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생명문명 시대의 정치-기술 철학 논고
정치철학의 논의에서 기술의 역할을 깊이 있게 다루는 '정치-기술 논고(Tractatus Politico-Technologicus)'의 필요성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었다. 기술적 행성화의 시대에 정치철학은 기술을 중심에 두어야 할 시급한 과제를 안고 있으며, 이는 현대의 난제들에 대한 통찰을 구상하는 데 필수적인 출발점이 된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고조된 민족주의와 정체성 정치, 강화된 국경 통제, 전쟁의 긴장, 기후 위기 등의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헤겔(Hegel)과 슈미트(Schmitt)의 사상을 다시 읽는 경험은 추상적인 개념들이 현실의 위협으로 구체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헤겔의 근대 국가(nation-state)와 슈미트의 거대 공간(Großraum)은 근대적 정치 형태를 대표한다. 미래의 행성적 사유는 이 두 가지 형태를 모두 초월하는 새로운 관점을 개척해야 한다는 인식이 형성되었다.
'행성적 사유(planetary thinking)'를 모색하는 것이 이 작업의 중심 주제다. 행성적 사유는 첫째, 국가 간 경쟁을 넘어선 사유를 펼치고, 둘째, 다양한 종과 민족이 공존할 수 있는 언어를 구축하며, 셋째, 영토 문제를 넘어 생태적 위기에 대응할 새로운 틀을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탐구를 위해 기술의 문제를 정치철학의 핵심에 위치시키는 '정치적 인식론(political epistemology)'을 방법론으로 채택한다. 이는 멈포드(Mumford)가 '메가머신(megamachine)'이라 부른 거대한 조직체를 정당화하고 작동시키는 인식론적 기반을 탐구하며, 행성적 사유의 실마리 역할을 한다.
초기 부분에서는 헤겔과 슈미트의 정치 사상과 그들이 정당화하려 했던 근대적 정치 형태의 인식론적 토대를 다룬다. 이후에는 이전에 다루어진 '재귀성과 우연성(Recursivity and Contingency)' 개념에서 발전된 '기술다양성(technodiversity)'을 상세하게 논의한다. 이 연구는 현대의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행성적 사유를 구상하기 위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글은 행성적 사유(planetary thinking)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정치-기술 논고다. 행성적 사유는 외교나 환경 문제를 다루는 것을 넘어, 근대 국가의 한계를 초월하고, 기술의 문제를 정치철학의 핵심으로 가져와 새로운 공존의 틀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1958년)와 달에서 찍은 지구 사진(1966년)은 인류에게 새로운 충격을 주었다. 지구는 더 이상 발 딛고 서 있는 대지가 아니라, 조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인공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식은 지구를 항상성을 유지하는 '사이버네틱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의 가이아(Gaia) 이론이나, 지구를 '우주선(spaceship)'으로 비유하는 리처드 버크민스터 풀러(Richard Buckminster Fuller)의 사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지구를 공학과 디자인의 대상으로 전락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행성화는 서구 기술이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며 '세계 문명'의 기반이 된 과정과 동일시될 수 있다. 하이데거(Heidegger)는 이러한 행성화가 서구 사유의 완성인 '사이버네틱스'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이는 비서구 사유의 역할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행성화는 시간의 동기화(synchronization)를 통해 공간을 압축하는 과정이며, 이는 인류의 역사를 '호모 파베르(Homo faber)'에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그리고 궁극적으로 '호모 데우스(Homo deus)'로 나아가는 선형적 시간 축에 동기화시켰다.
행성적 사유는 기후 변화와 생태 위기에 직면한 인류에게 평화와 공존을 위한 새로운 정치 형태를 구상하는 긴급한 과제다. 이는 근대 국가의 이익을 넘어, 다양한 민족과 종의 공존 언어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사유는 자본-국가-민족의 삼위일체로 이루어진 현 정치 형태의 한계를 초월해야 한다.
행성적 사유의 역사는 다양한 '정치적 인식론'을 통해 탐색될 수 있다. 정치적 인식론은 과학적 인식론이 정치, 경제, 기술 영역으로 확장되어 사회의 조직과 운영 방식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기계론(mechanism)'과 '유기체론(organism)'이라는 두 가지 주요 인식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계론은 17세기 절대주의를 정당화했으며, 유기체론은 18세기 후반 칸트(Kant)를 통해 철학의 중심 개념으로 부상했다. 이 책은 헤겔(Hegel)의 『법철학 강요(Outlines of the Philosophy of Right)』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그의 유기체론적 사유와 정치 인식론의 한계를 탐색한다.
오늘날에도 국가는 여전히 관련성을 잃지 않았다. 국가가 소멸했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팬데믹 기간 동안 국가는 건재함을 입증했다. 행성적 정치의 모색은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작업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기계론이나 유기체론을 넘어 '결단주의(decisionism)'를 통해 정치의 본질을 파악하려 했다. 슈미트에게 '정치적인 것'은 기계론이나 유기체론에 기반하지 않고 '예외 상황에 대한 결단'에 달려있다. 그의 사유는 국민국가의 한계를 인식하고, 거대 공간(Großraum)이라는 새로운 정치 형태를 제안했다. 거대 공간은 기술적, 경제적, 조직적 영역에서 통합된 형태로, 미국 제국주의와 같은 보편주의에 저항하는 복수주의(pluralism)를 지향한다.
헤겔과 슈미트의 사상은 행성적 사유의 역사적 궤적을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 책은 이들의 사유를 '정치-기술 논고'라는 새로운 틀로 재해석한다. '정치-기술 논고'는 정치와 기술을 분리된 영역으로 보지 않고, 기술이 정치 형태의 발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가정한다. 이는 기계론, 유기체론, 결단주의를 대조하며 정치 영역에서의 '기관학(organology)'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 논고는 가속화되는 기술 발전이 어떻게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지 분석하고, '기술다양성(technodiversity)'이라는 개념을 통해 공존의 새로운 언어를 구상한다. 이 책의 목표는 헤겔과 슈미트의 한계를 폭로하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옹호하는 행성적 사유를 위한 통찰을 제공하는 것이다.
헤겔의 정치철학을 중심으로 세계 정신(Weltgeist)이 어떻게 행성적 사유로 작동하며, 자유와 정치적 형태의 변천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지 분석한다. 근대 국가가 정신의 최고 실현 단계로서 유기적 형태로 존재하며, 이것이 자유를 위한 필연적인 조건임을 헤겔의 관점에서 재구성한다.
헤겔에게 개별화는 삼단 논법(syllogisms)의 재귀적인 생성과 소멸의 과정이다. 이성은 선형적이지 않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원동자(prime mover)'처럼 시작점에 있지 않다. 대신, 이성은 끊임없이 자신에게로 되돌아와 자기분화하고 자의식을 획득하는 순환적인 운동이다. 이 과정은 단순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헤라클레이토스의 강물처럼 매번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다. '개념(Begriff)'은 미리 주어진 형식이 아니라, 자기 외재화와 내재화를 통해 스스로를 실현하는 '살아있는(lebendig)' 존재이며, 이것이 곧 시간이다. 시간은 개념이 외재화되고 내면화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정신의 외재화는 기술적 활동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는 글쓰기, 인프라, 제도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이 외재화와 내면화의 재귀적 과정이 바로 정신의 발전과 진보를 가능하게 한다.
세계사는 이성의 자기 탐색과 자기의식화 과정이 펼쳐지는 장이다. 세계 정신은 인간의 집단적 행위를 통해 자신을 현실화하며, 이 과정은 우연성을 필연성으로 승화시킨다. 이는 헤겔의 변증법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운동이라는 증거다. 그러나 헤겔의 '세계 정신'은 유럽의 합리성이 세계사의 보편적 기준이 될 것임을 주장하며, 비유럽 문명을 주변적이고 불완전한 것으로 치부하는 한계를 보인다. 나폴레옹을 '세계 정신의 구현'으로 보았으며, 유럽의 이성이 모든 문명을 동화시키는 궁극적인 힘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사유는 유럽 중심주의적이지만, 동시에 행성적 사유의 원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세계를 정복해야 할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기의식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는 유기체로 이해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법의 근본적인 문제는 '자유'에 있다. 자유는 자의적인 선택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규정되는 필연성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자유는 폴리스(polis)의 조건이었으며, 개인의 내적 자유보다 공동체 생활 속에서 실현되는 자유를 중시했다. 반면, 근대에 이르러 개인의 자유가 중요해지면서 헤겔은 이러한 변화에 부응하는 새로운 철학적 과제를 제시한다. 사유는 개인의 자의성과 사회의 규칙, 의무와 권리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개인의 이기적 욕망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시민사회를 극복하고, 국가를 통해 보편성과 자유의 통합을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리적 과정을 통해 근대 국가는 자유의 실현을 위한 가장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형태로 자리 잡는다.
헤겔은 칸트의 '이율배반'이 순수한 이성의 한계를 드러낸다고 비판하며, 변증법을 통해 이율배반을 해결하고자 한다. 변증법은 우연성을 필연성으로 만드는 논리적 작동 방식이며, 이러한 재귀적 과정은 이성의 자기의식화를 이끈다. 헤겔에게 자유는 선택의 다양성이 아니라 이성의 자기규정적 힘이다. 근대 국가의 유기적 구조가 이러한 이성과 자유를 실현하는 최적의 형태라고 보았다. 국가의 다양한 권력(군주, 행정, 입법)은 유기적인 통일성을 이루며, 개인의 자의성을 극복하고 윤리적 삶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국가론은 국가 내부의 유기성에만 집중하고 국가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실패한다. 국가를 개별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국가 간의 갈등을 필연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한계는 사유가 근대 국가라는 틀을 넘어서지 못했음을 보여주며, 행성적 자유를 위한 새로운 사유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헤겔의 '국가 유기체론'이 지닌 의미와 그 한계를 탐색한다. 근대 국가가 정신의 발전에서 중요한 단계라는 헤겔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마르크스(Marx)의 비판을 통해 국가 유기체와 동물 유기체의 차이를 명확히 하고자 한다.
헤겔에게 국가는 '인간의 의지와 자유가 외재화된 형태'로서, 살아 있는(lebendig) 개념의 실현체이다. 정신의 외재화(Entäusserung)는 기술적 활동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는 제도를 객관화하고 정신을 절대적 단계로 나아가게 하는 핵심 과정이다. 이러한 외재화는 단순히 물화(物化)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의 외재적인 존재를 변증법적으로 흡수하여 자신의 자의식을 심화시키는 재귀적 운동이다. 근대 국가의 제도와 권력 분립은 바로 이러한 정신의 외재화와 자기 인식의 결과이다. 헤겔의 국가론은 정치적 인식론적 관점에서 국가가 하나의 '메가머신'으로서 기계론적 관점을 초월한 유기적 조직 형태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헤겔은 국가가 개인과 사회의 자의성을 극복하고 '사회적 자유(social freedom)'를 실현하는 윤리적 기관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국가가 기계론적인 질서가 아닌, 유기체적인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헤겔에게 '유기체'는 단지 자연의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반성하며 우연성을 필연성으로 승화시키는 논리적 형태를 의미한다. 이는 마르크스가 지적한 '국가 유기체와 동물 유기체의 차이'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동물은 자연의 우연성에 취약하지만, 국가는 정신의 외재화와 내재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정당화하고, 외부의 우연성에 대응하며 질서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에른스트 카프(Ernst Kapp)는 이러한 헤겔의 사상을 이어받아 기술과 문명의 발전을 '기관 투사(organ projection)'로 설명하며, 국가가 인간 정신의 최고 투사체라고 보았다.
헤겔의 국가론은 국가 내부의 유기적 통일성을 훌륭하게 설명했지만, 국가 간의 관계를 논하는 데에는 한계를 드러낸다. 그는 국가들을 서로 간섭해서는 안 되는 독립적인 '개체(individual)'로 규정하며, 국가 간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외적(external)일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칸트(Kant)가 '영구 평화(perpetual peace)'를 위한 국제적 기구를 제안한 것과 달리, 헤겔은 국가들 간의 동맹이나 연합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국가 간의 분쟁과 전쟁을 '세계 정신(Weltgeist)'의 자기 인식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단계로 간주하며, 오직 '세계 정신'만이 국가들을 심판하는 최종 재판관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헤겔의 행성적 사유가 국가라는 틀을 넘어서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국가라는 한계에 갇힌 자유 개념은 새로운 행성적 조건 속에서 다시금 재검토되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헤겔의 '국가 유기체' 개념을 넘어 행성적 사유로 나아가기 위한 세 가지 반성적 사유(bioeconomical reflection, cybernetic reflection, noospheric reflection)를 탐색한다. 헤겔의 논리적 유기체론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국가'를 초월한 '행성적 유기체'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기술이 행성적 사유의 중심을 차지하는 이유를 밝힌다.
헤겔에게 '반성(reflection)'은 정신의 핵심적인 작용이며, 자연과 정신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자연은 우연성에 취약하지만, 정신은 반성을 통해 우연성을 극복하고 개념을 구체화한다. 이러한 반성적 사유는 인간의 '지적 영혼(noetic soul)'의 특징이며, 인간의 진화(anthropogenesis)는 정신의 외재화(exosomatization)를 통해 이루어졌다. 에른스트 카프(Ernst Kapp)는 이러한 헤겔의 사상을 이어받아, 인간의 기술적 활동을 '지적 반성'의 결과로 설명하며, 기술이 자기의식의 발전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생물경제학자 니콜라스 조르제스쿠-로이건(Nicholas Georgescu-Roegen)은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기계론적 한계를 비판하며, '열역학'과 '변증법'에 기반을 둔 새로운 경제학을 제시한다. 그는 헤겔의 변증법을 차용해 경제 활동을 정적인 수치가 아닌, 역동적인 '운동과 삶'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인간은 엔트로피 증가라는 열역학 제2법칙에 저항하며 질서를 창출하는 '네겐트로피적' 존재이다. 인간의 경제 활동은 '외재화(exosomatization)'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 도구를 발명하고 사용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로이건은 이러한 외재화가 기술 중독과 환경 파괴라는 '휴브리스(hubris)'를 낳는다고 경고하며,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최소한의 생물경제학적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사이버네틱스는 기계론과 생기론의 이분법을 극복하고, '피드백(feedback)' 개념을 통해 기계가 유기체의 행동을 모방하고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헤겔 연구자 고타르트 귄터(Gotthard Günther)는 사이버네틱스가 헤겔의 논리를 현실화했다고 주장하며, '반성'을 기계의 의식으로 해석했다. 사이버네틱스는 인간의 의식과 경험을 기계 시스템에 적용함으로써, 기계가 단순한 기계적 존재를 넘어 '유기체가 되어가는' 과정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사이버네틱의 발전은 헤겔의 유기체론적 사유를 현실화하는 동시에, 정신이 국가를 초월하여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발전은 인간과 기계가 서로 다른 시간 척도로 작동하면서 발생하는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한다.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은 진화를 '지구권(geosphere)', '생물권(biosphere)', '정신권(noosphere)'으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보았다. 정신권은 인간의 지성이 축적된 기술적 층위로서, 지구에 '영혼'을 부여한다. 이는 기술이 더 이상 인간의 도구가 아니라, 지구 전체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행성적 현상임을 의미한다. 테이야르 드 샤르댕은 기술 발전을 통해 정신권이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로 수렴하여 궁극적인 통합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는 로이건과 사이버네틱스가 보여준 네겐트로피적 과정의 정점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는 테이야르의 이론이 기계론의 연장선에 불과하다고 비판했으며, 르로이-구르한(Leroi-Gourhan)은 오메가 포인트가 '종말론'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들의 사유는 헤겔의 국가론을 넘어 행성적 차원에서 자유와 공존의 문제를 사유할 단서를 제공한다.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정치 사상을 중심으로 기계론(mechanism)과 유기체론(organism)이라는 두 가지 정치적 인식론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다룬다. 슈미트는 홉스(Hobbes)의 리바이어던(Leviathan)이 기계적 존재가 아닌, '신화적'이고 '생기론적'인 존재임을 밝히며, '정치적 생기론(political vitalism)'으로서의 결단주의(decisionism)를 제안한다.
슈미트의 '정치신학'은 근대 국가 이론의 주요 개념들이 신학적 개념의 세속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현대성을 신학의 연속으로 보아 독자적 정당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슈미트의 사상을 '정치적 인식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적 인식론은 과학적 범주가 정치 조직을 형성하는 데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슈미트는 기계론과 유기체론이 모두 국가의 본질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보았으며, 이 둘의 대립을 넘어설 새로운 관점을 모색했다. 그는 이 대립이 통치 방식과 사회 조직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원리로서 작동한다고 인식했다.
홉스는 인간을 기계의 비유로 설명하고, 이를 국가에 확장하여 '공동체(commonwealth)'를 거대한 인공적 '리바이어던'으로 묘사했다. 슈미트는 이러한 홉스의 기계론적 관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홉스의 철학이 데카르트(Descartes)의 인간 기계론을 국가에 적용함으로써 발전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슈미트는 홉스의 국가가 단순히 기계적 존재가 아니며, 주권자(sovereign)가 국가라는 기계에 깃든 '영혼'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리바이어던은 기계, 유기체, 신, 인간의 결합체로서, 기계론의 한계를 초월하는 신화적이고 생기론적인 존재로 재해석된다. 이는 슈미트의 사유가 기술 발전에 따라 변화하는 국가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홉스의 사유는 인간을 기계적인 운동으로 이해하는 인식론에 기초한다. 그는 인간의 자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가정하며, 사회적 계약을 통해 질서를 부여하는 '인공적 국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러한 국가는 이성적이고 기계적인 규칙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공포를 조율한다. 슈미트는 홉스가 인간을 정치적·사회적 동물로 보지 않고, 원자적 개인들의 집합으로 이해한 점에 주목한다. 슈미트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기계론의 한계를 넘어선 '신화적'인 존재라고 보았으며, 홉스의 정치 인식이 당시의 기술 발전(해상 기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슈미트는 가톨릭 교회의 통치 방식을 분석하며 '대립물의 복합(complexio oppositorum)'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유기체론이 대립을 종합(synthesis)하려는 시도와 달리, 대립되는 요소를 있는 그대로 포용하고 유지하는 논리이다. 가톨릭주의는 기계론과 유기체론의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하며, 절대적인 권위를 통해 모순을 해소하지 않고 공존시킨다. 슈미트는 이러한 대립물의 복합이 정치적 결단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생기론'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이는 근대 사회의 기계적 합리성과 유기적 자연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고, 정치의 본질을 결단과 권위에 대한 문제로 환원한다.
슈미트는 기계와 유기체라는 두 가지 패러다임이 근대 유럽 철학을 특징짓는다고 보았으며, '정치적 생기론'을 통해 이를 넘어설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그는 '헤겔의 죽음'을 선언하며, 이는 19세기 헤겔의 국가론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헤겔의 유기적 국가론은 국가를 이상화했지만, 현실의 국가는 결코 완전한 유기체가 아니었다. 슈미트의 '정치적 생기론'은 국가의 존재가 위험에 처했을 때 모든 법적 규범을 유보하고 결단을 내리는 주권자의 '생명력(vitality)'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헤겔이 추구한 유기적 통일성 대신, '친구-적'의 구분을 통해 국가의 존재를 유지하는 실존주의적 투쟁에 가깝다. 슈미트에게 기술은 더 이상 중립적인 영역이 아니며, 정치적 생기력을 발휘하는 도구이자 새로운 '정치화'의 장이 된다.
디지털 시대에 '주권(sovereignty)'과 '법(nomos)'의 개념을 재검토한다.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사유를 바탕으로 주권의 우연성과 친구-적(friend-enemy) 구분의 한계를 해체하고, 거대 공간(Großraum)과 기술의 관계를 분석하여 새로운 행성적 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법의 기원은 항상 논쟁의 대상이었다. 자연법은 인간의 본성에서 법적 권리의 근거를 찾지만, 역사주의는 이를 시대적 산물로 보며 그 보편성을 부인했다. 실정법은 법의 근거를 주권자의 권위에서 찾았으나, 이는 주권의 기원이 자의적이거나 '신화적'일 수 있다는 문제를 남긴다. 슈미트는 주권을 '예외 상황에 대한 결단을 내리는 힘'으로 정의하며, 법의 형식적 논리 너머에 존재하는 생기론적(vitalist) 힘을 강조했다. 그러나 주권은 칸트(Kant)가 말한 '경계 개념(boundary concept)'처럼, 규정될 수 없으면서도 규정된 것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역설적인 존재다. 이는 주권이 증명될 수 없지만, 기술적 보조물을 통해 현실에 구현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슈미트의 주권 개념이 무조건성(unconditionality)을 내포한다고 보았다. 주권은 모든 법을 유보할 수 있는 힘이기에 계산을 초월하며, 이는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슈미트는 '친구-적' 구분을 정치의 본질로 보았으며, '적'은 국가의 생명력(vitality)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데리다는 9·11 테러를 '자기면역(autoimmune)' 사건으로 해석하며, 적이 외부의 타자가 아닌 '내 안의 타자'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관점은 세계화된 시대에 국가 간의 충돌이 '적-대' 관계를 넘어, 개별 국가가 자멸하는 '자기면역적 공격'의 형태를 띨 수 있음을 보여준다.
슈미트는 법(nomos)을 '대지의 질서를 정하고 나누는(take and divide) 행위'로 정의하며, 주권의 역사를 '공간 혁명(spatial revolution)'의 역사로 재구성한다. 그는 '땅(land)', '바다(sea)', '공기(air)'라는 세 가지 공간적 요소를 중심으로 국제 질서가 재편되어 왔다고 보았다. 유럽 중심의 '대지의 노모스'는 17세기 해상 기술의 발달로 인해 해상 권력이 부상하면서 변화했고, 20세기에는 항공 기술의 발달로 '공기'가 새로운 공간적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공간 혁명은 기존의 법적 질서를 무효화하고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기술의 중심성을 보여준다.
슈미트는 국민국가가 쇠퇴하고 있으며, 이를 대체할 새로운 정치 형태로서 '거대 공간(Großraum)'을 제안한다. 거대 공간은 기술적, 산업적, 경제적 영역에서 통합된 공간 단위로, 미국 제국주의와 같은 보편주의에 대항하는 복수주의를 지향한다. 슈미트는 기술이 중립적이지 않으며, 새로운 '친구-적' 그룹을 형성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그의 사유는 거대 공간이 국민국가의 확장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거대 공간 내부의 동질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외부와의 복수주의를 주장하는 그의 논리는 새로운 형태의 지배를 정당화할 위험성을 내포한다.
슈미트의 '거대 공간' 개념은 전후 시대의 '식민주의(colonialism)'가 '빼앗는 것(taking)'에서 '주는 것(giving)'으로 변화했다는 코제브(Kojève)의 주장과 연결된다. 자본과 인프라를 통해 약소국에 원조하는 방식은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로 작용하며, 이는 거대 공간의 형성을 위한 도구가 된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주권은 영토를 넘어 '클라우드'와 '데이터'를 통제하는 '디지털 주권(digital sovereignty)'의 형태로 확장되었다. 이는 슈미트의 공간 혁명 이론을 현대에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주권' 담론은 국가의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는 동시에, 기술 기업과의 새로운 갈등을 야기하며, 결국 '제2의 냉전'과 같은 새로운 대립 구도로 귀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전쟁의 원인을 정치적, 경제적 관점을 넘어 '기관학(organology)'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사유를 중심으로 기술이 인류의 '인공 기관(artificial organ)'으로서 급격히 확장되면서 발생하는 '기관의 불균형(disproportion of organs)'이 어떻게 전쟁을 유발하는지 설명한다.
베르그송은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기술 발전으로 인한 '기관학적 불균형'에 있다고 보았다. 19세기 산업화로 인해 인류의 몸은 기계적 기관을 통해 "기적적으로 커졌지만, 영혼은 새로운 몸의 차원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이러한 불균형이 도덕적, 사회적, 국제적 문제들을 낳고, 전쟁이라는 '휴브리스(hubris)'로 표출되었다는 것이다. 베르그송에게 전쟁은 기술과 생명력(élan vital) 사이의 불일치에서 비롯된 문명 내부의 비극적인 현상이다. 기계론적 사고방식이 지배적인 독일에서 이러한 불균형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보았다.
21세기의 사이버네틱스 기술은 헤겔이 상상했던 '유기적 통일성'을 실현할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라플라스의 악마(Laplace's demon)'와 같이 모든 것을 예측하고 통제하려는 '닫힌 시스템(closed system)'으로 귀결될 위험을 내포한다. 프란시스코 바렐라(Francisco Varela)는 사이버네틱스에 내재된 '통제(control)'와 '자율성(autonomy)'의 두 갈래 중 통제 모델이 우세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기술적 자율성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계산과 확률의 문제로 축소시킨다. 슈미트(Schmitt)의 주장처럼, 기술은 국가가 생명력(vitality)을 유지하기 위해 예외 상황을 선언하고 경제 질서를 중단시키는 원인이 된다. 이는 국가와 메가머신 사이의 긴장 관계가 심화되면서 발생하는 현대의 새로운 난관이다.
베르그송은 기계화라는 '경향(tendency)'을 극복하기 위해 기계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계에 새로운 소명(vocation)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기계화와 대립하는 '신비주의(mysticism)'적 삶을 통해 가능하다. 여기서 신비주의는 종교적 교리가 아니라, 기계화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생명력의 본래적 충동으로 되돌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기계화가 인류의 '자연적 재능'에서 비롯된 경향이라면, '신비주의적 삶'은 그 경향을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는 반대 경향이다. 베르그송은 기술적 발전이 인류를 더 풍요로운 다양성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보았다.
르로이-구르한(Leroi-Gourhan)은 베르그송의 '경향' 개념을 이어받아 '기술적 경향(technical tendency)'과 '기술적 사실(technical fact)'을 구분한다. 기술적 경향은 보편적인 원리로서 어느 곳에서나 발현될 수 있는 잠재력이다. 반면 기술적 사실은 이러한 경향이 특정 환경(milieu)과 만나 구체화된 산물이다. 예를 들어 칼이라는 기술적 경향은 지역의 재료와 문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근대화와 세계화 과정에서 보편화의 경향이 개별성을 압도하면서 기술적 사실의 다양성이 훼손되었다. 이러한 보편화는 기술이 '인간 시스템'을 압도하는 '기관학적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민주주의는 자율성과 자기 결정에 관한 것이다. 근대 민주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의 틀 안에서 발전했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개인은 '시민'에서 '소비자'로 변화했다. 슈미트의 비판처럼, 기술은 민주주의의 의사 결정 과정을 비효율적으로 만들고 '결단'의 주체로서 국가의 힘을 약화시킨다. 동시에, 기술은 민주주의를 '투표'라는 하나의 행위로 축소시키고, 포퓰리즘(populism)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기술을 민주주의의 도구로만 보지 않고, '기술의 민주화'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자율적이고 다원적인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한다.
기술적 보편화는 '정신적 단일문화(monoculture of the mind)'를 낳아, 생물다양성(biodiversity)과 정신다양성(noodiversity)을 위협한다. 이는 현대의 위기가 환경적 문제를 넘어, 존재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문제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생물다양성', '정신다양성', '기술다양성'의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 새로운 행성적 사유의 틀이 필요하다. 생물다양성은 다양한 종의 공존을, 정신다양성은 다양한 지식과 문화를, 기술다양성은 다양한 기술의 발현을 의미한다. 이 세 가지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으며, 기술다양성은 기술적 보편화에 저항하는 힘이 될 수 있다.
헤겔과 슈미트의 사유를 넘어서는 새로운 행성적 사유의 틀로 '인식론적 외교(epistemological diplomacy)'를 제안한다. 기술다양성(technodiversity), 정신다양성(noodiversity),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기술이 가져온 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형태의 공존을 모색하는 방법을 탐구한다.
오늘날 자동화 기술은 헤겔의 '유기적 국가' 개념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정부 서비스는 자동화되어 효율성을 높이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는 더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가속화는 인간을 기계가 대체할 것이라는 불안을 낳는다. 그러나 이는 산업이 스스로의 신화를 실현하는 과정일 뿐이다. 인류는 기술을 대체물로 여기는 '대체 문화(culture of replacement)'가 아닌, 기술이 인간을 돕는 '인공 기관(prosthesis)'으로 인식하도록 '보철 문화(culture of prosthesis)'를 발전시켜야 한다. 기술의 목적을 속도나 효율성에 두지 않고, 문명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데 두어야 한다.
기술은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존재로 여겨지기 쉽지만 실제로는 문화적, 인식론적, 우주론적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기술다양성'은 이러한 보편적인 기술의 흐름을 해체하고,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기술적 사고를 재발견하려는 시도다. 이는 기술이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문화와 지식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야 함을 의미한다. 보편성은 획일적인 표준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이 존중되고 공존하는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태국의 왕이 기독교 선교사들에게 "신은 세상에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기를 바란다"고 답한 일화처럼, 획일적인 가치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찾아야 한다.
오늘날 주권은 메가머신(megamachine)과의 긴장 관계 속에서 그 존재가 흔들리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메가머신은 행성적 규모로 확장되었지만, 주권은 메가머신을 통제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이에 국가는 '예외 상황 선언'이나 감시 기술을 통해 통제력을 되찾으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자기면역적 공격(autoimmune attack)'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 리버럴리즘과 권위주의 모두 기술적 난관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형태의 주권은 메가머신의 성장에 대응하여 스스로를 재정의해야 한다. '기술다양성'은 주권이 획일적인 기술 경쟁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식론적 조건을 창출하고 메가머신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방향을 제시한다.
기술다양성은 지역주의나 민족주의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기술적 대상의 '해부학(anatomy)'을 통해 기술의 다양한 층위(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사용 방식)를 분석하고, 그 안에 담긴 인식론적, 존재론적, 우주론적 가정을 탐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중국 의학의 소프트웨어는 서구 의학과 다른 존재론적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기술에 대한 다른 사유 방식을 가능하게 한다. 기술다양성은 기술적 대상을 경제적 합리성이나 효율성으로 환원할 수 없음을 보여주며, 기술을 문화와 철학의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함을 강조한다.
인식론적 외교는 경제적, 군사적 경쟁에 기반한 기존의 외교를 넘어선다. 이는 헤겔이 말한 '행성적 이성'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이다. 칸트(Kant)가 '자유 무역'을 영구 평화의 가능성으로 제시했지만, 피히테(Fichte)는 무역 경쟁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과학(Wissenschaft)'을 인류를 연결하는 보편적인 고리로 제안했다. 그러나 오늘날 기술은 과학과 결합하여 새로운 전쟁의 도구가 되었다. 따라서 기술을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 기술적 보편화에 맞서 기술다양성을 촉진해야 한다. 이는 기술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기술을 자기반성적이고 윤리적인 존재로 재정의하여 '행성적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1. 기술적 가속화와 주권의 위기
자동화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헤겔의 '유기적 국가' 개념을 현실화하는 동시에, 주권이 메가머신(megamachine)을 통제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만들고 있다. 이로 인해 국가는 '예외 상황 선언'을 통해 통제력을 되찾으려 하지만, 이는 '자기면역적 공격(autoimmune attack)'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리버럴리즘과 권위주의 모두 이 기술적 난관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2. 기술다양성의 필요성
기술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 인식론적, 우주론적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획일적인 기술의 흐름을 해체하고,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기술적 사고를 재발견하는 '기술다양성(technodiversity)'은 기술 경쟁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다.
3. 인식론적 외교의 역할
인식론적 외교는 경제적, 군사적 경쟁을 넘어, 기술을 자기반성적이고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 새로운 접근법이다. 이는 기술적 보편화에 맞서 기술다양성을 촉진하고, 인류를 '행성적 행복'으로 이끄는 길을 모색한다.
4. 문화의 재정의
기술을 대체물로 보는 '대체 문화(culture of replacement)'를 넘어, 기술을 인간을 돕는 '인공 기관(prosthesis)'으로 인식하는 '보철 문화(culture of prosthesis)'가 필요하다. 이는 기술의 목적을 속도나 효율성 대신, 문명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데 두어야 함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