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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 Feb 24. 2022

낯선 세계로의 초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서평

 여기 한 장의 초대장이 있다. 초대에 응할지, 응하지 않을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결정하기 전에 찬찬히 초대장을 정독해야 한다. 같은 내용이지만 제각기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매혹적으로 들릴 수도 있고, 터무니없는 얘기가 될 수 있다. 각자 사정이 천차만별인 것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하리라 믿는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이하 본작) 한 장의 초대장과 같은 소설이다. 치밀하게 짜인 삼각관계의 심리묘사를 따라가면 프랑수아즈 사강이 건네는 질문을 이해할 수 있다. 그에 대한 답변은 충분히 시간을 갖고 말해주면 된다.


 주인공 '폴'은 '로제'와 오랜 연인이다. '폴'은 39살, '로제'는 40대이며 작중에서는 6년 정도 연애한 것으로 나온다. 연애 기간과 나이대를 보면 짐작으로도 불꽃같이 타오르는 연애보다는 잔잔하고 서로 채워주는 익숙한 연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익숙함이란 느낌은 둘에게는 독이 되었다. '로제'는 자유를 추구하여 다른 여인을 만났고, '폴' 또한 '시몽'이라는 남자를 만났다.

 실내장식가인 '폴'의 고객 중 한 명에게는 '시몽'이라는 건장한 아들이 있었다. 잘생기고 훤칠했으며 직업은 견습 변호사, 나이는 25살이었다. 굉장히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런 남자인 '시몽'이 '폴'에게 첫눈에 반했다.  


 "저는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시몽'은 언뜻 보기에는 완벽한 남자처럼 보였지만 삶에 일종의 회의를 느끼던 찰나였다. 그 순간 '폴'이 나타난 것이다. '폴'은 '시몽'에게 있어 자신의 삶에 불을 붙일 여인이었다. '시몽'은 애처롭게 '폴'을 따라다녔다. '폴'은 '시몽'에게 모성애까지 느낄 정도였다.


 "(...) 사랑을 그대로 지나가게 하고, 행복해지는 의무를 소홀히 한,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당신을 나는 고발합니다."


 '시몽'은 저돌적이었다. 자신의 사랑을 확신하고 '폴'에게 돌진했다. '시몽'은 자신의 사랑을 피하기만 하는 '폴'을 자신이 맡았던 변호 얘기를 하는 척 은유적으로 지탄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상기 대사는 작중에 나오며 소제목임과 동시에 소설 전체의 제목이기도 하다. 표면적인 의미와 상황은 '시몽'이 '폴'을 음악회에 초대하며 한 말이다. 내재한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하네스 브람스'라는 독일 음악가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요하네스 브람스'는 14살 연상이자 스승의 아내 클라라 슈만을 평생 사랑했지만, 그녀의 죽음으로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작중 배경이 되는 1950년대에 '요하네스 브람스'는 파리 시민들이 딱히 좋아하지는 않은 음악가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정보를 토대로 다시 브람스를 좋아하냐 묻는 말의 의도를 따져보면, 익숙하지 않고 어쩌면 당신이 싫어할 수도 있는 곳으로 초대한다는 의미 즈음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그녀는 자신과 자신의 생활 이외에 또 어떤 것을 좋아했던가? (...) 그녀는 스무 살 때에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폴'에게 이런 질문은 낯설었다. 익숙하고 편한 것을 추구하는 삶이었고, 39살이라는 그녀 나이에 도전은 사치처럼 보이기도 했다.


 "(...) 당신이 브람스를 좋아하시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내게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려야겠군요."


 그런 '폴'에게 '시몽'은 너무 적극적이었고, 결국 '폴'은 흔들리고 만다.


 로제, 당신 때문에 난 불행해요. 로제, 그러니 변화가 있어야만 해요.


 변화는 곧 익숙함의 파괴다. 파괴는 고통스러운 흔적을 남긴다. 잔류하는 통증은 새로운 사랑으로 치유해주어야 한다. '폴'은 '시몽'의 품에 안겨 누웠다. '시몽'이 자신의 짐을 '폴'의 아파트에 두고 주위 시선을 애써 뿌리쳤던 짧은 기간은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14살의 나이 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폴'이 원하는 사랑은 지독히도 자신이 편안함을 느끼는 예전의 것인지, 어떤 감정에서 이끌렸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폴'은 행복하지 않았다.


 "시몽, 이젠 난 늙었어요, 늙어..."


 '로제'는 비록 자유를 추구하고 또 '폴'을 외롭게 남겨둘 터이지만, '폴'은 '로제'를 사랑했다. 그렇기에 '폴'은 '시몽'을 그 자리에 두고 다시 처음처럼 '로제'에게로 돌아갔다.


 "미안하오." 로제가 말했다. "사업 관계로 저녁을 들고 있소. 좀 늦게 가게 될 거요. 저..."


 본작은 작가가 직접 제목에 물음표를 달지 말고 점 세 개로 끝내 달라고 출판사에 요청했다 한다. 왜 그런 요청을 했는지 의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힘 있는 권유도, 단순한 물음도, 강한 주장도 아닌 점 세 개로 끝나는 제목은 너무 모호했다. 하지만 본작을 모두 읽고 나니 점 세 개를 통해 앞서 말한 권유, 주장, 물음을 에둘러서 말하고 있다 느꼈다. 절대 강요하지 않고 작가 나름 위트있게 낯선 것은 어떠냐는 표현이었으리라.


 본작을 읽은 모두는 한 장의 초대장을 받았을 것이다. 특별한 것은 아니고 현재 살고 있는 익숙하고 친근한 세계 말고 낯설고 도전적인 새로운 것에 관한 초대장이다. '폴'은 흔들렸지만 거절했다. '폴'에게는 그가 원래 살고 있던 '로제'와의 세계가 더 완벽한 행복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초대장을 받은 모두가 '폴'과 같을 수도 없고 그럴 필요 또한 없다. 각자 사정이 천차만별인 것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도서 정보


출판사 : 범우사

작가 : 프랑수아즈 사강

옮긴이 : 이정림


-참고자료


소정화, 완벽주의자, 그러나 인간미있는 로맨시스트: 브람스의 사랑과 생애, 그리고 "독일 레퀴엠",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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