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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 Feb 21. 2022

진실의 가치

포스트트루스 서평

 정보의 바다. 인터넷 시대를 얘기할 때 자주 쓰는 낡고도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당장 네이버 검색창에 'ㄱ' 한 글자만 써도 거의 10개의 추천 검색어가 나열된다. 최근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는 '거리두기'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다. 수많은 내용이 펼쳐지며 각자의 생각과 정부가 발표한 지침 사항이 이곳저곳 널려있다. 정보를 얻기 참 용이한 시대이다.


정보(information)는 사실(fact) 혹은 진실(true)과 동의어가 아니다.


 연예인을 향한 근거 없는 루머, 어떠한 단체의 이익을 위한 이른바 '가짜 뉴스'도 애석하지만 정보다. 리 매킨타이어의 포스트트루스(이하 본작)에 의하면 정보라는 것은 수용자에 의해 가치가 결정된다. 대다수에게 말도 안 되는 내용, 전혀 사실이 아닌 내용이라 할지라도 일부에게 유용하다고 인식되면 그 정보는 가치가 생긴다는 의미이다. 본작에서는 이러한 상황들에 대한 예시로 미국의 것을 사용했다. 포스트트루스(탈진실)라는 단어 자체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적 때문에 이슈가 됐던 단어이니 어쩔 수 없는 사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읽으면서도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는 쉽게 와닿지는 않았기에 국내 사례도 추가하여 서평을 이어나가고자 한다.


 그 전에 포스트트루스(탈진실)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진실 자체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확고히 하고자 할 때 탈진실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상기 문장으로 포스트트루스(탈진실)을 완벽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확실한 것은 탈진실화된 정보를 공급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겐 이익이 된 것이다. 본작에서는 담배 회사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1950년대 미국에서는 담배의 타르 물질이 암과 관련되어 있다는 논문이 발표된다. 이에 담배 회사 쪽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어 대책을 세운다. 해당 논문, 즉 과학적 사실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일명 '의혹을 파'는 전략이다.


 "우리는 의혹을 팝니다. 대중의 정신에 박혀 있는 '사실의 실체'에 맞서려면 의혹만 한 게 없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담배산업연구위원회를 설립(혹은 지원)하고 담배와 암에 직접적인 상관관계는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로 인해 담배는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명백한 사실은 상대측에 의해 희미해졌고 논쟁은 40년 동안 계속됐다. 그 후 1998년이 되어서야 담배 회사들이 진실을 알고 있었으나 은폐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의 담배 회사 사례 같은 수십 년간 지속한 거대한 담론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크고 작은 탈진실과 관련된 사건들이 있었다. 물론 최근 대선 관련 정치적 이슈는 너무 민감한 문제일 수 있으니 굳이 다루지는 않겠다.


 오랜만에 '광우병 파동'을 검색해 봤다. 가장 먼저 눈에 띈 뉴스 기사는 한국에 광우병 파동 13년 만에 세계에서 미국산 소고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가 됐다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인 당시에는 어떤 매체를 보아도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리며 치사율이 100%에 육박한다고 했다. 소고기만 피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라면 스프, MSG 등에도 소고기가 들어간다며 공포를 확대했다. 마치 미국산 소고기를 들여오면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분위기였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FTA얘기가 나왔을 때는 참여정부 시절이다. 참여정부 시기에 제1야당이었던 보수정당은 광우병 논란으로 여당을 공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FTA 체결 자체는 2008년 보수정당이 여당이 된 MB정부 때이다. 2008년에는 광우병에 대한 대규모 시위가 4개월간 발생했다. MB정부 집권 초기 막대한 피해를 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가짜 뉴스는 곳곳에 있다. 그것이 가짜 뉴스인지 가려내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게 말할 수 있지만 쉬운 것은 아니다.


 출처를 다양화시켜야만 한다.


 TV 뉴스, 종이 신문 외에도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매체는 너무나도 다양해졌다. 심지어 SNS는 정보를 생산하는 주체가 개인도 될 수 있다 보니 정보의 질이 하락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SNS에는 아직도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난무한다. 워낙 많은 곳에서 정보를 접하니 우리는 중립적인 태도를 고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상호작용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있다.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로만 주위를 가득 채우기가 이전 어느 때보다 쉬워진 것이다.


 본작에 의하면 SNS가 발달하기 전 우리는 집단 속에서 생활하다 보니 타인과 소통하며 비판적인 의견을 주고받기도 한다. 도중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대화로 해결하거나 수용하거나 등등 여러 선택지 중 고민할 것이다. SNS에서는 이러한 고민이 단순화될 확률이 높다. 조금 불편한 얘기가 나오면 친구 삭제 혹은 숨기기를 누르면 그만이다. 그러다 보면 듣고 싶은 얘기만 듣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 속에 자신을 가둬버리는 것이다. 본작에서는 인지 편향과 관련된 이러한 심리적 요인을 학문적 근거를 들어 설명한다. 사회심리학 이론 중에서 인지부조화 이론, 집단 동조 이론, 확증 편향 이론 등이 예시이다.


 모든 이론을 설명하기는 어려우니 확증 편향 이론 관련 실험 하나만 소개하겠다. 참가자 29명을 대상으로 수의 배열을 알아맞히는 문제를 냈다. 그들에게 2, 4, 6과 같은 세 개의 숫자를 보여줬다. 그러고 나서 임의의 숫자를 실험자에게 물어보면 실험자는 해당 숫자가 규칙에 맞는지 안 맞는지 답변하는 방식이었다. 이때 29명 중 23명이 2, 4, 6을 본 뒤 '2씩 증가하는 규칙'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8, 10, 12를 먼저 물어보았다. 그 후 14, 16, 18을 물어보고 '2씩 증가하는 짝수'라는 정답을 외쳤을 때는 오답이었다. 답은 '어떤 식으로든 증가하는 오름차순 숫자'였다. 1, 3, 5나 1, 2, 3 같은 것을 물어봤으면 충분히 검증을 할 수 있었을 터였다. 이처럼 대부분 자신이 처음 생각한 것을 검증하려 하기보다는 확증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본작에서는 포스트트루스(탈진실)에 바탕에 포스트모더니즘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 결국 단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여러 해답이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들은 과학이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이는 포스트트루스(탈진실)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지점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따르면 객관적인 진실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사회적으로 구성된 개념일 뿐이다. 여기서부터 기존 경험적인 증거에 비추어 이론을 확인한 과학자들과 마찰이 생긴다. 이러한 접근은 과학부인주의까지 이어갈 수 있다. 과학부인주의는 앞서 말한 담배 회사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실험으로 밝혀진 과학적 사실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생각하는 것이다.


 이념이 과학보다 우선시하는 세계에서 '탈진실'이라는 운명은 결코 피할 수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분명 탈진실의 후견인이나 마찬가지다.


 본작은 머리말에서부터 '객관적 중립성은 이 책에서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작가가 옹호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현시대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 주는 좋은 글이라고 해도 중립적이지 못한 태도 때문에 신뢰성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포스트트루스(탈진실)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실의 가치를 역설하기 충분한 책이다. 책에 나오는 얘기가 곧 현실의 것이다. 사실 확인도 제대로 되지 않은 정보 때문에 피해 보는 사람이 속출한다. 심지어 사망에 이르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약간의 찝찝함은 남지만 우리가 정보를 대할 때 갖춰야 할 자세에 대해 비교적 쉽게 설명해 주는 책임은 확실하다.


 -도서 정보


출판사 : 두리반

작가 : 리 매킨타이어

옮긴이 : 김재경

해제 : 정준희


 -참고 자료


광우병 관련 기사, http://naver.me/Fjxwgtp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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