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손님 박여사님을 기억하며
부스를 설치한 지 1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가끔 지나는 이들은 잠시 무언가를 사려고 나온 듯 슬리퍼에 편안한 실내복 차림입니다. 나는 책을 사지 않을 거지만, 이 행사가 무언 지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멀찍이서 곁눈질로 부스를 쳐다보며 지나갑니다. 마치 ‘가까이 가면 말 걸 거지? 그건 좀 부담스럽지’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정의 민족이라 스몰톡이라도 나누면 금세 정이 샘솟아 그냥 지나치지 못하거든요.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북페어에 가면 텅장이 되어 돌아오곤 하죠. 그래서 가까이서 책을 살펴보고 싶어도, 부스에 가지 않은 적도 있답니다. 작가님이나 대표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 책도 저 책도 다 애써 만들어졌고 재밌을 것 같아 모두 담아 오게 되거든요.
그런데 책을 파는 입장이 되고 보니, 한 발짝 떨어져서라도 잠시 눈길을 주는 분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인데도 부스에 잠시라도 눈길을 주면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박여사님이 멀리서 우리 부스를 향해 걸어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정확히 부스를 향해 오고 있었지요. 얼굴엔 만연한 미소를, 손에는 알록달록 물티슈를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멀리서도 느낌이 왔지요. 전도사님이다! 그래도 밝게 인사를 했습니다. 저희 부스를 향해 오고 계시니까요.
“안녕하세요~!”
박여사님은 옆 부스와 옆옆 부스에 오색찬란 물티슈를 나누어 주며 “반가워요.” 인사를 했습니다. 저에게도 오시기에 물티슈를 받아 들고 말했지요.
“감사합니다! 오신 김에 책 보고 가세요. 편하게 펼쳐 보세요.”
하얀 머리칼을 고불고불 파마하고, 꽃무늬 외투를 입은 박여사님은 어깨에 멘 가방을 고쳐 매더니 <인생 쓰고 나면 달고나>를 유심히 봤습니다. 길지 않은 순간이었지만, 저도 모르게 인쓰달이 어떤 책인지 설명하고 있더군요.
“인생 쓰고 나면 달고나는 여성 작가 7인이 인생의 네 가지 맛을 주제로 쓴 글을 모은 책이에요. 단맛, 짠맛, 쓴맛, 감칠맛. 작가님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고 공감 가는 이야기라 술술 읽힌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책을 살펴본 첫 번째 손님이었기에 그저 기뻤나 봅니다. 주말 오전, 역 앞 광장에서 교회 물티슈를 나눠주는 신앙심 깊은 어르신. 누가 봐도 이 광장에 있는 목적이 뚜렷한 박여사님이지만, 도저히 책을 사실 것 같지 않지만 열심히 주절주절 말했지요. 그런데 가만히 책을 보던 박여사님이 말했습니다.
“설명 안 해도 알지. 제목만 봐도 알아. 오래 살아 보면 이 제목이 뭘 말하는지 알아. 한 권 줘요. 읽어 보게.”
“네? 진짜요? 구매하신다고요? 어머나!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해요. 첫 번째 손님이세요!”
그 이후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쿨하게 계좌이체까지 마친 박여사님께 인증샷을 찍어 달라고 호들갑을 떨고 감사하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호들갑에서 벗어난 박여사님은 부스에 올 때처럼 만연한 미소를 장착하고 다시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아! 이번엔 한 손엔 물티슈를, 다른 손엔 <인생 쓰고 나면 달고나>를 추가 장착하고요.