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술에 관한 물음: 동양적 정신-기술 문명

또 다른 세계사를 위한 철학을 묻다

by 소묘


『중국에서의 기술에 관한 물음: 알고리즘 시대 인문학의 새로운 시작, 코스모테크닉스 시론』


허욱(Yuk Hui)의 『중국에서의 기술에 관한 문제: 코스모테크닉스에 관한 에세이』는 서구 중심적인 기술 담론에 도전하며, 기술과 문화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철학서이다. 이 책은 저자의 독특한 학문적 배경과 이력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홍콩 출신인 허욱은 십대 시절부터 신유교(Neo-Confucianism)의 우주론과 현대 천체물리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후 독일에서 수학하며 서양 철학, 특히 하이데거의 사상을 접하게 된다. 하이데거는 현대 기술의 본질을 '게슈텔(Ge-stell)'로 규정하며, 존재 망각의 문제로 기술을 비판했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기술과 과학을 '국제적인' 것으로, 사유를 '향토적인' 것으로 구분하며 비유럽 문화권의 독자적 사유 가능성을 제한하는 편견을 드러냈다. 그는 중국의 공산주의 집권이 기술에 '자유로운' 상태를 허용함으로써 사유 없는 기술 발전이 가속화될 것을 예견하기도 했다.


이러한 서구 철학의 한계를 목격한 허욱은 인류학자 필립 데스콜라(Philippe Descola)의 '복수적 자연(multiple natures)' 개념에서 영감을 얻어, 기술 또한 기능적, 미학적 차원을 넘어 '존재론적(ontologically)' '우주론적(cosmologically)'으로 다른 '복수적 기술(multiple technics)'이 존재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기술을 인류학적으로 보편적인 활동으로 이해하는 통념을 거부하고, 기술이 각 문화의 고유한 '코스모테크닉스(cosmotechnics)'에 의해 형성된다는 핵심 주장을 펼친다.


허욱은 중국의 역사에서 기술(器, Qi)과 우주적 도덕 원리(道, Dao)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붕괴되었는지 추적하며, 현대 기술의 도래가 중국 사회에 가져온 근본적인 단절을 탐구한다. 즉, 이 책의 핵심 문제의식은 서구의 기술 비판에만 의존하는 중국 기술철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중국 고유의 사유 체계인 '코스모테크닉스'을 재구성함으로써 근대화와 기술 발전에 대한 독자적인 성찰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파시즘과 극단주의로 이어진 20세기 '근대성 극복'의 실패를 되돌아보고, '인류세(Anthropocene)' 시대에 새로운 세계사를 열기 위한 철학적 기반을 제시하고 있다.



머리말 (Preface)


이 책은 ‘코스모테크닉스’라는 개념을 제안하며, 기술과 그 역사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느끼는 고독이 ‘우주’를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D.H. 로렌스의 말을 인용하며 서론을 시작한다. 저자는 십대 시절부터 신유교 우주론과 현대 천체물리학에 매료되었으며, 이후 서양 철학을 공부하면서 동서양 사상을 통합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하이데거, 스티글러, 데스콜라, 리산후 등의 철학자들의 작업에서 영감을 얻어, 기능적, 미학적 차원을 넘어 존재론적, 우주론적 차원에서 상이한 ‘기술들(technics)’을 사유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을 구체화했다.


이 책은 서구의 기술 비판이 가진 한계를 지적하며, 비유럽 문화권에서 기술에 대한 독자적인 사유가 부재함을 비판한다. 하이데거는 기술과 과학을 ‘국제적인’ 것으로 본 반면, 사유는 고유하고 ‘향토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는 중국의 공산주의가 기술에 ‘자유로운’ 상태를 허용함으로써 사유 없는 기술 발전이 가속화될 것을 예견했다. 저자는 이러한 하이데거의 분석이 비유럽 문화권에 대한 편견을 내포하고 있으며, 서구의 기술사 분석에만 의존하는 중국 기술철학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중국이 맹목적인 현대화에서 벗어나 기술에 대한 독자적인 성찰을 할 시점에 도달했다고 진단한다.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한 문화적, 환경적, 사회적 파괴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 고유의 기술철학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기술을 보편적인 것으로 여기는 오해를 극복하고, 기술과 기술성의 복수성을 펼쳐내어 진정한 세계사를 다시 열어 보려는 시도다.



서론 (Introduction)


이 책의 핵심적인 질문은 “기술에 관한 문제는 근대화 이전 비유럽 문화권에서 어떤 의미였는가?”이다. 저자는 기술이 인류학적으로 보편적인 활동이었음은 인정하지만, 철학적 개념으로서의 기술은 보편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술은 그것이 등장한 문화의 광범위한 우주론, 즉 ‘코스모테크닉스(cosmotechnics)’와의관계 속에서 탐구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의 탄생은 신화와 이성 간의 분리 과정이었다. 그러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신화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으며, 독일 관념론자들 또한 철학과 신화의 변증법적 관계를 인식했다. 저자는 기술에 대한 질문을 탐구하려면, 서구 철학이 거부하고 확장해 온 기술 기원에 관한 지배적인 신화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서구 기술의 기원을 설명한다. 프로메테우스가 불과 기술(technai)을 인간에게 주었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존재가 되었다. 이는 기술이 원래 그리스적인 것이라는 인식을 낳는다. 반면, 중국 신화에는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반역적인 인물이 없다. 인간과 기술의 기원은 고대의 지혜로운 세 황제(복희, 여와, 신농)의 자비로운 행위에 기인한다. 이는 서양 신화와 달리 신과 인간의 세계가 급진적으로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처럼 문화마다 기술의 기원이 다르게 묘사되며, 이는 기술, 신, 인간, 우주 간의 관계가 다르게 설정되었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코스모테크닉스(cosmotechnics)를 ‘기술 활동을 통한 우주 질서와 도덕 질서의 통일'로 정의한다. 이는 기술과 자연의 전통적인 대립을 극복하고, 양자의 유기적 통일을 추구하는 개념이다. 질베르 시몽동의 논의를 참고하여, 기술성이 주체와 객체의 분리 이전의 ‘마법적 단계’에서 시작되어 기술과 종교로 분기되었다고 설명한다. 현대에는 기술이 우주론과 완전히 분리되어, 우주가 '이용 가능한 예비 재고'로 간주되는 '자연주의'라는 코스모테크닉스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시몽동은 TV 안테나의 사례처럼 현대 기술과 자연이 '공동 자연성(co-naturality)'을 회복하는 새로운 코스모테크닉스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인류학자 필립 데스콜라(Philippe Descola)는 자연과 문화의 구분이 서구의 '자연주의'에 불과하며, 애니미즘, 토테미즘, 유추주의 등 다양한 존재론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 주장을 확장해 기술에도 다양한 존재론이 존재한다고 보고, 이를 코스모테크닉스로 지칭한다. 팀 잉골드(Tim Ingold)의 감각적 생태학 개념을 통해, 기술이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매개하는 방식이 문화마다 다름을 강조한다. 중국 우주론에서는 '감응(感應)'이라는 개념이 인간과 천지 간의 공명(resonance)을 통해 도덕적 질서를 확립한다. 이는 인간과 천지(天人合一)의 통일성을 전제하며, 모든 존재의 동질성과 유기성을 내포한다.


저자는 중국의 기술철학을 재구성하기 위해 고대 철학 범주인 '기(器, Qi)'와 '도(道, Dao)'의 관계를 추적한다. '도'는 형상 너머의 원리를, '기'는 형상 아래의 도구를 의미한다. 이 둘의 관계를 통해 도덕적, 우주론적 사유가 통합된 중국의 코스모테크닉스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은 이 관계가 중국 사상사 전반에 걸쳐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적하고, 근대 기술과학이 이 관계를 어떻게 붕괴시켰는지 보여줄 것이다. 이를 통해 서구의 기술 비판에 대응하고, 진정한 중국 기술철학을 구축하는 방법을 모색하려 한다.


저자는 자신의 접근법이 포스트식민주의 비판과 다르다고 명확히 밝힌다.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이 서사를 중심으로 권력 역학을 재구성하는 데 집중하는 반면, 이 책은 기술의 물질성(materiality)에 주목하며, 기술과 사유의 관계를 물질주의적 관점에서 비판한다. 이는 기술을 단순히 도구로 여기는 관점을 넘어, 전통과 근대, 지역과 세계, 동양과 서양의 관계를 역사적, 우주론적으로 이해하기 위함이다.


1부: 중국에서의 기술적 사유 탐색 (PART 1. In Search of Technological Thought in China)


도(Dao)와 우주(Cosmos): 도덕의 원리 (Dao And Cosmos: The Principle Of The Moral)


중국 고전 『고공기(考工記)』는 기술 생산의 네 가지 요소를 언급한다: 천시(天時), 지기(地氣), 재미(材美), 공교(工巧). 이 중 기술(공교)은 인간의 통제하에 있지만, 나머지 세 요소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이는 기술이 우주의 도덕적 선(善)을 실현하는 데 봉사하는 것으로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반면 하이데거가 해석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술(technē)은 존재의 '진리(aletheia)'를 드러내는 것에 중점을 둔다.


중국 우주론은 자연철학이 아니라 '도덕적 형이상학'으로 시작했다. 『주역(周易)』 건괘(乾卦)는 "대인의 덕은 천지와 합치된다"고 말하며, 도덕과 우주 질서가 분리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도(Dao)는 우주적, 도덕적 질서의 총체적 조화를 의미하며, 이는 유교와 도교 사상의 공통점이었다. 특히 유교의 도덕적 우주론은 인간과 천지의 통일(天人合一)을 핵심으로 삼는다.


도교의 노자(老子)와 장자(莊子)는 도가 만물(萬物)에 내재한다고 보았다. 왕필(王弼)은 도(道)와 기(器)를 비롯한 네 가지 대립쌍의 통일성을 강조하며, 이들이 분리될 수 없음을 주장했다. 장자(莊子)의 대동구(大東郭) 이야기는 도가 개미, 잡초, 기와, 심지어 오줌과 똥에도 존재한다고 말하며, 도의 편재성을 역설한다. 이는 도가 특정 대상의 원리가 아니라 모든 존재에 편재하지만 대상화될 수 없는 '무조건적인 것(das Unbedingte)'임을 보여준다.



테크네(Technē)와 폭력 (Techne As Violence)


고대 그리스에서 자연(physis)은 '성장'과 '창조'를 의미하는 반면, 중국의 자연(自然, zi ran)은 생산성뿐만 아니라 쇠퇴와 정체까지 포함한다. 그리스의 기술(technē)은 자연을 모방하고 완성시키는 것으로 여겨졌다. 반면 중국 사상에서 기술은 우주 질서에 종속되며,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은 도덕적으로 선한 것이었다.


하이데거는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 대한 해석을 통해 그리스의 기술(technē)을 '폭력'으로 규정한다.

인간은 기술을 통해 존재의 한계를 넘어 '낯선(unheimlich)' 존재가 되고, 존재(Being)의 압도적인 힘(Überwaltigend)과 대결한다. 이 대결(Auseinandersetzung) 속에서 존재는 '피팅성(Fug)'으로서의 '정의(dikē)'를 드러내며, 이는 곧 진리(aletheia)의 해명과 연결된다. 기술은 존재의 '압도적인 폭력(Übergewalt des Seins)'과 대면하여 존재를 드러나게 하는 폭력적인 행위였다. 이러한 기술과 정의의 대결은 기술과 정의 모두가 기하학적 의미의 '피팅성'을 추구했던 그리스 코스모테크닉스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조화(Harmony)와 천(The Heaven)


그리스의 기술이 존재의 폭력과 대결하는 '투쟁(eris)'과 유사하다면, 중국의 기술은 '조화(harmony)'를 기반으로 인간과 우주적 존재들 사이의 관계를 맺는다. 중국 고전들은 일식과 같은 자연 현상이 군왕의 부도덕한 행위와 연결된다고 보았으며, 이는 인간의 행위가 천(天)의 원리(the reasons of the Heaven)와 공명(resonance)한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동중서(董仲舒)는 '천인감응(天人感應)' 사상을 통해 우주 질서와 도덕 질서의 통일성을 강조했으며, 이는 황제의 통치 행위가 계절의 변화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정치적 주장을 뒷받침했다.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황제가 자신의 덕이 부족했음을 인정하며 책임을 지는 관행은 이러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위진 현학(魏晋玄學) 시대에 잠시 쇠퇴했으나, 천과 도덕의 통일이라는 핵심 사상은 유지되었다. 주역과 중용의 전통을 계승한 신유학(新儒學)은 도덕적 질서와 우주적 질서의 통일성을 항상 중심에 두었다.



도(Dao)와 기(Qi): 자유에 대한 덕(Virtue Contra Freedom)


중국 사상에서 도(Dao)는 기술적, 도구적 사유보다 우월하며, 기술적 대상의 한계를 초월하는 목표를 갖는다. 반면 그리스의 기술(technē)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는 기술이 도덕적, 윤리적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논쟁의 대상이 되며, 기술과 탁월함(aretē)의 관계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기술은 우연(tychē)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정의(dikē)와 비례(proportion)를 통해 우주적 질서를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기술과 덕의 관계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지식의 분류를 통해 해체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기술(technē)은 '변화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지식(epistēmē)과 구분되며, 자기 안에 목적을 가지는 실천(praxis)과도 구분되는 '결과물을 가진' 생산(poiēsis)이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 '존재 망각(oblivion of Being)'을 낳고, 궁극적으로 현대 기술의 본질인 '게슈텔(Gestell, 존재의 폭력적 질서)'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한편, 중국 사상에서 기술적 대상(Qi)은 우주적 질서(Dao)와 조화를 이루어야 '덕'을 얻는다는 점에서 서구와 다른 관계를 맺는다. 기(器, Qi)는 '도구', '용기'를 뜻하며, 유교에서는 군자가 '기(器)'에 국한되지 않고 무한한 덕성을 갖춰야 한다고 가르친다. 주역의 주석서 『계사(繫辭)』는 "형이상자 위지도(形而上者謂之道), 형이하자 위지기(形而下者謂之器)"라고 하여, '형상 위'의 형이상학적 원리인 도(Dao)와 '형상 아래'의 기술적 대상인 기(Qi)를 구분한다. 그러나 둘은 그림자와 형상처럼 분리될 수 없다. 기는 도를 담는 용기(container)이며, 도는 기를 통해 현현된다.


1) 도교에서의 기(Qi)와 도(Dao): 포정의 칼 (Qi And Dao In Daoism: Pao Ding’s Knife)


도교에서 도(Dao)는 기술의 궁극적인 지식이며, 측정이나 계산 없이 '자연(zi ran)'을 따르는 것이다. 장자(莊子)의 '포정(庖丁) 해우(解牛)' 이야기는 도교적 코스모테크닉스의 정수를 보여준다. 포정은 뛰어난 기술이 아니라 소의 자연적 구조에 내재된 도(道)를 이해함으로써 칼날을 상하지 않고 소를 해체한다. 여기서 칼(Qi)은 도에 종속되며, 기술의 완벽함은 도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에 의해 달성된다. 장자(莊子)의 다른 이야기에서 자공(子貢)이 우물을 쉽게 길어 올리는 '우물 두레박'을 제안하자, 늙은 정원사는 '기심(機心)'을 갖게 될까 두려워 거절한다. 기심(機心)은 '계산적인 마음'을 의미하며, 이는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을 잃고 도(Dao)에서 멀어지게 하는 원인으로 간주된다.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 나오는 수사학의 기술은 사물의 본성을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포정의 기술과 유사하지만, 장자는 '잘 사는 법'이라는 관점에서 도에 따를 것을 강조한다. 또한 플라톤의 글쓰기 기술에 대한 비판(『파이드로스』)은 기억을 보조하지만 진정한 지혜를 잃게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반면 장자의 우물 두레박에 대한 비판은 도(Dao)로부터의 이탈을 막고 '자유'를 재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2) 유교에서의 기(Qi)와 도(Dao): 예(Li)의 회복 (Qi And Dao In Confucianism: Restoring The Li)

유교에서 기(Qi)는 종종 예(禮, Li) 의식에 사용되는 도구(Li Qi)를 의미한다. 예는 하늘과 땅, 귀신과 인간을 조화시키고 만물을 다스리는 원리였다. 따라서 기(Qi)는 의례를 통해 우주적, 도덕적 질서를 안정시키고 회복하는 역할을 했다. 공자(孔子)는 예를 통해 군신(君臣), 부자(父子) 관계를 바로잡고 사회적 조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자는 기와 명(名, '이름')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고 보았다. 『춘추좌씨전(春秋左傳)』에서 공자는 신하에게 왕자(君)의 악기(器)와 이름(名)을 주어 예를 훼손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기와 명은 군주가 특별히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는 기와 명을 통해 신의(信義)가 나오고, 예의와 의(義)가 실현되며, 마침내 백성의 평화(平民)를 이끌어낸다는 유교의 논리였다.


결론적으로, 유교에서 기(Qi)는 도덕적, 우주적 질서를 보존하고 훌륭한 인격을 함양하는 데 목적을 두는 반면, 도교에서는 기가 '자연적(zi ran)'이 되어야 도(Dao)에 도달할 수 있었다.


3) 스토아 코스모테크닉스(Stoic Cosmotechnics)과 도교 코스모테크닉스에 관한 비고 (Remarks On Stoic And Daoist Cosmotechnics)


스토아 철학의 '자연에 따라 사는 것(living in agreement with nature)'은 도교의 지향점과 유사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스토아 학파에게 우주는 유한하고 구체적인 몸체였고, 이는 이성(Reason)에 의해 생성된 질서를 갖는 유기체적 모델이었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 이러한 우주적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행복(eudaimonia)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도교의 도(Dao)는 무형의 자연적 원리이며, 인간의 자유(freedom)는 '무위(wu wei)' 즉 '무간섭'을 통해 본래의 자발성을 회복할 때 얻어진다고 보았다. 스토아 코스모테크닉스이 '이성'을 통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 했다면, 도교는 '자발적 적성'의 회복을 중시한 것이다.


기(Qi)-도(Dao)의 저항: 당(唐)나라 구문운동(Gu Wen Movement) (Qi-Dao As Resistance: The Gu Wen Movement In The Tang Period)


위진(魏晋) 시대 이후 불교가 중국의 지배적인 종교가 되면서 유교의 위상이 흔들렸다. 이에 한유(韓愈)와 유종원(柳宗元)을 중심으로 한 '구문운동(古文運動)'이 일어났고, 이는 유교 가치와 기-도(Qi-Dao)의 통일성을 재확립하려는 저항이었다. 이 운동은 화려한 문체 대신 고문의 단순함과 간결함을 되살리고, 문장(文)이 도(道)를 밝히는(明) 도구(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운동은 유교가 중국 문화의 중심(中)이라는 것을 재확립하려는 시도였다. 한유는 도를 보편적 사랑(仁)과 정의(義)를 통해 실천하는 고대 왕들의 가르침으로 정의했고, 이는 '도덕적' 우주론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유종원은 불교의 '중관(中觀)' 사상을 통해 도가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 그 자체에 내재하는 원리임을 주장하며 새로운 우주론적 사유를 펼쳤다. 이처럼 구문운동은 글쓰기라는 기(Qi)와 도(Dao)의 관계를 통해 우주적, 도덕적 질서를 재확인하려 했다.



초기 신유학의 기(Ch'i) 이론 (The Materialist Theory of Ch'i in Early Neo-Confucianism)


송(宋)나라 신유학은 우주론과 도덕을 통합하는 사유를 발전시켰으며, 장재(張載)는 '기(ch'i)' 개념을 통해 이를 구체화했다. 장재는 우주가 '태허(太虛)'라는 거대한 공허(void)로 이루어져 있고, 이 공허가 '기(ch'i)'로 채워져 있다고 주장했다. 모든 존재는 기(ch'i)의 변화(ch'i hua, 氣化) 과정이며, 이 과정 자체가 도(Dao)이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기(ch'i)를 통해 '나'와 연결되어 있고, 만물(萬物)에 대한 도덕적 의무를 갖게 된다. 이는 곧 '도덕적 우주론'을 정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돈이(周敦頤)는 '문장으로 도를 전달한다(文以載道)'고 주장하며, 기(Qi)가 도(Dao)를 담는 단순한 '수레(vehicle)'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이는 기와 도를 분리하는 경향을 낳았으며, '기'의 질문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송영성(Song Yingxing)의 명(明)나라 백과사전의 기(Qi)-도(Dao) (Qi-Dao In Song Yingxing’s Encyclopaedia During The Ming Dynasty)


명(明)나라의 송영성(宋應星)은 기술의 역할을 형이상학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백과사전 『천공개물(天工開物)』은 다양한 기술을 다루며, 인간의 기술적 활동이 '하늘의 원리(the principle of Heaven)'와 어떻게 양립하는지를 설명했다. 송영성은 장재(張載)의 기(ch'i) 이론을 계승하여, '하늘과 땅을 채우는 것이 기(ch'i)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ch'i)의 변화가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의 오행(五行)으로 발현되며, 기술적 활동(Qi)은 이 오행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이는 기(Qi)가 단순히 도(Dao)를 담는 도구가 아니라, 기(ch'i)의 변화를 통해 존재를 구현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함을 의미한다. 송영성은 우주와 도덕의 통일성을 확인하면서도, 자연 현상과 군왕의 도덕을 연결하는 상관론(correlative theory)을 미신으로 비판하고, 통치자의 덕은 '과학적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송영성의 작업은 기(Qi)와 도(Dao)의 도덕적 관계가 일상적인 생산 활동까지 확장되는 '중국 코스모테크닉스'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장학성(Zhang Xuecheng)과 도(Dao)의 역사화 (Zhang Xuecheng And The Historicisation Of Dao)


청(淸)나라의 장학성(章學誠)은 고대 경전 연구의 목적을 재정의하며, 도(Dao)를 '역사적' 현상으로 파악했다. 그는 "여섯 경전은 모두 역사이다(六經皆史也)"라고 주장하며, 도가 고대 경전에 불변하는 진리로 내재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공간에 따라 변화하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 경전은 고대 황제들의 정치적 지침서였으며, 단지 그 시대의 도(Dao)를 담고 있는 '기(Qi)'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장학성은 도(Dao)가 그림자가 형상에 의존하듯, 가시적인 형상(Qi)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사상은 도(Dao)와 기(Qi)의 통일성을 재확인하지만, 동시에 그 관계를 '역사적 현상'으로 상대화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 그의 사유는 이후 중국 근대화에 영향을 미친 공자진(龔自珍)과 위원(魏源)과 같은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아편전쟁 이후 기(Qi)와 도(Dao)의 단절 (The Rupture Of Qi And Dao After The Opium Wars)


아편전쟁(1839~1842, 1856~1860) 이후 서양 기술의 충격은 중국 문명의 자존감을 무너뜨렸다. 중국은 서양 기술을 받아들여야만 서양에 맞설 수 있다고 인식했고, '서양 기술은 실용적인 도구(用)에 불과하고, 중국 사상은 근본 원리(體)이다(中學為體,西學為用)'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위원(魏源)은 '서양 기술을 배워 서양을 제압하자(師夷長技以制夷)'고 주장하며, 서양 기술을 전통적인 기(Qi) 개념에 통합하려 했다.


그러나 이는 기(Qi)와 도(Dao)의 유기적 관계를 해체하고, 서양 기술을 도(Dao)와 무관한 순수한 도구로 간주하는 '데카르트적 이원론'을 낳았다. 옌푸(嚴復)는 "소의 몸을 말의 용도로 쓸 수 없듯, 동양과 서양의 학문은 양립할 수 없다"고 비판하며, 도(Dao)와 기(Qi)의 결합은 둘 모두를 망하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탄쓰퉁(譚嗣同)과 같은 지식인들은 서양 과학을 중국 철학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기와 도의 관계를 재정립하려 했다. 그는 '인(仁)'을 서양의 '에테르(ether)'와 동일시하며, '기(Qi)가 도(Dao)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도(Dao)가 기(Qi)에 봉사하는 것(道為器用)'으로 관계를 역전시켰다. 이처럼 19세기 중국 지식인들은 서구의 물리학을 중국의 도덕철학의 새로운 기초로 삼으려 했지만, 이질적인 범주의 부적절한 결합은 결국 실패로 귀결되었다.



기(Qi)-도(Dao)의 붕괴 (The Collapse of Qi-Dao)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중국 지식인들은 '과학'과 '민주주의'를 핵심 가치로 내세운 신문화운동(May Fourth Movement)을 전개했다. 이 시기 중국의 지식계는 서구 문물을 전면적으로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중국 문화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현대화할 것인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1) 장군매(Carsun Chang): 과학과 삶의 문제 (Carsun Chang: Science And The Problem Of Life)


철학자 장군매(張君勱)는 1923년 북경 청화대학 강연에서 과학과 철학을 주관성-객관성, 직관-이성, 종합-분석, 자유의지-인과율, 특수성-보편성의 대립을 통해 구분했다. 그는 과학이 객관성과 분석적 이성을 기반으로 하는 반면, '삶의 직관(Rensheng Guan, 人生觀)'은 주관성과 직관을 기반으로 한다고 보았다. 장군매는 과학이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과학의 기초는 직관적이고 주관적인 '나(I)'에 두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지질학자 딩원장(丁文江)으로부터 "과학을 형이상학으로 퇴보시킨다"는 비판을 받았고, '현학(玄學)'이라는 용어로 비난당했다. 이는 과학이 모든 지식의 궁극적인 척도가 되려 했던 당시 중국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2) 중국본위 문화건설선언(The Manifesto For A China-Oriented Cultural Development)과 그 비판 (The Manifesto For A China-Oriented Cultural Development, And Its Critics)


1935년 중국 교수 10명이 발표한 『중국본위 문화건설선언』은 '중학위체, 서학위용(中學為體,西學為用)'이라는 슬로건과 전면적인 서구화를 모두 비판했다. 그들은 중국의 뿌리를 잃지 않으면서 과학과 기술을 효과적으로 통합하는 '중국 본위의 문화'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후스(胡適)는 문화에는 '관성'이 있어 중국 문화는 항상 중국적으로 변형될 것이므로 '중국 본위 문화'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실용주의적 태도는 이후 중국에서 지배적인 견해가 되었고, 중국 문화는 서구화에 미적 차원을 더하는 기능적인 역할에 그치게 되었다. 이는 기술의 본질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사상적 논쟁에만 머무르는 한계를 낳았다.



니덤의 질문 (Needham’s Question)


20세기 내내 "왜 중국에서는 현대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는가"라는 니덤의 질문(Needham’s question)은 중국 지식인들을 괴롭혔다. 펑유란(馮友蘭)은 중국 철학이 '자연 현상에 대한 지식'보다 '천리(天理)'를 추구했기 때문에 과학 정신이 발현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학에 가장 가까웠던 묵가(墨家)가 유교와 도교에 의해 비판받고 소멸하면서 과학 정신도 사라졌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과학과 기술을 혼동하는 한계를 가졌으며, 실제로 중국의 기술은 16세기까지 꾸준히 발전했다.


유기적 사유 방식(The Organic Mode Of Thought)과 자연 법칙 (The Laws Of Nature)


니덤(Needham)은 중국에 현대 과학이 부재했던 이유를 사회적, 철학적 요인에서 찾았다. 그는 중국의 과거제도와 관료 체제가 기술 문화의 발전을 저해했다고 지적했다. 철학적으로는 서구의 '기계론적 세계관'이 결여되었고, 대신 모든 현상이 상호 연결된 유기적이고 전체론적인 세계관이 지배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로마와 달리 중국에서는 '법을 제정하는 신(law-giving deity)'의 개념이 없었으며, 따라서 자연 현상에 대한 '법칙(laws of nature)' 개념도 발달하지 않았다. 중국의 도덕적 원리인 예(li)와 천리(tian li)는 외부의 권위가 아닌, 존재들의 내적 본성으로부터 비롯되는 '조화로운 협력'을 의미했다. 니덤은 중국의 이러한 유기적 사유 방식이 뉴턴적 세계관을 건너뛰고 아인슈타인적 세계관에 도달하려 한 것과 같았으며, 이것이 과학 발전의 실패로 이어졌다고 보았다.



무종삼(Mou Zongsan)의 답변 (Mou Zongsan’s Response)


현대 신유학자들은 니덤의 질문에 답하고, 중국 사상으로 서구의 과학과 기술을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 중심에는 칸트 철학을 독자적으로 해석한 무종삼(牟宗三)이 있었다.


1) 무종삼(Mou Zongsan)의 칸트의 지적 직관(Intellectual Intuition) 수용 (Mou Zongsan’s Appropriation Of Kant’s Intellectual Intuition)


무종삼(Mou Zongsan)은 칸트(Kant)가 신에게만 허용했던 '지적 직관(intellectual intuition)'을 유교, 불교, 도교 사상에 내재된 인간의 능력으로 보았다. 칸트에게 지적 직관은 인간의 인식 능력을 초월하는 것이었지만, 무종삼은 마음(心, xin)이 현상(phenomenon)을 넘어 '사물 자체(thing-in-itself)'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지적 직관이라 주장했다. 이는 장재(張載)가 "마음(心)은 하늘의 경계를 탐색하지 않고도 안다"고 한 말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무종삼은 지적 직관이 '성명(誠明)'의 지식, 즉 우주에 편재하는 도덕적 마음(道心)의 완전한 통찰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중국 철학의 핵심인 '도덕적 형이상학'은 지적 직관을 통해 가능했다. 무종삼은 이 지적 직관이 도교에서는 '유한한 삶으로 무한한 지식을 추구하는 것의 무익함'을 깨닫는 데 , 불교에서는 '공(空)'을 이해하는 데 나타난다고 보았다.


무종삼은 중국 철학이 지적 직관에 치우쳐 현상에 대한 '인지적 마음(知性)'을 발달시키지 못했고, 이것이 논리학, 수학, 과학이 중국에서 발달하지 못한 이유라고 분석했다.


2) 무종삼(Mou Zongsan)의 양지(Liangzhi)의 자기 부정(Self-Negation) (The Self-Negation Of Liangzhi In Mou Zongsan)


무종삼은 왕양명(王陽明)의 '양지(良知)' 개념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왕양명에게 양지는 '도덕적 마음'이자 '만물에 투사될 수 있는 우주적 마음'이었다. 무종삼은 양지가 '자기 부정(self-negation)'을 통해 '인지적 주체(knowing subject)'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자기 부정'은 양지가 '앎의 주체'로 변모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제한하는 행위이며, 이 과정을 통해 중국 사상은 서구의 과학과 기술을 체계적으로 통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종삼은 이러한 '우회(detour)'를 통해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전통적 이상을 현대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도덕적 수양(內聖)이 과학과 기술(Qi)이라는 '우회로'를 거쳐야만 평화로운 세계(外王)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종삼의 이러한 '이상주의적' 해결책은 기(Qi)를 도(Dao)의 '가능성' 중 하나로만 간주함으로써, 기술의 자율성과 물질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변증법적 자연관(The Dialectics Of Nature)과 형이상학(Xing Er Shang Xue)의 종말 (And The End Of Xing Er Shang Xue)


중국 본토에서는 무종삼의 이상주의적 접근법과 달리, 1949년 이후 마르크스주의가 지배적 사상이 되었다. 엥겔스(Engels)의 『자연변증법(Dialectics of Nature)』은 '사회주의 과학' 발전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와 자신이 독일 관념론 철학으로부터 '변증법적 유물론'을 구출해 자연과 역사에 적용했다고 주장했으며 , 이는 '노동의 역할'을 통해 자연을 '인간화'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사상으로 이어졌다.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자연변증법』은 과학기술 발전의 핵심 지침이 되었고, 이는 중국에서 '기술철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정립되는 역사적 배경이 되었다. 이 새로운 분야는 서구 기술철학의 개념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지만, 이는 중국 전통의 코스모테크닉스적 사유와의 단절을 낳았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형이상학의 종말(the end of metaphysics as xing er shang xue)'로 규정한다. 이는 중국 사상에서 인간과 우주 질서의 통일성을 유지하던 형이상학적 사유가 붕괴하고, 기술이 이념적, 실용적 도구로만 전락한 상황을 의미한다. 이러한 '방향 상실(dis-orientation)'은 기술적 동기화(synchronisation)와 균질화(homogeneity)를 통해 동양(Orient)의 정체성을 파괴하고, 전 지구적 기술 지배를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 저항하려면 '다른 형태의 사유'를 발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부: 현대성과 기술적 의식 (PART 2. Modernity and Technological Consciousness)


기하학과 시간 (Geometry And Time)


중국의 우주적, 도덕적 사유가 현대화에 의해 해체된 것은 서구 기술 현실에 저항하거나 맞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구의 기술은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와 같은 '기술적 무의식(technological unconsciousness)'에 의해 추동되었으며, 이는 세계를 '착취 가능한 재고(standing reserve)'로 간주하는 근대적 인식론을 가능하게 했다.


니덤(Needham)은 고대 중국에 기하학적, 연역적 사유가 아닌 대수학적이고 계산적인 사유만 존재했음을 지적했다. 이는 그리스와 중국의 기술 발전 속도와 방향을 다르게 만들었다. 기하학은 서구의 기술과 시간 개념에 필수적이었다. 기하학은 시간을 시각화하고 외재화하여 기억하고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반면 중국의 시간 개념은 선형적이지 않고 순환적이며, '순간(moment)' 또는 '기회(occasions)'에 대한 것이었다.


저자는 중국에 기하학과 시간 개념이 부재했다는 가설을 통해, 중국의 기술이 서구와 다른 의미와 방향성을 갖게 되었음을 설명한다. 플라톤의 『메논』에서 소크라테스가 노예 소년에게 기하학을 통해 진리를 '상기'시키는 이야기는 기술적 외재화(technical exteriorization)가 기억(anamnesis)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베르나르 스티글러(Bernard Stiegler)는 이 '모래 위에 선을 긋는 행위'를 '제3차 기억(tertiary retention)'이라 부르며, 이것이 곧 기술적 외재화이자 시간화(temporalization)의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1) 고대 중국에서 기하학의 부재 (The Absence Of Geometry In Ancient China)


니덤은 고대 중국에는 기하학이 아닌 대수학만 존재했다고 지적한다. 중국의 『구장산술(九章算術)』은 기하학적 지식을 담고 있지만, 유클리드 기하학처럼 공리, 정리, 증명으로 이루어진 형식적인 연역 체계는 아니었다.


기하학은 고대 그리스 철학의 합리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탈레스는 기하학을 통해 우주의 질서를 탐구했고,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기하학적 비례에 따라 우주를 창조하는 기술자 신(demiurge)을 묘사했다. 이러한 기하학적 사유는 16-17세기 케플러(Kepler), 갈릴레오(Galileo), 뉴턴(Newton)으로 이어지는 근대 과학의 '기하학화(geometrisation)' 정신의 토대가 되었다. 아인슈타인(Einstein)은 "서구 과학의 발전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형식 논리 체계 발명과 체계적인 실험을 통한 인과 관계 발견이라는 두 가지 위대한 성취에 기반한다"고 말했다.


2) 기하학화(Geometrisation)와 시간화(Temporalisation) (Geometrisation And Temporalisation)


저자는 기하학과 시간의 관계가 서구의 기술 개념과 그 발전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기하학은 시간을 공간화하고 외재화함으로써, 시간이 이상화된 형태로 기억될 수 있게 했다. 중국 사상에서는 '시간(時間, shíjiān)'이라는 개념이 '순간들 사이의 간격(between-moments)'이라는 의미로 19세기에 들어서야 일본을 통해 도입되었다. 중국의 시간 인식은 계절(四時, sìshí)과 같은 순환적이고 구체적인 사건과 연결되어 있었고, 이는 '상황적 사유(situational thinking)'를 낳았다.


스티글러(Stiegler)는 플라톤의 『메논』 이야기를 통해 기술(모래 위에 선을 긋는 행위)이 기억을 외재화하고 '시간화(temporalisation)'를 가능하게 하는 '제3차 기억(tertiary retention)'임을 보여준다. 즉, 기술은 의식의 '이미 지나간 시간'을 '공간화'함으로써 역사성(historicity)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3) 기하학과 우주론적 특이성 (Geometry And Cosmological Specificity)


기술은 보편적인 경향을 가지지만, 그 발현은 우주론적 사유에 의해 조건화된다. 와쓰지 데쓰로(和辻哲郎)는 『풍토(風土)』에서 기후(milieu)가 민족의 성격과 미적 판단을 형성한다고 주장하며, 그리스의 밝은 햇살이 '기하학적' 사유와 논리 발달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았다. 반면 중국과 일본의 습하고 변화무쌍한 기후는 '비논리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기질(temper)'의 형성을 촉진했고, 이는 기술이 학문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았다.

중국 문화에서 시간과 기하학에 대한 사유가 발달하지 않은 것은 기술 발전의 문화적, 우주론적 조건이 되었으며, 이는 서구와 다른 기술적 사실(technical facts)을 낳았다. 또한 중국에는 역사(history)에 대한 기록은 있었지만, 역사적 존재로서 자신을 자각하는 '역사성(historicity)'에 대한 담론은 부재했다. 이는 역사가(historian)의 역할이 과거 기록을 통해 현재의 통치를 위한 조언을 하는 데 머물렀기 때문이다.



현대성(Modernity)과 기술적 의식 (Technological Consciousness)


근대성(modernity)은 '기술적 무의식'에 의해 지탱되어 왔다. 라투르(Latour)는 근대인들이 자연/문화, 주체/객체를 분리하는 '정화(purification)'를 시도했지만, 실제로는 '준-객체(quasi-objects)'와 같은 혼종(hybrid)을 끊임없이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기술은 이러한 주체-객체 분리의 무의식적 기제였다.


저자는 근대성의 종말은 이 '기술적 무의식'이 '기술적 의식(technological consciousness)'으로 전환되는 순간 시작된다고 본다. 즉, 인간이 기술적 존재이며, 기술이 인간의 존재와 세계를 조건화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근대성의 종말이라는 것이다. 이는 하이데거가 '존재 망각'의 문제를 제기한 것과 유사하지만, 스티글러(Stiegler)는 한발 더 나아가 '기술 망각(forgetting of technics)'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주장한다.


현대성의 기억(Memory Of Modernity) (The Memory Of Modernity)


하이데거에게 역사성(Geschichtlichkeit)은 인간 존재(Dasein)가 자신의 '존재-기반(Being-guilty)'을 직시하고, 죽음을 향한 존재(being-towards-death)로서 자신의 유한성을 인식할 때 가능해지는 '진정한 역사성'이었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이러한 역사성을 가능하게 하는 '이미 거기에 있는(schon da)' 기술적 외재화의 역할을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


스티글러는 하이데거의 '세계사적(world-historical)'이라는 개념이 사실상 제3차 기억(tertiary retention), 즉 '기술'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역사적 존재는 기술적 외재화라는 보조 없이는 불가능하며, 기술적 무의식이 의식으로 전환될 때 비로소 진정한 역사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대성의 기억'은 기술적 무의식이 낳은 파괴와 상실에 대한 '회고적 추모(memorialisation)'를 통해 드러나는 '기술적 무의식'의 증상이다.



허무주의(Nihilism)와 현대성 (Nihilism And Modernity)


니시타니 케이지(Keiji Nishitani)는 '허무주의(nihilism)'가 동서양 사상을 가로지르는 근본적인 문제라고 보았다. 그는 현대 과학기술이 자연의 법칙을 보편화하고, 이를 기술에 구현함으로써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인간과 자연 모두를 '탈자연화(denaturalised)'시키고,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게 하는 허무주의를 낳는다는 것이다.


니시타니는 이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불교의 '공(空, śūnyatā)' 개념을 활용했다. 그는 헤겔(Hegel)의 '나쁜 무한(bad infinity)'을 넘어선 '진정한 무한'을 불교의 공에서 찾으려 했다. 니시타니에 따르면, 불교적 '공'은 '존재'의 '자체-정체성'을 부정함으로써 허무주의를 초월한다. 예를 들어, "불이 불 자신을 태우지 않는다는 것은, 불의 연소 행위 속에서 '비연소(non-combustion)'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논리이다. 이는 존재를 실체(substance)로 파악하는 서구적 사유와 달리, 존재의 '비실체적(non-substantial)' 본질을 파악하는 동양적 사유를 보여준다.


그러나 니시타니의 이러한 접근은 기술이 '인간 존재(Dasein)'를 구성하는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의 사상은 '역사성'을 무시하고 절대적인 공(空)으로 초월하려 함으로써, 현대 과학기술의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현대성 극복하기 (Overcoming Modernity)


니시타니는 동양 문화에 '진정한 의미의 역사성'이 부재하다고 지적하며, 이는 불교가 시간의 '덧없음'을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서구의 역사 의식은 기독교의 '원죄'와 '종말론'에서 비롯되며, 이는 역사를 '인간의 산물'로 인식하게 했다고 분석한다.


1940년대 니시타니와 교토학파는 이러한 근대성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의 전통 문화로 돌아가려 했지만, 이는 '세계사적 사명'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정당화하는 '형이상학적 파시즘'으로 귀결되었다. 그들은 '전체 전쟁(total war)'을 통해 근대성을 초월하고, '절대 무(絶對無)'의 관점에서 새로운 '세계사'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종삼(Mou Zongsan)의 접근은 교토학파와 달랐다. 그는 중국 전통 사상의 도덕적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칸트의 철학을 통해 서구의 과학과 기술을 통합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사상 또한 기술을 '마음(心)'의 '가능성' 중 하나로만 간주하는 이상주의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저자는 이 두 가지 시도가 모두 실패했지만, 그들이 제기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근대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단순히 '마음'에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물질성(materiality)을 고려하고, 기술을 통해 '현대성'을 재구성하는 새로운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던의 기억 (Anamnesis Of The Postmodern)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는 프로이트(Freud)의 '기억-반복-전통(Remembering-Repeating-Working Through)' 개념을 통해 '포스트모던'을 근대성의 '기억 상실'에 대한 '기억 회복(anamnesis)'으로 규정한다. 그는 예술가들의 '작업(working through)'이 근대성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포스트모던 예술'의 한 형태라고 보았다.


리오타르는 '명경(明鏡)'이라는 선불교의 개념을 빌려와 '기억될 수 없는 것'을 사유하려 했다. 그는 도겐(Dōgen)의 '깨끗한 거울' 이야기를 통해, 거울에 비칠 수 없는 '깨는(breaking) 존재'를 '기술 논리(techno-logos)'로 사유하는 것이 가능할지를 물었다. 이는 '기술적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사유의 한 형태로서, 기술이 지닌 '총체화'의 경향에 저항하는 것이다.


리오타르는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영혼에 더 깊이 통합되면서도, 동시에 '기억 회복의 저항'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을지를 물었다. 이는 근대성을 극복하려는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고민과 맞닿아 있지만, 리오타르는 그들이 기술의 물질성이나 역사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저자는 '세계화'가 지니는 이중적인 위험을 지적한다. 첫째, 기술에 의한 시간과 존재의 순수한 결정론에 대한 종속이고, 둘째, 근대성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파시즘이나 광신주의로 변질되는 위험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의 딜레마 (The Dilemma Of Homecoming)


하이데거의 사상, 특히 '향토(Heimat)'로의 '회귀(homecoming)'라는 개념은 '형이상학적 파시즘'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는 '세계 유대인(Weltjudentum)'이 서구 형이상학의 '텅 빈 합리성'과 '계산 능력'을 퍼뜨리는 악의적인 힘이라고 비난하며, '아시아인(Asiatics)' 또한 '뿌리 없는(rootless)' 존재로 규정했다. 이러한 사상은 니시타니의 교토학파와 러시아의 두긴(Dugin) 같은 사상가들의 '보수 혁명'으로 이어져, 현대 기술에 저항하려는 시도가 배타적 민족주의나 광신주의로 변질되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하이데거가 지적한 '전 지구적 기술화(planetarization of technology)'에 따른 전통의 파괴와 '고향'의 상실이라는 문제의식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 저자는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을 보편적인 '테크놀로지(techno-logy)'가 아닌, 다양한 '코스모테크닉스(cosmotechnics)'의 문제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문화 내부의 형이상학적 범주를 재해석하고, 현대 기술을 수용하여 변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세(Anthropocene)의 시노퓨처리즘(Sinofuturism) (Sinofuturism In The Anthropocene)


중국의 현대화는 기술적 무의식과 가속화라는 '전 지구적 기술적 시간 축(global technological time-axis)'에 동기화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전통적인 도덕적 우주론은 해체되고, 기술은 어떤 도덕적, 우주론적 질서와도 분리된 채 발전하게 되었다.


'인류세(Anthropocene)'는 인간의 활동이 지구 시스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시대이며, 이는 근대성의 '기술적 무의식'이 낳은 결과이다. 인류세에 대한 대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지구 공학(geo-engineering)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태적 근대주의(ecological modernism)'이고, 둘째는 문화적 복수성과 존재론적 복수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저자는 라투르(Latour)의 '근대성 재설정(resetting modernity)'과 같은 시도가 근대성을 '오작동하는 기계'로 간주하는 한계를 지닌다고 비판한다. 근대성은 그 자체의 논리에 따라 너무나 잘 작동하고 있으며, 이를 단순히 '재설정'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의 '시노퓨처리즘(Sinofuturism)' 또한 현대 기술을 모방하고 가속화하는 데 그칠 뿐, 전통 사유와의 단절을 극복하지 못한다.


자본주의는 현대의 지배적인 '코스모테크닉스'이며, 이는 끊임없이 자연과 노동력을 착취하며 그 생태계를 유지한다. 저자는 『맹자(Mencius)』의 '농사철을 방해하지 않고' 자원을 이용하라는 가르침과 같은 고대의 지혜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변형'하지 않으면 단순한 자가 개발 서적에 불과한 '소비주의적' 방법론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또 다른 세계사를 위해 (For Another World History)


저자는 '또 다른 세계사'를 구축하는 것은 '유럽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새로운 서사를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는 기술의 '물질성'에 기반한 새로운 실천과 지식을 통해, 현대성의 '전 지구적 시간 축'에 저항하는 새로운 시간성을 구축하는 문제이다.


디페시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는 하이데거의 '현존재(present-at-hand)'와 '준비재(ready-to-hand)' 개념을 통해, 분석적 역사(History 1)와 존재론적 차원의 역사(History 2)를 구분했다. 그러나 저자는 준비재(ready-to-hand)가 기술적 대상의 본질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기술적 대상은 다양한 시간성을 가진 존재들로 구성된 '기술적 시스템'의 일부이며, 이 시스템은 점점 더 균질화되고 있다.


저자는 '지역성(locality)'이 전 지구적 기술적 시간 축에 대항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지만, 이는 '보수 혁명'이나 파시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의식적으로 변형시키는 '지역성'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는 중국 철학을 '코스모테크닉스'으로 재해석하고, 기-도(Qi-Dao) 관계를 현대의 기술과 연결시키는 '새로운 번역(translation)'을 제안한다. 이는 시몽동(Simondon)이 말한 '내적 공명(internal resonance)'을 통해, 기술적 개체화가 인간의 존재론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이다. 저자는 새로운 코스모테크닉스적 사유를 통해, 현대 기술을 재해석하고 변형함으로써, 전 지구적 기술적 시간 축의 동기화와 균질화에 저항하는 '또 다른 세계사'를 창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종합 시사점


1. 근대성과 기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필요성


이 책은 근대성(modernity)과 기술(technology)이 단순히 서구의 역사적 경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 차원의 '기술적 무의식'을 통해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근대성은 인간이 기술을 통해 세계를 지배한다는 환상에 기반하지만, 이 환상 자체가 기술적 무의식에 의해 추동된다. 따라서 근대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도구로 여기는 것을 넘어, 기술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새로운 '기술적 의식'을 확립해야 한다.


2. '보편적 기술' 개념에 대한 도전


저자는 기술(technics)이 인류학적으로 보편적인 활동임은 인정하지만, '기술성(technicity)'이라는 철학적 개념은 보편적이지 않다고 강조한다. 대신 '코스모테크닉스(cosmotechnics)'이라는 개념을 통해 기술이 각 문화의 고유한 우주론, 도덕, 사유 방식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구의 기술은 '프로메테우스적(Promethean)' 신화와 기하학적, 이성적 사유에 기반한 반면 , 중국의 기술은 '기(器)'와 '도(道)'의 조화를 추구하는 도덕적 우주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기술을 단순히 기능적, 미학적 차원으로만 파악하는 기존의 인식을 넘어, 존재론적, 우주론적 차원에서 기술의 복수성(plurality)을 인정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3. 전통의 재해석과 '또 다른 세계사'의 가능성


중국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적인 기-도(Qi-Dao) 관계는 서구의 과학과 기술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붕괴되었다. 이러한 단절은 중국을 '방향 상실(dis-orientation)'의 상태로 몰아넣었고, 기술의 균질화와 동기화에 무비판적으로 편입되는 결과를 낳았다. 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로 회귀하는 '보수 혁명'이나 '형이상학적 파시즘'을 경계하며 , 전통의 형이상학적 범주(기, 도)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는 전통을 단순히 박제된 '기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 현대 기술을 적극적으로 변형하고 재구성하는 새로운 '실천'을 통해 '또 다른 세계사'를 창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4. 세계화와 지역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


이 책은 세계화(globalisation)의 문제에 대해 '전 지구적 시간 축'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화는 지역성(locality)을 단순히 '보편적인 산물'로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지역성이 진정한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고립되거나 순수한 상태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 기술적 시간 축에 정면으로 맞서고 이를 변형하는 능동적인 '코스모테크닉스적 실천'이 되어야 한다. 이는 기술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공존(coexistence)을 만들어내고, '기술적 개체화'의 내적 공명(internal resonance)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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