 집단적 개별화를 가능하게 하는 변환 과정(transindividuation)을 열어준다. 예술 작품은 자기 인식(self-knowing)을 향한 재귀성을 확립한다. 예술적 창조: '예상치 못한 것을 예상하는 것'으로 , 우연한 사건을 새로운 규범성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개별화 회로의 조건으로 만드는 것이다. 다다이스트와 초현실주의자의 작업에서 이러한 우연성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제3차 예측과 선점: 알고리즘적 결정의 위험성


유쿠 후이는 스티글러의 기억 및 예측 회로에서 제3차 예측(tertiary protention)이라는 '빠진 요소'를 지적한다. 이는 계산적 해석학(computational hermeneutics)에 기반하며 , 기계가 미리 옵션을 예측하는 '선점(preemptive)' 형태의 결정을 의미한다. 자유는 '선택'으로 축소되며 , 우연한 것은 '가장 적게 또는 심지어 전혀 확률적이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부채(debt)는 원시적인 형태의 제3차 예측이자 기억이며 , '미래에 대한 부채'를 의미한다. 선점은 의사 결정을 알고리즘에 위임하는 것을 의미하며 , 이는 우연성을 가장 확률적인 것으로 축소한다.


무기물적 유기성 또는 생태학: 디지털 시대의 자동화


'인더스트리 4.0(Industry 4.0)'은 밀리외를 자동적이고 '스마트'하게 만드는 것을 제안한다. '스마트'는 '가장 최적의 것을 예측하고 기대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기술 인프라: 건물 블록처럼 쌓여 센서에서 데이터로, 데이터에서 소프트웨어로, 소프트웨어에서 시스템으로 이어지며 , 재귀적 피드백 루프에 따라 작동한다. 이는 들뢰즈가 '통제 사회(societies of control)'라고 부르는 것을 디지털 시대에 완전히 구현한 것이다. 자본: 디지털 시대의 자본은 알고리즘과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재생산(regeneration)/복제(reproduction)되며 , '끝없는 축적'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향해 우연성을 재귀적으로 극복한다. 노스피어(noosphere): 테일하르 드 샤르댕은 기술 시스템이 초유기체(superorganism)로 실현될 것이며 , 이는 '모든 두뇌의 두뇌(Brain of all brains)'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는 인간의 생산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의미한다.


근거의 원리: 우주기술학과 존재의 보존


시몽동은 기술이 '유기체가 되어가는 것'을 가능성으로 본다. 이는 '기술적 합리성의 한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며 , 기술 현실(technical reality)은 하이데거의 다자인(Dasein)에 대한 응답으로 제안된다. 기술 현실: 고립된 실체가 아니라 역사성(historicity)과 지역성(locality)을 통해 접근되어야 한다. 형상과 배경(figure and ground): 시몽동은 형태가 아닌 '형태를 담지하는 것', 즉 바탕(ground)이 역동성을 담고 있다고 본다. 바탕은 '잠재성, 가능성, 힘의 시스템'이며 , 형태는 '현실성'이다.


셸링의 '악(evil)': '자기 의지(self-will)'가 '보편 의지(universal will)'의 자리를 차지하려 할 때 발생하며 , 이는 '바탕'과 '존재' 사이의 분리, 즉 자기-의지가 전체의 근거가 되려는 시도와 유사하다. 코내추럴리티(co-naturality): 시몽동이 제안한 '자연과 기술의 공존'을 의미하며 , 기술 인프라가 인간 네트워크와 지역 지리의 '공내재성(co-naturality)'을 이룬다. 철학적 직관(philosophical intuition): 시몽동은 이를 '형상과 배경 자체의 관계'로 보며 , 미학적 및 철학적 교육, 즉 감성 교육(education of sensibility)과 연결된다. '알 수 없는 것(the Unknown)'의 합리화: 초월적인 신을 재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 기술의 도구성을 보존하고 정신과 통합하며 ,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삶과 행복을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상징 시스템을 통해 '알 수 없는 것'을 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이데거의 '충분 이유율(Principle of Reason)': '모든 것은 인식 가능한 계산 가능한 객체로 확고히 확립될 때만 존재한다고 간주된다'는 첫 번째 해석은 현대 기술의 계산 가능성에 기반한다. 두 번째 해석은 '근거'를 '존재'와 연결하며 , '근거'가 '존재의 보존'과 관련 있다고 본다.


5장. 잔존하는 비인간적인 것


이 장은 재귀성과 우연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기술 시스템의 총체화와 '비인간(the inhuman)'의 개념을 탐구하며 , 기술 다양성과 새로운 철학적 조건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하이데거와 실러: 기술과 인간성의 변형


하이데거: '철학의 종말은 과학 기술적 세계와 그 사회 질서의 조작 가능한 배열의 승리'를 의미하며 , 이는 사이버네틱스와 '세계 문명'의 시작을 나타낸다. 칸트의 제3 반이율배반: 자연 법칙과 자유 간의 긴장이 현대에는 '알고리즘과 빅데이터를 통한 거버넌스 대 개인의 자유와 욕망'으로 변형되었다. 실러의 미학 교육(aesthetic education): 물질적 충동과 형식적 충동의 합성을 '놀이 충동(play drive)'으로 제안하며 , 이는 '필연성과 우연성의 화해' , '유한한 것 안에 무한한 것의 각인'을 통해 인간성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포스트모더니티와 재귀성: 시스템과 계산 불가능성


리오타르의 작업은 시스템의 지배로 특징지어지는 포스트모던의 약속과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로 읽을 수 있다. 리오타르는 칸트의 성찰적 판단을 '휴리스틱(heuristics)'으로 간주하며 , 이는 '사고의 초월적 활동'이자 , '사고의 상태를 알려주는 감각'을 의미하는 기계적 은유를 사용한다. 리오타르의 이중성: 성찰적 판단이 시스템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반시스템적이기도 하다는 역설이 존재한다. 그는 루만의 시스템 이론을 성과주의(performativity)와 최적화를 목표로 하는 '테크노크라틱'하고 '냉소적'이라고 비판한다. 숭고(the sublime): 리오타르에게 숭고는 '계산 불가능한 것' 또는 '재현 불가능한 것'으로 , 이해와 상상력의 실패를 통해 시스템에 대한 반시스템적 잠재력을 드러낸다. '이론의 종말(The End of Theory)': 빅데이터 시대에는 이론이 필요 없다는 주장은 지식이 계산 가능성과 사실로 환원될 수 있다는 제한적인 개념화를 드러낸다. 리오타르는 '지식(savoir)'이 '과학'이나 '앎(connaissance)'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시스템 이후의 우연성, 또는 기술 다양성: 비인간의 긍정적 역할


메이야수의 '절대적 우연성' 개념은 상관주의에 대한 존재론적 거부를 제공하며 , 사고와 무관하게 완전히 수학화될 수 있는 자연의 사고 가능성을 확립하고자 한다. 메이야수의 '의미 없는 기호들(signs devoid of meaning)': 감각적 차이 없이 순수한 동일성만 생산하는 '반베르그송적' 존재론이다. 저자는 메이야수의 '반복(repetition), 반복(iteration), 재반복(reiteration)' 개념이 괴델의 재귀성 개념과 유사하며 , 그의 주장이 기술사와 재귀성의 역사에 대한 '무지'로 인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술 다양성: 단일한 시스템이 아닌 다양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 , 그리고 다양한 우주기술학적 관계를 통해 '다원성'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비인간(nonhuman)과 비인간(the inhuman): 비인간(nonhuman)은 인간 외의 존재(식물, 동물, 광물)를 의미하지만 , 비인간(the inhuman)은 '인간의 부정', '인간이 아닌 것', '인간 안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긍정적인 비인간은 시스템화와 계산으로의 환원에 저항한다.


감성(Sensibility)과 감수성(Passibility): 새로운 에피스테메의 추구


기술 다양성은 누두 다양성(noodiversity), 즉 '앎의 방식'인 인식론과 , '앎의 방식을 뒷받침하는 감각적 조건'인 에피스테메와 연결된다. 리오타르의 '비물질들(Les Immatériaux)' 전시: 포스트모던에 대한 새로운 감성을 보여주고자 했으며 , '낯익은 것 속의 낯선 것' , '변화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하려 했다. 이는 새로운 기술 시대의 가능성을 조명하는 새로운 에피스테메의 발견이자 '감성 교육'을 의미한다. '투명한 거울(clear mirror)': 리오타르는 도겐 선사의 '투명한 거울' 개념을 통해 새로운 기술 속에서 감수성 또는 '통과(passage)'를 찾으려 했다.


유기체론, 기관학, 그리고 우주기술학: 기술의 윤리적 재정립


'사이버네틱스적 사고를 통한 조직화'는 일반 유기체를 '생태학'이라 불리는 사이버네틱 시스템으로 실현했다. '세 번째 자연(third nature)': '우주기술학' 개념 안에 통합되어 자연과 기술의 대립을 개념적으로 피하고자 한다. 니덤의 중국 기술 사상 연구: 중국 기술 사상이 서양처럼 기계론적이지 않고 '고도로 유기체론적'이라고 보았다.


기술 다양성과 누두 다양성은 진화에 필수적이다. 이는 알고리즘이 구동하는 효율성에 기반한 결정론적 복합 시스템으로 향하는 것을 막는 데 필요하다. 사이버네틱스의 두 가지 이미지:



환원주의적(reductionist): 유기체를 모방하는 피드백 시스템으로 환원하고 , 결정론을 부과하며 , 효율성을 추구한다.

비환원주의적(nonreductionist): 시몽동의 일반 상호변환학처럼 기술 결정론을 넘어선 발생을 추구하며 , 우연성에 개방적이고 , 자기 목적성을 지지한다.



저자는 시몽동을 하이데거와 함께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 시몽동의 기술 발생 개념이 하이데거의 현대 기술 극복 제안을 보완한다고 본다. 중국 우주기술학: 우주를 몸에 유추하는 유기체적으로 간주하며 , 이는 '미학적, 도덕적 원리를 통제하는 기관'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니덤은 신유학을 '진정한 유기체적 철학'으로 보았다. 자본주의 극복: 자본주의적 기술의 인식론은 다른 존재론과 인식론에 따라 '다른 우주기술학'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 기술의 재정립: 기술에 윤리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는 기술적 경향을 바꿀 수 없으며 , 미래 기술 발전을 위한 새로운 틀을 제공하여 기술 다양성에 기반한 새로운 지정학을 출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종합 시사점


허욱의 『재귀성과 우연성』은 재귀성과 우연성이라는 두 가지 핵심 개념을 통해 기술 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이 책은 기술을 도구나 수단으로 보는 관점을 넘어, 기술이 어떻게 존재론적, 인식론적 질문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를 탐구한다. 칸트의 유기체 개념과 사이버네틱스의 발전을 재조명하며, 기계와 생명,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가장 중요한 시사점 중 하나는 기술이 인간의 통제하에 있는 수단이 아니라, 스스로 조직화하고 진화하며 우연성을 내재화하는 '유기체적' 속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는 인공지능과 자동화 시스템이 고도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기술의 예측 불가능성과 자율성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하이데거가 사이버네틱스를 형이상학의 종말이라고 선언한 것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도, 저자는 기술이 단순히 계산 가능한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알 수 없는 것', 즉 사변적 이성의 영역과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 책은 기술의 발전을 '인간 지능에 대한 근접성'으로 측정하는 기존의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기술이 다양한 문화와 지역성에 따라 고유한 '우주기술학'적 특이성을 가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서구 중심의 기술 발전 모델을 넘어 기술 다양성을 긍정하고, 각 지역의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 맞는 기술적 실천의 중요성을 부각한다.


궁극적으로, 『재귀성과 우연성』은 기술이 더 이상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라, 인간 존재와 세계를 형성하는 근본적인 힘임을 역설한다. 기술적 합리성의 한계를 인식하고, 우연성과 '비인간적인 것'의 긍정적인 역할을 수용함으로써, 우리는 기술 결정론을 넘어선 새로운 철학적 조건과 윤리적 탐구를 시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는 기술 발전이 효율성과 최적화를 추구하는 것을 넘어, 삶의 의미와 행복을 재구성하는 창조적인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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