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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 May 12. 2022

예술과 현실의 괴리 1편

달과 6펜스 서평


 개인이 어떤 삶을 선택했든 타인이 감히 평가할 수는 없다. '무엇이 옳다', '어떤 것이 더 낫다' 따위의 우위를 정하기 위해 우선 절대적인 기준이 필요한데, 인생이라는 수수께끼에 어떠한 논리를 들이대도 기준점을 잡기란 쉽지 않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같은 시간대에 놓인 사람 모두 저마다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중일 뿐이다. 각 시대가 지향하는 나름의 표지판을 따라서 갈 수는 있으나 그마저도 항상 좋은 결과로 끝나지는 않는다. 여러 매체에서는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수년째 강조하지만, 휘황찬란한 연예인의 자취 생활 30분짜리 영상 하나면 타파된다. 시청자 중 일부는 '역시 돈이 최고구나' 말하며 씁쓸한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다. 돈이 주는 화려함은 어떤 마력이 깃들어져 있는지 참 매혹적이다. 또, 집을 제때 사지 않아서 남들 집값 오를 때 손가락만 빨고 있는 '벼락 거지'라는 신조어나, 비트코인에 열광했던 우리 모습을 보면, 이 시대에 대다수가 중요한 가치로 꼽는 것은 역시 재력, 다시 말해 '돈'일 것이다. 

 


 '달과 6펜스'(이하 본작)는 1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이듬해 1919년에 발표된 서머싯 몸의 소설이다. 제목의 뜻은 비교적 단순하다. 달과 은화 둘의 차이만 알면 된다. 상기 이미지는 각각 달과 6펜스짜리 은화인데 얼핏 보기에 둘은 닮았다. 둥글고 은은한 은색으로 비슷한 형태이지만, 둘이 의미하는 바는 서로 정반대이다. 먼저 달은 예술을 포함한 형이상학적 가치의 집합체로 이해하는 것이 편하다. 6펜스짜리 은화는 예술보다 현실 가치를 우선시하는, 쉽게 말해 평범한 대부분의 범인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덧붙이자면 한국 사람에게는 '펜스'라는 단위도 어색할 것이고 '6'이라는 숫자도 어색할 것이다. 우리는 5원, 10원, 50원, 100원 등 10진법이 익숙하지만 당시 '펜스' 단위를 쓰던 영국은 12진법을 널리 사용했다. 제목의 '6펜스'는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가장 낮은 값의 화폐 단위인 것이다. 굳이 한국식으로 고치자면 달과 비슷한 은색 동전 중 가장 값어치가 낮아야 하니 '달과 100원(짜리 동전)' 정도가 되지 않을까. 


 본작은 유명 화가 '폴 고갱'의 삶을 모티프로 했다. 삶 전체를 그대로 박아넣은 것은 아니고, 일부를 차용한 것이다. 그러나 작중 주인공 '나'가 '찰스 스트릭랜드'의 그림을 묘사하는 지점은 '폴 고갱'의 그림을 해석하는 서머싯 몸의 시선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찰스 스트릭랜드'의 그림과 '폴 고갱'의 그림은 결을 같이 한다. '폴 고갱'의 원시주의적 미술은 작품 후반부 '찰스 스트릭랜드'의 기행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원시주의적 미술을 깊게 말할 순 없으나 최소 본작의 부수적인 설명을 위해 말하자면, 서구화된 도시 문명에서 벗어나 야만 자체로 남아있는 자연을 이해하고자 했던 예술 운동이라 보면 그나마 맞을 것이다. 이러한 미술사조의 화가를 모티프로 하여 만든 인물 '찰스 스트릭랜드'의 행보는 원시주의적 특징을 띤다. 실제 '폴 고갱'이 삶의 마지막에 도달했던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에 '찰스 스트릭랜드'도 정착하여 말년을 보냈다는 것도 앞서 주장한 내용을 뒷받침한다. 물론 '폴 고갱'과 '찰스 스트릭랜드'에게는 큰 차이점이 있다. "파리에서 병약한 문명인으로 살아가기보다는 타히티에서의 건강한 야만인이 되기를 바랐"던(광기가 낳은 비극의 예술, 118p) '폴 고갱'과 그저 예술을 탐미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 채 타히티에 정착한 '찰스 스트릭랜드'는 확연히 다르다 할 수 있다. 


 본작은 '찰스 스트릭랜드'의 서사를 타인의 시선과 입으로 전달해주는 방식을 차용했다. 그로 인해 '찰스 스트릭랜드'의 신비성은 강조되었고 일부 매끄럽지 못한 개연성도 그 신비성에 의해 납득되기도 했다. 워낙 독특하고 특이한 사람이기에 그랬겠지, 하는 식의 두루뭉술한 납득이지만 말이다.  


 나의 의견으로는, 예술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예술가의 개성이 아닐까 한다. 개성이 특이하다면 나는 천 가지 결점도 기꺼이 다 용서해 주고 싶다.


 작중 화자 '나'의 성격을 나타내며 동시에 본작에서 말하는 예술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있는 구절이다. 그리고 "예술이란 정서의 구현물이며, 정서란 만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라고도 표현한다. 본작을 읽는 내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예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였다. '찰스 스트릭랜드'가 40살에 안정적인 중산층의 삶, 증권 거래인이라는 직업, 17년을 같이 산 아내, 두 아이,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예술을 위해 떠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작중 묘사에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훌륭한 기법이라 말하고 싶다. 독자로 하여금 가장 중요하면서, 가장 난해한 의문을 해결할 수 있게 놔둠으로써 몰입도를 높인 것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 정도 작성해보니 본 서평에서 모든 내용을 다루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2편으로 나눌 예정이라 이쯤에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2편에 대해 예고하자면, 본 서평보다 심층적으로 본작 흐름에 충실히 따라가며, '달'에 해당하는 인물과 '6펜스'에 해당하는 인물 중점으로 전개하고자 한다.


-2편으로-


-도서 정보

출판사 : 민음사

작가 : 서머싯 몸

옮긴이 : 송무 


-참고 자료 

 

마순영, 폴 고갱의 '원시주의'에 대한 재고, 2011 

김영지, 광기가 낳은 비극의 예술 - 『달과 6펜스』와 「광염소나타」를 중심으로, 2015 


-그림 출처 


https://unsplash.com/photos/iL0SSZE7zPk 

https://unsplash.com/photos/uIf6H1or1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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