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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 Mar 03. 2022

환상과 이상의 위대함

위대한 개츠비 서평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을 대부분 소네트(유럽의 정형시) 형식으로 채워 넣었다. 극 대본임에도 시적인 표현으로 가득 차 있는 글귀 덕에 대사가 아름답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이하 본작)를 읽으면 셰익스피어가 연상된다. 서정적인 표현으로 둘러싸인 소설은 비극이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에서 그 점이 더욱 부각된다. 감상적인 시각으로 적힌 부분이 많아도 읽는 내내 흐름이 끊기지는 않는다. 그저 화자인 '닉 캐러웨이'가 보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줄 뿐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본작 일부는 읽고 있는 와중 냄새까지 느껴진다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본작은 '닉 캐러웨이'의 시선인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전개된다. 소설 내에서 유일하게 도덕적으로 옳고 정직한 '닉 캐러웨이'는 1920년대 미국의 실상을 독자에게 낱낱이 전달한다. 실제로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대공황이 오기 전 당시 미국은 다시 없을 부흥기였다. 본작 해설에 따르면 1922년부터 1929년까지 미국의 주식 수익 증가율은 108퍼센트, 기업의 이익은 76퍼센트, 개인의 수입도 33퍼센트나 늘었다. 전국적인 수치일 터이니 실로 어마어마한 경제 호황기라 볼 수 있다. 이러한 급작스러운 풍요는 사람들에게 행복과 평안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그에 상응하는 부도덕한 비행이 팽배하기도 했다.


 비록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더라도 대부분의 가식은 결국 뭔가를 숨기고 있게 마련이다.


'닉 캐러웨이'는 웨스트에그로 이사 온다. 마침 맞은편 이스트에그에 살고 있는 '톰 뷰캐넌'과 '데이지 뷰캐넌' 부부는 '닉 캐러웨이'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톰 뷰캐넌'은 '닉 캐러웨이'와 예일 대학 동기로, 운동에 재능이 있으며 부유한 가문을 등에 업은 상류층 사람이다. '데이지 뷰캐넌'은 '닉 캐러웨이'의 사촌 동생이자 남자라면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 법한 여인으로 묘사된다. 으리으리한 뷰캐넌 부부의 저택에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고, '닉 캐러웨이'와 마찬가지로 초대받은 '조던 베이커'도 그 자리에 함께한다. 그 후 '닉 캐러웨이'의 옆집에 사는 대부호이자 '데이지 뷰캐넌'의 옛 연인 '재이 개츠비'도 등장하며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본작은 다소 인물이 많은 편이므로 서사의 시간 흐름보다는 인물 위주로 분할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톰 뷰캐넌'은 권위적이고 여성 편력이 있으며 전형적인 백인우월주의자다. 백인이 모든 문명을 이룩했고 심지어 정신 차리지 않으면 유색인종에게 빼앗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밀고 나가는 막무가내인 사람이다. '톰 뷰캐넌'에게는 '머틀 윌슨'이라는 정부가 따로 있다. 이런 사실에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닉 캐러웨이'에게 '머틀 윌슨'을 소개해준다. 자신 부인의 사촌 오빠에게 당당하게 바람피우고 있는 여인을 보여주는 '톰 뷰캐넌'의 태도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톰 뷰캐넌'은 악의를 갖고 행동하는 인물이라기보다는 스스로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 사람처럼 보인다. 마치 '톰 뷰캐넌'이 세습 받은 부와 재력이 그에게는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이스트에그 속 화려한 궁전의 이면을 에둘러서 말해준다. 누구는 평생 갖지 못할 재산을 손에 쥐고 있어도 쫓기는 듯 유색인종을 두려워하는 '톰 뷰캐넌'은 어딘가 애처롭다.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외도로 만나는 '머틀 윌슨'은 가난한 정비공의 아내이며, 객관적으로 '데이지 뷰캐넌'보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나은 것이 딱히 없어 보인다. '톰 뷰캐넌'은 끝없이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가만히 있어도 자신과 비슷한 저택에 살고 호화를 누리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사회에서 본인의 위치는 분명 흔들렸으리라. 또, 끝을 모르고 치솟는 미국의 경제는 자신은 늘 상류층이어야 한다는 '톰 뷰캐넌'의 마음을 알게 모르게 자극했을 수도 있다. 그런 사유가 '톰 뷰캐넌'이 부도덕함을 부추겼을 것이다.


 '데이지 뷰캐넌'의 삶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돈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어요." (...) 데이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데이지 뷰캐넌'을 사랑한 '재이 개츠비'는 진즉에 알고 있었다. '데이지 뷰캐넌'에게 필요한 건 숭고한 사랑, 명예, 교양 있고 기품 있는 대화나 사교 따위가 아니라 안락한 여생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안정감을 위해 '데이지 뷰캐넌'은 남편의 외도도 애써 무시한다. '데이지 뷰캐넌'에게는 자신과 딸의 안위가 더 중요했다.


 '괜찮아. 딸이라서 기쁘지 뭐야. 그리고 이 애가 커서 바보가 되었으면 좋겠어……. 그러는 편이 제일 좋으니까……. 아름답고 귀여운 바보 말이야.'


 '데이지 뷰캐넌'은 스스로 바보가 되는 삶을 택했다. 그렇다고 사랑을 모르는 냉혈한은 절대 아니다. '재이 개츠비'를 사랑했고 '톰 뷰캐넌'도 사랑했었다. 마지막에 다시 '톰 뷰캐넌'에게 돌아갔을 때, 아마 '데이지 뷰캐넌'은 '톰 뷰캐넌'을 사랑했을 것이다. '데이지 뷰캐넌'에게 사랑이란 자신을 지켜줄 수단이며 이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데이지 뷰캐넌'에게 있어 돈의 의미와도 동일하다. 비록 '데이지 뷰캐넌'이 운전한 차에 '머틀 윌슨'이 사망했고, '재이 개츠비'가 자신이 운전한 것처럼 뒤집어 써주었지만, '데이지 뷰캐넌'은 이상을 좇았다.


 '조던 베이커'는 '닉 캐러웨이'와 연인 관계까지 발전했다 헤어진 인물이다. 유명 골프 선수지만 승리를 위해 부정을 저지르는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선수다. 운전할 때도 자신의 운전 실력을 나무라는 '닉 캐러웨이'에게 다른 사람이 조심하면 된다라고 말한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부정직함이 몸에 배어있지만 죄의식은 없다. '조던 베이커'도 그저 앞서 소개한 인물과 같은 부류일 뿐이었다.


 '재이 개츠비'는 웨스트에그에 사는 신흥 부자다. '재이 개츠비'는 악법의 대명사로 통하는 금주법이 시행되는 시기에 밀주업과 불법 도박 등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불렸다. '마이어 울프심'이라는 폭력배가 '재이 개츠비'를 키웠다고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재이 개츠비'의 삶에는 범죄가 아주 깊게 스며들어있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재이 개츠비'는 본작에 나오는 그 누구보다 더 환상 속에 사는 인물이었다. '데이지 뷰캐넌'만을 그리며 남 부럽지 않은 부호가 된 '재이 개츠비'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마저 건드리려 했다.


  "난 모든 것을 옛날과 똑같이 돌려놓을 생각입니다. 그녀도 알게 될 겁니다." 그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임스 개츠'는 '데이지 뷰캐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재이 개츠비'가 되었다. 가족, 신념 따위는 전부 묻어두고 오로지 '데이지 뷰캐넌'의 이상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순수함 덕에 '재이 개츠비'는 위대했다. 5년 만에 만난 연인 앞에서 제대로 말을 못 할 때도, '톰 뷰캐넌'에게서 '데이지 뷰캐넌'을 되찾으려 맞설 때도, '재이 개츠비'는 환상 속에서 순수했다.


 단 하나의 꿈을 품고 너무 오랫동안 살아온 것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재이 개츠비'는 황홀한 꿈속에서 허망하게 떠났다. '머틀 윌슨'을 죽였다는 오명 속에서 '머틀 윌슨'의 본래 남편에게 총을 맞아 순수한 열정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순수한 열정, 환상. 그것은 사랑에서 비롯됐다. 어쩌면 '재이 개츠비'는 죽을 때까지 '데이지 뷰캐넌'이 자신을 버렸다는 것을 모르고 눈을 감았기에 영원한 사랑 속에 머물렀다고 역설할 수도 있다.


 '재이 개츠비'의 파멸은 당대 미국과 닮아있다. 대공황 직전 팽창하던 경제는 일종의 환상이었고, 예견된 몰락이었다. 당시 사회 상위 5퍼센트 소득이 전체 소득의 1/3을 차지했다고 하니 이런 위태로운 상황을 아무도 몰랐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점차 서늘해지기 시작하는 황혼을 뚫고 죽음을 향해 계속 차를 몰았다.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같이 잔혹했다. '톰 뷰캐넌'이 자신의 정부인 '머틀 윌슨'을 만나러 갔을 때, '데이지 뷰캐넌'이 '머틀 윌슨'을 차로 치었을 때, '재이 개츠비'를 쏜 남자가 '재이 개츠비'를 찾으러 갈 때 모두 거대한 눈 모양 광고판인 T. J. 에클버그 의사의 두 눈은 그 자리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상업광고가 그들을 주시했다. 그들을 달콤한 환상 속에 빠뜨렸던 존재인 자본주의는 마치 그 종말을 알고 있었던 듯이 말이다.


 본작에서의 환상은 숭고한 삶의 원동력이다. '재이 개츠비'는 제삼자의 시선에서 보면 비극이고 파멸이지만, 그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영원한 사랑의 성공이라 볼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환상을 그저 꿈꾸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은 경우에는 다른 이야기가 된다. 자신이 꿀 수 있는 최대한의 환상 속에서 살며 이룩해나가는 것. 그것이 개츠비가 해낸 위대한 업적이라고 일축할 수 있다.


-도서 정보


출판사 : 민음

사작가 : F. 스콧 피츠제럴드

옮긴이 : 김욱동


-참고자료


 김영호, 개츠비의 ‘위대함’ 『위대한 개츠비』에 나타난 숭고와 시뮬라크르, 2018


네이버 백과사전, 대공황,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070712&cid=62123&categoryId=6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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